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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왠만한 곳을 다 다녀봐서 그런지 이제는 서울 구경(?) 하는 것도 별 흥미가 없네요. 또 찾으면 많을텐데 비슷비슷한 이미지만 가득해서 좀 쉽게 지치고 피로감이 옵니다.  2년 전에 인천을 오랜만에 갔는데 인천은 생각보다 멀지 않습니다.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마음의 거리는 머네요.

인천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인천항과 월미도는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서울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과 서울의 차이가 예전에는 한 20년에서 10년 차이가 났지만 이제는 서울도 일본 도쿄와 많이 비슷해지고 있죠. 도시가 성숙단계에 들어서면 비슷해지는 듯 합니다. 아무래도 여기서 유행하면 저기서도 바로 유행하는 시간차가 사라진 덕분이겠죠. 이게 다 인터넷으로 서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국이 많이 발전했다는 증거이기도 하겠죠.

인천사시는 분들을 폄하하거나 낮춰보는 것은 아님을 미리 알리고 적어보겠습니다. 
인천은 서울의 길게는 20년 짧게는 5년 전의 이미지를 간직한 듯 합니다. 난개발의 이미지도 보이고요. 좀 복잡하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이게 제 솔직한 이미지였습니다. 하지만 2년 전에 제대로 인천을 파고들어보니 인천이라는 동네는 서울보다 옛것을 잘 보존한 동네였습니다. 그게 의도된 보전인지 아니면 개발의 손길과 자금이 드리닥치지 않아서 보존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유야 어쨌건 서울보다 옛 건물들을 쉽게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개항기 시절의 건물을 그대로 보존한 곳이 상당히 많은데요. 이걸 잘 개발해서 인천의 관광상품화 하면 어떨까 해요. 이미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10월 초에 간 곳은 인천 헌책방 거리로 유명한 배다리거리입니다. 

2012/10/14 - [여행기/니콘 D3100] - 인천의 헌책방 특화거리 '배다리 헌책방 거리'를 가다

이 글에 이어지는 글을 써보겠습니다. 


비움을 통한 꽉 찬 만남 '스페이스 빔' http://www.spacebeam.net

요즘 마을공동체가 많이 뜨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서도 마을공동체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솔직히 요즘 마을이라는 개념이 있나요? 한번은 아파트 입구에서 수염 까칠한 저를 경계의 눈빛으로 보는 아주머니가 있더군요. 아이를 데리고 있던데요. 제가 주말에는 수염 안 깍고 외출 나갈때가 많습니다. 수염이 많이 자라는 편이라서 며칠 안 깎으면 산적은 아니더라도 수염이 덥수룩해집니다. 노홍철의 요즘 모습 처럼 수염이 가득하게 나죠

어린아이들이나 여자들은 수염 많은 남자 별로 좋아하지 않잖아요. 이유가 뭐라더라? 악당갔다나 흠.. 이런 편견덕분에 그 아주머니를 저를 경계했고 그 몸짓에 기분이 좋지 않더군요. 뭐 어쩌겠습니까?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은것을요. 그런데 그 아주머니랑 같이 아파트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는데 둘 다 같은 층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 옆집으로 들어가네요.

몇달 전에 이사 왔는데 서로 통성명을 안하고 지내고 뭐 그렇게 살다가 또 이사를 가다보니 옆집 사람인지도 몰랐네요.
저만 이렇지는 않겠죠. 대부분의 아파트 사람들이 이런 모습으로 지낼듯 합니다. 아파트에서 오래 살았지만 윗층으로 혹은 아래층으로 이사왔다고 옆집으로 이사왔다고 떡 돌리는 집 딱 한 번 봤어요. 아이둘이 있어서 좀 뛰더라도 양해 부탁한다면서 떡 돌린 분 딱 한번 봤고 그 집은 6개월만에 또 이사를 갔습니다. 

예전에는 마을이라고 해서 누가 이사오면 바로 알아보고 아이들의 무리 혹은 어른들의 무리 속에서 서로 물어보고 친구하고 동생하고 지내서 하나의 마을이 하나의 가족이라는 느낌이 있었는데 요즘은 주차전쟁하고 층간소음으로 칼부림 까지 하는 시대가 되었네요. 살벌하죠? 그 살벌함은 우리가 만든 살벌함입니다. 이렇게 서로를 의심하는 모습을 줄여주는 방법은 서로 문을 열고 나와서 만나게 하면 됩니다.

서두가 길었네요.
스페이스빔은 대안공간입니다. 1995년 '지역미술연구모임'으로 출발해서 지역주민을 위한 강좌나 스터디도 하고 지역주민들에게 문화의 향기를 전파하는 곳입니다. 지역문화에 대한 고민을 함께 많이 하는 곳인데요. 이런 대안공간들이 서울의 각지역마다 있어서 지역민 누구나 쉬고 수다떨고 문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하네요. 인천이 서울보다는 발전을 좀 더디게 하는 것은 있어도 이런 공동체 모습은 더 앞선것 같기도 합니다. 

이 스페이스빔은 옛 인천양조장 건물을 개조해서 예술가들과 주민들의 공간으로 탈바꿈 했습니다.
이 건물은 근처에 있는 아벨서점 사장님이 구입해서 아벨전시관을 개관해서 여러 인천자룔르 전시하기도 했지만 방치하고 있다가 2007년 공공미술프로젝트 팀이 여기에 새둥지를 틀었습니다. 입구에는 양철 로봇이 있네요. 

인천 배다리거리에 있는 많은 벽화들이 이 공공미술팀이 그린 것 같네요


건물 자체는 낡고 오래된 건물이었습니다. 창고 기운이 가득하고요.


하지만 여기서 많은 전시회와 강좌와 여러가지 행사를 개최합니다. 
이렇게 지역주민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드리는 모습은 제가 사는 곳에 있는 금천예술공장이 좀 배워야 할 것입니다. 

1층은 큰 공간이 있고 2층에 사무실과 전시장이 있는데 올라가보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오늘 찾아갈 곳의 지도가 보이네요. 오늘 찾아갈 거리는 우각로라는 곳입니다.



인천에서 서울로 가는 경인로 '우각로'


일제는 인천항 근처에 은행과 관공서와 일본인들의 거주지역등 다양한 현대식 건물을 많이 만들어 놓았습니다. 조선인을 어여삐여겨서 만든 것은 아니고 조선인들의 곡물과 자금등 돈 되는 것을 인천까지 땡겨와서 배에 싣고 일본으로 가져갈려고 했죠. 

그 땡겨오는데 큰 도움이 된 것이 1899년 개통한 경인선이었습니다. 이 경인선이 개통되기 전에는 인천에서 서울까지는 걸어서 우마차로 왕래 해야 했습니다. 이곳은 배다리 지역으로 배로 만들어진 다리를 넘어서 건너갈 수 있던 곳인데 지금은 인천항이 개발된 이후로 물이 들어오지는 않고 긴 도로가 생겼습니다. 

경인선이 개통되기전에 인천항에서 서울로 향하던 길이 우각로였습니다. 
이 길은 현재 도원역과 동인천 사이의 길이 되었는데 제가 오늘 갈 길이 이 우각로입니다. 


우각로에는 다양한 건물들이 있습니다. 독특한 이미지를 간진학 건물들이 많죠. 이 집도 눈에 확 들어 왔습니다. 예술감각이 있어 보입니다. 그냥 하얀색이었담녀 제가 카메라에 담지 않았을거예요


길이 시작하자 큰 텃밭이 보이네요. 길에서 만나는 녹색빛 가득한 밭에서 생명들이 자랍니다. 

이 길은 우각로는 아니고 철길따라 생긴 산책로 같은데 정비를 잘해 놓았습니다.


우각로에는 옛 건물 혹은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건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한옥 건물도 보입니다. 종로구에 가면 아직도 한옥건물들이 많은데 그 느낌도 나지만 딱 한채만 발견 했습니다


한 초등학교 건물벽에는 공공미술로 그려진듯한 벽화가 있는데요


들여다보니 초등학생의 작품도 보이네요. 이 학교 초등학생과 미술가들이 함께 그리거나 어른이 함께 그린 그림 같네요


이건 확실히 전문가의 손길이네요. 어떤 작가의 작품일까요? 미술품이라고 보기보다는 팬시제품에 들어갈만한 그림이네요. 


오래된 건물이 저를 이끄네요. 이 학교는 인천창영초등학교입니다. 야구부가 있나 보네요


근대식 건물답게 이 학교는 1907년에 세워진 인천 최초의 공립학교입니다. 100년도 더 넘었네요. 그런데 100년이 더 지나도 학교 건물이 원형 그대로 있네요. 일제가 우리에게 몹쓸짓을 많이 했지만 일제가 만든 건물들이 아직도 우뚝 서 있는 것을 보면 건물 하나는 정말 잘 지은듯 합니다. 

뭐 말을 들어보면 건식과 습식건물의 차이라고 하는데요. 한국은행건물이나 서울시청 건물이나 서울역사나 100년이 지난 건물들이 아직도 멀끔한것과 달리 60년대에 지어진 서울의 아파트들이 지금은 아주 흉물스럽게 된 모습을 보면 과연 이 서울이라는 도시에 100년 이상 갈 수 있는 건물이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특히 아파트들 말이죠

며칠 전에 강남에 갈 일이 있어서 가봤는데 88년 인근에 세워진 고층 아파트들이 30년 정도 되어서 그런지 아주 낡아 보이더군요. 페인트로 몇번을 화장을 해도 때국물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나마 부동산 개발광풍으로 허물고 다시 지어도 돈을 벌수 있기라도 했지 앞으로는 개발이익도 없고 해서 도시가 급속하게 슬럼화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민족자본으로 만들어진 학교인데요. 좀 더 용기내서 학교 구석구석을 찾아볼껄 그랬네요


다시 우각로에 접어들었습니다. 곳곳에서 벽화들이 반겨주네요


그리고 공원 앞에 우각리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유형문화재인 인천창영초등학교와 바로 붙어 있는 인천영화초등학교에 대한 내용과 문화문명 발생지라고 적고 있습니다. 

조선시대는 사농공상이라고 해서 공업과 상업을 아주 천시한 나라였고 전체적으로 근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였습니다. 
우리가 주체적으로 서양문화를 받아들였다면 일본에게 힘에 눌리지는 않았을텐데 일본과 달리 조선은 수국정책을 펼쳤습니다. 
지금은 너무 개방되어서 외국에서 뭐가 좀 유행했다하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는데 조선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일본이 심어놓은 근대화의 물결이 시작된 것이 이곳이라는 것인데요. 그 일본의 근대화도 조선을 위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시스템에 맞게 돌아가게 할려는 일방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인천창영초등학교 바로 옆에는 인천영화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영화초등학교는 1892년 설립된 사립학교 영화학당의 후신입니다. 이화학당에서 음악교사를 했던 마거릿 벤젤이 인천에 정착해서 여자 어린이 교육을 한것이 영화학당인데요. 선교사들이 지은 혹은 서양인들이 지은 건물도 인천에 참 많은데요. 그 건물비용은 다 어디서 났을까요? 항상 보면 그 비용이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이 마거릿 벤젤이 변방의 나라에 왜 이런 학교를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19세기 말은 여자들이 공부를 배우기 힘든 시절인데요. 여자 어린이를 위한 교육장을 만들다니 대단하다는 생각만듭니다.  서울의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중등교육기관으로 발전했지만 이 학교는 초등학교에 머무르게 됩니다.

제 1세대 한국 여성계의 선구자인 김활란, 서은숙, 김애마, 김영의가 이 학교 출신인데요. 김활란은 이대 초대총장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김활란은 대표적인 친일인물입니다. 대다수 친일파들이 그렇듯 30년대 까지는 사회운동과 계몽운동을 하다가 일제가 천만년 갈줄 알고 친일을 하게 되네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일제강점기가 100년 가까이 되었다면 친일파라고 하기도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면 프랑스 같이 10년 이내의 일제 강점기였다면 유명인들이 친일파가 되지는 않았겠죠. 

그럼에도 김활란의 행동은 용서받기 힘듭니다. 우리는 이런 친일파를 싸잡아서 비판하거나 과보다 공이 많다면서 좋게 보는 시선으로 보는데요. 저는 공은 공대로 칭찬하고 과는 과대로 비판하면 안될까 합니다. 맨날 보면 친일파다 아니다로만 판별하잖아요.  세상이 단순한 것을 좋아해서 아니 디지털처럼 ON 아니면 OFF여야 하나 봅니다


학교는 크지 않았습니다. 아담한 시골학교 느낌도 나지만 귀품있어 보입니다. 트랙도 작은 축구장도 있네요
이 학교 자료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2천년 대 초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네요.  한 여교사가 학생을 체벌을 했고 이에 학부모가 항의하자 재단은 바로 교사를 해임시켰습니다. 이 부당한 해임을 항의하기 위해서 다른 선생님도 항의했다가 그 선생님도 해임당했습니다. 이에 인천시 시민단체까지 나서는 등 부당한 해임에 항의했고 학생수는 급감하게 됩니다. 

학교의 학생수가 200명 이하면 통폐합 해야 하는 위기에 몰렸다가 지금은 다시 늘었다고 합니다.
뭐 부당한 해임은 고쳐져야 겠지만 가벼운 체벌이라도 체벌은 좋은 것은 아닙니다. 가벼운 체벌도 학생입장에서는 무거운 체벌이 될 수 있고 때리는 주체가 가볍다 무겁다 할 수 없죠.  받아들이는 사람이 가볍다 무겁다 생각해야죠. 이 주관과 주관이 만나면 항상 문제가 발생하는데요. 그래서 아예 체벌이 없는것이 낫습니다.

큰 바위던 조약돌이던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고 어렸을 때의 체벌은 평생 기억하게 됩니다. 
체벌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을 바른길로 이끄는 방법은 많을 것입니다. 김성근 야구감독 처럼 선수가 자기 목표치를 못 따라오면 자기의 지도법이 틀렸는지 계속 반성하고 다시 생각한다고 하잖아요.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체벌 자체로만 보면 전 반대입니다. 


건물은 2개가 있었습니다. 


본관동 건물인데요 붉은 벽돌이 아주 이채롭네요. 
국내 최초로 보이스카웃과 고적대를 만든 영화초등학교. 옛 영화를 다시 찾길 바랍니다.


우각길에서 만다는 작은 벽화들과 텃밭으로 옮겨갈 새끼 식물들이 가득 합니다.


창영교회 건물도 참 오래된 건물이네요. 이런 건물이 서울에서 보기 힘든데 인천에는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뭐 그래봐야 다 인천항 근처겠지만요. 역시 이 교회도 위키백과에서 보니 오래된 이야기가 담겨 있네요

1937년 인천 동구 창영동에 영화여자보통학교 부설 영화유치원에서 신자들이 예배를 본 것이 최초라고 하는데요. 


창영교회를 지나자 유럽식 저택이 보입니다. 삼지붕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 때 감리교 여선교사 기숙사 건물이었습니다. 북유럽 르네상스식 건물인데요. 지금은 창영감리교회 교육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건물 볼때마다 그 시절 이억만리 이름도 낯선 곳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서양문화를 전파하는 열정을 보면 종교인들은 정말 거침이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대단한 용기는 대단한 신앙심에서 나오겠죠.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그들의 확고한 신념이나 열정은 가끔 탄복합니다. 

태풍이 불어와도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이 바른 종교인이 아닐까요?


붉은 색과 하얀색 그리고 파란 지붕이 아주 멋진 이미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저 건물에서 차 한잔 하면 그 맛이 향기로울 듯 합니다. 



길을 계속 걸었습니다.


귀여운 강아지가 반겨주네요.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목소리를 뒤로한 채 계속 걸었습니다


거댛나 풍채의 건물이 언덕 꼭대기에 있었습니다. 무슨 건물일까요?


이 우각길을 걸으면서 계속 보게 되는데 그 크기도 크기지만 언덕위에 있는 모습이 자꾸 눈길을 가게 만드네요. 위 건물은 한국 예루살렘 교회라고 하네요. 규모가 상당히 커 보이는데요. 건물 자체는 오래되어 보입니다.



이 우각길에는 교회건물 만큼 오래된 건물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노후건물들이 많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 모습이 정감이 있습니다.


이런 가로수 쉼터도 있고요


담쟁이들이 서정적으로 보이게 합니다



어제 종로 광화문에 나갔는데 서울시 뉴타운 정책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1인 시위를 하던데요. 이 인천도 뉴타운 사업이 한때는 활황이었을 듯 합니다.

서울시도 그렇지만 인천시장이 새누리당 출신 시장이었을 때 얼마나 많은 허황된 이야기와 말로 재개발을 외쳤습니까?
결국은 그 거품이 다 꺼져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누구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안타깝죠.  재건축보다는 리모델링은 어떨까요?  전자제품이 고장나면 고쳐서 쓰면 되지 그냥 버리고 새로 사는 것은 자연의 섭리와도 위배됩니다.

따라서 재건축이 아닌 리모델링이나 보수하면서 지내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인천시는 재개발 보다는 그 마을의 공동체 역활을 위해서 사랑방 같은 누구나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서울시는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고 그 어떤 지역보다 제가사는 금천구는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인천 1호선 도원역으로 가는데 한 집의 담벼락에 멋진 그림이 보이네요. 소녀감성의 아주머니가 직접 자작한 시를 적어서 적어 놓았습니다. 

여름밤이라는 이 시는 작품성은 따지기 힘들지만 정감있고 소박한 꿈이 적혀 있어서 더 반짝이네요. 평상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잊혀진 단어이지만 예전에는 평상문화가 있었어요. 큰 탁자인데요. 그냥 큰 평상만 만들면 알아서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놀았습니다. 

어렸을 때 평상에서 동네 똑똑한 형이 해주던 박정희와 핵개발 이야기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네요




지난 여름 우리는 볼라벤에 치를 떨었습니다. 저 또한 거대한 통유리창의 흔들림에 공포감을 느꼈고요. 서울이 그럴진데 인천은 어땠을까요?  태풍이 지나간지 한 참이 지났지만 아직도 테이핑을 한 유리창이 보입니다. 



도원역으로 가는데 멀리서 와~~~~하는 함성과 둥둥거리는 북소리가 들려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큰 경기장에 보이네요.
저 곳은 인천축구전용경기장입니다. 인천 유나이티드 전용경기장이라고 합니다.

제가 잘 몰라서 물어보지만 인천에는 월드컵경기장도 있는데 축구전용구장이 또 필요하나요? 
서울도 축구전용구장은 월드컵 경기장 하나만 있는데요. 왜 월드컵 경기장을 이용안하고 또 지었을까요? 제 짧은 소견으로는 인천 아시안게임 때문에 지은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튼 저 경기장을 왜 또 지었는지 궁금하네요. 


[인천] 인천은 경기장 공화국? YTN기사

제 예상대로 2014년 인천 아시아 경기 때문이군요. F1 경기도 그렇고 여수 엑스포도 그렇고 대구 육상경기도 그렇고 모든 국제경기들이 적자투성이입니다. 80년대나 볼꺼리가 없어서 그 많은 지구인들이 텔비로 봤지만 이제는 올림픽이건 F1이건 육상대회건 모두 관심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거 볼 시간에 애니팡 하고 스마트폰으로 영화봅니다. 

그래서 대구 국제육상경기도 수천억 원을 적자보고 여수 엑스포도 F1도 적자입니다. 평창 동계올림픽도 제 에상으로 보면 엄청난 적자를 낼 것이며 2014년 인천 아세안게임도 큰 적자를 안길것입니다. 이게 다 토건주의자들이 만든 세상이죠.

뭐 이런 글 쓰면 인천시민들이 싫어하고 쌍욕을 저에게 하시겠지만 그래도 쓴소리는 좀 해야겠습니다. 
인천 축구팬에게는 저 축구장이 기분 좋겠지만 결국 그 돈은 인천시민의 돈으로 매꾸어야 합니다. 일본 같은 경우도 한 시가 부도가 나면서 시민들이 그 시의 부도를 매꾸기 위해 살인적인 세금을 내던데요. 그런 모습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천시가 더 이상 무리한 토건공사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기존의 2002 월드컵 경기장을 활용했으면 했는데 또 따로 지었네요. 뭐 규정상 그럴 수 밖에 없다고 해도 결코 좋은 모습은 아니네요. 인천 문학야구장은 국내 최고의 시설이라서 모두들 부러워 하는데 축구장은 왜 2개나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80년대 건축물에서 많이 보이는 난간을 보면서 도원역으로 향했습니다.


도원역으로 향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암물질이 가득한 슬레이트 지붕으로 지어진 노후 주택도 많은데 저 축구장 지을 돈이면 그 돈으로 노후주택 지붕 교체작업을 지원하면 어떨까 하고요.  슬레이트 지붕은 발암물질인 석면을 유발하는데요. 

주민들 건강을 위해서 무료는 힘들고 일정금액을 시에서 지원하면 어떨까 하고요. 그런데 그런 곳에는 신경쓰지 않고 축구 전용경기장을 또 짓는다? 시 재정도 서울 못지 않게 안 좋아서 부도날까 걱정까지 되는 인천시인데  축구 전용구장이 두개라니 좀처럼 이해가지 않는 행정입니다.

기분 좋은 여행길이 저 경기장에 대한 정체를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서 알고나니 씁쓸하네요. 
시민들이 깨어있고 경계하고 비판해야죠. 그런 것 안하면 서울시 꼴 납니다. 서울시 보세요. 세빛 둥둥섬 띄워놓고 개장도 못하고 양화대고 S자 만들었다가 다시 원상 복구하고요. 청계천에 있는 세운상가 밀고 거기에 녹지축 만든다고 했다가 다시 없던 일로 하고요.   저 서울 끝자락에 있는 SH공사가 지은 '가든파이브'는 아직도 유동인구가 많지 않습니다.

뭐 인천시도 마찬가지죠. 송도 '동북아무역센터'건물은 완공을 앞두고 멈춰 있고 청라지구는 빈 아파트가 속출하고 도로등 인프라 구축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수 많은  CF의 배경이 된 송도 투모로우 시티는 폐관했습니다.  일전에 송도 비판 글을 쓰니 송도 주민들이나 부동산 업자들이 지역에 대한 부정적인 글에 엄청난 욕을 하던데요.

그런 욕이 결코 인천시를 발전시키지 않습니다.  각설할께요. 아무튼 저 축구전용경기장을 보면서 현실 파악을 제대로 못한 인천시의 행정이 아쉽기만 하네요. 이게 다 안상수 전 인천시장의 업적이라면 업적이지요. 마지막에 부정적인 글을 썼지만  동인천역에서 도원역까지 이어지는 우각길 여행은 참 상쾌 했습니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 가셨다면 우각길도 한번 걸어보세요




큰 지도에서 인천 우각길 보기
썬도그
하단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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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oodgurn.blog.me/ BlogIcon 굿건 2012.10.28 1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대 시기의 건물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면 대한민국같은 토건 공화국에서 서민적 애환이 현재도 계속되는 곳이 된다는 이야기가 되겠군요. 군산도 영화동에 일제시대의 건물이 많이 남아 있어서 일제시대 촬영장으로 종종 사용되곤 했었죠.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떠난지 오래되어서..

  2. Favicon of http://simglorious.tistory.com BlogIcon 도플파란 2012.10.28 21: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천에 선교사들이 많이 있었죠.. 개항지였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독교 관련 책자에 보면.. 당시 개항지였던 곳 대부분에서 선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제일 많은 곳이 서울, 인천, 부산, 평양이었구요..ㅎㅎ

    보통 선교사들이 저렇게 근대식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본국 교단에서 일정금액의 선교헌금을 통해서 지었습니다. 그리고 토지 같은 경우... 근대시기 교인들이 십시일반으로 기부하기도 했지요... 또한, 지역 유지들이 선교사들에게 건물부지는 줄테니 학교를 세워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들 선교사들이 배워온 전통중에 좋은 전통은 다 사라지고, 별로 좋지 못한 전통들만... 후세에 남겨진 것 같아 안타까울뿐입니다. 아직까지 그 당시에 왔던 선교사들 후손들이 한국내에서 많이 활동 하시거든요... 심지어 이름까지 한국식으로 유지하는 분들도 많구요.. 그분들의 좋은 점만 배웠으면 좋았는데... 아쉬울 뿐입니다.

    제가 역사학을 전공하다보니.. 각설이 너무 길었네요... 근대 건축물이 앞으로도 잘 보존되었으면 좋겠네요...ㅎㅎ

    • Favicon of https://photohistory.tistory.com BlogIcon 썬도그 2012.10.29 0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렴풋이 그랬겠지 했는데 확실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서도 돈보스꼬라는 곳이 있는데 이탈리아 선교사 이름이더군요. 그 곳에서 고등학교에 못간 학생들이 기술을 배워서 사회에 나가던데요. 그 모습을 보면서 감사하고 고맙기만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선교사들이 해외에 나가면 선교를 어떻게 하는지 제대로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말씀대로 좋은 것을 배워야 하는데 못된것만 배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3. Favicon of https://gimpoman.tistory.com BlogIcon 지후니74 2012.11.01 16: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예전에 갔었던 군산에도 과거의 흔적들을 간직한 건물들이 많은데 인천에도 그런 곳들이 많이 숨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