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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책서평

서울이라는 도시의 냉혹함을 다룬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by 썬도그 2011.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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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EBS의 국내 단편소설 오디오북을 이동하면서 듣고 있습니다.  음악만 듣기에는 너무 허무하고 여러가지 감성과 표현법이나 세상의 다양한 스토리를 듣고 싶어서 국내 단편소설 100선을 하나씩 복용하고 있습니다

이 국내 단편소설들은  고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는 모르겠지만 논술 혹은 교과서에서 나오기 때문에 학생들이 우격다짐으로 배워야 하는 소설들이더군요. 돌이켜보면 제가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80년대에 현대 소설들과 요즘 학생들이 배우는 현대 단편소설들은 분명 다르겠죠.   요즘 학생들이 대학입학 때문에 억지로 읽는 소설들을 제가 읽고 있네요.

한편으로는 서글픕니다. 이 주옥같은 단편소설들  그 소설속에 담긴 이야기는 30대, 40대가 넘어야 올곧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데 경험도 거의 없고 성장도 다 되지 않는  고등학생들이  인생의 쓴맛 단맛 다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소설속  내용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채   왜 밑줄을 치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선생님이  먹여주는 감정과 느낌을  받아먹고 있네요

이런식의 교육으로 인해  학생들이 순수문학소설을 잘 읽지 않나 봅니다


                                                     1959년 서울 아현동   사진작가 정범태

김승욱의 '서울 1964년 겨울'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1964년 겨울 어느날밤 3명의 사내가 포장마차에서 만나서  다음날 새벽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1인칭 소설인데  나는 대학입시에서 떨어진 후 군대에 갔다온 후 구청 병사계에서 일하고 있는 25살 청년입니다.
포장마차 옆자리에서 우연찮게 같이 술을 마신 동갑내기 '안'씨라는 성을 가진 집안이 좋은 대학원생과 술을 같이 마시게 됩니다.

둘은 별 쓰잘덱 없는 이야기를 하고 히히덕 거립니다. 둘다 세상을 관조하는듯 하면서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시니컬한 이야기를 합니다.  솔직히 나이만 같이 둘은 배경도 다르고 여러모로 다릅니다. 같은게 있다면 나이와 세상을 보는 건조하고 시니컬한 시선이죠

둘은 자기만이 아는 사실이라면서  종로 단성사 뒷골목 쓰레기통 위에 초콜렛 봉지가 있다는등 별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기들만의 놀이를 합니다. 
 
이때 서른 대여섯 먹은 행색은 영락없이 가난뱅이라고 써진 남정네가 술자리에 합석하게 됩니다.  
이렇게 셋은 술을 우연찮게 같이 먹게 되는데  서른 대여섯 먹은 아저씨가 자기가 밥을 사겠다며 짜장면집으로 데리고 갑니다.  안과 나는 밥을 먹었다며 거부했지만 아저씨의 모습이 안쓰러워 짜장면집에 따라가기로 합니다.  그 짜장면집에서 아저씨는 자신이 오늘 밤 돈을 다 써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돈을 다 써야 하는 이유를 아저씨는 말합니다.  
방금전에 자신의 아내가  '세브란스 병원' 에서 죽었는데  책 외판원을 하는 형편때문에 시체를 연구자료로 팔고 왔다고 고백을 합니다.  시체값으로 받은 돈을  오늘 밤 다 써야 한다는 말에  떨떠름해 있었는데  안은 흔퀘히 그럽시다라고 동의 합니다.

그렇게  셋은 돈을 밤새 쓰게 됩니다.  아저씨는 아내의 시체를 팔고 받은 돈이 죄스럽웠고 그런 이유로 생면부지 모르는 20대 청년 둘과 죄책감에 돈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소방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택시를 잡아 그 소방차를 셋이서 뒤쫒습니다.

미장원에서 불이 났는데  셋은 그 불구경을 하면서 흐뭇해 합니다. 당사자들은 불행이지만  구경꾼인 세명은  더 불이 활활타고 더 오래타길 기원하죠.   그러다 아저씨가 불난 집에 쓰다 남은 돈을 던져 버립니다.

아저씨는 여관에서 같이 자자고 제안을 합니다.  그리고 여관비를 자신이 대겠다면서 안과 나를 잠시 어느집 앞에 세워둡니다.  그리고 아저씨는 그 야밤에 그 집안 사람을 깨워서 밀린 책값을 달라고 합니다.   엉엉 울면서 책값을 달라고 하지만  대낮에 오라고 하는 매몰찬 말만 들려 옵니다.  좀 인정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야밤에 엉엉 울면서  책값을 달라고 하는 모습에서 그 이유를 조근조근 물어야 하지만  귀찮다는듯 셔터문을 닫는 느낌으로 마음의 문을 닫습니다. 

아저씨는 같은 방에서 같이 자자고 애원했지만 안은 자신이 여관비를 낼테니 각자 따로따로 자자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날 밤 아저씨는 자살을 하고 맙니다.  안은 자살할줄 알았고 그걸 막기 위해서 혼자 재운것이라는 변명을 하죠. 나는 아저씨가 죽을줄 몰랐다면서  긴 한숨을 쉽니다.   

그리고 둘은 25살이지만  밤새 늙어버린 같다는 동의를 남긴 채 헤어집니다

                                                    1955년 서울 만리동  사진작가 정범태


64년이면 제가 태어나기도 10년전네요. 아버지가 10대였던 시기였고요. 
하지만 서울은 아주 무루익었나 봅니다. 도시의 냉혹함과  익명성  깊은 관계맺기 보다는 자신의 모든것을 보여주지 않은 채 얇은 관계맺기를 하고 있는 모습등  이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을 읽다 보면  마치 21세기 현재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낍니다.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불행이지만  남의 일이라고  불구경하는 3명의 주인공들의 모습속에서 우리들의 현재 모습이 떠오릅니다.  오늘은 어떤 사건사고가 일어나지 않을까 궁금해 하는 눈길들.  남의 불행을 하나의 흥미꺼리로 생각하는 모습등은 64년 서울거리에 있던 안과 나 그리고 아저씨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저씨의 불행을 위로하는게 인지상정이지만 아저씨의 부탁을 들어준다면서 시체값으로 받은 돈을 셋이서 같이 쓰죠.  



메가시티 서울의 과거와 현재가 크게 다르지 않고 도시라는 생태계의 건조함이 잘 들어난 작품입니다. 아저씨가 자살할 것을 예상했지만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괜히 같이 투숙했다 경찰에 조사 받을 것을 짜증내 하는 안의 모습이 많이 떠오릅니다. 

아저씨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수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매정한 도시인들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혹은 거부했습니다. 

어쩌면 도시의 관계맺기와  소셜 네트워크의 관계맺기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글을 많은 고등학생들이 검색해서 읽을텐데요.  문제를 맞추기 위해서  이 작품의 교훈이나 담겨진 내용및  압축어를 찾는 그런 몸짓들이 참 안쓰러워 보입니다.

이런 작품들은  10대가 올곧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아닙니다. 특히나 책상머리에서 책과 씨름하는 한국 10대들은 더더욱 그렇죠. 적어도 20대 후반 이상이 되야 이런 작품속 이야기에 눈동자가 흔들리고 긴 한숨을 쉬게 되죠

이게 다 한국 교육의 병폐죠. 어떤 소설작품을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남이 느낀 정답과 같은 표준 느낌을 주입하는 모습들 참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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