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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사진에관한글

탐미주의적 사진 지상주의가 불러온 불상사들

by 썬도그 2012.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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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왜 찍으세요? 예쁜 것을 담을려고요? 아님 그 현장을 기록하기 위해서요? 네 둘 다 정답입니다.

다른 매체도 그렇지만 사진은 예쁜 것을 담기 위해서도 기록하기 위해서 피사체를 담습니다.

대부분의 사진가나 특히 생활사진가들은 예쁜것을 보다 더 예쁘게 담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래서 저와 같은 생활사진가들은 예쁜 것을 더 예쁘게 담기 위해서 배경도 바꿔보고 일출, 일몰시간의 매직아워에 사진으로 담습니다. 또한 빛의 각도를 생각하면서 사진을 찍죠

음식사진 잘 찍는 법, 인물 사진 잘 찍는 법, 풍경사진 잘 찍는 법을 검색해서 책을 사서 배웁니다.
또한 그 노하우를 이 블로그에서 또는 책에 담아서 소개를 하고 많은 생활사진가들은 예쁘게 오로지 예쁘게 사진 찍기 위해서 검색을 해서 정보를 구합니다.

이렇게 사진은 아름답게 찍어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좀 더 좋은 카메라를 구매하기 위해서 정보를 갈구합니다.
하지만 떄로는 그 탐미적인 욕망이 피사체를 고통스럽게 하거나 피사체를 파괴합니다.

4년 전으로 기억합니다. 김기덕 감독이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된 주산지는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김기덕 감독 영화 답지 않게 이 영화는 상당히 아름다운 영상이 많았고 덜 자극적이었습니다.  영화는 주산지라는 아름다운 장소를 배경으로 했고 이 영화는 해외에서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이 주산지는 많은 생활사진가들의 먹이감이 되었고 새벽의 물안개 피어나는 풍경을 거대하고 비싼 DSLR로 촬영하기 시작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보다 좋은 사진을 찍겠다는 욕망으로 뷰 파인더에서 걸리는 나뭇가지를 잘라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이 모습에 많은 양심적인 사진가들은 그 모습을 질타 했습니다. 

하지만 욕망은 도덕을 쉽게 지배하고 스스로 용납을 합니다.
어떤 사진가는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찍고서 다른 사람이 찍으면 자신의 사진의 희소성이 침해 된다면서 찍은 후에 야생화를 밟아서 죽여 버립니다. 또는 파인더에 걸리는 나뭇가지를 잘라 버립니다. 그리고 그런 사진을 전국 지자체에서 공모하는 사진전에 출품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심지어 모 사진단체에서는 그런 사진을 허용하며 이걸 넘어서 합성한 사진 마져도 대상으로 주는 촌극까지 연출합니다. 혹자는 그럽니다. 포토샵 사용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요. 

경악스럽습니다. 풍경사진작가가 나무가지를 꺽고 불 필요한 피차체를 죽여버리고 이미지 합성으로 풍경을 왜곡하고서도 당당하다고 말하는 모습도 경악스럽지만 그런 사진을 버젖이 대상을 주는 모습에는 쓴소리 조차도 나오지 않더군요. 그 사진단체는 대상 수상작을 돈을 주고 사는 추태까지 벌이다가 결국은 매년 하던 사진 콘테스트도 올해까지 수년을 개최하고 있지 않습니다. 

포토샵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포토샵을 사용하는 사진 장르도 있습니다. 사진을 절대 건드리면 안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사진도 하나의 매체이기 때문이죠. 문제는 이 사진은 포토샵을 사용해서 합성했습니다라고 말하면 됩니다. 아니면 포토샵이라고 바로 느낄 수 있게 대놓고 하면 됩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사진을 보면 감탄을 합니다. 위 2개의 사진은 얼마 후에 수상작을 팔요할 내셔럴 지오그래피에 출품된 사진입니다. 감히 예상하자면 물고기 때의 넘실거림을 담은 위위 사진은 올해 대상을 받을 듯 합니다.

그런데 저 사진이 합성이라면 우리는 어떤 느낌이 들까요?
합성이지만 예쁘면 됐지! 그럴까요? 아님 분노가 치밀까요? 저 같으면 분노가 치밀 듯 합니다. 하지만 성형해서 미스코리아 되는 모습에 거부감이 크게 없는 한국을 보면 그러면 어때 성형하면 어때 포샵하면 어때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좀 서글픕니다. 우연한 기회 혹은 수시간 아니 수일을 기다려서 멋진 사진 한 컷 담겠다고 하는 사진가들은 합성 사진을 인정해 버리면 굳이 산 꼭대기에서 일출사진이나 야경사진을 촬영하려고 할까요? 집에서 담배 물고 캔맥주 까면서 뚜딱뚜닥 레고 블럭 조립하듯 촬영 대신 여기저기에서 찍은 사진을 조립하고 말죠. 

우리가 위 사진에 감동하는 이유는 그 풍경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저런 사진을 찍기 위해서 노력했을 사진가의 노고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풍경사진이나 아웃도어 사진들은 합성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게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우리 모두가 무언의 합의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쉽게 저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미 많이 알려졌던 사건이 있습니다. 한 사진협회 정회원이 인사동에서 사진전을 했습니다. 
이 사진전은 산새들을 촬영한 사진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방송사가 도의적인 문제를 제기 했습니다. 그 문제 제기란 있는 그대로의 풍경과 야생을 담은 것이 아닌 연출에 가까운 야생 사진이 아니냐는 것이죠

그 사진에 대한 대답을 직접 듣고 싶어서 종로에 갔다가 전시회장에 갔습니다


아름답습니다. 너무 아름다워서 2013년 달력으로 삼고 싶을 정도입니다. 산새가 몸단장을 합니다. 그 앞에 꽃나무가 있네요. 완벽한 사진입니다. 미학적으로도 별 다섯개를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하면 좀 뭔가 어색합니다. 


새끼새에게 어미새가 먹이른 주는 모성애를 자극하는 사진입니다.
아름다움을 넘어 감탄사로 휘감아지는 사진입니다. 아니 몇몇 관람객은 실강이를 합니다

"이게 사진이라고? 웃기지마 그림이야"
"아니야 조리개를 조이면 뒷 배경 다 날릴 수 있어. 이거 사진이야"

네 그림 같은 사진입니다. 그런데 새끼새가 둥지 밖을 나와서 야생화의 얇은 가지위에 올라 타 있다는 설정이 이상합니다
조류 생태계를 모르지만 새끼새가 둥지 밖을 나와서 저렇게 야생화에 있을 수가 있을까요? 새끼 새가 둥지 밖을 나오면 대부분 죽습니다. 새끼 새는 날 수 없기에 저기 야생화에 잠깐 앉아 있을 수 있어도 다시 둥지로 돌아가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크기가 비슷한 어미새가 부리로 찝어서 둥지로 옮길 수도 없죠


이 사진을 보면 더 가관입니다. 아래 새끼 새 3마리는 그렇다고 쳐도 상단에 올라온 두 마리의 새끼새는 저길 어떻게 올라 갔을까요? 어미 새가 올렸을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전혀 이해가 안갑니다.


한 관람객이 말합니다.
손으로 옮겼구만..  저의 상상력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사진이 현실적인 말에 이해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저기에 올려 놓으면 되는 사진이죠.

제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은 저는 이런 사진을 찍어 보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습니다. 있어도 장비가 받쳐주지 못하기에 뒷 배경 흐림을 담을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아웃포커싱이 확실할려면 적어도 약 3백만원 이상의 줌렌즈나 조리개 밝기가 좋은 망원 렌즈가 필요할 듯 합니다. 그 관람객은 쉽게 그런 상상을 하는 것을 보니 유경험자나 혹은 어디서 귀동냥으로 들었나 봅니다.

실제로 이런 사진 찍을 때 가지치기라고 해서 새 둥지 주변을 가지런히 친다고 하더라고요. 참으로 참으로 창피스럽습니다. 자신의 사진을 위해서 야생을 훼손시키는 모습. 목적을 위해서 수단은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 

참으로 창피스럽습니다. 



이 작가는 유난스럽게도 어린 새에게 어미 새가 먹이를 주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찍었습니다. 사진의 80%는 이런 식으로 어미새가 새끼 새에게 벌레를 먹이는 사진입니다. 

 


뉴스에서 윤무부 새박사는 이 사진을 보고서 새끼 새를 나뭇가지에 올려 놓고 찍었다고 질타를 했습니다.
방송기자는 작가에게 전화를 했지만 작가는 전화 통화에서 생태적으로 보지 말고 예술적으로 보라고 말을 하더군요

네 예술적으로는 최고입니다. 탐미적인 시선으로는 완벽하고 저 우주로 쏘아 올린 보이저2호에 담고 싶을 정도로 우주 최강입니다. 하지만 이건 지구의 현실이 아닙니다. 일부러 만든 이미지죠. 합성한 이미지를 외계 생명체가 보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제가 작가분의 해명을 직접 듣지 못해서 함부로 판단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 사진은 사람이 가지 위에 새끼 새를 올려 놓지 않고서는 찍을 수 없는 사진입니다.  작가분이 직접 해명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사진작가분의 사진실력은 A급입니다. 정말 최고입니다. 위 사진을 보면 갯벌에서 먹이를 잡는 철새들의 아름다운 사진도 많습니다. 너무 아름답습니다. 저렇게 좋은 사진실력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이 작가분은 전국의 사진공모전에서 수상 경력도 많습니다. 

그러나 욕심이 과한 것 같습니다.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너무 추구한 것 같습니다. 제가 더 속상한 것은 이런 사진들을 찍는 사진가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사진공모전을 위한 사진을 위해서 가지치기를 하고 현실을 왜곡하는 사진도 있습니다.


부디 이런 표현이 거짓이 아니길 바랍니다.


2년전에 제가 사는 곳의 사진작가 협회에서 전시회를 했었습니다. 유심히 보는데 합성한 사진을 몇개 발견하고 기분이 상했습니다. 갈매기를 이미지 합성으로 오려서 붙여넣기 한 모습에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해에 같은 사진협회의 대상 작품이 돈을 받고 선정되었다는 사건이 있은 후 그 다음 해와 올해 사진에서 합성 사진은 없었습니다. 솔직히 아마츄어 사진보다 못한 사진도 수두룩 했지만 합성 사진이 없는 풍경사진에  스스로 노력을 하는 구나 느꼈습니다. 

네 그러면 됩니다. 비록 수준은 떨어져도 진실되면 누가 뭐라고 합니까? 이게 다 탐미주의 사진만 추구하는 못난 시선 때문이죠. 또한 그런 사진을 걸러내지 못하고 오히려 뇌물 받고 수상시켜주는 휴먼 에러가 문제이지요. 




전시장에서 사진작가는 보지 못했습니다. 진위 여부를 확인 할 수는 없었지만 스스로 사람들을 납득할 수 없는 해명을 안 한다면 작가는 평생의 오명으로 남을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관행을 허용하는 협회의 못난 모습이 더 큰 문제겠지요

우리는 같은 부류에 속하거나 같은 무리에 속하면 공동체 의식을 이상하게 해석해서 같은 집단의 비도적적인 행동을 모른척 합니다. 
신뢰받는 단체나 무리가 될려면 지나칠정도로 자아비판과 내부비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금의 검찰이 쓰레기가 된 이유가 뭐겠습니까? 내부비판이 없는 그룹이나 기업이나 단체는 항상 안에서 곪아터져서 스스로를 파괴 합니다. 합리적 비판이 그 무리를 키워나가고 신뢰도를 높힙니다. 우리 사회는 너무 자아비판이나 내부비판에 무던해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는 건의함이라는 것을 만드나요?
앞에서 대놓고 하지 말고 간접적으로 비판하라고요? 그래놓고 건의함에 넣은 사연을 대놓고 읽으면서 고발의 대상이 되는 사람과 함께 꼼지른 내부비판자를 색출하나요?  저 같은 외부인이 비판하기 이전에 내부비판이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그게 이 사진협회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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