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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책서평

대학과 대학생과 사회에 대한 쓴소리 대학에 저항하라

by 썬도그 2012.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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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에 자주 갑니다. 뭐 여학생들 보러 가는 것은 아니고 이대에는 '아트하우스 모모'라는 예술영화 전용극장이 있습니다. 그 극장에 가려면 거대한 구조물 속을 들어가야 하는데 그 디자인이 너무 멋집니다.

대학에 저항하라

세계적인 건축가가 디자인 한 이화여대 ECC건물 속을 들어가서 깜짝 놀랐습니다. 서점과 빵집은 물론 편의점에 카페에 음식점에 공연장에 학교 앞 풍경을 그대로 이식해 놓았습니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런 학교 밖에 있어야 할 편의점, 스타벅스, 영화관 비록 무마되긴 했지만 서강대학교에서 3년 전에 홈플러스 입점을 계획했던 모습을 보면서 격제지 감을 느낍니다 대학교는 결코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이나 회사가 아닌데 비록 학교 밖 보다 싸다고 하지만 스타벅스 같은 커피체인점이나 학교나 학생회에서 운영하는 게 아닌 외부 자본세력이 돈 한 푼 못 버는 학생들의 주머니 돈을 털어가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인지에 대해서 스스로 질문을 해 봤습니다

 

대학교 밖 보다 싸고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뭐라고 할 것이 아니지 않으냐고 반론하는 대학생도 있고 실제로 스타벅스 같은 유명 커피숍이 마구마구 들어왔으면 하는 대학생들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 유명 프랜차이즈들이 아무리 싸고 질 좋은 서비스를 해서 대학생들을 만족한다고 해소 이익집단인 회사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수익을 내지 않으면 대학교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80.90년대는 달랐습니다. 학교 안 커피 자판기 운영권을 학생회등의 비영리단체가 가지고 있거나 외주를 주더라도 수익의 일정 부분 이상을 학교에 제공했습니다. 큰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였죠. 그런 이유로 작년 벚꽃 구경하러 경희대에 가서 마신 캔커피는 학교 밖 보다 200원 이상이 쌌습니다.

대학에 저항하라

하지만 지난 2월 찾아간 서울대 식당 앞 자판기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판기 커피가격이 보통 비싸도 300원 정도 하는데 무려 400원 고급 커피는 500원이나 합니다. 어떻게 된 게 대학교 안이 대학교 밖보다 비쌉니까? 이렇게 비싼데도 학생들은 군소리하지 않나요? 그것도 지성인들 대한민국 최고 지성체들이 다닌다는 서울대의 높은 물가에 깜짝 놀랐습니다 넓은 서울대 교정을 거닐면서 한숨이 나왔습니다 더 이상 대학은 지식을 탐구하는 학문의 전당이 아닌 기업체들이 골라 쓰기 좋은 세상물정에 순치된 부속품들을 만드는 곳이라는 것을요.

 

대학은 취업학원이 된 지 오래고 대학생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학문 탐구가 아닌 삼성, LG, SK등 대기업 취직이 목표가 된 현실, 물론 오늘의 문제가 아닌 지난 세기 동안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었지만 이제는 너무나 노골화되어서 기업들이 지어준 거대한 건물 속에서 각 기업이 요구하는 군소리 안 하고 까라면 까라는 대로 일하는 부속품들이 되기 위해 스스로의 몸을 기업체들이 요구하는 부속으로 깎고 있습니다

대학에 저항하라

2008년 대학등록금 인하를 주장하는 대학생들의 첫 등록금 시위 대학등록금이 1년에 1천만 원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4년 다니는데 총 4천만 원 이상이 들어가는 시대, 신자유주의를 경제 기조로 삼고 있는 현 보수정권은 질 좋은 서비스를 하려면 등록금을 더 올려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즉 시장에 맡기겠다는 방관자적인 자세만 취하고 있습니다. 2008년 첫 등록금 인하 시위를 보면서 많이 씁쓸했습니다.


대학 등록금 낼 돈이 없는 대학생들이 마루타가 되어 약 테스터가 되고 룸살롱 알바까지 한다는 도시괴담 같은 이야기가 실제로 존재하는 일이자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참 씁쓸했습니다. 또한 이 대학등록금 인하시위가 1회성으로 끝나는 것에 대해서도 참 씁쓸했습니다. 이 보다 더 씁쓸한 이유는 이 대학생들이 과반 이상인 20대가 지난 2008년 총선과 대선 때 보수정당의 대통령 후보와 국회의원을 뽑는데 큰 일조를 했습니다. 보수주의자가 더 많은 20대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세상물정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결코 이명박 정부가 반값등록금 실현을 하지 못할 것이 뻔한데 단지 대선 후보 공약으로 나왔다는 말만 믿고 따르는 것 같아 안타까웠고 결국은 자신은 반값등록금 공약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말에 뒤통수를 맞았다면서 2011년 다시 거리에 나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실 이명박 후보가 반값등록금 실현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전혀 무관하지 않은 당시 한나라당의 정책공약 중 하나였죠. 정당 소속이면 자기가 하지 않았다고 해도 머리를 숙여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

대학에 저항하라
2011년 6월 반값등록금 시위에 모인 대학생들

2008년에서 한참을 지나서 2011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하던 대학생들 일부가 반값등록금 시위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결속력이 단단했고 매일 같이 종로에서 시위를 했습니다. 선거가 가까워지고 있던 시기와 맞물려 정치인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했고 결국 정부에서 대학에 무언의 압력을 넣어서 대학등록금 인상을 동결시키거나 인하시키도록 유도했습니다.

하늘 높이 오르기만 하던 대학등록금이 드디어 하락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작은 행동이 물길의 방향을 돌려놓았습니다. 이런 대학등록금 인상시위는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 멀리 영국이라는 섬나라에서도 2010년 대학등록금 시위가 있었습니다

대학생들이여 대학에 저항하라

대학에 저항하라

책 '대학에 저항하라'는 표지가 뻘겋습니다. 붉은색은 저항의 색이기도 하죠
이 책은 2010년 영국 대학등록금 시위 때 진보 성향의 석학교수 및 사회운동가 13명이 쓴 칼럼을 묶어서 구성한 책입니다.

영국은 2010년 대학등록금 상한선을 올리고(기존 등록금의 2~3배까지 등록금을 인상) 돈 안 되는 학과인 인문학과 사회학 예술학등에 지원하는 지원금을 철회하며 대학이라는 고등교육에 대한 예산을 대폭 삭감해 버립니다.
이런 내용을 담은 브라운 보고서가 2010년 10월에 출간되게 되었습니다.

 

시장 자유주의라는 체제를 대학에 접목시키다

대학에 저항하라

이 브라운 보고서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대학도 다른 세상과 마찬가지로 시장 자유주의 체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학과 교육이 더 이상 공공재가 아닌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보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것을 적극 이용해서 더 질 좋고 좋은 교육을 받고 싶으면 더 많은 등록금을 내라는 것입니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 같습니다. 아니 맞습니다. 대학생과 대학과 학과를 산업처럼 돈 되는 공부만 하고 돈 많이 버는 학과만 살아 남고 돈도 못 버는 또는 취직도 안 되는 쓰잘데 없는 학과는 자연도태되는 것이 적자생존이라는 위대한 자연의 법칙과 맞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은 그런 시장의 상품이 아닌 공공재로써 봐야 하고 그게 바로 대학의 설립목적인 취직하기 위한 학원이 아닌 지식을 탐구하는 학문의 요람이 될 수 있다고 책은 주장합니다.

 

현재의 고등교육 공격에서 새로운 저은 대학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기업화되고 군대화되고 있으며, 학문의 자유가 억압되고, 일시적인 파트타임 학과가 전에 없이 증가하고, 학생은 소비자가 되고 학과는 자격증이나 직장에서 필요한 기술을 파는 곳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 비판의 중심이자 시민 교육과 공익의 중요한 원천인 대학이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변화로 인해 대학은 민주주의의 공적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하고 말았다

-책 204페이지 중 일부 발췌-

대학교의 메인 캠퍼스 빌딩에 들어서면 시티은행의 중앙홀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 중략...
많은 대학들이 지성과 문화와 정치가 고갈되어 스스로 '대학'임을 부정하고 있다. 이제 대학에 고등학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대학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임상적 기능주의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정치적 일치, 카프카의 '심판'에 그려진 관료주의적 부조리를 합쳐 놓은 듯한 환경에서 노동 단위를 생산하는 기술 공장일뿐이다

-책 42페이지 중 일부 발췌-

그렇다고 현재의 대학 모습이 결코 바람직하거나 정상적이고 미래지향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종교화 된 세상에서 대학이라는 거대한 성이 공공재라는 성벽을 내주게 된다면 대학마저도 마트가 점령해서 쓰러져가는 저 전통시장의 쓸쓸하고 씁쓸한 모습이 굴러다니는 황폐한 풍경이 될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재 혹은 근미래의 대학의 모습

그 풍경은 이렇게 될 것입니다
IT나 의학이나 일부 돈 되는 학과는 살아남고 모든 쓸데없는 짓거리(돈의 논리로 보면)들을 하는 학과들은 모두 폐강될 것입니다. 보조금도 안 나오고 취직도 안되는데 누가 그런 학과 입학하려고 하겠어요

교육을 하나의 서비스업으로 보기 때문에 학생들이라는 소비자가 교수를 직접 평가하고 질 좋은 교수의 수업을 받고 보다 질 좋은 교육자재로 공부를 하려면 등록금을 더 내야 하는 돈으로 교육을 구매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돈 없는 집 자식이라고요? 그럼 저 등록금도 싸고 인지도도 없고 취직도 안 되는 듣보잡(표현이 과격하지만) 대학에 가야 합니다.
성적이 좋으니 좋은 대학 싸게 다닐 수 있다고요? 성적 좋아도 1년에 수천만 원 하는 등록금 낼 자신 없으면 알아서 포기해야 합니다.

돈 되는 직업과 학과만 찾다 보니 다른 학문은 황폐화될 것입니다.
마치 의사들이 돈 되는 성형외과나 피부과나 치과에만 몰리듯 힘들고 어렵고 돈도 안 벌리는 외과에는 안 가고 결국은 외과 수술 의사의 고갈로 이어지듯 경제논리만 내세우면 돈 안 벌리는 수많은 인간의 행위는 그 기반이 없어서 스스로를 구속하고 경제동물로 만들 것입니다.

대학교수들은 연구성과물이라는 괴물에 쫓기게 되어 당장 성과가 나지 않고 돈이 안 되는 연구는 스스로 연구를 포기하는 근미래만 쫒는 편협스러운 연구만 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성과가 없는 교수는 항상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됩니다. 또한 언제든지 자를 수 있는 시간강사로 강의를 메꿀 것입니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 정권인 영국의 보수당과 자유민주당 연합정권이 내세우는 등록금 인상과 영국의 재정적자 해소를 위해서 대학에 지원되는 국가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대신 소비의 주체인 학생들이 직접 등록금을 더 내라고 하는 정책에 대한 반론을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적인 반론만 적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대학이라는 곳의 역할을 설명하는 칼럼도 있습니다. 그 부분을 좀 적어보도록 하죠

엘리트들만의 특권인 대학, 노동자 계급의 자녀들도 대학에 입학하다

제 아버지 어머니 모두 대학을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전후에는 대학에 가는 계층은 특정계층 즉 엘리트계층들만 대학에 갔습니다. 일제강점기 때나 한국전쟁 전후에 대학을 다닌 분들은 대부분 부유층 집안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엘리트들만 대학에 가니 계급사회가 아닌 한국이지만 50,60년대까지만 해도 엄연한 계급이 있었고 그 계급을 넘어갈 수 있는 사다리는 구하기 힘들고 구한다고 해도 돈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대학이 많이 생기고 노동자를 아버지로 둔 자녀들도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합니다.
대학은 계급을 가장 쉽게 넘나드는 계급 횡단용 열차의 티켓이었습니다. 은하철도 999에서 철이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999 표를 구하듯 노동자의 자녀들은 비록 힘에 부치지만 소를 팔아서라도 '나 같이는 살지 말아라'하면서 신분상승이 보장되는 대학으로 자녀들을 보냈고 실제로 많은 노동자 계급들의 자녀들이 상류층에 자수성가해서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다이내믹 코리아, 노비의 자식이 대학교 교수가 되는 이 놀라운 신분상승의 롤러코스트가 가능했던 한국이고 이게 한국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칭송하는 외국인들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신분상승이 자유롭다 보니 노력하지 않으면 부자도 망하고 노력만 하면 떵떵거리고 살 수 있다는 공명정대한 세상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쳇말로 개나 소나 다 대학에 들어가고 대학진학률이 80%가 넘어가자 부작용이 생깁니다.

들어가는 대학생 수는 계속 느는데 대학생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는 고정되거나 줄어들고 있습니다.
예전 80.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늘어나는 대학생 숫자에 맞춰 일자리도 팍팍 늘고 경제성장이 10% 가까이도 하고 했는데 요즘은 끽해야 4%입니다. 이렇게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서 공급이 많아지자 대학생들이 잉여가 되고 똥값이 되어 버렸습니다

기업은 넘치는 재화 중에서 가장 품질 좋으면서 월급도 조금 받는 착한 직원을 뽑기 시작합니다.

신자유주의 정부는 이런 모습을 지켜보다가 다시 예전 엘리트들만 교육받던 20세기 초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의 해결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적자생존, 돈 있고 권력 있는 엘리트들만 살아 남고 돈 없는 노동자 계급의 자녀들은 기어오르지 못하게 보조금 삭감하고 그래도 기어오르면 등록금 인상하고 그래도 기어오르면 엄청난 사교육비를 내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조장했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적어도 방관은 한 점은 있습니다.

불평등한 교육기회가 다시 부활하다

영국 국가평등패널은 독립보고서에서... 중략...
전문직 부모를 가진 학생들의 3분의 2가 A 또는 B+를 받는 반면 전문직이 아닌 부모를 가진 자녀들은 절반 밖에 받지 못했다. 백인 학생들이 A 또는 B+를 받는 경우가 가장 많았고, 흑인이나 파키스타, 방글라데시 학생들은 그런 경우가 매우 적었다
--- 책 91페이지 중 일부 발췌-----

서울대 등 명문대생 30~40%는 소득상위 10% 자녀

라는 기사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현재 한국은 다시 예전처럼 부의 되물림을 넘어서 계급의 세습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거론되지만 이런 부의 세습을 넘어서 계급의 세습이 되면 나중에 큰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엘리트만 다니는 초중고대학을 나와서 판검사가 된 사람들이 어떤 사건과 사고에 대한 판결을 할 때 저소득층의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겠습니까? 어려운 가정에서 자란 판검사들이 나오고 아니면 어려운 가정환경을 가진 친구를 둔 엘리트 계급의 판검사가 보다 세상을 바르고 정확하고 인지하는 것 아닐까요?

최근에 일어나는 엘리트 계급들인 판검사들의 판결이나 검찰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전형적인 엘리츠 계급의 독선과 독단이 눈에 보입니다. 지금도 이럴진대 초급검사들 대부분이 부유층 자녀로만 채워진다면 정작 서민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그들의 말을 제대로 들어줄 수 있을까요? 국회의원이나 우리가 직접 뽑기라도 하지 판검사는 그럴 수도 없습니다.

영국에서 대학등록금을 3배로 올린 후 대학진학률이 7~8% 하락했다는 것은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대학은 학문의 요람이자 공공재이다

대학은 학문의 요람이자 지식을 쌓고 탐구하는 장소입니다.
기업에 납품하는 잘 깎여진 부속품을 생산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이 책은 그런 대학의 본모습, 대학의 본질에 대한 호소가 가득합니다. 효율성이라는 뒤에서 굴러오는 거대한 돌덩이에 다리가 풀려도 달려야만 하는 극악스러운 정글이 아닌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을 살피고 조심조심 세상을 운전하는 운전사들을 양성하는 곳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효율성이라는 단 하나의 생각으로 모든 대학 학문을 제단 해서는 안되다고 말합니다
대학은 공공재입니다. 특정 계층만 다니는 엘리트 대학이 아닌 공중 화장실 같이 누구나 쉽게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공공재로써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빈부격차도 더 심해지는데 공공재가 아닌 하나의 기업이나 상품으로 대학교와 대학생을 바라보면 저 19,20세기 초의 엘리트 층만 다니는 대학이 될 것이고 결국은 그런 시대가 이 시대를 빠르게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학생들은 '비판적 사고'와 독립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기업적응형 인간이 될 것이라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민영화 기업화, 직업화되어 가는 대학은 돈 안 되는 철도는 끊는 것처럼 돈 안 되는 학문을 폐기시키게 되고 사람들을
거대한 권력의 종사자로 추락시킵니다.

 

고등교육은 더 나은 삶과 미래의 희망을 구현하는 대신, 감히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비싸고 배타적이 되었다
고등교육을 마치는 순간 학생들은 자격증과 함께 평생 갚아야 할 빚을 진다. 가장 밝은 미래를 준비하던 과정이 이제는
'세대 부채'를 준비하는 과정이 되고 말았다

--책 202페이지 중 일부 발췌--

경제학과 윤리학의 결합이 하나의 해법이다


오로지 하나로만 세상을 바라보면 그 사람은 편견과 아집과 독선을 가지게 됩니다. 저 사이비 종교들이 바로 그런 융통성도 다른 시선도 모두 거부하기 때문에 어그러지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의 단점은 그것입니다. 오로지 세상을 돈으로만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의 논리나 주장은 촘촘합니다. 솔직히 돈으로 안 되는 게 뭐가 있을까요? 돈의 논리는 그 어떤 논리보다 강력합니다. 이렴 명백하고 튼튼한 논리가 있기에 신자유주의는 많은 사람들이 숭상하고 따르고 있습니다

문제는 신자유주의는 자신들의 논리를 너무 맹신해서 그 어떤 비판도 들으려고 하지 않고 그런 비판조차도 허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는 경제학이라는 단 하나의 시선 말고 거기에 돈으로 할 수 없는 것, 돈으로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접목시키기 위해 윤리학을 내세웁니다.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사고팔 수 있게 된다면 그 세상은 끔찍스러울 것입니다. SF 소설에서 처럼 대기업 사장의 내부 장기를 위해서 키워지는 복제인간들을 경제학으로 보면 비판할 것이 없습니다. 영화 아일랜드가 바로 그런 세상을 담았었죠

하지만 우리는 돈만으로 세상을 살 수 없고 돈이 모든 가치의 우선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돈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존재하고 결코 무너져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윤리입니다. 경제라는 엔진을 세울 수 있는 윤리, 이 책에서는 그런 윤리와 경제가 접목되어서 현재의 대학의 기업화되어 가고 사적교육이 되어가는 대학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반값 등록금 운동을 하는 것만 부 축이는 책은 아닙니다.
양심적인 교직원과 자기 밥그릇을 위해서 침묵하는 대학교수들에 대한 질타도 있습니다. 또한 무조건적인 등록금 인하만을 주장하는 게 아닌 대학이라는 자체에 대한 반성과 물음과 질타가 섞여 있습니다. 몇몇 대안들도 적혀 있습니다. 뭐 부유세를 늘리고 부자들에게 돈을 더 많이 걷어서 대학에 지원해야 한다는 대안도 있지만 솔깃한 대안들은 아닙니다.

솔직히 대학등록금 문제 이전에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왜 그렇게들 기를 쓰고 대학에 가서 반 이상이 놀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더 중요할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고민을 대학생들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학에 저항하라는 대학총장실 점거해서 농성하라는 게 아닌 대학이라는 울타리에 저항하고 대학당국에 저항하고 사회에 저항하고 기성세대에 저항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의 흠이 있다면 이 책은 영국인 저자들이 써서 그런지 영국의 실정을 잘 모르면 읽기가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번역투의 글들이 술술 읽히지가 않네요. 이 번역투가 참 눈에 거슬리지만 그래도 들어볼 만한 이야기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이번 총선과 대선에 대학생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신자유주의자들에게 다시 표를 던질까요? 아님 대학을 기업체가 아닌 공공재로 인식하는 정당에 투표를 할까요?
그건 대학생에게 달려 있고 그 결과물은 대학생이 받아 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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