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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한국전쟁의 상흔을 담은 박완서의 '겨울 나들이'

by 썬도그 2012.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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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이 좋은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오래된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오래된 것 중에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 오래된 것이 여전히 좋은 이유는 현대사회자 담지 않는 그러나 살면서 누구나 한번 이상은 경험할 수 있는 삶의 정수가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KBS의 라디오 프로그램 '라디오 독서실'에서 좋은 소설 하나를 만났습니다. 정이현의 소녀시대라는 단편소설을 찡그리고 읽었다면 이번에는 그 찡그림을 펴주는 서늘하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단편소설을 들었습니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상흔을 담은 박완서의 '겨울 나들이'

고인이 된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박완서 작가의 작품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직설적이지 않습니다. 때로는 수줍게 말하고 돌려 말하면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상처를 잘 다듬는 기술이 좋은 분입니다. 단편 소설 '겨울 나들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단편소설 겨울나들이는 1973년 10월 문학사상에 실린 소설입니다. 
중견화가인 남편을 둔 나는 아틀리에 들렸다가 딸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남편을 보게 됩니다. 인물화는 그리지 않던 남편이 딸을 그려주는 모습에 야릇한 질투심을 느낍니다. 딸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연인 같다는 느낌까지 들자 나는 질투심에 사로 잡혀서  남편에게 투정을 부리듯 여행을 갔다 오겠다고 말합니다.딸과 남편은 뜨악하게 보면서도 만류하지는 않습니다이렇게 나는 여비를 두둑히 받고 온천이 많은 곳으로 여행을 갑니다. 관광 호텔의 온천을 전전하다가 아무 버스나 올라타고 이름 모를 호숫가에 내리게 됩니다. 삭막한 겨울 만큼이나 황량한 마음을 녹일 곳을 찾다가 허름한 여인숙에 들어가게 됩니다. 여인숙 아주머니는 지나칠 정도로 고개를 굽신거리며 친절한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꽁꽁언 몸을 보더니 안방으로 모십니다. 그 안방 구석에는 연신 도리질을 하는 노파를 보게 됩니다.  나는 도리질 하는 노파를 유심히 쳐다 보면서 손님방으로 옮겨 몸을 녹이다 스스르 잠이 듭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점심상을 먹으면서 물어 봅니다. 

노파의 도리질이 혹시나 자신이 못마땅한 것이였는지 물어보게 되고 주인 아주머니는

그렇게 25년간 도리질을 하고 있다면서 긴 한숨 같은 지난 이야기를 해줍니다. 6.25 동란때 일어난 발작 증상이라면서 그 동란때의 일을 말해줍니다. 동란때 젊은 면장이었던 아주머니의 남편은 피난을 미쳐 가지 못해서 숨어 살아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집에 숨어 있었지만 하수상하고 누가 누구를 신고하고 서로 죽이고 죽고 하는 시절이라서 저 멀리 아주머니의 친정으로 피신을 시킵니다. 고지식한 시어머니(노파)는 낯선 사람들의 물음에 있는 그대로 말할 것 같아 아주머니는 시어머니에게 누군가 낯선 사람이 아들 소식을 물어보면 무조건 모른다라고 말하라고 신신당부 합니다.그렇게 매일 같이 모른다를 주입하던 어느날 평화스러운 마을에 쌕쌕이라고 하는 전투기의 기총소사와 총소리 포탄 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이 떠난 마을에 성질 급한 아주머니의 남편이 돌아왔고 혹시나 해서 집안에 숨어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몰라요. 몰라요. 정말 난 모른단 말예요"라는 소름이 쪽 끼치고 간담이 서늘해지는 처참한 비명이 밖에서 들려 옵니다. 그 소리에 아주머니와 남편이 경황도 없이 마당으로 나갔다가 총든 인민군을 만나게 되고 남편은 인민군의 총에 그 자리에서 죽게 됩니다. 이후 시어머니를 극진이 모셔서 다른 것은 다 회복 되었지만 그때의 저 도리질은 멈추지 않는다고 합니다.

점심값과 방값 800원을 넘는 1천원을 지불하고 나갈려고 했는데 아주머니는 연신 굽신거리며 고마워 하면서 이 돈으로 서울을 가겠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던 아들녀석이 묶던 하숙집 주인에게서 편지가 왔다고 합니다. 

편지에는 아들이 1주일이 넘도록 하숙집에 들어오지 않는 다는 것 입니다. 당장 서울에 가고 싶지만 노자돈이 없어서 전전긍긍할때 내가 준 1천원이 노자돈이 되어 서울에 가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오후 버스를 타고 나와 여인숙 아주머니는 서울로 향하게 됩니다. 소설의 앞부분에 화자가 남편과 딸의 묘한 분위기에 질투를 합니다. 화자인 나와 남편은 재혼 한 사이이고 딸은 첫째 부인의 딸입니다. 남편은 첫번째 부인을 북에 두고 오게 됩니다. 그리고 생이별을 한 북에 두고 온 첫번째 부인의 헤어질때의 나이와 딸이 결혼 한 후 애를 낳은 그 시기가 비슷함을 알게 됩니다. 딸은 어머니를 닮는 법, 아마 남편은 딸에게서 자신의 첫번째 부인의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평소에는 그리지도 않던 초상화를 그렸나 봅니다.이 소설은 2개의 6.25라고 하는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이 되어 흐릅니다. 

화자인 나를 떠나게한 6.25는 질투심이었습니다. 재혼한 나 말고 북에 두고온 첫번째 아내를 그리워 하는 남편의 모습에 괜한 질투심을 느끼게 되죠. 딸의 얼굴에서 북에 두고온 아내를 상기시키는 모습에 훌쩍 겨울 나들이를 떠나게 됩니다.

그렇게 질투심으로 떠난 여행에서 또 하나의 한국전쟁을 만나게 됩니다. 한국전쟁때 눈 앞에서 아들이 인민군 총에 맞아서 죽는 살풍경을 본 후 25년간 도리질을 멈추지 않는 노파와 그 노파를 극진하게 모시는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화자는 그 아주머니 손을 잡고 서울로 향합니다.
남편의 한국전쟁은 그리움으로 채색되었지만 여인숙 아주먼의 한국전쟁은 어두움으로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두 이야기의 본질은 같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못 보는 암담함이나 남편의 죽음을 목도한 가슴 미어지는 서러움이나 두 이야기는 한국전쟁이라는 개인의 삶을 처참하게 파괴한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어서 널부러진 민초들의 삶이 있습니다. 오늘이 6.25입니다. 어렸을 때 반공 포스터 그리고 무찌르자 공산당 하는 소리를 돌림노래처럼 부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62년이 지난 오늘이지만 여전히 이 노랫소리는 잦아들고 있지 않네요.  한국전쟁은 북한이 쳐들어온 전쟁이고 북한을 당연히 타박해야 합니다만 동족간의 비극임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 것 같습니다.  또한 북한군이라고 해도 그 머릿대가리들이 나쁜놈들이지 명령대로 움직였던 우리 같은 민초들에게 무슨 큰 잘못이 있겠습니까?
또 이렇게 써 놓으면 종북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겠네요. 아무튼 니편이던 내편이던 간에 박살나고 깨지고 부셔지는 삶들은 모두 민초들입니다. 6.25 전쟁 이후에 기득권자들이나 고위급들의 삶중에 박살난 삶이 몇개나 있겠습니까?  어느 일간지에서 요즘 대학생들이 6.25가 몇년도에 일어났는지 모른다면서 한탄해 하고 있습니다.년도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럼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만들어서 시험과목에 넣으면 좔좔 외웁니다. 화학주기율표 처럼 구구단처럼 필수적으로 외우고 수시로 시험지에 출제를 하면 년도뿐 아니라 발발시간과 전개과정 사망자 숫자및 유엔군 지원 국가 숫자및 최대 격전지까지 좔좔 외울 것 입니다.
그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다시는 이 땅에 동족간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길 바래야 하는 것 아닐까요?

솔직히 지금의 남북 경색국면의 반사이익을 누가 받겠습니까? 김정은과 이명박이라는 두 국가의 수뇌부들이 다 반사이익을 누리는 것 아닐까요? 서로 긴장줄 타면 서로에게 윈윈하는 것이죠전쟁나면 겨울나그네의 노파 처럼 평생을 전쟁의 상흔 속에서 살아갈 사람이 넘쳐날 것 입니다. 

6.25 전쟁때 순국하신 많은 국군장병들의 거룩한 희생을 돌아보면서 동시에 다시는 이런 전쟁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게 우리 스스로가 왜 전쟁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봤으면 합니다. 전쟁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전쟁에 대해서 함부로 말합니다. 

소설 겨울 나그네는 인터넷 검색하면 쉽게 원문을 구해 볼 수 있는데요. 이 소설이 국정교과서에 실렸다고 하네요. 
짧은 소설이니 출 퇴근 시간에 잠시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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