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록의 도구이자 예술의 도구입니다. 이 경계는 생각보다 뚜렷합니다. 우리가 촬영하는 기록 사진, 일상 기록 사진, 블로그 업로드용 사진 대부분은 기록 사진입니다. 그 사진에 무슨 아름다움을 느끼겠어요. 다만 유명 출사지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은 사진은 기록 사진이지만 아름다움이 강해서 예술 사진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애초에 예술을 목적으로 한 사진은 예술 사진이지만 그런 사진 마저도 기록성은 가지고 있습니다.
사진 촬영할 때 알죠. 이건 예술용으로 찍어야지. 아니면 기록용으로 찍어야지 스스로 마음 가짐이 다릅니다.
이렇게 예술사진과 기록사진은 촬영 목적과 마음 가짐에서 달라지지만 어떤 사진은 기록 사진으로 촬영했는데 예술 사진으로 느껴지는 사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 사진은 촬영 당시에 예술 사진이라기보다는 기록 사진이고 라이프지 같은 잡지사의 의뢰로 촬영한 사진이라서 더더욱 순수예술 사진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니 가치가 더 커지고 구도도 좋아서 아름다운 기록사진 정도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70년대 미국에서 사진도 예술가의 도구라고 주장하는 흐름이 나오면서 브레송 사진도 예술 사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수시로 유명 흑백 사진가의 사진전이 비싼 입장료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브레송, 로버트 카파, 로베르 드와노 같은 유명 흑백 사진가들의 사진은 순수 예술 사진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워낙 뛰어난 기록 사진이라서 예술의 느낌도 듭니다.
좋은 기록 사진은 예술성이 보입니다.
너무 답답해서 인사동에 갔습니다. 하루 5만명이나 나오는 코로나 지뢰밭에서 어딜 나가냐고 할 수 있지만 너무 답답해서요. 바람도 쐴 겸 전시회도 볼 겸 인사동으로 갔습니다. 인사동 마루입니다. 복합 공간으로 상가와 갤러리와 각종 공간이 혼재하고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꽤 다양한 공방과 갤러리와 박물관이 공존하는 듯했는데 여기도 코로나로 인해 큰 피해를 받고 있습니다.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네요.
그런데 2층에 갤러리가 새로 생겼습니다. 갤러리 이름은 아지트 갤러리이고 전시회명은 누정입니다. 사진전이라서 올라가 봤습니다. 2월 3일부터 2월 11일까지 전시를 했고 지금은 전시가 끝났습니다. 거의 마지막 날 가서 좀 늦게 소개하게 되었네요.
인사동 마루에 갤러리가 확 늘어난 느낌입니다. 사진에 못 담았지만 이 아지트 갤러리 말고 1,2층에 미술 갤러리도 꽤 많아져서 순간 인사아트센터인가 할 정도였습니다. 요즘 인사아트센터도 예전같이 전시회가 많지 않은데 여기는 오히려 전시회가 많네요.
아지트 갤러리는 2020년 개관을 했나 봅니다. 4월까지 전시 예약이 넘치네요. 좋네요. 전시회를 미리 보여주고요. 보통 다음 전시회 정도만 알 수 있는데 4월 전시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지트 갤러리는 작다면 작은 갤러리입니다.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옆 카페를 칸막이해서 만든 갤러리 같습니다. 벽이 붉은색이 인상적이네요. 보통 화이트큐브라고 해서 하얀색이 많은데요. 강렬해서 좋네요.
한쪽 벽만 붉은색이군요.
제가 서두에 기록사진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사진전 '누정'은 김심훈 사진작가가 지난 14년 동안 전국에 있는 아름다운 정자를 사진으로 기록한 결과물을 전시하는 사진전입니다. 지방 여행을 하다 보면 아름다운 정자들을 가끔 봅니다. 그 아름다운 정자들을 대형 카메라로 담았네요. 사진은 흑백 필름 사진들입니다. 한옥 건물들은 흑백이 참 어울려요.
2008년부터 전국 정자들을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고 몇 번의 전시회도 했습니다.
몇몇 정자는 제가 본 정자도 있네요.
여기는 딱 거기네요. 강릉 선교장 활래정이네요. 창덕궁 후원의 부용정과 비슷하게 연못 위에 떠 있습니다. 연못 위에 떠 있는 정자라 참 운치 있습니다.
이런 호수뷰 정자는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네요. 생각해보면 정자라는 공간이 참 독특하죠. 지붕이 있는 평상 같은 곳입니다. 지금은 서울에서 거의 보기 어려워진 평상, 시골에는 그나마 좀 있습니다. 평상에 앉아서 동네 분들과 대화를 하기 딱 좋았어요. 정자는 그런 사교 몽림이나 휴게실 또는 쉼터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문이 없어서 바람이 슁슁 불어서 여름에 더 좋죠.
이 동양의 정자를 보고 서양인들이 만든 것이 가제보입니다. 참고로 저 위 사진은 여주 신륵사 강월헌이라는 정자네요. 앞에 흐르는 강은 남한강입니다.
메인이 된 정자는 경북 상주 금란정입니다. 속리산 국립공원 근처인데 경북이네요. 지도에서 보니 붙어 있네요. 장각 계곡, 장각폭포 뒤에 금란정이 서 있습니다. 실제보다 사진이 더 예쁜 듯하네요. 이게 바로 사진의 힘이죠.
마침 작가님이 다른 관람객과 담소를 나누는 걸 귀동냥 해봤는데 전국 정자들을 촬영한 사진들을 문화재청에 기증하고 싶다고 했는데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고 해요.
문화재 관리를 하면 이런 사진들이 큰 도움이 될텐데요. 고맙다고 받아도 시원찮은데 별로 달갑지 않아 했다는 소리에 좀 의아했습니다. 공무원이면 이런 멋진 기록 사진이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또 아닌가 보네요. 국가기록원에 연락해야 하나요? 순간 역시 늘공들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유가 참 궁금했습니다. 귀찮은 일 떠 않기 싫은 건지 아니면 기증 절차가 복잡한 건지 모르겠네요.
강화도 정자입니다. 그런데 궁금한게 제가 본 최고의 한국 정자는 이거였습니다.
수원화성의 방화수류정입니다. 단연 최고입니다. 이 정자는 없더라고요. 하기야 이런 정자는 도시 속에 있고 배경 보면 아파트와 건물이 가득해서 사진의 결이 다르게 나올 겁니다. 누정 사진전 속 정자들은 조선시대인지 현재인지 알 수 없는 사진들입니다. 일부러 그런 정자, 숲과 자연만 보이는 정자를 찍으신 듯합니다.
하나의 소재에 천착하는 사진작가들 많습니다. 소재주의 사진이라고 할 수 있고 유형학적인 사진이라고 할 수도 있죠 그런데 이런 같은 소재의 사진들을 모으면 그 속에서 신기하게도 다양한 이야기와 틈이 보입니다. 물론 사진작가의 고생과 노력도 가득 보이고요. 찍을 게 없다고 하지만 같은 피사체만 계속 담고 담다 보면 그게 또 재미가 아주 좋습니다.
좋은 사진전 잘 보다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