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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사진전시회

광화문에서 본 서태지 전시회 '서태지를 기록하다'

by 썬도그 2013.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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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내 중심으로 돌아가고 내 관점에서 세상을 봅니다. 이런 시선은 아주 편협스러운 시선임에도 우리는 그걸 망각하도 내 시선이 정답인 것처럼 주장하고 살죠.


사촌 여동생은 저 보다 10살이나 어린데 이 여동생에게 서태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알어?"
"이야기는 들어 봤어요" 

아. 그렇구나 단 10년의 차이인데 서태지를 모르다니 나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였고 그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좋아했던 뮤지션이자 내 청춘의 푸름을 가득 채운 뮤지션이었습니다.

92년 4월 벚꽃이 흩날리고 연일 동아리 술자리에 취해서 헤롱거리던 그 시절 그 날도 술을 진탕먹고 새벽에 들어와서 평소에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켜 놓고 잠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절 꺠운 노래가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입니다

이글은 어쩌면 서태지에 대한 애증의 글이 될 것 같네요. 서태지 팬들이 제 글을 보고 불같이 화를 낼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져듭니다. 최대한 예의를 갖추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해보겠습니다. 

먼저 서태지와 아이들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그 당시의 서태지와 아이들 현상을 묘사해보겠습니다.

술기운에 들은 '난 알아요'를 듣고 다음날 레코드 가게에 가서 바로 샀습니다. 신인 그것도 딱 한 곡만 들어보고 음반을 샀고 그 음반을 동아리방에서 틀었더니 여기저기서 복사 요구를 해옵니다. 더블데크 공장을 돌려서 모두 나누어주었고 그렇게 서서히 서서히 서태지와 아이들의 열풍을 넘어 광풍은 불어 왔고 그해 여름 초입 무렵에는 이미 슈퍼스타가 되었습니다.

한 에피소드를 들려주면 여름 M.T를 동해로 갔는데 음악담당인 제가 깜박하고 서태지와 아이들 테이브를 챙기지 못했습니다.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 해변에 도착하니 온통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만 들려옵니다. 카세트데크 플레이어를 들고온 피서객들이 오로지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만 틉니다.

1집은 버릴 곡이 없을 정도로 모든 곡이 좋았습니다. '난 알아요', '이밤이 깊어가지만', '환상속의 그대'등의 빅 히트곡이 계속 나왔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좀 독특 했습니다. 랩이야 이전에도 부르던 가수들이 있었습니다. 홍서범과 김수철도 랩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랩과 함께 강렬한 메탈 비트를 섞은 노래는 없었습니다.

서태지가 시나위 출신이라서 그런지 음악은 랩을 기반으로 하지만 힙합과는 좀 거리가 있는 락적인 요소가 많았습니다
이 신선함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태지으 음색이 좋았습니다. 파워풀한 음량은 아니지만 소녀 같은 가는 목소리는 참 좋았습니다. 저는 서태지가 랩 하는 것 보다 발라드 노래 부르는 모습이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두 춤꾼인 양현석과 이주노의 멋진 춤사위. 이런 파워풀한 춤사위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습니다
나미와 붐붐이 있긴 했지만 강렬하지는 못했고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열풍은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셌습니다. 
어른들이 알 정도면 국민적인 인기를 알 수 있는데 어른들도 거의 다 인지하게 된 서태지와 아이들. 그들의 인기는 그들으 문화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로 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2집, 3집, 4집을 내면서 인기는 하늘을 뚫고 올라갔고 그들의 음악도 변하기 시작합니다.
힙합으로 갔다가 얼터너티브 락까지 그들의 음악은 스펙트럼이 넓었습니다.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까지 넓어졌는데요. 백인음악인 락적인 음악에는 두 춤꾼이 크게 할일이 없어져서 저러다 해체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두 춤꾼이 드럼을 치고 악기를 다루는 모습에서 묘한 트리오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좋았습니다. 
95년 컴백홈으로 힙합음악을 들고 나왔을 때 군대에서 고참이 저게 뭐야~~ 라고 할 때도 시대를 앞서가는 음악이라고 적극 옹호도 했었죠. 이렇게 좋아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은 어느날 은퇴를 선언 합니다.

군대에서 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소식은 영혼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렇게 이 한 시대를 풍미한 그룹은 해체되고 서태지는 미국으로 떠났다가 혼자 독립해서 음악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서태지는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완성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크게 챙겨보지는 않았습니다. 


현재 광화문 지하에 있는 세종문화회관 광화랑에서는 '서태지를 기록하다' 전시회를 하고 있습니다
3월 20일 부터 3월 26일까지이며 무료 입장입니다.

서태지에 대한 추억에 이끌려 들어가 봤습니다. 
먼저 이 전시회인 '서태지를 기록하다'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아닌 서태지에 대한 팬들이 만든 전시회입니다. 
저는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한 추억은 있지만 서태지 혼자에 대한 추억도 서태지도 크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비밀 결혼에 대한 실망도 있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적인 지주였던 서태지의 표절에 대한 의문 때문이기도 합니다.


난 알아요는 90년대 초 인기 듀오였던 밀리 바닐리의 'girl you know it's true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표절 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만 다만 이 노래와 난 알아요를 같이 들어보면 두 노래가 곡의 구성이나 악기사용과 비트 멜로디 등에서 상당히 유사합니다.

지금이야 조금이라도 비슷하면 표절시비가 붙지만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서 이런 표절시비는 전문가가 아니면 할 수 없었고 전문가들도 함부로 대스타에게 표절의혹을 할 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각자 판단을 해야겠지만 저는 표절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유사하고 따라서 최소한 영감은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듭니다. 아무튼 이 부분과 개인 사생활에 대한 실망으로 인해서 서태지에 대한 인식은 개인적으로는 더 좋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전시회를 뭐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건 제 생각이고 이렇게 한 스타를 기록하는 팬들이 있다는 것은 서태지에게는 큰 자산이자 자랑입니다. 또한 한국의 팬문화를 팬덤문화로 바꾼 팬들이 서태지 팬들이기도 하니까요

서태지 팬들의 대부분은 지금은 30대 중후반이 되었겠네요.


92년 벚꽃 날리던 그 시절이 가끔 그립고 서태지가 난 알아요를 부르던 그 92년은 하루 하루를 다 기억하고 싶은 나날입니다. 그 기억 속에 서태지와 아이들은 하나의 추억 배경음입니다.


서태지는 교실 이데아 같은 노래를 통해서 사회 비판적인 노래 가사를 쓰기도 했었습니다. 또한 초상권이 미비하던 시절에 자신의 사진을 홍보물로 제작한 모 학원을 상대로 고소를 하기도 했고요. 또한 사전심의제도에 저항하고자 가사를 지운 노래를 앨범에 담기도 합니다. 

시대유감이 그런 노래죠.

서태지는 다재다능 했습니다. 락과 힙합 그리고 전자음악이라고 하는 신서사이즈와 샘플링으 적극 활용해서 경쾌한 음악들을 참 잘 만들었습니다. 요즘은 락의 세계로 너무 간 것 같아서 좀 아쉽고 그 때문에 노래도 잘 듣지 않습니다


서태지 팬덤을 보여주는 전시회인데 다양한 팬들의 소장품들이 방을 나와 전시회장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요! 태지라고 하는 꾸밈음을 사용했던 서태지. 나에게 있어 서태지는 96년 1월로 멈춰버렸습니다. 군 전역을 3개월 앞둔 그 시절에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딱 4년 짜리 팬이라고 할 수 있네요. 



그러나 20년 넘게 서태지라는 뮤지션을 좋아하는 팬들도 참 많습니다. 
이 팬들의 열정은 참 보기 좋군요. 다만, 합리적인 비판도 수용하는 멋진 팬덤을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가끔 보면 팬덤 문화가 너무 무비판적인 맹목적 추종을 하는 경향이 보여서요

서태지 팬들은 그러지 않겠죠?


서태지를 기록하다!는 26일까지 전시를 하니 서태지 팬들이나 저 같은 서푼짜리 추억이 있는 분들은 잠시 그 시간들을 공유해 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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