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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사이비, 가짜와 진짜가 혼재된 세상에 피어나는 맹목의 꽃

by 썬도그 2013.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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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자욱이 낀 날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가방 하나 메고 마을 입구로 들어섭니다. 이 마을은 댐 공사로 인해 수몰 예정이 된 마을로 주민들은 보상금을 받고 강제 이주를 할 예정입니다. 

 

읍내나 다른 동네 사람들은 자신의 고향을 돈 주고 팔았다면서 수몰 예정 지역 마을 사람들을 싸잡아서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시기에 이 마을에 비닐하우스로 지어진 간이 개척 교회가 들어섭니다. 교회 장로는 서울의 한 젊은 목사를 데리고 와서 이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교회의 실제적인 운영자는 교회 장로입니다. 장로가 젊은 목사를 데리고 왔고 사람들 앞에서 웅변 같은 힘 있는 연설을 통해서 마을 주민들을 하나 둘 교회로 오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 교회 많은 것이 이상합니다. 앉은뱅이를 일어나게 하고 생명의 물을 헌금받고 파는 등의 구린내가 납니다. 한마을 주민은 폐병이 있는데 이 생명의 물을 먹고 안수 기도를 받으면서 폐병이 나아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한편, 험상궂게 생긴 남자는 오랜만에 집에 들어오더니 딸이 공장에 다니면서 대학 등록금으로 마련한 통장을 가지고 놀음판과 술집에서 술을 마십니다. 딸은 이 사실에 분노를 합니다. 이번에 대학 합격 했다고 통지를 받고 너무나도 좋아했는데 그 사이에 몇 달 안 보이던 아버지가 와서는 딸의 등록금이 든 통장을 들고나가버렸습니다. 

천하의 악마 같은 인간이죠.

 그런데 이 악마가 또 다른 악마를 보게 됩니다. 마을에 새로 생긴 개척 교회 장로라는 인간이 서울에서 연기자를 사서 앉은 뱅이 연기를 하다가 목사의 안수 기도를 받고 벌떡 일어나는 연기를 하면 돈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교회 장로와 술집에서 한바탕 사고가 일어난 후 이 인간 말종은 또 다른 인간 말종인 장로가 현상 수배를 받고 있는 사기꾼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 악마의 말을 경찰은 믿으려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평판이 좋지 못한 사람이다 보니 어떤 말을 해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평판이 좋지 않은 악인이 또 다른 악인을 세상에 알리지만 대부분의 선한 마을 주민들은 그들에게 선한 사람인 목사와 장로를 믿지 지 새끼 등록금 통장을 강탈하는 못난 버러지를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짜와 진짜가 혼재 된 세상을 고발 한 영화 '사이비'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개신교 비판의 영화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건 틀린 생각입니다. 
개신교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한 것은 한국 개신교의 문제점을 물론 지적은 합니다만 그게 주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 영화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안의 맹목적 믿음의 부작용과 폐해입니다. 

영화에는 선인과 악인 그리고 가짜와 진짜의 대립 구조가 계속 보입니다. 
돼지의 왕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이 말했듯  '거짓을 말하는 선한 자와 진실을 말하는 악한 자'라는 이율배반적인 구도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거짓을 말하는 선한 자는 교회 장로입니다. 그리고 진실을 말하는 악한 자는 무뢰배인 아버지입니다. 
겉으로만 보면 교회 장로는 마을 주민들을 위한 선한 사람입니다. 아픈 마을 주민에게 생명의 물을 제공하면서 병을 고치고 마음이 아픈 사람을 어루만져 주는 사람입니다. 반면 무뢰배인 아버지는 생긴 것부터 험상궂은 전형적인 악인입니다. 
그런데 이 악인이 선인의 탈을 쓴 장로가 사기꾼임을 목격한 사람이고 사람들 앞에서 저놈이 사기꾼이라고 말하지만 
딸마저도 제발 그러지 말라고 울먹입니다. 이런 딸을 주먹질로 패는 패륜의 아버지이죠.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진짜 모습이 다른 모습은 이 세상의 한 슬픈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을 믿음으로 판단합니다. 교회 장로를 더 믿기 때문에 믿음이 전혀 없는 무뢰배 아버지를 손가락질합니다. 

 

영화 '사이비'에서 가장 핵심이 되고 변화가 심한 인물은 교회 목사입니다. 
이 젊은 목사는 교회 장로의 소개로 시골에 내려와서 하나님의 목소리를 전파합니다. 그런데 이 젊은 목사는 처음에는 이 구조를 모릅니다. 그러다 교회 장로의 실체를 알게 되죠. 이 거대한 사기극을 목도하게 됩니다. 분명, 사람들을 속이는 행동은 잘못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이 목사는 그걸 알면서도 화를 불같이 내긴 해도 이 구조를 크게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심한 갈등을 합니다. 교회 장로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지만 마음 속 양심의 목소리는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내적 갈등 속에서 이 영화는 후반부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납니다. 

맹목적 믿음이 광끼로 이어지는 모습을 잘 그려낸 영화 '사이비'

1950년대 미국 미네소타에서는 휴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12월 21일 휴거가 일어나 자신들을 천국으로 데리고 간다고 믿었습니다. 많은 매스컴과 사람들이 이 소동을 구경했습니다. 신도들은 집을 팔고 헌금을 했으며 가족도 버리고 이 공동체 생활에 합류합니다. 그러나 12월 21일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럼 보통의 사람이라면 휴거가 일어나지 않음에 화를 내야 하지만 이 신도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세상에 빛을 퍼트린 덕분에 휴거가 일어나지 않았다"며 더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믿고 싶은 대로 믿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인집부조화에 쉽게 빠집니다. 

때문에 진실을 말해도 진실을 스스로 왜곡합니다. 
이런 인간들이 세상에 엄청나게 많습니다. 현재의 한국 사회를 좀먹는 극우나 극좌 세력들을 보면 마치 광신도들 같아 보입니다. 영화 사이비에도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병으로 죽은 아내를 내려다보면서 보세요! 형님 이 얼마나 평온한 죽음이에요 마누라 천당에 갔을 게 틀림없어요" 며칠 전까지 생명의 물을 먹고 병이 낫는다고 말하던 사람이 아내가 죽으니까 이제는 그 죽음마저도 합리화를 시킵니다. 

제가 이래서 광신도이 싫습니다. 믿음이 비판이라는 브레이크를 떼고 달리면 맹목적 믿음이 되고 그 종착지는 광끼라는 엔진을 단 사이비가 됩니다.  이런 광끼의 한국 모습을 이 영화는 고발하고 있습니다. 사이비의 이야기는 허구가 아닙니다. 수많은 탐사 보도 프로그램이 주기적으로 다루고 있는 소재가 바로 이 사이비입니다. 

특히나 개신교가 이런 사이비가 많은데요. 분명 이 영화는 개신교를 정면 비판을 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한국 개신교의 큰 문제점도 담고 있습니다. 그건 분명 감독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은 감독의 의도와 달리 개신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볼 것입니다. 개신교 특유의 배타적인 모습 때문에 이런 사이비들이 더 생기는 것은 아닐까요?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이 영화는 개신교 비판 영화는 아니니까요. 이 부분은 제 개인적인 소견입니다. 

왜 애니로 만들어야 했나?

돼지의 왕도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를 왜 애니로 했을까 했습니다. 충분히 일반 영화로 만들 수 있는데 왜 애니로 했을까요? 보통 애니로 만드는 이유는 실사로 표현하기 힘든 깊은 상상력과 현실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이야기를 할 때 주로 사용합니다. 로봇과 요정과 마법과 타임워프 등의 공상적인 이야기를 주로 애니로 담는데 이상하게도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는 현실을 그냥 담은 다큐입니다. 

작화도 아주 뛰어나지도 않습니다. 다다프로덕션에게는 죄송하지만 인물 묘사 부분이나 작화 부분은 좀 거슬리기도 합니다. 
이게 하나의 스타일이지만 이상하게도 돼지의 왕에서는 별로 느껴지지 않던 작화 부분이 좀 많이 튄다는 느낌입니다.  인물들의 눈이 너무나도 작습니다. 또한, 몰입이 잘 되지 않을 정도로 정밀 묘사력이 없네요. 물론, 이 영화는 작화가 주인공이 아닌 스토리가 주인공이기에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려면 그냥 영화로 만들지 애니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이런 의문은 후반부에서 어느 정도 그 이유를 알려줍니다. 거대한 폭발을 실사로 담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부분으로 모두 설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경찰도 전 의경인 줄 알았습니다. 좀 나이 든 경찰들이 나왔으면 했는데 모두 새파랗게 젋어서 누가 경찰이고 누가 의경인지 알기도 힘들더군요. 묘사의 세밀함이 많이 떨어진다는 점은 좀 아쉽네요.

그러나 이 영화 작화를 덮고 남는 강력한 이야기가 있고 이 때문에 지금 많은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권해효의 위악적인 캐릭터 연기는 최고네요. 만약 이 영화에서 권해효가 없었다면 정말 재미가 반으로 뚝 떨어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앞에서는 선한 척하면서 진실 앞에서는 악인으로 돌변하는 그 돌파력이 아주 뛰어납니다. 오정세의 목사 목소리 연기도 꽤 좋았습니다. 

믿습니까? 무엇을 믿습니까? 믿고 싶은 것만 믿습니까?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흐르고 목사는 

아버지에게 등록금이 든 통장을 뺏기고

울고 있는 영선에게 손을 내밉니다. "당신 탓이 아니에요"처음으로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알게 된 영선. 그렇게 영선은 사이비에 물들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이 대사는 아주 중요합니다. "당신 탓이 아니예요"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우리는 어떤 말을 더 많이 들을까요? 너 때문이야! 이게 다 너 때문이야!라는 말과 당신 탓이 아니에요 중에 어떤 말을 더 많이 들을까요? 울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울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당신 탓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당신 탓이 아니라는 말은 목사가 영선을 교회로 끌어들이는 대사로 쓰이기도 하지만 목사의 변화를 이끄는 환청으로도 들려오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치고 힘들 때 유혹은 찾아옵니다. 그게 선의라면 유혹이 아닌 인도입니다만 악의라면 유혹이죠. 문제는 우리가 고독하고 힘들 때는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그 손이 악마의 손인지 천사가 내미는 손인지 판단을 제대로 해야 하지만 그게 쉽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는 이런 판단력이 흐린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전국에서 사기꾼들이 말도 안 되는 사기술에 많은 사람들이 속습니다. 특히, 나이 든 분들이 많이 속는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는 그런 삶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항상 의심해야 합니다. 의심을 반석으로 삼아서 믿음을 키워가야지 의심 없는 맹목적 믿음은 사이비가 활개 치는 세상으로 만들 것입니다. 영화 사이비는 순진한 시골 사람들이 한 사기꾼에게 어떻게 보상비를 스스로 바치는지의 과정을 그대로 담고 있고 그 모습 속에서 깊은 한숨이 나옵니다. 지금도 전국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인간들이 엄청나게 있고 오늘도 가족에게 속이고 춤추고 노래하는 약장수 말에 속아서 거금을 내고 효과도 없는 약을 사고 있을 것입니다.

이때! 누군가가 어디서 약을 팔아~~라고 해야 하지만 그런 목소리가 있어도 오히려 그런 바른말을 한 사람이 집단 린치를 당합니다.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이런 현실을 디즈니 만화처럼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보통의 영화는 악인이 선인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냥 있는 그대로 담습니다. 대중 영화의 스토리텔링 화법을 따르지 않습니다. 때문에 너무나도 강렬한 후반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강렬하다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영화는 선 굵은 가짜와 진짜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가짜가 행복하다면 그게 진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마치 매트릭스 안의 삶이 더 달콤한 삶이라면 가짜의 삶이지만 그게 진짜의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오늘도 맹목적인 믿음 속에서 조그마한 의심을 하면 믿음이 부족하거나 왜 긍정적으로 살지 못하냐는 타박을 하는 약장수들이 넘쳐납니다. 그런 사람들을 고발한 영화가 사이비입니다. 돼지의 왕보다는 못하지만 어떤 영화보다도 강렬한 이야기이면서 한국인들의 비합리적인 삶을 고발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별점 : ★ ★ ★☆

 
사이비
"당신이 믿는 것은 진짜입니까?" <돼지의 왕> 연상호 감독의 본격 사회 고발 애니메이션 지금껏 아무도 다루지 않았던 뜨거운 소재! 종교와 인간관계에 관한 가장 솔직하고 신랄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평점
8.5 (2013.11.21 개봉)
감독
연상호
출연
양익준, 오정세, 권해효, 박희본, 황석정, 김재록, 김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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