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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서울여행

가을이 우거진 창덕궁의 후원 풍경을 카메라로 담다

by 썬도그 2012.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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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고궁 매니아이고 이제는 어떤 건물이 어디에 있고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 줄줄 외우지는 못하지만 대충은 압니다. 고궁의 건물이 많다고 해도 그 용도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용마루가 없는 건물들은 왕비의 침소들이었죠. 

서울에는 경희궁까지 5대 고궁이 있지만 경희궁은 너무 작아서 보통 4대 고궁을 고궁으로 인정해 줍니다. 이 4대 고궁은 각각의 특색과 고유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경복궁은 큰 사무실 같은 느낌이고 창경궁은 작은 연못가 같은 느낌이고요. 덕수궁은 근대와 조선시대가 어우러진 동서양의 이미지가 섞여 있는 아기자기한 고궁입니다.

그리고 창덕궁은 울창한 숲속에 피어있는 작은 암자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숲이 울창하고 나무와 새소리와 물소리가 많이 들려서 서울에서 느끼기 힘든 멋진 자연의 풍광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고궁이라고 할까요? 아름다운 것을 수치화 했는지 입장료도 비쌉니다. 또한 가이드 관광이 기본이고요. 아무래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고 훼손을 막기 위해서 함부로 다니지 못하게 철저하게 가이드 관광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자유관람으로 했다면 사람들은 숲에서 뛰어다닐거예요. 경복궁이야 숲이 없지만 창덕궁은 숲이 많습니다. 아니 숲이 대부분이고 부분부분 건물들이 있다고 하는 것이 맞겠네요. 

입장료는 창덕궁 입장료 3천원 + 후원 입장료 5천원 으로 총 8천원이 들어갑니다.
그럼에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돈이긴 하죠

지난 주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200명의 관람객과 함께 출발을 했는데 이상하게 가이드가 2명이었습니다. 100여명이 한번 출발 하더니 바로 5분후에 또 100명이 출발하네요. 뭐가 뭔지 몰라서 이 가이드 쫒다가 저 가이드 따라 가다가 다 포기하고 사진만 찍었습니다. 설명이야 이미 몇번 들었던터라 더 듣는 것은 졸립기만 하고 설명 듣기 위해 찾은 것이 아닌 사진으로 창덕궁의 가을 빛을 담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카메라로 단풍을 주로 담았습니다. 


부용정은 하늘에서 보면 십자 모양입니다. 부용지 옆에 있는 정자이죠. 보물 1763호로 숙종 33년 택수재를 지었는데 정조 때 이름을 고쳐서 부용정으로 바꿉니다. 부용정에서 정조는 많은 신하들과 함께 시조 짓기 술내기를 하는 등 풍수를 즐겼는데요. 부용지와 규장각이 보이는 이 연못에 있으면 세상 시름 다 잊을 수 있을 듯 합니다



부용지의 건너편에는 인재를 뽑고 기르고 학문을 연구하는 주합루가 있습니다. 2층으로 된 누각인데요. 1층은 규장각의 서고로 활용했고 2층은 책을 읽고 학문 토론을 하거나 명상과 사색의 장소로 활용 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국립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죠. 다만 고위층만 이용할 수 있는 점이 다르고요.  저기서 성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했을 듯 하네요. 


여름에는 이렇게 연잎이 가득한데요. 여름은 색이 아름답지는 않지만 운치는 더 있습니다. 




창덕궁에는 아주 허름한 건물 두 채가 있습니다. 화려한 단청도 없고 마치 산속의 사찰 같은 느낌이 듭니다. 보통 단청이 없는 건물은 사람이 기거하거나 사무실등 실무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건물은 단청이 없습니다. 

이 건물은 의두합입니다. 효명세자가 지은 건물로 아버지인 순조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하면서 안동 김씨의 세도를 견제하기 위해서 왕권을 강화할려고 노력 했습니다. 할아버지 정조를 롤 모델로 삼아서 강력한 왕권을 위해서 주합루 뒤쪽에 집을 짓고 이 곳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리청정 3년 만인 22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의두합 옆에는 의두각이라는 아주 작은 집이 있습니다. 너무 작아서 주머니에 넣고 싶은데요. 이 두 건물을 합쳐서 의두합이라고 하나 봅니다. 그리고 따로 부를때는 이 건물은 의두각이라고 하고요.  




창덕궁도 다른 고궁 처럼 네모 반듯한 인공연못이 많습니다. 저는 이런 네모 반듯한 인공연못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연못들이 사람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듯 하네요.  의두합 건너편에는 애련지라는 연못이 있고 연못에는 으레 정자가 있습니다. 

조선왕들은 물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요?
 



애련지 건너편에도 작은 연못이 하나 있습니다. 연경당 바로 앞에 있는 작은 인공 연못이죠



이곳은 연경당입니다. 1828년 순조 28연 효명세자가 사대부 집을 모방해서 궁궐안에 지은 120여칸 민가형식의 집입니다. 

이 연경당은 접견실이나 손님을 맞이하는 곳으로 활용 했는데 재작년인가 이곳에서 G20 정상 부인들을 접견 하기도 했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사뭇 다른 건물이 있는데 저 곳은 청나라풍 벽돌을 사용해서 지어진 서재인 선향재입니다. 도르래식 차양을 설치했는데요. 비슷한 모습의 건물이 저 강릉 선교장에도 있었습니다. 선교장은 러시아인들이 지어준 건물이라고 하는데요.

20세기 초의 건축문화는 비슷했나 봅니다. 


연경당을 지나서 존덕정으로 향했습니다. 창덕궁은 가이드 코스가 매년 달라지나 봅니다. 2년 전에 갔을 때는 불로문에서 돌아서 존덕정을 갔는데 이번에는 연경당 뒷문을 통해서 가네요. 매년 달라지는 것이 아닌 2년 전에는 G20행사 때문에 연경당을 닫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위 사진 왼쪽이 폄우사로 효명세자가 독서하는 곳이었습니다. 어리석음을 경계하여 고쳐준다는 뜻인데 이름 한 번 기가막히네요. 지금의 도서관들을 제가 이름을 지어준다면  스펙전이라고 해주고 싶네요. 

6각형태의 겹지붕의 존덕정은 1644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많은 정자를 봤고 별별 정자를 봤지만 지붕이 겹으로 된 것은 첨 보네요. 이른 특이함이 참 보기 좋네요. 뒤에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는데 저 은행나무는 특히하게도 온몸을 은행이프로 감싸고 있네요. 저 은행잎이 떨어지면 주변이 온통 노랗게 변한다고 하는데 지금 쯤 가면 후두둑 후두둑 은행이 떨어질 듯 합니다. 

 가장 맘에 드는 사진입니다. 이때가 오후 4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고 창덕궁은 숲 속에 있어서 그런지 해가 일찍 집니다. 단풍은 빛이 없으면 생기가 사라집니다. 새삼 느꼈네요. 따라서 단풍은 빛이 좋을 때 역광으로 촬영하면 생기가 가득해 지는데 해가 지는 가운데 찍은 사진입니다. 그나마 취소한 표가 있어서 일찍 들어갔지 오후 4시 30분 타임으로 갔다면 사진들이 어두침침 했을거예요. 따라서 창덕궁 후원 관람은 해지는 시간에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아침 일찍 이나 오후에 가세요. 4시 이후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다시 가이드와 만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코스인  옥류천에 들였습니다. 이 옥류천에는 임금이 직접 벼농사를 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위 사진 왼쪽 바닥에 보면 벼가 잘려나간 모습이 있습니다. 조선의 왕들은 이곳에서 벼농사를 해보면서 농민들의 고충을 느꼈다고 하는데요. 그 세심함이 참 좋네요. 

볏집으로 지붕을 만든 이 정자는 청의정입니다. 저 동남아시아 정자 같아 보이네요. 아마도 벼를 제배하고 난 후 버려지는 볏집으로 정자 지붕을 만든 듯 하네요

 

 여기가 옥류천입니다. 경주 포석정 처럼 골이 파진 바위가 있어서 바위위에 술잔을 물위에 띄워서 풍류를 즐겼다고 하는데요. 
우리 민족은 술을 참 좋아하지만 그걸 즐기기 보다는 술과 싸움을 합니다. 무식하게 술먹기 내기를 하거나 술배틀을 합니다.

술이 쎄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것일까요? 뭐 쎄면 접대할 때 좋기는 하지만 무식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술은 즐기는 것이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술 베틀을 할 수 많은 사람들을 보면  한심스럽기만 합니다. 술은 적당히 마실때 술스러운(?) 것이지 누굴 이기고 깔아 뭉개기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포석정이나 이런 옥류천을 보면 우리의 조상들이 술을 즐겼구나 하고 간접적으로 느낍니다. 


 모르죠 뭐.. 골을 파서 술잔을 물위에 띄워서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멱살잡이를 했을지도요. 




 작년에는 가보지 못했고 2년 만에 다시 찾았는데요. 매년 가을을 창덕궁으로 마무리 하고 싶네요. 다음에는 후원도 가이드가 아닌 자유관람을 할 때가 있다고 하는데요. 정보 추려서 하루종일 창덕궁 후원에서 보내봐야겠습니다. 

뭐 밤에 창덕궁을 가는 달빛기행인가도 있던데 그 달빛기행도 한번 따라가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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