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고 있는 책이 '생각 버리기 연습'입니다. 이 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이가 들수록 생각에 잡음이 많아진다고요. 이렇게 생각에 잡음이 많이 끼는 이유는 경험이 많기 때문입니다.
나이를 먹일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끼는 원인은, 과거로부터 엄청나게 축척되어온 생각이라는 잡음이 현실의 오감을 통해 느끼는 정보를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책 "생각버리기 연습" 중에서
그래서 나이들수록 과거의 일이 또렷하게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기억은 또 다른 기억으로 덮어씌워지기 때문이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저만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20대 기억은 그렇게 많이 떠오르지 않지만 유년 시절의 기억은 왜 그리 잘 생각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다른 기억이 덮어 씌워진다고 해도 유년시절의 기억들은 그 어떤 기억으로도 덮어지지 않습니다.
특히 어머니 아버지에게 맞았던 기억, 선생님에게 맞았던 기억, 동네에서 뛰어놀던 모습, 처마 밑에서 망가진 비닐 우산을 들고 비를 피하던 모습, 친구들과 개구리 잡으러 가자면서 관악산에 갔던 모습과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았던 기억, 홍역을 앓았던 기억과 홍역 때문에 중간고사를 혼자 선생님 책상에서 치뤘는데 제가 틀린 답을 적자 선생님이 넌지시 정답을 찍어주던 모습
신기해요. 대학시절, 군시절의 기억은 아웃포커싱 된 사진처럼 흐릿한데 유년시절과 국민학교 시절의 그 하루하루는 손에 잡힐 듯 다 기억납니다. 오리가 태어나자마자 본 것을 평생 기억한다고하죠. 그런 각인효과일까요? 이 세상에서 만난 새로운 감정과 경험과 느낌은 제 영혼에 각인 되었기 때문에 평생 기억나는 것일까요?
아마도 저만 그런 것은 아닐거예요. 유년시절의 기억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주 잘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이 내 인성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게 바로 유년시절의 트라우마가 아닐까요?
1977년생인 미국 사진작가 홀리 안드레스(Holly Andres)는 이런 유년시절의 기억을 다시 연출하고 재현했습니다.
Fiona I
Abby
Amber
Ashley
Austin
Calvin
Fiona II
Thomas
이 사진들은 이 여성 사진작가의 유년 시절의 기억을 외모가 비슷한 아역배우들과 함께 연출한 연출사진입니다. 작가는 몬타나 Short Street에서 10명의 형제와 함께 살았다고 하는데요. 그 시절의 기억을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아니면 기억은 고통은 제거하고 달콤함만 남기는 뮤드셀라 증후군에 걸린 자신의 모습을 대면 했을까요?
한 꼬마가 장난감 가게에서 장난감을 훔치려고 하자 한 어른이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그 꼬마에게 그 장난감을 선물해 줍니다.
그런데 그 어른은 미래에서 온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우둔하고 나약했던 젊은 시절 나에게 찾아가서 큰 형이 되어서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도 해주고 싶어요. 하지만 인생은 단 한번 뿐이고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후회를 하면서 사나 봅니다. 인생은 두번은 없거든요. 하지만 두번 이상은 시도할 수 있습니다.
이 작가도 해외 작가답게 홈페이지에 그동안 했던 작업들이 다 담겨 있습니다. 추천하는 시리즈는 The Fall of Spring Hill입니다. 이 시리즈는 여름 성경캠프에서 일어난 일을 재현했는데 아이가 쐐기에 물려서 쓰러지자 아이들 엄마들이 도끼들고 그 원인 제공을 한 오두막 같은 것을 파괴합니다. 스토리가 있는 사진. 이런 사진이 참 재미도 있고 느낌도 많네요
홀리 안드레스의 인터뷰와 자세한 작가세계는 월간사진 인터뷰 글이 아주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