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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사진에관한글

사진과 사진가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가지게 하는 '음식 도둑' 사진

by 썬도그 2013.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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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수단 국경지대 Ajiep 기아 캠프, 사진작가 Tom Stoddart

한 10대 흑인 소년이 뼈가 드러날 정도의 앙상한 몸을 이끌고 한 사람을 원망 어린 눈으로 쳐다 봅니다. 저 건장한 사람이 들고 있는 것은 옥수수 가루입니다. 구호 식품입니다. 저 소년이 원망어린 모습으로 보이는 이유는 저 옥수수 가루가 저 소년의 것이고 그걸 저 사람이 훔쳐가고 있습니다

소년은 원망 어린 시선만 보일 뿐,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습니다. 설 수 있는 힘 조차 없으니까요. 
이 사진은 세계적인 사진작가인 Tom Stoddart가 1998년 수단 대 기근 때 국경없는 의사회와 함께 Ajiep 캠프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참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먼저 무너진 도덕성입니다. 

저 걷을 힘도 없는 소년의 생명줄인 구호 음식을 훔쳐가는 모습은 인간의 정체성마저도 의심케 하는 행동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동물의 본능만 남은 수단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저런 대기근이나 큰 전염병이 창궐하면 저럴까요? 내가 살기 위해서 가난한 사람 혹은 힘없는 사람을 패서 먹을 것을 뺏을까요? 

영화 '더 로드'는 재앙이 가져온 인간성 멸종 시대를 잘 담고 있습니다. 저는 저런 상황이라면 추한 꼴 보기 보다는 그냥 죽어버릴 생각입니다. 살아 남는다고 해도 그런 추악한 기억을 가지고 평생을 사느니 그냥 삶을 마감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요

이 사진의 또 하나의 도덕성 문제는 사진작가로 향합니다

"당신은 그냥 지켜만 봤나요?" "저 상황에 끼어들어야 하지 않나요?"
이런 질문에 Tom Stoddart는 이렇게 말 합니다. "난 구호단체 요원도 아니고 경찰도 아닙니다. 난 사진가입니다"
이해하는 분이 많지는 않겠지만 사진가들은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 불문율이 있습니다. 

사진가는 목격자 일 뿐 문제를 해결하는 경찰이 아닙니다. 
만약 사진가가 사건에 개입하게 된다면 아마 전쟁터에서는 누구보다 먼저 사진기자나 사진작가를 쏴 죽일 것입니다. 실제로 전쟁터에서 종군 사진기자들은 적군이라도 함부로 총을 쏘지 않습니다. 그들 즉 사진기자나 작가들이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만약 몇몇 사진작가가 아군에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 몰래 적군을 촬영한 후에 그 사진 혹은 인터뷰 자료등을 아군에게 건낸다면 다른 사진작가나 기자들은 전쟁터에서 가장 먼저 총에 맞아서 죽을 것입니다.

적십자가 아군 적군 가리지 않고 구호를 하고 치료를 하듯 사진작가나 기자도 사건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물론, 저 상황은 좀 다르긴 합니다. 사진을 찍고 

"어이! 이봐 이러면 안되지. 이 아이가 불쌍하지도 않어? 그 구호 음식 돌려줘" 라고 하던가 아님 근처의 구호단체 직원이나 경찰에게 이 사실을 말할 수 도 있겠죠.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목격자로써의 역할만 했습니다. 이게 사진가에게 있어서는 상식이지만 저 같은 일반인들의 시선에서는 몰상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단의 굶주린 소녀 뒤에 독수리가 있던 사진을 찍은 '캐빈 카터'는 그런 세간의 비난에 큰 고통을 받습니다. 


사진가의 태도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위 사진은 수단의 대기근을 세상에 알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사진을 보고 구호 단체에 기부를 합니다
이 사진의 또 다른 의미는 이 사진이 하나의 은유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는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런 구호 식품을 서방 국가들이 지원을 해도 저 구호품이 매일 100명 씩 죽어가는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에게 가는 것이 아닌 대부분이 주변 시장에서 판매됩니다. 부패한 관리들과 권력자들이 구호 식품과 구호품을 돈 받고 팔거나 자신들의 부를 축척하는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아프리카의 기아는 구조적인 문제까지 겹쳐져서 하느님도 구제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구호 무용론이 나옵니다. 
이 아프리카 정권들은 독재자가 많은데 이 독재자들이 홀로코스트라고 하는 타 민족을 무참하게 죽이는 인종 청소 작업을 수시로 합니다. 그때마다 많은 기아 난민이 발생하는데 그 기아 난민을 볼모로 서방 국가의 구호를 요구합니다. 서방 국가들도 압니다. 그 구호품과 식량이 관리들이나 권력자로 향한다는 것 압니다. 그럼에도 계속 구호품을 보내는 이유는 설사 그런 상황이라도 구호품을 보내면 100명의 기아 상태의 사람이 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보냈는데 99개가 관리들이 뒤로 빼돌린다고 해도 1개의 구호 식량으로 1명은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비효율적이지만 이 구조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계속 보내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아프리카 현지 정부가 아닌 구호 단체가 직접 배급을 하는 것인데 이건 또 할 수가 없고 많은 인력이 필요로 합니다. 아프리카 뿐 아닙니다. 북한을 봐도 알 수 있죠. 뭐 제가 좌좀 혹은 좌빨이라서 북한을 옹호할 것 같다고 편견을 가지지만 이 북한에 대한 쌀 지원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이유는 압니다. 압니다만 북한 김정일 김정은 이 드러운 종자에게 고맙다는 소리 한 마디 듣지 못하고 지원하는 것은 일절 끊어야 합니다. 굶어 죽던 말던 신처럼 떠 받드는 그 김씨 왕조에게 하소연 하라고 해야 합니다. 

지원을 하려면 먼저, 우리의 원조에 대한 고마움을 제대로 표시해야 수순이죠. 우리가 지난 수년 간 북한에 지원한 쌀이 군량미로 쓰인다면 어느 국민이 열불이 안 나겠습니까.  밥 사 먹으라고 준 돈으로 칼을 사서는 우리의 배를 찌른다면 이거 막장 영화 따로 없습니다. 






사진작가 Tom Stoddart

한 장의 사진이지만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사진입니다. 저도 사진가가 되면 저 상황에서 목격자로만 남을 수 있을까요? 내가 욕 먹지 않기 위해서 사건에 적극 개입한다면 시위나 전쟁터 같은 사건 사고가 있는 현장에서 카메라 들고 있으면 
"너 쁘락치지"라고 주먹이 먼저 날아올 것입니다. 

그 무너진 모습을 지난 국정원 선거개입 반대 촛불 시위 현장에서 봤습니다. 경찰이 사복 입고 혹은 알바 시켜서 사진 채증 시키니 이에 흥분한 촛불 시위대가 고등학생의 빰을 떄리고 메모리 카드를 부셨다고 합니다. 사진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다보니 카메라만 들고 있으면 경계하고 의심하게 되죠. 사진가의 양심 그리고 처신, 정답은 없지만 항상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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