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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지슬, 2시간짜리 제주4.3사건 원령들을 위한 장례식

by 썬도그 2013.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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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 먹으면서 볼 생각하지 마세요. 청량음료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보는 것이 아닙니다. 2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그걸 견디면 아마도 당신의 영혼에는 하나의 큰 갈라짐이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갈라진 곳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그렇게 다시 딱정이가 생겨서 작은 흉터 하나 생긴 후에 굳은살이 돋아난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영화를 가볍게 청량음료와 곁들여서 볼 생각인 사람은 보지마세요. 장례식장 가는데 콜라와 팝콘 조차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저도 이런 영화인지 모르고 봤습니다. 선댄스 영화제 대상을 받았기에 그냥 봤습니다. 그냥 봐서 그런지 그 견딤이 힘들었을 수 도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겁은 먹지 마세요.

어른이라면 한국인이라면 우리의 가까운 과거에 일어난 인종학살에 가까운 처참한 행동을 그 행동을 목도해야 합니다. 한국이라면 해야 합니다. 


어른들이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던 3만명의 대학살이 일어난 제주4.3사건을 다룬 지슬

일본이 자국의 어린 학생들에게 일제의 만행과 과거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고 우리는 일본에게 지적하고 항의합니다
하지만, 과연 한국은 자국의 역사를 제대로 한국 학생들에게 가르칠까요? 현대사를 가르치지 않아서 현대사를 일베라는 똥통에서 배우는 요즘 학생들은 그렇다고 치고 고등학교 때 까지도 국사를 배우고 대입시험에도 나왔던 학력고사 시대에서도 이 현대사 부분은 말 줄임표로 배웠습니다. 

뭐 역사의 당사자가 살아있어서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사건의 윤곽과 논란까지 소개해주면 좋으련만 우리의 아버지 세대들은 저에게 자세한 현대사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80년 광주 민주화 항쟁도 중학교에 올라간 86년 친구에게 들어서 알았습니다. 제대로 안 것은 88년 5공 청문회 때 였고요

왜 우리는 이런 현대사를 10년 가까이 뒤에 알게 되는 걸까요? 이게 정상적인 나라입니까?
군부독재니까 가능했겠죠. 언론통제와 군화발과 총과 칼로 국민을 윽박지르니 가능했던 것입니다.
광주 민주화 항쟁은 그나마 광주사태에서 광주 민주화 항쟁으로 승격되었지만 우리가 다 놓치고 간 대형 살상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1948년 한국정부가 세워지기 전인 미군정시절 제주도에서 일어난 4.3사건입니다.

4.3사건은 저도 잘 모릅니다. 
그냥 제주도에 빨갱이가 침투해서 빨갱이 색출 작전을 펼쳤는데 무고한 양민들도 참 많이 죽었다는 정도라고 할까요. 이후 4.3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을 수 없었습니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가 살짝 다루긴 했었지만 자세하게 다루지 않았고요

제가 아는 4.3사건은 이 정도입니다. 제주도 사람들이 육지 사람들을 증오하고 싫어한다는 정도 밖에 모릅니다. 왜 제주도 사람들이 육지 사람들을 싫어하는지 몰랐습니다. 오히려 텃세가 심하다는 이야기로 들려왔습니다. 지금이야 국내 최고의 관광지이자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제주도이지만 이 제주도에는 선홍빛 아픔이 있었습니다. 

무려 3만여명의 제주도민이 죽은 4.3사건 3만여명은 제주전체 도민의 10분의 1에 해당되는데 아무리 그들이 죄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3만여명을 죽인 것은 학살입니다. 그것도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군과 경찰의 자행한 만행에 가까운 일을 우리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냥 무고한 사람 3만여명이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분명 좌익세력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갓난아기나 아이들도 빨갱이였을까요? 아무리 빨갱이라고 해도 연좌제로 가족까지 죽이고 그걸 넘어서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들을 소개령을 내려서 산으로 도망간 모든 사람을 총살한 모습은 국가적인 수치입니다. 이런 4.3 사건에 대한 영화가 바로 영화 지슬입니다.

어떤 어른들도 거론하지 않고 이제는 제주도민도 거론하지 않는 4.3사건 그 진상규명은 지금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무고하게 죽은 사람들을 우리는 그냥 빨갱이라고 모두 빨갱이라고 치부하고 덮고 지나가면 끝일까요? 그게 과연 올바른 행동일까요? 


영화 플래툰을 연상케 하는 불편한 과거에 대한 되새김질

영화는 시작하면 푸른 제주도도 아름다운 제주도도 아닌 흑백의 제주도 상공을 보여줍니다. 음악은 장송곡 같은 곡으로 관객을 압도합니다. 연기가 가득한 방을 누군가가 콜록거리면서 움직입니다. 바닥에는 제사상이 엎어진듯 제기들이 뒹굽니다. 

그리고 두 남자의 얼굴이 보이고 그 뒤에 여자 시체가 장 속에 죽어 있습니다. 그 앞에서 두 남자는 사과를 먹고 있습니다. 모멸차고 잔혹한 풍경입니다. 그 두 남자는 대한민국 국군입니다. 

이 영화는 배달의 기수인 국군이 아닌 5.18 광주 민주화 항쟁때 시민들에게 총을 쏜 그 추악한 한국군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만행을 스크린에 낱낱이 고발하고 있습니다. 네 일베충들이 보면 영락없는 빨갱이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실화입니다. 약간의 이야기의 변형은 있지만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만행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그 만행이라함은 참혹스러워서 여기에 적기도 꺼려지지만 분명 알고 넘어야 갈 부분이기에 좀 묘사를 하자면 총알을 아낄려는 건지 양민들을 총도 아닌 칼로 죽이고 자비심이란 전혀 없으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한 마을을 빨갱이 마을이라고 정해놓고 사람들을 마구 죽입니다. 그리고 부녀자들을 성폭행합니다. 악마 그 자체입니다. 이런 국군의 만행을 영화는 여과없이 보여주고 그 참혹스러움에 고개를 돌리고 싶어합니다. 

국군은 정의롭고 용감한 그런 모습이 아닌 야만인 그 자체로 묘사됩니다. 
다만 국군 전체를 야만인이나 악마로 묘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군 중에서도 착한 군인이 있는데 바로 박일병과 신병입니다


영화에서 박 일병은 도망가는 순덕이라는  20대 초반의 마을여자에게 총을 겨눕니다. 그러나 쏘지를 못합니다. 박 일병은 빨갱이를 한 명도 죽이지 못해서 온갖 고문과 얼차려를 받았지만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못하겠다면서 항명을 하고 있던 중이었고 역시나 순덕을 보자 총을 쏘지 못합니다. 

군대라는 생리상 상관이 악마이면 그 부대 전체가 악마가 되는 모습을 영화는 잘 담아줍니다. 박일병은 그 악마에 대들지 못하고 굴복하는 천사로 그려지죠. 이런 군대라는 생리를 잘 드러낸 영화들이 꽤 있었죠. '어퓨 굿 맨'도 그렇고 가장 유명한 영화는 '플래툰'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플래툰이 많이 생각납니다. 베트남 전쟁을 경험한 '올리버 스톤' 감독이 가장 큰 적은 우리 안에 있었다면서 악마같은 반즈 중사와 일라이어스 분대장의 반목을 통해서 우리 안의 천사와 악마를 잘 담아냈고 베트남 전에 대한 반성도 담고 있습니다. 

어쩌면 영화 지슬은 그 플래툰의 제주도 버젼 같기도 합니다
박일병과 신병의 이성을 가진 부류와 빨갱이에게 가족이 죽임을 당했다면서 복수심을 질겅질겅 씹어 먹는 살인을 돼지 잡는 것처럼 취부하는 살인을 해야할 임무라고 여기는 상병과 분대장의 모습은 악마 그 자체입니다. 얼마나 사람을 증오하면 저렇게 묻지도 않고 한 마을을 쑽대밭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영화는 이런 한국군의 추악함을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제가 한국군 전체를 욕하는 것도 현재의 한국군을 비판하는 것도 한국을 지키기 위해 전사한 한국군들을 욕보이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 한국군도 아니 우리의 역사에도 추악한 역사가 있다는 것이고 그걸 반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성없이 덮고 지나가면 일본처럼 됩니다. 일본 보세요 반성이 없으니까 틈만나면 군사강국이 되어서 또 이웃나라 윽박지를려고 하잖아요. 일본과 한국  서로 욕하면서 서로 닮은 게 이렇게 많은 것을 보면 웃음이 나옵니다. 다 나라 모두 이성 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나라라서 그런 것 아닐까 하네요. 




도대체 이 사람들이 뭔 죄가 있다는 것일까?

영화는 제주 방언으로 대사가 처리 되었습니다. 따라서 표준어 자막이 제공됩니다. 영화는 주로 롱테이크로 촬영 됩니다. 
첫 장면은 윗마을 사람들이 한 구덩이에 모여서 도망갈 궁리를 합니다. 

아랫 마을 사람들은 군이이 와서 모두 학살했고 그 소문이 퍼져서 도망칠 생각을 합니다. 이때 한 청년이 가져온 종이를 보니 소개령이 내려진 것을 알게 됩니다. 소개령이란 해안가 5km 밖으로 벗어나 있으면 무조건 빨갱이로 판단해서 모조리 죽이겠다는 초토화작전입니다. 그렇다고 해안가  5km 안에 있다고 살려주는 것도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좌익 세력에 도움을 주거나 무고한 양민들도 죽였습니다.  군인들에게 붙들려도 죽고 산으로 도망가도 죽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을 사람들

영화는 불친절하게도 이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도망가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저는 그래도 군인들이 사람을 아무나 막 학살할까? 적어도 인민재판이라는 약식 재판이라도 해서 좌익 우익 판별한 후에 죽이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영화는 이 윗 마을 사람들이 어떤 정치적 성향인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좌익이건 우익이건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마을 전체를 박살내는 국군의 두려움에 오들오들 떠는 양떼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산의 동굴로 피신합니다. 한 2,3일 후에 내려가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올라간 마을 사람들. 거기서 일제시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일제 순사에게 잘 봐달라면서 했던 기회주의자적인 행동을 한 사람을 비난하는데 다 지난 일이라면서 서로 사과하고 용서합니다. 

이런 기회주의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 영화에서 잠시 곁가지로 나오지만 전 그 기회주의자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이 일제시대 때 일제가 36년간 조선을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일제에 빌 붙어 살던 기회주의자들이 많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요. 솔직히 시대가 바뀌고 나라가 바뀌면 어딜가나 기회주의자가 있습니다.

지금 자신들의 삶을 보세요. 기회주의자적인 삶이 얼마나 많은데요. 저 또한 기회주의자입니다. 한국은 이상하게도 기회주의자에 대한 시선이 극도로 나쁘면서도 대다수는 기회주의자적인 삶을 산다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심합니다. 보세요. 지금 고위관료들이나 장관이나 권력자들 8할 이상이 기회주의자적인 삶을 살고 그 기회를 잘 타고 줄을 잘서서 출세하는 것 아닙니까?

뭐 우리는 또 어떻고요. 다만 그 기회주의자적인 삶이 너무 심해서 일제 앞잡이가 되는 사람들은 욕을 먹고 비판을 받고 그래야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기회주의자적인 삶을 살고 살아왔습니다. 영화에서 한 마을 주민이 일제 시대때 순사에게 빌붙고 해방되니 경찰에게 빌붙는 다는 식으로 핀잔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경찰이라는 사람들은 일제시대 때 순사 역활을 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심판을 받지 않고 바로 한국의 경찰이 됩니다. 참 드러운 한국의 현대사입니다. 

이건 곁가지 이야기고요

영화는 마을 사람들이 동굴에 지내면서 마을 이야기 지난 이야기를 하는 등 평화로운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고 며칠 후면 내려가겠지 하는 희망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 희망은 서서히 꺼져갑니다. 순복이라는 이웃집 처녀를 좋아하던 마을 청년은 순복이 국군에 의해 성폭행을 당하는 모습에 분노하게 되고  어머니를 두고 와서 걱정인 한 마을 주민은 집에 왔다가 집이 다 타고 어머니까지 죽은 모습에 소리를 죽이면서 웁니다


어머니가 먹으라고 싸준 지슬(감자의 제주도 방언)만 남은 채 어머니와 집은 불타고 없었습니다. 
영화는 이렇게 서서히 죽음의 공포를 드리우고 그 죽음의 사신 같은 국군의 만행을 묵묵히 담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시선은 우리에게 너무나 불편합니다
제가 견뎌야 한다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저도 한때 몸 담았던 국군이 저렇게 추악한 짓을 했다니! 그 추악한 과거를 눈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봐야 했습니다. 그게 현실이고 우리의 과거이니까요. 베트남 전에서 한국군의 용맹함은 그 무서운 베트콩을 덜덜 떨게 했다죠. 용맹한 한국군 뒤에는 한국군의 잔혹함은 가리워졌습니다.

말을 들어보면 한국군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이루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교련시간에 월남전의 무용담을 들려주던 교련 선생님을 사람 가죽 벗기는 것을 묘사하는데 구역질 나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한국군의 잔혹함을 영화는 우리에게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마치 도살장에 돼지나 소를 죽이는 백정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너무나 보기 불편합니다. 믿음직한 아버지의 불륜을 목도한 아들의 느낌이라고 할까요? 용감한 친구라고 영화관 광고까지 하는 우리의 국군의 치부를 들쳐내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부끄럽고 고개를 돌리고 싶습니다

물론, 혹자들은 너무 일방적인 시선이 아니냐고 합니다만.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없던 일을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기에 이런 사실은 인정해야 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영화가 4.3건의 개요나 왜 일어났는지 왜 마을 사람들이 도망가야 했는지 왜 국군이 저런 백정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습니다

그건 관객에게 숙제로 남겨둔 것도 있겠지만 이 제주4.3사건은 여러가지 원인이 섞여 있어서 단 한줄로 묘사하기 힘들다고 하네요. 뭐 우익의 시선으로 적자면 1948년 4.3일 좌익 주도 무장폭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게 들여다보면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때문에 감독은 모든 이유나 왜? 라는 것을 다 지워버리고 이러난 사건만 담고 있습니다


뛰어난 연출력과 시퀀스

흑백영화입니다. 그래서 더 제사상 같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아주 뛰어난 시퀀스가 몇 장면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제주의 오름 같은 곳을 두 마을 청년이 올라가는 모습이 있는데 이 장면은 순덕의 몸으로 연결됩니다. 순간 감탄을 했네요. 어쩌면 저렇게 멋진 시퀀스를 만들 수 있을까?

이 장면 말고도 화면이 어두워지는 하늘과 나무를 지나서 지하 동굴로 내려가는 장면도 멋지지만 동물의 사람들이 하나의 횃불 마냥 화면에 둥둥 떠다니는 시퀀스도 대단히 명장면입니다. 창의력도 좋고 메타포도 좋습니다. 또한, 마을 주민들의 연기와 군인들의 연기력도 무척 뛰어납니다. 필모그라피도 없는 배우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들의 연기 하나하나가 너무 뛰어나서 영화에 몰입하게 만듭니다. 


2시간 짜리 제주 4.3사건 원령들을 위한 장례식

영화는 신위, 신묘, 음복, 소지라는 제사 의식으로 4.3사건 원령들을 위한 제사를 지냅니다. 영화 자체가 하나의 씻김 굿이자 장례식 또는 제사입니다. 왜 죽었는지 어디서 죽었는지 어디에 묻혔는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제주 4.3사건 
제주 출신 감독 오멸은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제사상을 영화에 차려 놓고 큰 절을 하는 듯 합니다.

영화는 제주4.3 사건을 진상을 고발하는 영화이고 이 자체로 저 또한 어제부터 오늘까지 그 어떤 어른도 들려주지 않은 제주4.3사건 자료를 뒤져보고 있습니다. 분명 좌익폭동이 맞긴 합니다. 그걸 부정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무고한 사람들 까지 모조리 죽인 그 잔혹함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걸 반성해야 앞으로는 이런 또 한번의 국가권력에 의한 학살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입니다. 그게 불편한 진실이라고 할지라도 진실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진실이 바라보고 반성하면서 우리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과연 이런 어두운 과거에 대해서 제대로 평가나 제대로된 자기성찰을 한 적이 있을까요?
일본을 욕하면서 일본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우리의 모습을 우리는 직시해야 합니다

2시간 견뎌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정체성을 돌아볼 수 있으니까요. 나는 항상 선하고 저쪽은 무조건 악하다는 이분법적인 삶을 사는 한국인들에게 이 영화는 대갈일성을 합니다.  지슬 먹던 제주도민들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는 결코 무조건 선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감독은 죽은 국군과 제주도 주민들의 주검 앞에 제사지방을 태우면서 마무리를 짓습니다.

누굴 탓하는 것이 아닌 이런 역사가 있었다라고 말하고 싶었나 봅니다. 다 지난이야기라서 이젠 누굴 탓하기에도 너무 멀리 왔네요. 다만, 이런 비이성이 이성을 지배한 야만의 시대를 다시는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네요. 하지만 요즘 국내정세나 하는 이야기들 보면 우리들은 너무 쉽게 비이성의 집단이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어른이 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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