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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동안의 긴 주마등을 담은 잉마르 베리만의 '산딸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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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동안의 긴 주마등을 담은 잉마르 베리만의 '산딸기'

썬도그 2013. 5. 21. 12:53

인간이 좀 더 현명해지거나 좀 더 착해지는 방법 중 하나는 모든 사람에게 죽는 날짜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언제 죽는지 알거나 혹은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게 된다면 그동안의 자기 인생을 돌아보며 후회가 밀려오겠죠. 그리고 죽기 전까지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이나 자신이 고통을 주었던 사람을 찾아가 사과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혹은 세월의 장막 뒤로 사라진 옛 추억을 그대로 간직한 첫사랑이나 사랑했던 사람을 만날 것입니다. 

영화 '산딸기'는 그런 죽음을 향하는 길목에 서 있는 노 학자의 하루 짜리 주마등입니다. 

이 영화는 1957년 발음하기도 힘들고 여러가지 형태의 문자로 존재하는 '잉그라므 베르히만'이라는 거장 감독의 1957년 작품입니다. 이 영화가 현재 이화여대 속에 있는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상영을 하고 있습니다.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본 영화 중에 재미없거나 괜히 봤다는 영화는 없었습니다. 주로 예술 영화나 대중성이 없다고 내쳐진 해외 유명 영화들을 수입해서 소개하는 예술영화 전용 영화관입니다.  이화여대 속에 있어서 이화여대 구경도 할 겸 찾아가면 좋은 곳입니다. 

잉그마르 베르히만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영화 감독 중 한 명입니다. 많은 국내외 감독들이 이 감독의 영화를 
걸작으로 칭송하고 있죠. 그러나 이 감독의 영화를 국내에서 쉽게 보기는 힘듭니다. 개봉하는 곳도 없고 다운로드 서비스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80년대에 막 영화에 대한 흥미에 눈을 뜨고 보기 시작한 영화 잡지에서는 심심찮게 이 '잉그라므 베르히만'의 영화를 소개 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100대 영화'에는 항상 들어가는 그의 작품 2개가 있는데 

하나는 작년에 개봉해서 봤던 '제7의 봉인'과 또 하나는 '산딸기'입니다
두 작품은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100대 영화에 올라온 작품으로 베르히만 감독의 전성기를 말해주는 영화들입니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가 1957년이라는 같은 연도에 제작되었습니다. 


검색창에 산딸기를 치면 80년대 한국의 대표 애로 영화인 '산딸기'가 시리즈 별로 소개될 것입니다. 그 만큼 이 영화는 대중들에게 읽히지도 소개 받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대중적이지 않느냐? 그건 아닙니다. 지금의 자극적인 msg가 담뿍 담긴 영화와는 분명 다른 영화입니다. 또한 이 영화는 상당한 이해력과 관조 혹은 경험과 연륜이 있어야 많은 부분을 소화할 수 있는 영화라서 젊은 층에게는 쉽게 읽히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다만 이쪽 즉 예술 영화나 예술 작품을 즐겨 듣고 보면서 자신의 감상을 스스로 블로그나 기록해 놓는 습관을 들인 젊은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 이 영화를 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영화적 소양이 없는 분들은 영화 이해 못한다는 것이 아닌 이 영화는 많은 은유가 있기 때문에 그 은유라는 산딸기를 다 따먹으려면 경험이나 관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이 영화를 보고 난 제 느낌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멍~~~~ 입니다. 이대 교정을 걸으면서 뭐지 이 명료하지 않고 게운치 않은 감정이란? 단어로 담아내기에는 너무나 넓은 감정의 스펙트럼에 황망해 했습니다. 그리고 머리가 좀 아파왔습니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영화를 보고 나면 명료하게 담겨지는데 이  영화는 그것과는 다르게 한 번에 단어로 치환되어서 뱉어 내지지가 않네요.

그 이유는 제가 영화 마지막 부분의 대사를 놓친 것이 크기도 했지만 인생의 스펙트럼을 몇 장의 문장에 담아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를 살짝 소개하겠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이삭 보리'라는 노 학자입니다. 젊었을 때는 의사도 했던 외과쪽의 전문학자입니다. 70살이 넘은 이 노 학자는 국가가 주는 명예 학위를 받기 위해 긴 여행을 해야 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갈 예정이었습니다. 아내는 예전에 죽었고 아들은 결혼을 했지만 아이는 없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잠시 시아버지의 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삭은 밤에 잠이 드는데 이상한 꿈을 꿉니다. 시계 바늘이 없는 거리의 큰 시계와 한 장례 마차에서 떨어진 관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깨어납니다.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이 꿈에 여간 꺼름직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지 않고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자신이 어렸을 때 살았던 곳과 아직 정정하신 90대의 어머니를 잠시 만나면서 명예 학위를 받으러 갈 계획을 짭니다. 

이에 집안일을 돕는 가정부가 불 같이 화를 냅니다. 점잖은 척 하면서 모든 것이 자기 위주라고 말하죠. 
이때 며느리가 자신도 같이 가도 되냐면서 이 하루 짜리 여행에 동석을 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로드 무비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우연 속에서 인생을 끌어내는 영화입니다.


첫 번째로 자동차가 멈춘 곳은 이삭이 어렸을 때 살고 자랐던 곳입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첫사랑인 사촌(이 스웨덴은 사촌끼리도 결혼이 가능한가 봐요) 사라와의 추억이 뭍어 있는 곳이죠. 이곳에서 그는 그 시절로 타임워프합니다. 이 부분은 환상으로 처리 되는데 저는 옛 기억과우 조우로 보여지네요.

서로 좋아하지만 망나니 같은 형제에게 사라를 빼았긴 가슴 아픈 옛 추억을 꺼내듭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라와 이름이 같고 생긴 것도 비슷한 여행객을 만납니다. 


사라가 환생한 듯한 사라와 사라와 함께 여행하는 두 명의 청년과 함께 여행을 합니다. 두 청년은 한 명은 현실주의자인 의사이고 한 청년은 성직자가 꿈인 신을 믿는 종교인이 꿈인 청년입니다.


이후 자동차 사고로 히스테리컬한 부부를 만나기도 하면서 여행은 명예 학위를 받으러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 줄거리는 별거 없습니다. 스토리도 큰 진폭이 없고요. 
그냥 평이한 로드 무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인생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그 하루 짜리 여행을 통해서 갈등과 번민을 담아내고 풀어내는 과정이 상당히 투박하지만 흥미롭고 미끈합니다. 또한 개인적인 갈등을 넘어 신에 대한 존재의 의문에 대한  깊이감 있는 이야기도 담습니다. 


제가 주마등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누구나 다 죽음을 직감하게 되면 옛 추억을 찾으러 갑니다. 유년 시절은 항상 설탕가루가 뿌려져 있는데요. 그래서 항상 노인 분들은 소싯적 이야기를 하면서 왕년에~~ 어쩌고로 시작하는 추임새를 하나 봅니다. 

이 노 학자도 가슴은 아프지만 그 유년 시절과 첫사랑을 찾아갑니다. 거기서 사라와의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다른 형제에게 사라가 결혼하는 모습에 가슴 아파하죠. 

사라와 이삭이 만나는 환상에서는 사라가 거울을 가져와서 현재의 이삭의 늙은 얼굴을 보여주면서 현재의 니 모습을 보라고 말 합니다. 이 장면은 상당히 기억에 남는데 이 노 학자를 연기한 '빅토르 쉬오스트롬'의 돌아갈 수 없는 청춘에 대한 갈망의 울먹임이 보입니다. 

하나도 늙지 않은 사라. 그러나 자신은 늙어버린 모습에 이삭은 절망을 느끼지만 계속 손은 첫사랑에게 향합니다.
이 장면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자 기쁨이기도 합니다. 첫사랑의 순수함과 젊음을 찾고 싶지만 세월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강에 떠밀려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절망 하기도 하죠. 늙어가는 것에 대한 고통을 잘 담고 있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기억은 늙지 않고 첫사랑도 늙지 않습니다 뭐 가끔 나이 들어서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만날 수 있음에도 만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첫사랑이 부패 할까봐서죠. 


이 영화의 또 하나의 갈등이자 또 하나의 중심적인 이야기는 아들과의 갈등입니다.
며느리는 이삭 대신에 운전을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와 시아버지에 대한 돌직구를 날립니다.

며느리는 말합니다. 시아버님은  위선적 자상함으로 위장한 분이라고요
발칙한 말입니다. 그러나 이삭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말이기도 합니다. 앞에서는 점잖고 항상 현명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 처럼 말하지만 정작 피붙이인 아들에게는 냉소적으로 대합니다. 

아들이 빚이 있음에도 아버지인 이삭은 그걸 도와주지 않습니다. 또한, 돈이 떨어져서 이삭의 집에 머무르는 아들 부부를 보고서도 내가 상관할 바~~ 아니라는 식으로 대하죠. 이런 차갑고 이기적인 모습을 며느리가 깨닫게 해줍니다. 

하지만, 이삭도 태생부터 이기적인 것은 아니였습니다. 젊었을 때는 덕망 높은 의사였었죠.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이기적인 모습으로 변하게 되죠


이런 자신의 모습을 환상 속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의학계에서 대학자인 그는 심판관 앞에서 한 여자의 상태를 봅니다. 그리고  죽었다고 판정을 내립니다. 그러자 그 죽었다고 하는 여인은 깔깔대고 웃습니다.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조롱 받고 자신의 지위가 조롱을 받습니다. 

이렇게 여행을 하면서 몇 번의 꿈을 꾸고 어머니를 만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가 보게 됩니다. 
좋았던 기억도 있지만 나빴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삶을 다시 살펴보게 됩니다. 

 

깊게 다루지는 않지만 신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신이 있다고 믿으세요? 없다고 믿으세요? 라는 여행을 동행하던 사라의 질문에 침묵으로 대답합니다. 이런 질문은 제7의 봉인에서도 다룬 내용이죠. 정말 신은 있을까요? 아님 정신적 마취제일까요?

영화의 스타일은 제7의 봉인 처럼 극명한 콘트라스트의 화면이 자주 많이 나옵니다. 이는 독일의 표현주의 기법으로 연극적인 무대 효과까지 나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악몽을 꾸고 난 후 이삭의 생일이라고 젊은 여행객 3명이서 차창 밖에서 꽃을 건네주지만 그 꽃을 받고 갑자기 모든 것이 사라지고 핀 라이트가 이삭의 얼굴에 떨어지는 장면은 정말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런 창의성을 57년에??


 노 학자는 이 하루 짜리 주마등 여행을 통해서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추억하며 옹고집을 버리게 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이 노 학자가 자신의 내면의 큰 짐이자 봉인했던 가족에 대한 추억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리고 아들 내외와의 갈등도 느슨해집니다. 

자신의 고집과 앞에서는 점잖은 듯 하면서 매몰찼던 위선적인 자상함이라는 잔혹함을 직시하게 됩니다. 
저는 이 영화를 이렇게도 봤습니다. 노 학자의 마지막 장면도 훌륭했지만  20대 청년들과 이 노 학자의 대화가 너무나 흥미로웠습니다.

요즘 20대와 60대가 말하는 공간이라고는 학교 밖에 없습니다. 노 교수와 젊은 대학생들이 대화라기 보다는 가르침을 받죠. 일방적인 가르침 속에서 두 세대는 대화를 하기 힘듭니다. 학교를 넘어서 20대와 60대가 동등한 입장에서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20대는 늙은 외모를 거부하고  늙은 노인들은 젊은 놈이~~ 하는 식으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 경험 없는 20대를 아이 취급 합니다. 

이렇게 나라 전체가 세대 간의 대화가 없다 보니 많은 사회 비용을 치루고 있습니다. 모르는 것은 지식인에 물어보고 지식인에도 없으면 스스로 경험해 보고 길을 찾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이미 수십 년 전에 걸어 봤던 노인들은 지름길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지름길을 알려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니 알려주는 방식도 문제입니다. 자신의 경험이 절대 진리인 것 처럼 말하는 "내가 해 봐서 아는데" 식으로 말하니 대화가 될리가 없죠.

그러나 70대 노 학자와 20대 3명의 청년의 아름다운 대화와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70대 노 학자에게 생일 선물이라고 꽃을 꺾어주는 20대, 청년들의 신의 존재에 대한 다툼, 그리고 두 청년이 주먹 다툼을 하자 30대인 며느리가 말리는 모습 등은 감독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현재 한국을 살아가는 저에게는 큰 울림이었습니다.

아니 저 50년대는 한국도 이런 모습이 많았겠지만 지금은 이런 모습이 너무 안 보이네요



영화 산딸기는 신, 죽음, 외로움, 나이 들어 감, 인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감독 본인의 이야기이기도 한 데요. 자신을 돌아보면서 한 노 학자가 변해가는 모습을 쉬우면서도 무겁게 담고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죽기 전에만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짧지 않은 생을 살아도 뒤를 돌아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 하는 사람이 인격의 향기가 납니다. 뒤를 돌아 보세요. 그리고 자신의 삶을 복기해 보세요. 그리고 현재의 내 모습을 거울로 보세요.

그 끝에는 산딸기 같은 시큼한 행복이 기다립니다. 
산딸기는 저에게도 유년시절의 추억이었습니다. 주전부리가 많지 않았던 그 시절 산에 가서 산딸기를 따서 먹으면서 시큼해 하면서도 많이 따 먹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영화는 깊게 보려면 한 없이 깊게 볼 수 있고 가볍게 보려면 한 없이 가볍게 볼 수 있습니다. 요즘은 고전 영화에서 현재의 답을 찾을 때가 많네요. 시대는 다르지만 인생은 크게 보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겠죠.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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