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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점점 무연고 사회로 변해가는 한국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

by 썬도그 2013.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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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잘려고 했는데 한 뉴스 때문에 잠이 안 옵니다. 이 글을 쓰고 자야 제 마음이 다스려질 듯 해서 두서없이 시작합니다.
2004년 칸 영화제에서 한 일본 영화가 남우 주연상을 받습니다.  그 영화의 제목은 '아무도 모른다'이고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는 90년생의 당시 10대 소년이었던 야기라 유아가 받습니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고레에다 하로카즈' 감독이 만든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무연고 사회가 되어버린 일본의 어두운 단면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아이들 4명은 배다른 형제들입니다. 이 4명의 아이들을 엄마 혼자서 키웁니다. 엄마는 방값을 아낄려고 4명의 아이가 있지만 1명만 있다고 집주인을 속이고 집에 세들어 삽니다. 그런데 이 엄마가 사라져 버립니다. 돈을 벌러 나가서는 매달 통장으로 생활비만 보내옵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방치된 삶을 살게 됩니다. 

친 아버지에게 가서 가끔 돈도 받아오지만 친 아버지 마져도 이 아이들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엄마에게서도 돈이 오지 않게 됩니다. 생활비도 없이 4명의 아이들은 그렇게 방치됩니다.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누구에게 도와달라고 해야할지도 모릅니다. 그냥 그렇게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방에만 있거나 놀이터에서 지냅니다. 

당연히 학교라는 시스템에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아이들은 그렇게 유령처럼 공원을 배회하고 편의점에서 유통기간이 지난 음식을 먹고 지냅니다.  저런 아이들이 한국에도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영화를 봤고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가 마음이 아팠던 것은 이 아이들이 전혀 울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슬프고 아프고 질투하고 그 모든 것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받는 상처들과 괴로움과 즐거움들입니다. 아 이이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불쌍한 아이들인지 얼마나 처참한 현실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단 한 번도 다른 삶과 비교 해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막내 아이는 학교도 다니지 않아서 자신의 처지를 더더욱 모릅니다. 

그냥 우물안 개구리처럼 이게 현실이구나 견딜 뿐입니다. 그래서 울지 않습니다. 모든 관계가 끊기면 슬픔도 기쁨도 크지 않습니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일본의 무연고 사회를 그대로 고발 했습니다. 

얼마전에 읽은 '유품 정리인은 보았다'는 무연고 사회에서 독거노인들이 고독사하는 모습을 그대로 담았습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거기서 사람이 죽어서 시체 냄새가 나야 뭔일이 있구나 하는 각박한 일본의 현실을 그대로 담았습니다. 제가 그 책을 읽으면서 한국을 생각했는데요. 한국은 그나마 노인복지가 일본보다 좋아서 무연고로 혼자 사는 독거노인들일 사회복지사나 구청이 수시로 방문해서 들여다 보기 때문에 고독사 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특히 65세 이상의 공식 노인은 정부에서 도시락도 제공하고 노인연금과 생활비도 지원하기 때문에 고독사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문제는 사각지대입니다. 
65세 이하의 노인 분들이나 혼자 사는 중년들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절 잠 못들게 했던 아이들 입니다.

굶주린 세자매, 2년간 방치된 삶…누구의 관심도 없었다 기사보기

기사를 읽는 동안 장탄식이 나왔습니다. 한국도 드디어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사 내용을 보면 세자매가 다달이 아버지가 동겨녀를 통해서 보내온 월세 23만원과 생활비 15만원으로 지난 2년 동안 지하 단칸방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3명의 아이들이 15만원으로 생활하다니요.  이 아이들은 학교도 안가고 집에만 머물렀고 영양실조가 걸렸는데도 주변에 도와달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다 큰 학생도 있는데 그걸 왜 못 도와달라고 하나?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겠죠. 하지만 아이들 아닙니까? 저 아이들은 모릅니다. 우리가 이런 아이들의 존재를 모르듯 저 아이들은 자신들을 구출해줄 제도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곳도 모릅니다. 

따라서, 국가와 사회가 도와줘야 합니다. 물론 이 모든 책임은 아버지에게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만 탓하고 넘어간다면 제 2의 세자매가 또 나올 수 있습니다. 혼자사는 노인분들은 돌보미 서비스도 있고 어느 지자체에서는 센서까지 설치해서 방안에 움직임이 없으면 자동 신고가 들어가게 하게 하는 등 노인에 대한 대책은 잘해 놓았는데 정작 이런 사각지대에 대한 보살핌은 아직 없네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뒤늦게라도 아이들이 발견 되었다는 것인데요.
저는 가장 화가 나는게 학교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좀 더 관심있게 상담을 하고 집안 일을 끄집어 내게 했다면 이런 사태까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학교 안나오나 보다 자퇴했나 보다가 아닙니다. 선생님들이 그런 학생이 있으면 그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좀 더 긴 관심을 가져주던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보살필 수 있도로 인수인계나 대책을 마련 했으면 하는데 그게 안 되어 있네요.

우리는 탈선 청소년을 벌레 취급 합니다. 백지 같은 아이들이라서 쉽게 나쁜 길로 가지만 또 쉽게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학생의 잘못을 어른의 잘못과 동일시해서 일벌백계로 다스리고 주홍글씨를 쓰고 있습니다.
학생은 작은 어른이 아닌 말 그대로 세상을 배우는 어린 사람들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이런 학생과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집니까? 또한, 학생 복지는 또 얼마나 신경씁니까?


트랜드 코리아 2013년 이라는 책을 보니 올해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서로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서로를 감시하는 사회와 함께 점점 무연화 되어가는 관계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촌락사회의 유연사회에서 서로의 이해에 기반을 둔 일회성 관계가 늘어나는 무연사회가 되고 그러면서 이런 무연사회의 부작용이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고독사가 단적인 예이고 그리고 드물게 고양시 세자매 같은 아이들도 나올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현실을 정부가 시스템 적으로 줄여주었으면 합니다. 물론, 촌락같은 유연사회가 가장 좋은 해결책이지만 시대의 흐름이나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무연사회이기 때문에 그 흐름을 쉽게 되돌릴 수 없습니다.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서로 얼굴 붉히면서 사는 것이 현실인데 덮어놓고 예전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도 무대책과 비슷한 비현실적인 모습입니다. 노인 고독사 방지 처럼 우리 아이들에 대해서 정부가 시스템으로 막아주고 복지의 우산을 아동에게도 씌워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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