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메라사진/사진에관한글

사실이 아닌 연출이라도 괜찮아! 이미지 깃발정책

by 썬도그 2011. 7. 10.
반응형
사진의 힘을 믿고 전 '사진은 권력이다'라는 블로그명을 사용했습니다. 사진 한장이 역사를 바꾸고 그걸 생생하게 받기에 사진의 힘을 믿습니다. 사진은 그 어떤 100마디 글보다 큰 힘을 가겼고 인터넷이라는 복제전송장치가 있어서 단박에 전세계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진을 의심없이 맹목적으로 바라보다가 그 맹점을 놓치고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사진들 중에는 연출된 사진도 많고 아직도 연출의혹이 많은 사진도 많습니다.  특히 전쟁에 관한 사진들 중에는 연출사진이 많습니다

 
영화 '아버지의 깃발'은 2차대전 이오지마 섬에 해병대가 미국 성조기를 꽂는 한장의 사진으로 시작됩니다. 그 유명한 사진의 파급력을 알아본 미군은 성조기를 꽂은 병사 3명을 뽑아서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전쟁자금을 모집하는 프로파간다(선전) 물이 되어서 미국민들의 자발적 성금 모금을 이끕니다


만약 그 유명한 사진이 없었다면 미군들은 어디서 전쟁자금을 끌어 모았을까요?


 
이미지를 위해서 큰 성조기를 다시 꽂는 이오지마섬의 성조기
 
이 사진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면 미군이 어느 점령지를 점령하고 거대한 성조기를 꽂아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외치는 모습 같아 보입니다.  이런 이유로 이 이미지는 동상으로도 만들어졌고 위에서 말했듯  미국민들의 애국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 사진은  AP통신사의 로젠탈이 촬영한 사진이었습니다. 이오지마 섬에 꽂은 첫번째 성조기를 그는 카메라가 물에 빠지는 바람에 찍지 못했습니다. 역사적인 장면을 촬영하지 못한 로젠탈은 낙담했습니다.

그때 스미스 장군은 조막만한 성조기가 맘에 안들었는지 진주만 침공때 침몰한 전함에서 건져올린 1.4미터짜리 거대한 성조기를 가져오라고 지시하고 그 성조기를 이오지마에 꽂습니다.  단지 꽂았을 뿐이였지만 저 6명의 병사들은 미 전역을 다니면서 미군의 모델이 됩니다.

정확하게 따지면 이 사진이 연출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것입니다. 하지만 단지 작다는 이유로 이전 성조기대신에 다시 달아진 교체용 성조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조금은 속았다는 느낌이 들겠죠.



 



성조기에 자극받은 예브게니 칼데의 붉은 깃발 연


종군 사진가 예브게니 칼데는 1945년 5월 2일 불타는 라이히슈타크의 독일 국회의사당 건물에 소련의 붉은 깃발이 세워지는 것을 촬영했고 이 사진은 소련의 승리이자 2차대전의 종결을 나타내는 사진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은 연출사진입니다. 
사진작가 에브게니 칼데는 45년 4월 이오지마섬의 성조기 사진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소련 당국도 알고 있었죠. 소련당국은 종군사진기자에게 지시합니다. 이오지마섬의 성조기 사진 같은 사진을 만들어 오라고요. 

칼데는 모스크바에 있는 친구에게 거대한 붉은깃발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 거대한 붉은기를 들고 주요 건물 앞에서 연출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그림이 될만한 곳인 독일 국회의사당 꼭대기에 올라가서 깃발을 꽂아 줄것을 요구했고 
병사와 장교 한명은 깃발을 꽂았습니다

그리고 칼데의 대표작이 됩니다. 하지만 이 사진은 연출사진입니다. 하지만 그런 연출사진을 세상에 알릴필요도 죄책감도 없었습니다. 어차피 이미지전쟁이란 그 이미지가 연출이던 사실이던 크게 상관이 없기 때문이죠. 특히 소련같은 통제국가는 더더욱 그런 논쟁이 의미가 없었죠

하지만 장교의 행실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2차대전때는 소련군도 미군도  약탈을 많이 했습니다. 미드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도 나왔지만 미군들도 독일장교의 루거 권총이나 시계등을 아주 좋아했죠. 위 사진에서 장교는 양팔에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습니다. 보통 시계는 한쪽만 차죠. 양쪽에 찼다는 것은 누군가의 시계를 훔쳤다는 증거이고 이런 이유로 사진속 장교의 오른쪽 팔목에 있는 시계는 지워지게 됩니다. 소련이 붕괴된 후 칼데는 원본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사진으로 통해서 소련은 자신들의 정권찬양용으로 이 사진을 사용했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칼데를 사진기자직에서 물러나게 했습니다. 히틀러도 유대인을 미워하고 스탈린도 미워했다면 두 독재자가 손을 잡았다면 큰일 날뻔 했네요.   



                   
            서울 수복 사진은 실제로는 전쟁이 끝난 후 찍었다

이 사진은 위 두 사진보다는 유명하지 않지만 이 사진도 유명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교과서에 실려서 서울수복시의 국군이 중앙청 앞에서 태극기를 올리는 사진으로 소개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은 한국전쟁 당시가 아닌 57년 서울수복을 기념하기해서 연출된 장면입니다. 

사람들의 기억이 희미해지듯 누군가가 사진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캡션을 제대로 달지 않는다면 그 사진을 훗날 이상한 해석으로  당시의 상황을 전달하지 못하고  정권이나 특정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진으로 변질될 수 도 있습니다. 

깃발이라는 거대한 상징물은 많은 연출물의 배경이 됩니다. 성조기나 태극기 같은 국가를 나타내는 국기는 대중들의 공감대를 쉽게 형성하죠. 


 

 하지만  민중이 직접 그려낸 깃발이미지는 연출의혹이 없습니다. 87년 6.10항쟁때  최루탄을 쏘지말라고 태극기를 배경으로 달려나가는 저 청년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몇년전에 저 청년을 찾는 공고문을 낸것을 봤는데 결국은 나타나지 않더군요.

 태극기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 사회지도층들의 국기가 바르게 게양되길 바랍니다. 저 많은 사람들이 태극기가 거꾸로 들린것을 알아채지 못했다니 정말 놀라운 광경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