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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파리의 일상을 밝은 미소로 담은 파리의 영상시인 '로베르 드와노(Robert Doisneau) 본문

사진작가/외국사진작가

파리의 일상을 밝은 미소로 담은 파리의 영상시인 '로베르 드와노(Robert Doisneau)

썬도그 2012. 6. 28. 10:45


이 사진은 워낙 유명해서 많은 분들은 아니지만 사진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이 사진을 어디서 누가 찍었는지 잘 아실 것 입니다. 이 사진은 유명한 파리의 영상시인인 로베르 드와노가 파리 시청앞 카페에서 지나가는 연인의 키스장면을 찍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에는 뒷 이야기가 있는데 아무런 설명이 없으면 정말 멋진 키스 사진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사진은 우연히 찍은 게 아닌 연출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카페에서 보고 누가 찍은 사진일까 궁금했고 이 작가를 무척 좋아했었는데 연출 사진이라는 소리에 크게 놀랐습니다. 

아니 이렇게 유명한 사진작가가 돈 주고 모델을 사서 캔디드 기법으로 우연히 찍은 사진처럼 찍고 그 연출 사진에 대한 설명도 없이 세상에 팔다니 파렴치 한 작가로 인식되었고 그에 대한 흠모나 존경도 사라졌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말하자면 이 사진은 50년대에 라이프지에서 파리의 일상을 담아달라는 부탁으로 찍은 사진 중 하나 입니다. 그렇게 여러장의 사진이 라이프지에 실렸고 우연히 이 사진만 80년대 들어서 따로 재발탁되어서 확대 되기 시작 합니다.  보석은 모래알 속에서도 반짝이는 진리 때문에 이 사진은 다시 빛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겉잡을 수 없이 인기를 느닷없이 얻은 이 사진에 대해서 로베르 드와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죽기 전에 이 사진에 대한 진실을 꺼내들었습니다. 

위 사진은 1950년 전직 연극단원인 여배우 프랑스와 보르네와 남자친구인 자크 까르토가 로베르 드와노의 부탁을 받고 파리 여기저기서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 속 여자인 보르네는 '사진은 포즈를 취한 것이지만 키스는 진짜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연출사진이라고 하지만 이 사진은 연출임에도 보석 같은 반짝임이 있습니다. 연출 한다고 해도 저 정도로 연출한다면 그 작가는 수준급 작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로베르 드와노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파리시청 앞에서의 키스' 그러나 그에게 불명예를 같이 씌우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로베르 드와노에 대한 이미지가 저 사진의 진실을 알고 인상을 쓰기도 했지만 그의 사진이 저 사진 하나만으로 '로베르 드와노'를 판단하기에는 그의 재능이 너무나 뛰어나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 안할 수가 없습니다. 

로베르 드와노(ROBERT DOISNEAU 1912~1994)

드와노는 1940년대와 1950년대 파리의 일상을 매우 직관적으로 담은 사진작가입니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였습니다. 그는 파리의 남부 쟝티에서 태어나서 1920년대 석판화가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던 사진으로 전향했습니다. 르노 자동차 공장에서 직장일을 하면서 그곳에서 많은 광고사진과 기록사진들을 찍으면서 사진실력을 키워갑니다.  드와노는 스스로 사진가 겸 삽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그의 사진들은 한장 한장이 파리를 그린 삽화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1939년에 르노에서 해고 당한 후 사진 에이전시에 들어간 후 전쟁이 난후 그는 입대를 합니다.  독일군에 점령당한 파리에서 레지스탕스가 되어서 그 전쟁을 목도합니다. 1944년 파리가 독일군으로 부터 해방이 될때 그 현장에 있던 사진가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1930년대에 찍은 위 사진을 보면 드와노의 심성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꼬마 숙녀가 꼬꼬마 숙녀의 손을 잡고 우유를 사러 가는 모습은 한편의 동화 같기도 하지만 당시의 현실을 잘 담고 있습니다. 저 어린 나이의 요즘의 아이들은 엄마 손 잡고 보채기만 하지만 두 꼬마들은 어머니의 심부름을 하기 위해서 코트를 입고 우유를 사러 나섰습니다.  귀엽지만 어쩌면 혹독한 어른 예행 연습이기도 합니다.


전쟁이 끝난 후 드와노는 파리의 잡지들을 위해서 사진을 많이 찍습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유명한 사진 에이전시인 '매그넘'에 들어올 것을 권하지만 그는 매그넘 같이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일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다면서  파리에 남겠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파리를 사랑한 이 사진작가는 전세계 대신에 파리를 선택합니다. 이런 애정이 있지 않고서야 이 드와노가 반짝이는 파리의 일상을 담기 힘들었겠죠.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제가 이 사진을 찍는다면 아무런 느낌이 없었겠지만 드와노의 사진에는 일상 속의 반짝임을 잘 압니다.  특히 유머러스한 일상을 잡는데는 대가였죠. 

그의 사진 대부분은 박장대소는 아니지만 얇은 미소가 지어지게 하고 그게  드와노 사진의 힘입니다. 




이런 사진도 평범한 파리 학생들의 모습이지만 가운데 대포의 얼굴을 넣어서 규칙적인 패턴에 불규칙 그러나 그 규칙을 파괴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키스 장면도 수 많은 연습과 순간포착력이 있지 않으면 찍기 힘듭니다. 











그가 찍었던 40~40년대 파리는 웃음이 많이 나올 수 없었습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삶이지만 그렇다고 1년 내내 울상을 하고 살 수 없는게 인간이고 가끔 피어나는 웃음을 그는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어쩌면 이런 파리를 담은 작가들 때문에 우리가 파리를 더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고 파리시에서 밝은 파리의 이미지를 촬영해 달라고 돈 주고 부탁한 사진에서 나오는 부자연스러움과 어색한 미소도 아닙니다. 










































우리의 40,50년 사진들은 주검들이 가득한 기록사진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로베르 드와노가 한국에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50년대 한국 사진작가들은 사진작가라는 개념도 많지 않았고 미군에 소속된 작가들이 많아서인지 이런 여유는 없었습니다. 

로베르 드와노. 그가 있었기에 파리는 어두운 시절도 밝게 웃는 미소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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