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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외국사진작가

전후 일본의 황폐하고 쓸쓸한 쓰가루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코지마 이치로

by 썬도그 2013.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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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과연, 2차 대전을 일으킨 전체주의 국가 독일과 일본의 위정자 말고 그 당시의 독일 국민과 일본 국민도 모두 악인일까? 아니면 전체주의 국가에 순응한 삶 모두가 악에 동조한 것일까? 모두 동조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국가가 시키는대로 행동 했던 것이 아닐까요? 물론, 그 국민들의 그런 행동을 옹호하거나 포장하거나 미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서도 보여지는 전체주의 성향을 보면 어쩔 수 없는 환경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일본은 여전히 역사를 직시하고 바로 보지 못하고 역사 왜곡을 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일본 국민은 이걸 모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교육의 부재 또는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왜곡된 역사를 진짜 역사인 줄 알고 사는 모습들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 같은 일본의 양심이 있긴 하지만 그 목소리가 너무 작네요. 





















전범 국가인 일본은 2차 대전 후에 황폐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한국 전쟁이 터진 후에 미군의 병참 국가가 되어서 다시 일어서게 되는 계기가 되었지만 전후의 일본의 모습은 패전국의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진작가 코지마 이치로는 1924년에 태어나서 아이모리 현립 상업 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군에 입대해서 중국에서 크고 작은 전투를 합니다. 1945년 2차 대전이 끝난 후 고향인 아이모리 쓰가루로 돌아 옵니다. 그는 사진 재료와 완구를 파는 집안일을 도우면서 1954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 합니다. 

쓰가루는 어촌과 농촌이 있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그는 이 어둡고 힘겨운 나날을 흑백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사진들은 대부분 어둡고 질퍽거리는 삶을 묘사한 듯한 사진들이 대부분입니다.  하늘은 어둡고 비가 내려서 진흙탕이 된 도로에 힘겨운 발걸음을 하는 주민들의 뒷모습을 담았습니다. 

평범한 소재에서 일상을 초월한 이미지를 촬영하면서 뛰어난 조형 감각과 기교로 일본 보도 사진의 선구자가 됩니다. 
1961년 전문 사진 작가를 목표로 상경해서 예술 신인상등을 받으면서 사진가로써의 명성도 쌓아가게 됩니다. 그러다 1964년 39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진들은 쓸쓸한 풍경들이 가득합니다. 눈보라와 낮게 드리운 구름. 폐속까지 스며드는 찬 바람에 맞서서 걷는 사람들. 마치 원죄를 짊어지고 걷는 풍경들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전쟁은 가해국이나 피해국이나 모두 공평하게 황폐한 삶을 던져주고 있네요. 이래서 전 전쟁이 싫습니다.  포탄은 건물만 파괴 시키는 것이 아닌 삶까지 송두리째 파괴 시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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