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기/서울여행

완득이가 날아차기 하던 동묘 앞 거리를 가다

by 썬도그 2011. 12. 5.
반응형


전 블로그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글을 쓰지 않습니다. 그냥 즉흥입니다. 어떤 글은 글 제목도 정하지 않고 어떤 말을 할지 정하지도 않고 일단 쓰고 봅니다. 그리고 쓰다가 주제가 생기기도 하고 반대로 어떤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다가 글의 내용이 다른 방향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이런 즉흥적인 글쓰기로 인해 깊이가 있지 않지만 반대로 다양한 소식을 빠르게 전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영화감독중에서도 보면 기타노 다케시나, 홍상수감독등은 대충의 줄거리를 만들어 놓고  즉흥적으로 대사를 만들고 전날 시나리오를 쓰거나 현장에서 콘셉을 바꾸는등  우연성을 가미한 작품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다케시나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깊이가 없다고 할 수 없죠.

여행도 마찬가지입니다. 계획을 철저하게 한 여행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계획도 없이 즉흥적으로 여행기간을 늘리거나 예정에도 없던 여행지에 가서 계획했던 곳 보다 더 큰 감동을 느끼기도 하죠.  3년전 순천여행이 그랬습니다.

계획했던 여수여행보다 계획에 없었던 순천여행을 갔고 시티버스를 타고 선암사에 갔는데  그 선암사가 나의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가 가장 손에 꼽는 곳으로 말할때는 묘한 떨림이 있었습니다. 선암사 저도 참 기분 좋았던 곳이거든요

 1호선 동대문역에서 내려야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좀 싸게 사기 위해서죠
깜빡 딴 생각을 했는지  동대문을 지나서 동묘역에서 내렸습니다. 동묘??  아.. 여긴 또 어디래?  전철에서 내려서 반대편으로 넘어가야겠다며 동묘역에서 내렸습니다. 부디 표를 끊고 나가지 않는 곳이길 바랬지만  표를 끊고 나가야 하는 역이네요. 

표를 끊고 다시 동대문으로 갈까 하다가 지도를 보니 동묘에서 동대문역까지는 아주 가까운 거리고  제가 가고자 했던 동대문 장난감거리도 아주 가까운데 있었습니다.

이 계획에도 없던 우연을 즐기기로 했습니다. 
 

동묘역에서 나와 건널목을 건너니 동묘가 보입니다. 이 동묘는 동대문 인근에 있는 숭인동에 있는 곳입니다. 주변에 동대문 패션상가와 골동품과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는 잡화점들이 많이 있죠. 



동묘에 들어가 봤습니다. 사실 여기가 뭐하는지도 몰랐고 크기도 작아서 그냥 지나갈려고 했습니다. 
시간도 좀 남고해서 그냥 쑥 들어가 봤습니다. 그냥 작은 사찰 같은 느낌이네요


이 동묘는 보물 142호입니다. 




그리고 푯말을 꼼꼼하게 읽었습니다. 뭐하는 곳인가 들여다 봤더니 
이 곳 동묘 동관왕묘가 원래 명칭인데 줄여서 동묘라고 합니다.   이 곳은  중국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 장군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라고 합니다. 중국인들은 관우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한데요.  관우를 모시는 사당들이 많이 있죠. 그중에 하나가 한국에도 생겼네요

 이 동묘는 조선시대 선조 34년인 1601년에 세워졌습니다.  
임진왜란때 조선이 왜군의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관우의 덕이라고 해서 명나라 신종이 건축비용과 친필로 쓴 액자를 보내고 조선이 협조해서 2년만에 완공된 곳입니다.  임진왜란때 명나라의 도움이 크긴 컸지만  1등 공신은 이순신이 아닐까요? 
조선이나 명나라나 조상을 모시는 풍습이 아주 넓고 깊어서 모든 공을 조상으로 돌리는 모습이네요.
그게 다 유교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진짜 인지는 모르겠지만 임진왜란때 명나라와 조선의 군대가 관우의 신령을 여러번 봤고 그 덕을 입었다고 하는데 그게 진짜인지는 모르겠네요




한 스님이 안을 들여다 보고 있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문이 닫혀 있습니다. 저 안에 관우의 상이 있다고 하는 것 같은데 볼 길이 없었습니다. 특정한 날만 여는 것 같기도 하고요


건축양식을 보니 조선의 그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돌로 된 건물 외벽도 그러고  앞쪽은 책을 엎어 놓은 듯한 고려시대의 건축양식으로 보이고 뒤쪽 건물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지붕 건축술인 팔짝지붕으로 지어졌네요

팔짝 지붕은  처마가 4방향으로 길게 나온 양식입니다. 



뜻 모를 한문이 가득 있습니다.


옆에서 보면 더 특이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런 지붕을 가진 그리고 외벽을 가진 건물을 고궁에서는 볼 수 없는데  저게 중국식 묘사 건축이라고 하네요. 건물 2개를 이어 붙인듯한 모습입니다.  전실과 본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실에는 나무로 깍아 만든 관우상이 있습니다. 




들어갈때는 몰랐는데 나오면서 여기!!! 라고 생각이 팍 듭니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입니다. 초능력은 아니지만 전 어떤 한 장면을 보고도 그게 어느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인지를 단박에 맞추는 나름대로 신기한 능력이 하나 있습니다.
물론 전혀 쓸데 없는 능력이죠


어디서 많이 봤다는 느낌이 든것은 바로 지난달에 본 완득이 때문입니다. 인기 영화 완득이를 보면 영화 초반에 나이트클럽이 문닫는 바람에 곱사등이 아버지와 삼촌이 좌판을 열었는데 자릿세를 내라면서 행패를 부리는 조폭같은 사람에게 날아차기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이 떠올랐고 긴가민가 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완득이 예고편을 보면서 제 직감이 정확하다는 것을 확인 했습니다. 

아! 여기서 촬영했구나.  용달 전화번호도 똑같네요. 완득이의 분노의 발차기가 있었던 곳
영화 완득이는 올해 본 한국영화중 가장 인상깊고 가장 웃음을 많이 주었던 영화입니다. 강한 한방이 없어서 좀 아쉽지만 올해 최고의 영화입니다.안 보신분 지금이라도 꼭 보세요. 정말 강력추천 하는 영화입니다. 

전 초반에 유아인의 발차기를 보면서 이 영화 액션이 참 많겠구나 했는데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비가 구슬프게 내리는 가운데 옷장사치가 펼쳐 놓은 옷을 구경하는 행인들고 가득찼습니다.  이 동묘 부근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벼룩시장및 골동품과 각종 제품을 파는 좌판이 펼쳐진다고 하는데 다음에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찾아가 봐야겠습니다. 



근처 골목을 지나니 온갖 해외에서 건너온 과자들을 팔고 있네요. 이 동대문 부근은 정말 볼꺼리가 많습니다. 다양한 제품과 음식과 과자들이 많이 있죠. 


하지만 이 곳도 개발 열풍에 황학동 부근은 많이 헐렸고 그 자리에 거대한 성이 올라섰습니다. 성주가 1천명이 넘는 캐슬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2층짜리 삼일아파트만이 옛 기억을 간진하고 있네요.  한국에 아파트가 들어선게 60년대 부터였는데 아파트 초창기 기억을 간직한 몇 안되는 아파트입니다. 이곳도 언젠가는 개발의 이름으로 허물어 질듯 합니다.  

일정 때문에 꼼꼼하게 들여다 보지 못했지만 이 동대문 부분은 이야기꺼리가 참 많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꼼꼼하게 스케치 해봐야 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