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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사진에관한글

폭력적인 말로 사진을 만들어 내는 감성 생활사진가들

by 썬도그 2013.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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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구석구석을 다녔고 웬만한 유명 출사지는 다 다녀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안 가본 곳이 한 곳 있는데 그 곳은 바로 올림픽 공원입니다. 대학 시절에는 가봤습니다. 친구가 근처에 살아서 자기 권한으로 그 곳으로 출사지를 잡았죠. 그런데 올림픽 공원이 생각보다 찍을 꺼리가 없다는 것 입니다. 좀 더 넓은 공원? 그냥 그런 평범한 공원입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사진 꺼리가 하나 있는데요. 그 사진꺼리는 바로 넓은 평지와 약간의 언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나홀로 나무'입니다. 출사를 간 적이 없어서 참고 사진도 없네요.

그런데 이 나홀로 나무를 왕따라고 하는 말에 눈쌀이 찌뿌려졌습니다. 한 사진 책을 뒤적이다가 서울 출사 명소를 소개하는데 대부분이 제가 가 본 곳이라서 그냥 훅훅 넘기고 있는데  올림픽 공원 '왕따나무를 찾아서'라는 권고 출사지가 나오네요

왕따나무??
왕따?? 

왕따라는 단어의 뜻 아시죠?  네 아주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단어로 지금도 전국의 수 많은 왕따 학생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왕따라는 단어는 정확하게 써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 보세요. 뭔가 혼자 있으면 왕따라는 말을 쉽게 내뱉습니다.
네 압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쓰는 말이라는 것을요.

그러나 소양이 있다면 그런 말 함부로 쓰는 것 아닙니다. 자기가 무슨 말을 쓰는지 스스로 돌아보지도 않나요?
그래서 그랬나요? 몇년 전에 연대생들이 연고전 할때 

오오미! 슨상님 이라는 일베충들이 쓰는 말을 무슨 유행어인 줄 알고 썼다는 변명을 하던데요. 그거 전라도 비하 발언입니다. 
대학생이라는 나이쯤 되었으면 스스로 자신의 말을 돌아볼 줄 아는 소양은 있어야죠. 

우리가 얼마나 단어를 생각 없이 쓰는지 검색해 봤습니다


역시나 예상대로 많이들 쓰네요. 올림픽 나무로 네이버에서 검색하니 왕따나무라는 제목이 많이 보입니다.
상단 글 중에 딱 한분만 나홀로 나무라는 적절한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두 단어를 모두 사용하는 분들도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요. 왕따 나무라는 단어는 너무 폭력적이지 않나요? 그런 단어 쓴 다는 자체가 자기 소양이 부족한 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쉽게 말하는 그런 말들이 사실은 너무 가학적이고 폭력적이라는 것을요. 제가 너무 세심하게 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모 코메디 프로그램에서 '농민의 난' 분장도 기분 좋지가 않더군요
 


이 농민의 난은 녹두장군 전봉준을 패러디 했는데 전봉준과 농민의 난인 농학운동이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었는지 제대로 안다면 이런 것을 소재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농민들이 얼마나 분노 했으면 혁명을 일으켰겠습니까? 그런데 조선의 위정자들과 일본군은 죽창 든 농민에 기관포로 처참하게 살육 했습니다.

이런 패러디는 유관순 열사를 코메디 소재로 쓴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안중군 의사의 저격이나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을 웃음꺼리로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걸 우린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다 소양 부족이죠


요즘 감성사진이 대세죠? 저 또한 감성적인 사진을 담을려고 한 때 노력 했습니다만 제 스타일도 아니고 오글거려서 잘 찍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감성을 찾아서 사진을 포획할려는 사진 포수들이 많습니다.

위 사진은 최민식 사진작가의 사진입니다. 이런 사진을 보면 우리는 측은심을 느낍니다. 이런 누추한 환경 혹은 힘들어 보이는 모습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몰래 찍고  그 사진의 제목으로 희망이라는 낙인을 찍습니다.

그 모습은 아주 폭력적입니다. 폐지를 리어커에 싣고 가는 그 노인분을 몰래 찍고 그걸 희망이라고 제목으로 봉인시키는 모습은 아주 폭력적입니다. 그 폐지 줍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희망을 노래하면서 노동요를 부르면서 내일을 위해서 리어커를 몬다고 직접 물어보고 그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까? 그냥 자기가 그렇게 느낀 것 뿐이죠. 

그렇게 느낀 것은 그렇게 교육을 받고 그렇게 생각하는 전형성을 자기도 모르게 배운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모두 희망을 노래해야 합니까? 이런 모습은 장애인들은 무조건 친구라는 장애우라는 단어와 비슷합니다.
장애인들을 하나의 주체가 아닌 하나의 객체로 받아들이고 하나의 도구화 해서 보는 시선이죠.

물론, 그 시선의 동기나 마음씀씀이는 아주 좋습니다. 그 마음 가짐을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생각 할 수도 있고 그게 맞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어떤 감성적인 제목에 가두면 안됩니다. 차라리 그런 사진 찍고 그 장소와 날짜만 표기하세요. 느끼는 것은 각자 소비하는 관람자가 느끼게 하면 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사진으로 그 사진안의 인물을 함부로 제단하고 일방적인 단어로 가둘려고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생활사진가들은 사진 제목을 지을 때 좀 더 소양을 갖추고 짖기 바라며 제목 짖기 힘들면 그냥 어디서 언제 찍었다 정도만 적어도 좋을 것입니다. 내가 일상에서 쓰는 아무 의미없이 뭔 내용인지도 모르는 단어를 함부로 사진 제목에 붙이면 그 사람의 소양에 대한 역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부탁을 하자면 내 감성사진을 위해 다른 인물을 하나의 도구로 전락시키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가난한 달동네에 가서 무슨 80년대 스타일이라느니 복고풍이라느니 하는 말은 지나가는 말로도 하지 마십시요. 거기 박물관 아닙니다. 거기 사람 사는 곳입니다. 

거기 사는 사람들에 대한 폭력입니다. 저 또한 달동네 촬영을 가면서 항상 주의해서 촬영을 합니다. 주민들에게 불편하지 않게 아니면 친근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어보면서 동네 이야기를 귀동냥하면 그게 참 재미있습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들으면 더 좋죠. 

그런데 무슨 옛스럽다느니 하는 폭력적인 생각은 하지 마세요. 사진 자체가 폭력의 도구입니다. 일방적인 도구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신경 안쓰면 사진은 신경을 날카롭게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진 찍을 때 좀 더 교감을 하면 좋습니다.(이건 저 스스로에게도 하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감성 사진을 쫒는 수많은 생활사진가들이 사진을 찍을 떄 조금 만 더 생각을 하고 찍으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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