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메라사진/외국사진작가

외롭고 수줍음 때문에 더욱 빛이나는 으젠느 앗제(Eugene atget)의 사진들

by 썬도그 2013. 1. 30.
반응형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꽃을 많이 찍습니다. 여자친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여자친구를 많이 찍습니다.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은 풍경을 많이 찍습니다. 골목길이 좋은 사람은 골목길을 많이 찍습니다. 종로가 좋은 사람은 종로를 많이 찍습니다

난 좋아하는 것이 없다고요? 그럼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한 장씩 꺼내서 보세요. 내가 주로 어떤 피사체와 장소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는지를 보시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증명해 줄 것입니다. 사진은 이렇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내면까지 증명하고 기록합니다.

오늘 같은 흐린 날에는 전 골목을 떠올립니다. 골목길은 흐리거나 아침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지금같이 강북의 가로수길이기 이전인 2007년 그해 여름의 새벽 5시의 삼청동 골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해질녘에 사진을 많이 찍습니다만 정말 특별한 사진을 찍고 싶다면 새벽 그 아무도 없는 거리를 촬영해 보세요. 그러면 같은 장소라도 다른 느낌 아니 만 레이가 말하는 것처럼 초현실적인 느낌의 사진을 담을 수 있습니다


 으젠느 앗제(Eugene atget)는 사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대부분이 아는 사진작가입니다.  스티글리츠와 함께 현대사진의 아버지라고 하는 분이죠

1857년에 태어나서 1927년에 사망하기 까지 그는 파리의 풍경과 뒷골목, 넝마주의, 유명한 파리 건물과 정원, 꽃, 상가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파리를 기록했습니다. 보르드 지방에서 자란 앗제는 1878년 배우의 꿈을 안고 파리로 향합니다. 이후 국립예술대학에서 공부를 하던 중에 군대에 징병되었고 전역후에는 복학을 거부합니다.

1880년대에는 도시 근교와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배우생활을 합니다. 그러던 으젠느 앗제는 이후 1888년 부터 사진을 시작하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그를 현대사진의 창시자라고 추앙하고 있지만 앗제는 그런 예술을 목적으로 하는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앗제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화가는 되지 못하고 화가들에게 팔 사진을 찍기 시작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화가들은 낮에 다 못 그린 그림을 화실에 와서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그런면에서 고흐 같은 인상파 화가들은 속사포 처럼 엄청나게 빨리 그림을 그렸고 하루에 한 점씩 그릴 정도로 아주 빠르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이건 인상화 화가들이나 그렇고 전통적인 화법의 화가들은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화가들에게 팔 사진을 찍기 시작한 으젠느 앗제는 파리 이곳 저곳을 사진을 찍기 시작합니다













으젠느 앗제는 1898년 본격적으로 파리를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파리는 개발 붐이 불기 시작했고 파리 시의회는 변모하기 이전의 구 파리의 기록 사업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앗제에가 부탁합니다. 이렇게 그는 파리를 공적으로 혹은 사적으로 카메라에 기록합니다. 

전 이 사진이 아주 좋은데요. 딱 앗제 스타일의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시의회에서 부탁한 사진과 달리 앗제의 사적인 촬영스타일은 대로가 아닌 대로와 연결되는 골목이나 서민들이 많이 사는 곳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또한, 사라지는 혹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파리의 피사체를 사진에 담습니다. 분명 그는 사진의 가치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으젠느 앗제는 파리의 영상시인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그의 사진을 보면 다른 사진에서 느낄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빛들이 아주 영롱하고 밝습니다. 그 이유는 앗제의 성격 때문입니다. 으젠느 앗제는 수줍음도 많고 외로움도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관심 받는 것을 싫어해서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진들은 빛이 납니다.

새벽의 그 좋은 햇살을 카메라에 담으니 빛이 날 수 밖에요. 



이런 상가의 쇼윈도우도 많이 촬영 했는데요. 이런 사진들은 당시는 별거 아닐 수도 비싼 사진을 왜 이런 것을 찍냐 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니 이 사진들이 19세기 파리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어서 역사의 증명사진으로 남았고 이런 세월의 더께가 앗제를 더 우러러 보게 만듭니다.  과연, 앗제는 사진을 찍으면서 후세에게 남겨서 세상을 이롭게 만들겠다는 기록사진가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찍었을까요?

의도는 모르겠지만 결과만 보면 앗제 때문에 우리는 19세기 파리를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파리의 앞골목 즉 유명인들이 많이 다니고 역사가 이루어지는 대로가 아닌 서민들이 주로 다니는 골목을 촬영 했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권력자들만 등장하고 서민이나 백성들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극을 통해서 그 시대의 왕이나 장군 같은 권력자들만 취하지 그 시대에 산 노비나 평민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진 자체가 권력자들만 취할 수 있었던 시절임에도 앗제는 뒷골목을 촬영 했습니다. 








으젠느 앗제의 초상사진입니다. 그는 이런 파리의 뒷골목만 담은 것이 아닌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그 사람들이란 파리의 넝마주이들입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80년대 까지만 해도 거리에 떨어진 종이를 꼬챙이로 찍어서 등에 맨 바구니에 던져 넣었습니다. 
넝마주이를 사라졌지만 파지 줍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앗제는 이런 뒷골목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지금이야 폰카로도 찍을 수 있지만 이 당시는 사진 한장 찍고 인화하는데 큰 돈이 들었고 저런 가난한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는 다는 것은 전혀 돈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으젠느 앗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수줍어 하면서도 이 사람들에게는 적극적으로 다가가 카메라로 담았습니다. 


으젠느 앗제는 이런 넝마주이도 파리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의 삶도 기록합니다. 대단한 사람 아닙니까?
뒷골목에 사는 사람들을 누구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데 그는 카메라는 고급 도구를 들고 그들을 기록합니다. 앗제 때문에 우리는 당시 넝마주이들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한말 조선에서 평민들을 카메라에 담았던 선교사들이야 모든 것이 신기하고 기록하기 위해 찍었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나라의 서민들은 찍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국적이면 서민이든 귀족이든 왕족이든 다 사진감이지만 자국의 매일 보는 이미지는 카메라에 담을 생각을 못하는데 앗제는 그걸 했고 이런 그의 뛰어난 기록성과 일상성은 현대 사진의 태동을 가져왔습니다.

즉, 권력자만 기록하는 역사책과 달리 세상 모든 것을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로 담았습니다. 





으젠느 앗제는 이런 사진들을 모아서 몇개의 사진집을 내기도 합니다. 사진집 이름을 보면 그의 욕망이 대단함을 알 수 있습니다.  '도시의 간판과 낡은 상점들에 대한 작업, 도시 외곽에서 일하며 사는 빈민의 생활상에 관한 작업, 파리의 축성술에 관한 작업 이라는 세 개의 앨범을 냈는데요. 사진집 이름이라기 보다는 무슨 보고서나 아카이브 같다는 느낌입니다.

대단한 열정가죠. 지금도 이런 주제로 서울을 담는 사진가가 없는 것으로 아는데 하나의 소재만 추적하는 모습은 지금 봐도 존경스럽습니다. 앗제는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세상에 알려진 사진작가는 아니였습니다. 고흐도 그렇고 유명한 예술가들은 죽은 후에 인기가 올라가는지 앗제는 생전에 자신이 사진을 사진잡지에도 살롱전에도 공개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앗제를 발견한 것은 다다이즘으로 유명했던 사진작가이자 초현실주의자였던 '만 레이'였습니다. 만 레이(Man Ray)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잡지인 Surrealist의 변혁에 소개했고 조수인 미국 여류 사진작가인 베레니스 애보트가 으젠느 앗제를 찾아가서 그의 사진들을 수집합니다. 그렇게  5천점의 사진을 수집한 애보트는 그 사진을 미국 현대미술관에 기증하면서 앗제의 사진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집니다. 

이렇게 좋은 사진도 그걸 발견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화가나 사진작가 못지 않게 사진작가를 세상에 알리는 에디터들과 사진집 출판업자와 화랑 등의 역활이 큽니다. 만약, 만 레이가 앗제의 사진을 발견하지도 발견하고도 그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면 앗제의 사진은 어쩌면 고물상에 넘겨졌을 수도 있겠네요


세상은 남들이 그걸 왜 하냐고 이상한 눈으로 봐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지켜나가고 이어나가는 옹고집들이 세상을 더 진보시킵니다. 그런면에서 앗제는 진보주의자입니다. 뭐, 부랑자나 뒷골목 사진만 찍는다고 사회주의자가 아니냐는 말을 들었는데요. 그의 이런 고집과 기록에 대한 소명의식이 그의 사진을 더 빛나게 합니다.

실제로 그의 사진은 빛나는데요. 그는 새벽의 빛나는 광경을 카메라에 담은 영상 시인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녘은 수필이나 소설이 어울리는 빛이고 아침은 찬란하고 빛나는 시 같다는 느낌입니다. 떠올려보세요. 해가 어둑어둑 떠오르는 여름 날 새벽의 그 새벽길을 기억해 보세요. 정말 기분 좋아지죠.

으젠느 앗제 같은 사진가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사진은 탐미적인 수단을 넘어서 기록성도 중요합니다. 때문에 매일 매일 변화가 심한 서울을 우리도 누군가가 기록해야 합니다. 어제 신천에 갔다가 아파트 숲에 황망해 했습니다. 친구네 집이 신천에 있었고 90년 당시만 해도 아파트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아파트 숲이 올라가서 여기가 신천인가? 하는 황망함을 안고 집으로 왔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