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철학책을 사 모으고 읽고 있지만 가끔은 니체, 칸트, 헤겔, 데카르트와 하이데거가 나와 뭔 상관이지?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이 철학자들이 말하던 시대와 지금은 엄청나게 다른데 고전 철학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그럴 때마다 형태나 외형은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고 그 본질을 담은 것이 인문학이자 철학이라면서 꿋꿋하게 읽고 있습니다.
그러나 케케묵은 죽은 언어들을 가지고 씨름을 하고 있으면 머리가 어질 어질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현대어로 번역한 철학 입문 서적이 꽤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책들이 많은 지식을 전달하지는 못하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읽기 편하기 때문에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은 더 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인 '재페니메이션'을 통해서 근대와 현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재페니메이션을 통해서 근대와 현대의 삶을 설명한 '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
저자는 청춘인문학을 쓴 정지우 작가입니다. 고려대학교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하고 철학 관련 서적을 계속 쓰고 있네요.
이 책은 인문학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책 내용은 인문학이라기보다는 삶에 대한 태도를 담고 있습니다.
삶에 대한 태도도 인문학의 목적 중에 하나이기에 인문학으로 했나 보네요.
철학을 배우고 하는 이유가 삶에 대한 우리의 바른 태도 혹은 여러 가지의 태도들을 집어보는 것도 있기 때문에 잡다한 모든 철학의 언어들은 가지치기를 하고 근대의 삶, 현대의 삶을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근대의 삶
저자가 정의하는 근대의 삶이란 '개인' 보다는 국가와 민족 우리라는 집단체의 삶을 근대의 삶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왕을 위해서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한 목숨 바치는 것을 당연시 하는 것을 근대의 삶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농민으로 태어나면 죽을 때 까지 농민으로 살아야 하고 귀족으로 태어나면 귀족으로 평생을 사는 계층이 정해져 있는 '니 팔자' 논리가 지배했던 시대였죠. 이 근대의 삶을 담은 애니가 바로 '그렌나간'입니다. 이 그렌나간은 인류의 전진과 진보를 위해서 자신들의 삶을 개인이 아닌 우리 그리고 인류라는 거대한 명목을 위해 돌진합니다. 이런 모습은 1차, 2차 세계 대전에서 보여주던 우리들의 삶을 근대의 삶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근대화를 위해서 산업전선에 뛰어 들어서 국가 발전을 기여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대명분을 위해 살아가는 지난날의 우리들의 삶이 근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삶은 서양에서는 1950년 전의 삶이고 한국에서는 90년대 이전의 삶들을 근대의 삶이라고 합니다.
공감이 가네요. 분명, 한국은 90년대 초반까지의 삶들이 대부분 나를 버리고 민족과 우리를 위해서 희생을 강요 당하는 삶이었고 90년대 이후에 개인이 출현합니다.
현대의 삶근대의 삶과 크게 다른 현대의 삶을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국가, 민족, 우리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삶, 즉 개인을 중시하는 삶으로의 전환을 현대의 삶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삶을 담고 있는 애니로는 대표적으로 원피스가 있는데요. 이 원피스를 통해서 현대의 삶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원피스는 국가와 민족과 집단의 개념이 아주 느슨합니다. 고무고무 주먹으로 유명한 주인공 루피와 그의 친구들은 지구를 구한다거나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싸우지 않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개인적인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은 다 다릅니다. 다만 그 목표를 위해서 함께 나아갈 뿐입니다. 현대인들의 다원주의적인 성격을 그대로 담고 있고 해적선을 함께 타고 있지만 항상 함께 하는 것도 아닙니다. 각자의 꿈을 향해 나아갔다가 다시 모였다가 하는 느슨한 관계입니다. 이는 현재의 SNS에서 보여주는 우리들의 삶과도 링크됩니다. 가족과 민족의 혈연, 학연, 지연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의 꿈을 각자 꾸면서 방향성이 같으면 함께 동행하는 모습을 보이는 SNS와 비슷합니다.
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은 집단 VS 개인이라는 구분으로 근대의 삶과 현대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구분법을 읽으면서 우리를 돌아 봤습니다. 서양이나 미국은 우리나 민족보다는 개인주의가 보편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반면, 일본, 중국, 한국 같은 동북아 국가들은 개인보다는 집단, 민족을 앞세우는 삶들이 여전히 많죠. 분명 90년대 중 후반부터는 "나는 소중하니까"라는 개인주의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지금도 이 개인주의를 박해하는 모습이 많습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회식 자리에 빠지면 뒷말들이 많습니다. 또한, 회사라는 집단의 피해를 주는 개인주의 적인 행동을 질타합니다. 그게 집단 윤리라고 생각하고 있죠. 한 마디로 아직도 한국은 근대 국가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분명, 서양도 예전에는 한국처럼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심했습니다만 1,2차 대전을 통해서 집단주의와 민족이 결합한 전체주의 국가로부터 세상이 멸망 직전까지 가자 혐오스러울 정도로 전체주의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은 이런 전체주의에 대한 피해가 많지 않기에 그 부작용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일본 같은 경우는 분명히 일제라는 전체주의를 경험했지만 그 전체주의에 대한 반성을 거의 하지 않고 오히려 다시 전체주의로 가자고 하고 있죠. 이게 동북아 3국과 서양의 큰 차이 같습니다. 근대의 삶이 분명 좋은 점이 있긴 합니다만 미래 지향적이지는 않습니다. 저자는 이 두 개의 삶의 방식을 비교는 했지 어떤 것이 더 좋다고 편을 들어주기보다는 현재는 점점 현대적인 삶 즉 우리보다는 나를 위하는 삶이 늘어가고 있다고 애니를 통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자존감이 가장 강력한 삶의 원동력이고 그 자존감을 위해서 남들보다 더 돋보이게 위해서 명품으로 치장하고 있다고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배경은 중세지만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진격의 거인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진격의 거인 부분입니다. 이 진격의 거인은 올해 최고의 재패니메이션인데요. 이 부분을 저자가 어떻게 설명하나 했는데요. 배경은 중세지만 3명의 주인공인 엘렌, 미카사, 아르민은 개인의 목표를 향해서 전진을 합니다. 특히 엘렌이 거인으로 변신한 후에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폭주할 때 아르민이 어머니의 죽음 등을 말하지만 깨어나질 못합니다. 이때 거대한 성벽 너머의 거대한 세상을 말하자 다시 거인이 된 엘렌은 움직입니다.
이렇게 민족과 가족과 인류가 아닌 개인의 목표를 위해서 거인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면 이 애니는 현대의 삶을 투영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고보면 3명의 주인공은 인류를 위해서 싸우는 것은 아니고 엘렌은 자신의 꿈인 성 밖 너머의 세상을 위해서 미카사는 엘렌을 위해서 입체 기동을 합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글은 머리가 똑똑하고 능력이 좋을수록 편한 내지에서 헌병단 소속이 되는 상식적이지 못한 모습에 엘렌은 분노를 하죠. 이런 모습은 현재의 우리와도 닮았습니다. 머리가 좋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연봉이 높고 안정적인 직장을 찾는다는 모습을 빗대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개인주의가 심화되어서 오로지 개인만 생각하는 세상이 이기주의의 세상이라고 풍자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00% 동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그런 모습이 느껴지네요. 능력이 좋을수록 철밥그릇 직장에서 개인의 안위만 생각하는 모습들이요. 반면, 성밖에 버려져 있는 듯한 사람 저소득층과 소외 계층은 민족과 국가를 걱정합니다.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닌데 대기업이 수출을 많이 했다면 아주 좋아합니다. 이는 가난한 사람일수록 보수적이라는 아이러니한 현대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아쉬운점도 있습니다. 책이 얇기 때문에 많은 담론을 펼칠 수 없는 점은 오히려 장점이 됩니다. 즉 현대와 근대의 삶만 집중적으로 다룬 점은 참 좋긴 합니다만 현대인의 중요한 특징을 소비로만 국한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현대인은 잉여스러운 소비의 시대입니다. 소비를 해야 세상이 돌아가는, 소비가 엔진이 된 폭주 기관차가 맞습니다만 이 소비만으로 현대의 삶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비에 대한 설명만을 집중적으로 하다 보니 조금은 갸우뚱하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 소비는 현대의 삶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기에 큰 거부감은 들지 않습니다. 다만 좀 아쉬울 따름입니다.
저자는 이런 소비 종속적인 삶 속에서 좀 슬어가는 고독함을 동반하는 현대의 삶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우애, 나만의 삶, 타인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이 부분은 몇달 전에 읽은 탁석산 선생님이 쓴 '행복 스트레스'에서 제시하는 내용과 비슷합니다.
개인의 삶을 위하면서 느끼는 행복감과 함께 생기는 고독감을 이웃과의 연대의식으로 풀어 보라고 하고 있습니다. 즉, 봉사 활동이나 이웃과 남을 위한 행동들을 통해서 그 고독감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은 마지막 장에서 미래의 삶을 제시합니다.
개인이 주인공이 된 현대의 삶과 함께 상상이라는 영역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공감대 형성을 통해서 밝은 삶을 살라고 조언을 해줍니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상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적절하게 조율하라고 합니다. 현대인들의 삶이 퍽퍽한 이유는 너무 현재에만 집중하는 현세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현재만 보지 말고 좀 더 멀리 보고 상상을 하면서 살라고 충고합니다. 그래야 욕망 과잉의 시대를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부분은 정말 공감이 많이 가네요. 소유의 시대가 아닌 상상의 시대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삶이 아닐까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배경의 신이라고 하는 '신카이 마코토'의 초속 5cm나 그의 작품들의 주요 정서는 그리움입니다. 그리움은 추억팔이가 아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현재는 과거가 쌓인 결과물이고 현재를 디디고 달려가면 미래가 옵니다. 저자는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라면서 책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은 현학적인 단어가 거의 없습니다. 가끔 철학 용어와 철학자가 등장하지만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이야기를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고도 충분히 삶에 대한 맥락을 잘 집어주고 문제점과 해결책을 차분한 어조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조금은 느슨하고 말랑말랑한 것이 이 책의 장점입니다. 다만, 연성화된 철학 이야기가 뜬구름 잡기 식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 점은 살짝 느껴지네요. 읽을 만한 책입니다. 특히 일본 애니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깊이 있는 분석이 있습니다. 또한, 딱딱한 철학책은 싫고 현재의 내 삶을 돌아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좋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