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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20세기초 이탈리아인이 담은 서울의 풍경 '로쎄티의 서울' 본문

20세기초 이탈리아인이 담은 서울의 풍경 '로쎄티의 서울'

썬도그 2012.06.27 12:15


'기사 수업'이라는 책을 읽다보니 한국의 특파원들이 주로 하는 일이란 외국의 일간지에 한국이라는 단어만 샅샅히 뒤져서 한국관련 기사가 뜨면 그걸 그대로 번역해서 한국 본사에 보내주는게 주요 업무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한국관련 기사를 보내는 이유는 한국 사람들이 외국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솔직히 우리는 외국반응에 너무 쩔어 사는 것 같습니다. 김연아 우승하면 일본 반응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한국 축구가 16강에 오르면 외국 반응을 왜 그렇게 들쳐 봐야 하는지 뭔가 자랑스러운일을 했다하면 우리는 온통 외국반응에 신경을 씁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죠
외국에서 한국 비판 기사를 쓰면 득달같이 달겨들어서 욕하고 삿대질하고 악에 바친 메일까지 보냅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외국의 시선에 일비일희 할까요? 제가 보기엔 주체성이 많이 없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칭찬하면 우쭐하고 비판하면 붉으락 푸르락하면서 쌍욕을 하는 것 아닐까요?

그냥 우리 스스로 평가하면 안될까요? 그런 역량도 없는 것일까요?  한류도 그래요. 외국인들이 한류 좋아하니까 우쭐거리는 미디어들을 보고 있노라면 천박스럽습니다. 이런 모습은 외국에 가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물어보고 반대로 공항에 막 입국한 해외스타에게 서울의 인상을 물어보는 진부한 질문에서도 나옵니다.  아니 이제 막 한국에 왔는데 한국의 인상이라뇨?

아무튼 한국 사람들은 외부의 시선을 너무 과지각하고 삽니다. 
언론이 그런 것을 잘 계몽시켜야 하는데 오히려 언론이 더 이용하고 있죠. 

여기 또 하나의 외국인이 바라본 시선이 있습니다. 이탈리아인 로쎄티가 1902년에서 1903년까지 서울에 머물면서 서울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로쎄티는 1902년에서 1903년까지 이탈리아 영사로 계셨던 분입니다. 그는 카메라를 가지고 와서 서울의 이모저모를 촬영 했습니다. 이 시대 부터 우리가 말과 글로만 들었던 조선시대의 실상을 적나라한 사진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종이는 동양에서 만들었고 금속활자를 가장 먼저 만든 나라가 한국인데 기록물은 많지 않습니다. 물론 한국에는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하는 어머어마한 기록물이 있습니다. 이 실록은 아무리 임금이라도  이렇게 저렇게 쓰라고 할 수 없었죠

문제는 그 기록물은 참 좋은데 당시의 민초들을 담은 기록물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기록물이 권력자들인 양반의 시선으로 적히다 보니 정작 백정이나 평민들의 속내는 담지 못합니다. 반면 서양인들은 기록물이 아주 많았습니다. 삽화도 뛰어났고 인쇄 활자술도 발달해서 급속하게 발전 했습니다

제가 잘은 모르지만 동양이 서양에 앞선 과학문물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느순간 대역전을 당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이 인쇄술의 발전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왜냐하면 서양인들은 모든 경험과 사건사고를 기록했고 그 기록물이라는 책이 후대에 계속 선대의 지식과 지혜와 경험을 공유하니 급속도로 발전 한게 아닐까요? 

일일이 붓으로 책을 옮겨 적는 그런 원시적인 방법 말고 금속활자로 책을 대량 생산하던게 서양이었으니까요.


이런 모습은 조선말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양인들은 수시로 조선말기의 모습을 해외에 알렸고 잡지나 이런 기록물에 그 기록이 더 자세하게 남아 있습니다. 반면 한국의 조선말기의 기록물은 우리 스스로가 만든 기록물이 많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옛 자료들 특히 조선말기나 하다못애 한국전쟁 전후 70년대 80년대 한국 풍경을 담은 사진을 찾을려고 하면 찾기 쉽지 않습니다. 반면 해외 자료를 찾아보면 엄청나게 나옵니다. 아니 이런 것도 기록헀나? 할 정도로 엄청나게 기록하고 글과 사진으로 담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90년대 사진이라도 제대로 국가에서 보관하고 관리하며 그걸 일반인들에게 공유를 제대로 합니까?


로쎄티도 서양인(?) 답게 기록을 많이 합니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관찰한 내용을 적고 사진으로 20세기 초 대한제국하의 우리 땅을 담습니다. 1902년과 1903년은 고종이 있던 시기로 대한 제국이 있던 시기인데 설명문에는 한국이라고 적고 있네요

한국은 대한민국의 약자로 현 정부에서는 48년 부터라고 말하지만 정확하게는 상해 임시정부 시절까지 포함한다고 해도 1902년을 한국이라고 말하는 것은 좀 이상하게 들립니다. 왜 한국이라고 했을까요? 차라리 코리아라면 하던지 하지 너무 지나친 번역같네요.  

아무튼 이 이탈리아 영사는 서울을 북경과 일본과 다르다고 느꼈다고 하네요. 
서울이 다르다고 하지만 왜  뭐가 다른지는 안 나와 있습니다. 

편의상 한국이라고 하죠. 한국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외국 문물에 대한 거부감은 많지 않았나 봅니다. 그러기에 경인선이 무섭도록 빠르게 깔렸던 것 아닐까요? 인천에서 서울까지 철도가 생기고 잘 다듬어지 전차가 서울을 다녔습니다. 



로쎄티가 찍은 서울은 다양했습니다.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오래된 건물은 고궁 외에는 거의 사라지고 파괴되어서 가끔은 이 도시가 오래된 도시인가? 라는 의문이 들긴 합니다. 그때 마다 이런 사진들을 보면서 서울의 옛모습에  감탄을 하곤 하죠. 이렇게 많이 변했구나...

위 사진은 동대문 사진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이 아차산 같기도 하고요. 당췌 기준이 되는 건물이 없으니 어디서 본 사진인지 구분하기좀 힘드네요. 

이게 지금의 종로대로의 모습이네요. 쭉 뻗은 신작로인데오. 2층이 없는 한옥들이 계속 나열되어 있습니다. 요즘 삼청동 가면 2층 한옥들이 많이 보이는데 그건 정확하게 한옥이 아닌 개량 한옥이라고 할까요? 한옥은 2층이 없습니다.  뭐 궁안에는 목조 2층 건물이 꽤 있긴 하지만 궁궐안 건물도 대부분 1층짜리죠. 

민초들은 예나 지금이나 삶의 녹록한 모습입니다. 우리가 요즘 사극에서 평민들도 반듯반듯하게 생긴 모습을 보는데 다큐같이 찍는다면 위 사진 처럼 머리카락이 삐쭉삐죽 거리는 모습이었겠죠. 그러고보면 드라마 '추노'가 그나마 당시 민초들을 잘 표현한 듯 합니다. 

이 당시의 서양도 그랬겠지만 옷들이 정말 볼품이 없네요.

로쎄티는 한국에 와서 어린 소년들이 여자인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댕기머리 때문이죠. 강력한 유교국가인 조선의 영향으로 머리를 자르지 않는 풍습이 있었고 그 모습을 처음 본 서양인은 여자인줄 착각을 했네요. 


가마를 탄 로쎄티입니다.

고종은 서양 문물을 참 많이 받아들이고 자주적으로 개혁을 할려고 했던 개혁파 인물로 알고 있습니다. 에디슨 전신국과 함께 서울에 전기를 깔고 전화를 놓고 기차를 놓고 전차를 놓았죠. 


하지만 나라가 힘이 없다보니 자체적으로 큰 군대를 모을 수 없었고 모은다고 해도 서구 열강들이 훼방을 놓았을 것 입니다. 
이렇게 외세에 의탁하게 되니 나라가 자주 보다는 보호를 선호했는데요. 이 모습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정학적인 위치... 숱하게 들었던 단어입니다. 캐스팅보트 역활을 잘하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고 일제에 흡수되고 맙니다. 



바로 위 사진은 어딘지 알겠네요. 책에서 얼핏 봤는데 현재의 덕수궁을 찍은 사진입니다. 당시는 경운궁으로 불리웠죠.  지금의 덕수궁은 돌담으로 되어 있지만 당시는 저렇게 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저 앞에 있는 큰 문이 현재의 중화문이고 중화문 뒤에 있는 2층짜리 건물이 바로 중화전입니다. 

좀 이상하다고 느끼실 분이 있을 것 입니다. 지금의 중화전은 1층인데 왜 2층일까? 하는 분이 계실텐데요
1904년 경운궁에 큰 불이 나서 전소되고 다시 중건한게 현재의 중화전이고 1층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 사진은 화재가 나기 전에 찍은 고귀한 사진입니다. 경운궁의 크기는 현재 서울시청 별관 지역과 경희궁까지 이어질 정도로 컸는데 뭐 불나고 전쟁나고 해서 축소 되었습니다. 

로쎄티는 한국의 장례식을 신기하게 봤습니다. 그 이유는 엄숙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아닌 축제 분위기였다는 것인데요. 
당시 동영상 기록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좀 아쉽네요. 가끔은 타임머신 타고 가서 당시의 풍습을 폰으로 다 담고 오고 싶다니까요.


이 카메라로 찍었나 보네요


당시 상인들과의 물건 흥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죠. 한국에서는 무조건 깍아야 한다는 생각을 외국인들이 하는데 이거 저 별로 좋아 하지 않습니다.

깍아달라고 하면 깍아주면 정작 가장 착한 손님인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제값 다주고 사면  봉 취급해서 다 벗겨 먹는다는 모습인데요. 이런 모습은 좀 사라졌으면 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시장에 남정네 혼자 가면 옴팡 바가지 쓰잖아요. 

이러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래서 남자들이 온라인 쇼핑만 하는 것은 아니지 쩝... 저 또한 시장가서 가격흥정 그 과정이 짜증나서 잘 안가게 되더라고요. 알아서 덤으로 더 주는 집도 있지만 생판 모르는 곳에 가서 가격 흥정 안하면 비싸게 사서 오게 되더라고요. 그럴때는 마트가 참 좋아요. 시장 상인분들도 이 부분은 개선하던지 해야 할 것 입니다. 정가제는 아니더라도 가격흥정 안하는 착한 손님(?)도 대우를 잘 해주세요. 





사진으로 봐도 누추하고 힘들어 보이는 삶이네요.

우리네 할머니들의 삶인데요.  측은지심은 아니더라도 저 강한 생명력에 감탄을 합니다. 
삶은 살아지게 되어 있는 것 아닐까요. 결국은 살아지게 되는게 삶이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입니다. 


자기 몸무게 보다 무거운 항아리를 지고 가는 저 아버지는 저 무게 이상의 삶을 지고 살아갔을 듯 합니다. 
꽤 좋은 전시회입니다. 지나가다가 한번 들려 보세요. 아이들 손 잡고 100년전 한국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전시명 : 로쎄티의 서울
전시장소 : 서울 역사박물관
입장료 : 무료
전시기간 : 2012년 4월 26일~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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