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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지구를 지켜라의 씨앗 같은 영화 '2001 이매진'

by 썬도그 2013.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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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9일 오늘, 서울 상암동 영상자료원에서는 '화이'의 장준환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을 상영합니다. 오후 2시에는 1994년에 제작한 30분짜리 단편 '2001 이매진'을 오후 3시에는 '지구를 지켜라'상영 후에 장준환 감독과 주연배우인 '신하균'이 나와서 관객과의 대화를 할 예정입니다. 이미 매진이 되어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습니다.  오후 7시에는 올해 개봉한 '화이'를 상영 합니다. 

화이는 올해 영화관에서 봤고 '지구를 지켜라'는 2003년 개봉해서 흥행 대 참패를 한 영화입니다. 흥행에는 크게 실패했지만 영화 매니아분들은 이 '지구를 지켜라'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 중 하나로 손꼽고 있고 저 또한, 이 '지구를 지켜라'라는 영화가 이렇게 쉽게 잊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뛰어난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는 걸작입니다.  이런 영화를 일명 <저주 받은 걸작>이라고 하죠.


지구를 지켜라는 상당히 독특한 영화입니다. 아니, 이야기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또한, 이야기를 포장하는 포장술이 대단히 능청스러우면서도 능수능란합니다. 영화에서 병구는 좀 모자란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애먼 사람을 납치해서는 너! 외계인지지? 라고 윽박 지릅니다. 처음에 이 영화를 봤을 때는  뭔 저런 또라이가 주인공인가 했습니다. 아무튼, 또라이든 영구든 병구든 재미는 무척 있더군요. 주인공의 행동 하나 하나가 동네 바보형은 바보형인데 좀 더 심각합니다. 

영화는 진행 될수록 인지부조화 환자가 아닐 정도로 진지하게 나가는데 처음에는 동네 바보형을 쳐다보던 시선이 심각해 집니다. 쟤! 저거 진심이네. 병구의 진심어린 행동에 걱정까지 됩니다. 그리고 영화는 후반에 대반전이 일어나면서 동시에 관객의 눈물 샘을 자극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거실에서 라면을 먹으면서 그냥 그런 한국 영화인가보다 하고 봤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멍해졌습니다.
아! 이런 영화도 있구나. 병구라는 바보형에 대한 연민으로 인해서 라면 먹는 것을 포기할 정도로 큰 반전과 감정의 샘이 터진 듯한 복잡 미묘한 감정이 가득 해 지더군요. 이런 모습은 저 뿐이 아니라 지구를 지켜라를 꼭 보라고 권한 사람들 모두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저주 받은 걸작. 지구를 지켜라! 그런데 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 장준환 감독의 영화가 궁금 했습니다.


봉준호가 찍고 박칼린이 노래를 붙이고 박휘순이 연기하고 장준환이 연출한 '2001 이매진'

1994년 장준환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11기 졸업작품으로 '2001 이매진'을 연출합니다. 단순 졸업작품이지만 뛰어난 졸업작품들이 꽤 있습니다. 봉테일이라고 불리는 봉준호 감독도 졸업작품인 '지리멸렬'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고 친구와 함께 집에서 비디오로 보면서 그 깨알 같은 재미에 깔깔 거리고 웃으면서 봤던 기억이 나네요. 

이 '2001 이매진'은 봉준호 감독이 촬영하고 박칼린이 음악을 지금은 스타가 된 박휘순이 연기를 하고 장준환 감독이 연출을 한 30분짜리 단편영화입니다. 


영화의 내용은 어렵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전생에 '존 레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같이 비틀즈 노래만 듣고 사는 이 주인공은 '지구를 지켜라'의 병구처럼 농담이 아닌 진담으로 자신은 전생에 '존 레논'이었고 채프만의 총에 맞고 죽었다고 생각 합니다.  



시장에서 일을 하는 엄마 옆에서 무능한 하루 하루를 살고 있던 어느 날,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쓰러집니다.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주인공은 자신의 정체를 이제는 밝힐 때가 왔고 자신이 실제는 '존 레논'이 환생 한 것이라고 말하면 어머니가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귓속말로 어머니에게 고백을 합니다

"저 사실은 존 레논이에요"
어머니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십니다. 이 모습에 관객들은 빵 터집니다. 그래도 관객들은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저런 설정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존 레논이라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드디어 실력을 보여줄 때가 되었습니다. 존 레논처럼 긴 머리 가발을 쓰고 둥근 안경테의 안경을 걸치고 자신의 천재성을 입증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노래 드럽게 못합니다. 

멍~~~ 저거 또라이 아냐? 일말의 믿음 마져도 사라진 관객은 헛웃음만 나옵니다.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하더군요. 
킥킥 거리는 조소는 잠시 후에 더 이어집니다. 


그 이유는 오노 요코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요코를 만나서 자신은 영국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외교관이고 어머니는 영국에 산다는 등의 거짓말을 해서 요코와 즐거운 시간을 즐깁니다.  완벽하게 자신이 존 레논이라고 아는 주인공에 대한 실소는 뚝 끊기게 됩니다. 

주인공의 과거의 어두운 이야기가 아름다운 존 레논의 노래와 함께 흘러 나오면서 보여줍니다. 아버지의 학대와 어두운 환경에서 자란 자신의 과거, 존 레논 행새를 하기 위해서 강도 짓을 해야 했던 자신의 모습, 어쩌면 주인공은 존 레논이 아님을 알면서도 참혹한 현실을 잊기 위해서 '존 레논'이라는 인물 뒤로 숨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영화 '지구를 지켜라'와 비슷합니다. 어쩌면, '지구를 지켜라'는 이 '2001 이매진'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영화가 보여주는 내러티브 형식이나 주제는 거의 흡사합니다. 

장준환 감독은 이런 능글맞은 연출을 아주 잘 합니다. 딴청 피우듯 농담 하듯 관객 어깨의 힘을 잔뜩 빼 놓습니다. 그렇게 깔깔거리고 웃게 만들다가 마지막에 농담 같지? 그런데 진짜야~~ 라고 마무리하죠. 


2001 이매진은 아름다운 존 레논의 노래와 함께 아름답지 않은 주인공의 삶, 그러나 아름답게 살고 싶은 주인공의 마음을 현란한 스토리텔링으로 잘 보여줍니다. 군더더기 없는 연출이 보기 좋네요.  봉준호, 박칼린, 박휘순, 장준환, 이 4명의 이름을 한 영화에서 다시 만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인상 깊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왜 영화 제목이 '2001 이매진'일까요? 이매진은 존 레논의 히트곡인 imagine에서 나온 것과 주인공이 상상의 세계에서 사는 것을 함의하는 것은 알겠는데 2001은 뭘까요? 영화 속 주인공이 태어난 년도가 1980년이라고 하던데 이 영화의 배경이 2001년인가 봅니다. 그래야 주인공 나이가 21살로 얼추 들어 맞거든요. 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죠.

달콤 쌉싸름하다는 표현은 이런 영화를 두고 나온 표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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