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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한권의 사전을 본 듯한 묵직한 감동이 있는 영화 '행복한 사전'

by 썬도그 2014.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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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메(마츠다 류헤이 분)은 사회성이 떨어지는 출판사 영업직원입니다. 사회성이 떨어지니 당연히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오타쿠 같은 모습도 많은데다 이름 자체도 성실(마지메)입니다. 이런 마지메가 사전편집부의 한 경험 많은 직원이 퇴사하면서 대타로 들어오게 됩니다. 


마지메는 타인과의 연결을 잘 하지 못합니다. 이런 고민조차 동료 직원들과 하는 것이 아닌 장기 투숙하고 있는 여관 여주인에게 합니다.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생각을 모르겠다는 말에 여관 주인인 할머니는 그건 당연한 것이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말을 통해서 상대방의 기분이나 생각을 알아내는 것이라고 충고 합니다.



마지메는 사회성은 떨어지지만 이름 답게 성실성으로 무장한 소명의식이 강한 사람입니다. 그가 사전편집부에서 맡은 일은 대도해라는 사전을 편찬하는 것입니다. 이 대도해라는 사전을 편찬하는 과정은 쉽지 않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작업입니다.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다른 출판사의 사전을 분석하는 과정부터 시작 합니다.  



단어의 의미를 알고 싶은 것은 누군가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싶은 것이라는 말을 통해서 영화는 단어의 중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단어를 채집하고 분석하고 정의 내리는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소명의식을 영화 가득 담아냅니다. 


또한 단어는 생물이라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를 분석하고 정의 내려서 사전에 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대도해라는 새로운 사전이 가지는 차별성입니다. 수 많은 사전들이 고리타분한 지금은 사용하지도 않은 사어를 사전에 싣고 소개를 합니다. 이에 반해서 대도해는 현재 초중딩이 쓰는 유행어까지 채집해서 정의를 내려서 실을 예정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이 녹록치 못합니다.


사전같은 남자 마지메, 사랑에 빠지다

마지메는 사전 같은 남자 입니다. 평소에는 크게 필요하지 않아서 곁에 두고 있지 않지만 필요할 때 꺼내서 보는 존재하나 존재감이 없는 그러나 존재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런 무존재감이 존재감인 마지메는 방을 책으로 가득 채운 책 오타쿠 같은 남자입니다. 여기에 사회성도 결여 되어서 친한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여기에 쑥맥 기질까지 있으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마지메는 다른 사람에게 없는 성실성이 있습니다. 이 성실성은 장인 정신으로까지 비추어질 정도입니다. 
마지메가 사전 같다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사전은 소설과 달리 기승전결이 없습니다. 중요한 단어가 분명 있긴 하지만 사전의 중요성은 가장 많은 단어를 싣는 성실성에 있습니다. 어렸을 때 궁금한 단어가 국어 사전에 없을 때의 낭패감은 그 사전에 대한 신뢰도를 무너트렸고 그 사전 대신에 큰 사전을 샀습니다. 큰 사전에는 내가 궁금해하는 모든 단어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실성을 가진 남자에게 마지메의 개인사전에 없는 사랑이 찾아옵니다. 여관집 할머니의 딸인 카쿠야(미야자키 아오이 분)를 짝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걸 또 단어 채집장에 씁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사랑의 정의를 내려가죠. 영화의 초반은 이 카쿠야와 마지메의 약간은 무미건조한 사랑 이야기가 살며시 담깁니다. 충분히 격정의 사랑이야기를 담을 수 있지만 영화는 사전처럼 차분에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정말 수 많은 영화를 봤지만 이 영화처럼 담백하고 격정이 없고 크라이막스도 없는 영화는 처음입니다. 사랑하는 과정에서의 에피소드가 있긴 하지만 큰 격정을 담지는 않습니다. 이 때문에 이 영화는 호오가 심할 듯 하네요. 따분하고 지루할 수 있지만 영화 중반부터 후반까지 한가지 톤으로 감동을 전달합니다.




큰 바다를 항해하는 한척의 배 같은 대도해 사전 편찬 과정에 주는 감동

뻔할 줄 알았습니다. 카쿠야와 결혼하는 과정에서 사회성을 회복하고 사전도 만드는 뻔한 영화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멜로 영화를 벗어서 다큐가 되어갑니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난 후 13년이 지난 시점으로 영화는 후반부를 시작 합니다. 

13년???
놀랍게도 그 13년이 지난 후에도 사전 편찬 작업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전은 28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하나의 사전을 내놓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냥 다른 출판사 사전을 베껴서 만들 수도 있지만 그건 용납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대도해만의 시선과 정의를 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오른쪽이란 단어에 대한 설명을 어떤 사전에서는 "북쪽을 바라 봤으 때 동쪽"을 오른쪽이라고 정의하고 어떤 사전에서는 책을 펼쳤을 때 짝수 페이지가 오른쪽으로 정의하며 어떤 사전에서는 시계를 정면으로 봤을 때 "1시에서 5시 사이"를 오른쪽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저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흔하게 쓰는 우리 말을 남에게 말로 설명하기가 참 힘듭니다. 
또한, 같은 객관적 사실이라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죠. 이런 정의 내림이 사전의 편찬 과정의 고단함이자 즐거움입니다. 예를 들어서  사전 편찬자가 내린 사전의 정의가 세상의 정의가 되기도 하니까요.  용례에는 사용하는 예를 보여주는데 여기에 편찬자들의 경험을 살짝 녹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영화는 여기헤서 확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또 다시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서 사전을 만들어갑니다.
13년이 지난 후 잡지사에서 일하다 입사한 신입 여직원이 이런 말을 합니다. 아니 13년 동안 뭐했어요? 이 말에 마지메는 당황하지 않고 사전 만들고 있었다고 말 합니다. 13년?? 그걸 이해 못하던 여직원은 사전 편찬 작업을 참여하면서 깨닫게 됩니다. 잡지나 소설과 달리 한번 틀린 또는 빠진 단어 때문에 사전 전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5교라는 5번의 교정 작업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내가 찾던 단어가 없던 사전에 대한 깊은 빡침을 이 영화는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신뢰도. 사전은 신뢰라는 엔진으로 돌아가는데 이 신뢰를 쌓는 도구는 바로 성실과 시간입니다. 성실하지 못해도 안 되며 시대에 뒤쳐져서도 안 됩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누군가는 가야할 길이고 가야만 합니다. 영화 '행복한 사전'은 이 15년간의 사전 만들기 프로젝트를 다큐 3일 식으로 덤덤하게 담아냅니다.


그래서 전 이 영화를 영화라기 보다는 하나의 다큐 같이 느꼈습니다. 사전을 만드는 과정을 사전처럼 담백하게 담은 행복한 사전. 큰 감동이나 빅 재미는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저에게 묵직한 감동을 전해 주었습니다. 단어 하나 하나에 정성을 담는 모습이나 적확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도 깨닫게 되네요.  글을 쓸 때 마다 오타가 많은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시간도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면서도 오타를 보이는대로 수정은 하겠지만 1교도 하지 않고 발행할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부가적인 재미는 배우들입니다. 
먼저 주인공인 마츠다 류헤이는 2003년작인 연애사진으로 국내에서도 많이 알려진 배우입니다. 꽃미남 배우인 이 배우가 최근에 안 보이더니 이 영화로 다시 한국을 찾아 왔네요.  오다기리 조야 워낙 유명한 배우라도 따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만 역시 연기나 넉살 좋은 얼굴은 보기 좋네요

그리고 또 반가운 얼굴이 있습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여주인공이었던 이케와키 치즈루가 오다기리 조의 애인으로 나옵니다. 약간 아줌마 티가 나지만 만나서 반갑더군요. 그리고 미모 발산을 하는 미야자키 아오이라는 여주인공이 마츠자 류헤이와 히로시에 료코가 주연한 연애사진을 리메이크한 2006년 작품인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의 여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그때보다 미모가 더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다만, 이 영화는 왜 행복한 사전인지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습니다. 그냥 사전 만들기 과정의 거룩함을 잘 담고 있고 이 과정의 고단함을 잘 알기에 보는 내내 묵직한 감동이 계속 넘겨지네요. 강력 추천은 힘들지만 잔잔한 영화, 특히 성실성이라는 강력한 공감대가 좋은 영화입니다. 특히 먹물 성향이 있는 분들에게는 꽤 볼만한 영화입니다.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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