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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책서평

인간과 신에 대한 사랑의 갈등을 감동스럽게 담은 '높고 푸른 사다리'

by 썬도그 2014.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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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분 할 것 같아서 초반에 좀 읽다가 덮었습니다. 이미 공지영의 '수도원 문학기행'을 읽다가 말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천주교에 대한 거부 반응은 전혀 없지만 아무래도 종교 색이 짙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 종교의 필요성은 알지만 신이 있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나이 들수록 이런 생각은 견고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높고 푸른 사다리'가 어떤 내용의 책인 지도 모르고 펼쳤다가 수도원 이야기가 나오기에 덮었습니다. 
그렇게 한 동안 방치하고 있다가 다시 펼쳐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펼쳐 든 이후에 단 이틀 만에 책을 다 읽고 덮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책을 읽고 큰 감동에 한 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책에 대한 쾌감입니다.

지금까지 주로 소설 보다는 정보와 지식이 가득한 서적들을 읽었는데 소설이 주는 서사의 감동에는 비할 수가 없네요


공지영 장편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

높고 푸른 사다리는 공지영의 신작 장편소설입니다. 
공지영. 이 이름은 참 여러가지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먼저 정치색을 뚜렷하게 내는 여류 소설가의 이미지, 파워트위터리안 그리고 맛깔스러우면서도 박력있는 소설을 잘 쓰는 인기 소설가입니다.

공지영을 처음 알게 된 것은 90년대 초반입니다
고등어, 인간에 대한 예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등 인기 베스트셀러 소설을 통해서 공지영을 알게 되었고 신경숙과 함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여류 소설가입니다. 신경숙은 긴 한숨 같은 소곤거리는 소녀적인 맑은 느낌의 소설을 잘 쓰고 공지영은 여류 소설가이지만 필체와 이야기가 아주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주 쉽게 읽힌다는 것이 공지영 소설의 매력입니다. 

1963년 동갑인 신경숙과 공지영은 나에게 소설의 재미를 알게 해준 작가입니다.
흥미롭게도 두 소설가는 나이와 살아온 시대는 같지만 소설 스타일과 같은 주제를 접근하는 방식은 많이 다릅니다. 
이는 환경의 차이이기도 할 것입니다. 386세대인 공지영이 그 뜨거운 80년대 대학가에서 극렬 시위를 한 것과 달리 신경숙은 같은 시간에 구로공단에서 여공으로 일을 했습니다. 이 두 여류 소설가를 지켜보는 것은 저에게는 큰 즐거움이고 제가 살아보지 못한 1980년대의 삶의 풍경을 들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공지영은 시대 비판적인 소설을 참 자주 많이 씁니다. 그게 페미니즘이 되기도 하고 정권 비판, 기성세대 비판일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 인간 공지영보다는 소설가 공지영이 좋습니다. 항상 머무르지 않고 현재를 옹호하기 보다는 비판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지영의 싸움닭 같은 스타일은 이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에서도 보여집니다.

그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책을 읽다가 제가 계속 읽게 된 것은 왜? 라는 질문과 체제에 대한 비판이 계속 나오기 때문입니다. 
높고 푸른 사다리는 요한 수사님이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갈등하는 신과 이성에 대한 사랑의 갈등과 높고 지고지순한 성직자들의 삶 그리고 이들이 한국에서 겪었던 믿기지 않는 고통을 씨줄과 날줄로 엮고 있습니다.

책을 열면 정요한 신부가 사무엘 아빠스님으로 부터 소희의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시작합니다. 
10년 전 사랑하는 사이였던 요한 신부와 소희의 이야기를 회상하면서 이야기는 흥미롭게 진행이 됩니다. 
10년전 요한 수사로 독실한 크리스챤으로 W시에 있는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수행을 합니다. 이성적이며 항상 합리적 의문을 품으며 열정가인 미카엘 수사 그리고 어리숙하지만 착한 성품을 가진 따스한 마음씨의 안젤라 수사와 함께 신부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요한 수사는 이성과의 사랑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20대 후반의 청년이고 곧 신부가 될 사람이기에 평생 이성과의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신부가 될 듯한 운명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요한 수사 앞에 수도원의 수장인 아빠스님의 손녀인 소희가 지방 수도원에 찾아옵니다. 성직자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서 찾아온 소희, 그런 소희와 정요한 수사는 사랑에 빠집니다. 이 과정이 좀 공감이 떨어집니다. 아무리 사랑이 첫눈에 반한다고 해도 20대 초반도 아닌 후반의 신부가 되려는 수사가 이성에 쉽게 빠질 수 있을까요? 그것도 약혼 상대가 있는 여자를 쉽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공지영 작가는 여기에 대한 깊은 설명은 하지 않고 그냥 물이 흐르니까 물이라는 듯 이 둘의 이성의 사랑을 포장합니다.
이 요한과 소희의 이성의 사랑과 요한의 신에 대한 사랑이 이 소설의 주된 주제입니다. 인간의 사랑과 신의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소재와 주제는 흔하지는 않지만 이미 하나의 클리세가 될 정도로 기시감이 많이 드는 소재이기도 합니다

80년대 인기 미드였던 '가시나무'가 이런 신부와 신의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으로 담기죠.
미드 가시나무가 좀 더 노골적이었다면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는 노골적이기 보다는 하나의 이성간의 사랑을 차용하는 정도로만 그립니다.  저작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의 사랑보다 고귀한 신의 사랑을 담기 위해서 인간의 사랑을 빗대는 정도라고 할까요? 이 모습이 아주 유기적으로 작동했으면 했으나 구멍이 숭숭 난 치즈 같이 성깁니다. 

이성 간의 사랑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 한 책 읽기는  책을 읽을 수록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펼쳐집니다. 
소희와 요한 사이에 일어났던 지난 10년 전의 이야기를 미끼로 한국에서 종교 활동을 한 베네딕토 수도회의 거룩함을 책은 후반에 가득 펼쳐 냅니다. 



책을 읽으면서 수시로 베데딕도 수도회를 검색했습니다. 
이 수도회의 수사님들의 참혹스러운 일을 북한에서 당하고도 다시 한국으로 찾아와서 사랑을 세상에 보이는 모습에 저와 요한 그리고 저자는 왜? 아니 왜? 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이성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을 보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베데딕도 수도회의 선행 중에는 '고 최민식' 사진작가의 휴먼이라는 사진집을 서슬 퍼런 군사 정권이 가난한 사람들을 카메라로 찍는다며 몽둥이질을 하는 시기에 사진집을 출판할 수 있고 도와 준 분도출판사가 이 베데딕토 수도회의 출판사였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높고 푸른 사다리는 이성과 신의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젊은 수사의 성장기를 담은 책이지만 그 외피 속을 들여다보면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가장 감정을 얹어서 읽었던 부분은 2곳입니다.  하나는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면서 돕지 않는 수도원에 대한 비판을 날 서게 하면서 직접 사랑을 해하겠다면서 임금 체불 시위를 하는 장소에서 시위를 참여하는 모습입니다.  이 모습은 현재 한국 천주교의 모습과 오버랩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기독교는 보수적인 성격이 짙지만 천주교는 구교임에도 오히려 기독교보다 사회 저항적인 행동을 많이 합니다. 
87년 6.10 민주 항쟁 때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방패가 되어 주었고 제주 강정마을과 밀양에는 많은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세상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의 교황에게서도 보여집니다. 

현재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약자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적극적인 발언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전 교황과 달리 싸구려 시계를 차며 몸소 낮은 곳으로 임하고 있고 사회 참여를 적극적으로 하라고 독려 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미카엘 수사는 이런 프란치스코 교황을 투영한 듯한 모습입니다. 

또 한 곳에서는 제 눈에 눈물이 흘려 내려서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었는데 그 부분은 흥남 철수 부분입니다. 3일 간 10만명이나 되는 엄청난 피난민을 실은 미 함정이 거제도에 사람들을 내리는데 물 한 모금도 화장실도 없는 공간에서 기적같이 아무도 죽지 않고 도착한 그 기적같은 일을 묘사하는 장면은 눈물 없이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서 실제 인물을 그대로 차용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 흥남 철수 때 미 수송선의 선장이었던 마리너스 수사의 이야기는 눈물이 펑펑 나오더군요. 공지영 작가는 이 역사적인 사실을 씨줄로 신과 이성 간의 사랑에서 갈등하는 요한을 날줄로 엮으면서 큰 감동을 담아냅니다.

저는 요한과 소희의 사랑 이야기에는 큰 감동도 흥미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해 못할 행동들도 많이 보이고 성긴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소히의 태도는 좀처럼 이해도 납득도 가지 않네요. 하지만 그런 마중물이 베네딕도 수도원의 경이적인 사랑의 행적과 마리너스 수사의 이야기를 끌어내면서 큰 감동을 이끌어주네요

제가 베데딕도 수도원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제가 살던 곳에 돈보스코 직업훈련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학교도 돈이 없거나 학교라는 시스템에서 벗어난 아이들을 보듬어주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수도원에 대한 감사함이 그렁그렁하네요. 

꽤 흥미롭고 감동이 많은 책입니다. 종교는 설교나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인 한 명 한 명의 선행과 성품에 감화 되는 것이지 길거리에서 커피 주고 휴지 준다고 전도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책을 읽으면 가끔 나도 종교를 믿어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에 제가 존경할 만한 종교인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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