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전이 좋은 점은 짧은 시간에 한 세계를 보고 듣고 배울 수 있어서 좋습니다. 새해에 볼만한 전시회를 소개합니다.
서울시립미술관 2층에서 열리는 <허스토리>입니다.
백신 패스가 적용되는 서울시립미술관 관람은 예약을 안 해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일이니 주말이나 월요일 빼고 들려보세요. 전시회장 1층은 한-호주 전시회인 <경로를 재탐색합니다>가 올 3월 6일까지 전시를 합니다.
2층에 올라가면 가나아트 컬렉션 전시회가 펼쳐집니다. 가나아트는 평창도에 있는 대형 갤러리인데 이호재 대표가 2001년 60년대에서 90년대까지 제작된 그림 160점, 한국화, 판화, 조각 200점을 기증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을 해주셨네요.
사실 이 전시회를 알고 찾아온 건 아닙니다. 2021년 7월 22일부터 했고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지만 뒤늦게라도 봐서 다행 인 생각이 드네요. 그러고 보니 기획 상설전이라서 꾸준히 전시를 할 듯합니다. 여기 꼭 들려보세요. 작품들이 좋습니다. 특히 80년대 한국 여성의 위치나 시대상을 잘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전시 작품은 많지 않고 공간도 크지 않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 2층에 올라가면 오른쪽에 큰 전시장이 있고 왼쪽에 작은 전시 공간이 있는데 여기서 전시를 합니다. 천경자 전시회 바로 옆이니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한 번에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한애규 작가는 조각가입니다. 테라코타 작품도 있고 이런 앙증맞은 작품도 있습니다. 한 여성이 혼자 김치를 담그고 있습니다. 디오라마라고 할 정도로 크기가 작습니다. 마치 작은 연극무대 위에서 모노드라마를 연기하는 느낌이네요.
이 작품은 아주 강렬합니다. 우람한 풍채에 머리 손질하기 좋은 실용적인 뽀글 파마의 아주머니가 집 앞에 있습니다. 이 80년대는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사회였고 유교탈레반이라고 할 정도로 남존여비가 강했습니다. 이 남존여비 사상은 90년대 들어서면서 달라졌지만 일제의 군대문화와 유교문화가 섞이면서 80년대 여성들은 각종 불이익과 불공평이 일상이었습니다. 상명하복도 강했는데 새 시대를 연다는 386 당시 80학번 대학생도 너! 몇 학번이야로 나이나 학번을 엄청 따졌죠. 나라 전체가 병영국가였습니다. 그 까라면 까, 하라면 해가 국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었지만 대신 인권 탄압과 여성 인권의식은 무척 낮았습니다.
지금의 여성 인권 상승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수 많은 노력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요즘은 여성인권 문제를 꺼내면 남녀 성대결이 발생하고 있고 본질이 흐려졌네요.
이 작품은 한 아이가 장롱 속에 잠들어 있네요. 요즘은 이런 장롱 볼 수 없고 저도 몇 번 보긴 했는데 시골에서 봤던 기억이 나네요. 이불을 넣은 장롱은 그 자체로 침대같이 따뜻하고 보드라운 공간이었어요. 작가 한애규는 유년 시절의 경험을 떠올려서 만든 어머니 품속 같은 장롱을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 뒤에 유방암수술을 받은 사진이 있는데 아시겠지만 블로그에 이런 예술 작품 올려도 포털에서 비공개로 돌리거나 누군가가 신고하면 비공개되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앞에 있는 조각만 담았습니다. 윤석남 작가는 잘 압니다. 수백 마리의 유기견을 조각으로 만든 전시회를 10년 전 대학로에서 봤는데 그때의 충격과 감동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나무 조각을 만드는데 독특하게도 형태만 만들고 얼굴이나 모습은 색을 칠해서 표현합니다.
유방암 수술을 받은 부분을 전자회로 기판으로 담았네요. 1992년 <여성과 현실<전시회에서 여성 미술가들의 연대를 담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처음 본 작품은 아니고 2년 전에 시립미술관에서 보고 충격을 받은 작품이었어요. 딱 봐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시겠죠. 화재가 일어났는데 방문이 잠겨 있어서 나가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옆에는 재봉틀도 있네요. 아주 아주 직설적인 그림이죠. 그냥 신문기사 삽화라고 할 정도로 직접적입니다. 그래서 기록화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기록화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그림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1988년 그린힐리아는 섬유봉제공장에서 화재가 났는데 무려 22명의 여공들이 기숙사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여공들이 지금도 있습니다. 다만 나이들이 많은 것이 다를 뿐이죠. 한국은 80년대까지만 해도 섬유공장들이 많았습니다. 그 섬유공장의 기숙사에서 먹고 자면서 해외 주문을 맞추기 위해서 철야 근무를 밥 먹듯 했습니다. 타이밍이라는 각성제를 먹고 근무를 했고요.
그린힐 봉제공장은 기숙사 문을 바깥에서 잠궈서 화재에 탈출하지 못하고 많은 여공들이 죽었습니다. 무식한 시대였어요. 지금은 상상도 못 하는 일이죠. 그런데 80년대는 몰상식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풍경은 지금 한국을 떠나서 저 먼 동남아시아로 향했습니다. 버마나 방글라데시 같은 저개발국가 여공들이 한국의 80년대 풍경처럼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저임금을 받으면서 많은 해외 유명 브랜드 옷과 신발을 만들고 있습니다.
동생이나 오빠 등록금 마련하기 위해서 중학교만 졸업하면 서울에서 온 버스를 타고 바로 일을 해야 했던 시골상경 여공들. 이 분들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 분들인데 당시에 너무도 하대했어요. 참 상식선이 낮은 국가였던 한국이에요.
에효. 이 사건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한국 경찰이 지금도 국민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경찰들 스스로 잘 알겠죠. 달라진 점이라면 지금은 경찰을 공무원으로 보지만 80년대는 무슨 대단한 권력자들로 봤고 실제로 국민을 감시하는 정권의 하수인이었습니다.
정정엽 작가의 판화 작품들도 볼 수 있는데 80년대는 민중 미술이 발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판화가 좋은 점은 무한 복제가 쉽다는 점이고 그래서 민중미술가들이 판화를 선호했습니다. 그렇게 무한 복제해서 전단지에 찍어 넣을 수 있으니까요. 백 마디 글보다 1장의 판화가 더 쉽게 와닿으니까요.
정정엽 작가의 올려보자, 면장갑, 봄날에 작품은 여성 노동과 농촌 여성의 가치를 담은 작품입니다.
작품을 보자마자 뭐지?라는 생각에 가까이가서 보니 수묵화 속에 한글이 가득 보이네요. 그럼 한글로 그린 그림이네요. 그렇다고 타이포는 아니네요. 이응노 작가가 떠올랐습니다. 설명문을 읽어보니 박인경 작가가 이응노 작가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해서 추상화를 그렸다고 하네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은 듯하네요. 이 텍스트들은 그냥 막 적은 것이 아니고 85년 당시 신문 속의 단어인 파시즘, 군국주의, 남북 분열, 항일투쟁, 노동운동 같은 단어를 적어 넣었습니다.
작품을 보면 한 남자가 겨울 숲을 지나는 듯 합니다. 을씨년스러운데 나무마다 열매 같이 생긴 스피커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스피커는 일방적이죠. 전달사항을 말하는 용도로 주로 교도소나 수용소 같은 곳에서 활용하기도 하지만 학교에서도 아주 잘 활용합니다. 알려야 할 사항이나 계몽을 목적으로 한 스피커. 이 스피커를 잘 활용한 정권이 박정희 정권으로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시골 마을에 스피커를 달아서 이장입니다!로 시작하는 전달 사항을 말했습니다.
이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부당한 정부의 지시까지 전달했습니다. 마치 정부라는 어머니 잔소리가 전국 시골 마을에 생겼습니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전달하고 정권을 유지하는 용도로도 활용했습니다.
윤석남 작가가 조각가로만 알았는데 그림도 그렸네요. 40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미술가가 된 육석남 작가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보면 한 어머니가 과일 광주리를 이고 한 손에는 아이를 안고 있습니다. 한 아이는 모유를 먹고 있네요. 육아와 가사와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던 한 어머니의 눈물겨운 그림입니다. 지금도 비슷합니다. 배드 파더들이 참 많죠.
이혼을 하면 양육비를 줘야지 왜 안 줘요. 정부도 그래요. 아이 1명이 소중하다면서 수조 원이나 출생지원을 그렇게 하면서 이미 낳아서 자라고 있는 불행한 아이들을 왜 방치합니까? 양육비 안 주는 아빠들의 면허증 뺏거나 생활 하기 어렵게 만들어야죠. 이렇게 말하면 나쁜 엄마도 있다고 하죠. 그런 분들이 있지만 제 주변을 보면 나쁜 아빠들 참 많아요. 아니 어떻게 자기 새끼에게 저럴 수 있어요. 저 그림 보면서 5분 동안 분이 삭히지 않았어요. 자녀에 대한 애정이 강한 사람이 왜 피해를 받아야 합니까? 법을 좀 더 강력 아니 초강력하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이 작품은 너무 쉽습니다. 그래서 좋아요. 처음에는 뭔가 했습니다. 저 앞에 거대한 다리가 보이는데 거인인가 했는데 아닙니다. 배입니다. 한 여자가 다가오는 배에게 살려달라고 하고 있네요. 그런데 뒤에 보면 바다가 끝나네요. 육지가 있습니다. 뒤로 돌아서 걸어가면 육지에 오를 수 있는데 배에게 살려달라고 합니다.
김원숙 작가는 이 작품에서 배를 남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홀로 살아가기 어려운 여성들이 남자들에게 너무 기대고 손을 내밀지 말고 혼자 독립할 수 있고 독립적인 자아를 이어갈 수 있다면서 뒤로 돌면 홀로 설 수 있는 땅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자의 여자가 아닌 그냥 그 자체로서의 여성을 담은 그림입니다.
이 작품도 참 좋아요. 박인경 작가님 팬 되어버렸네요. 복잡한 그림보다 이런 쉬운 그림이 더 깊게 각인됩니다. 한 사람이 나무에 기대서 쉬고 있네요. 저 사람은 박인경 작가 본인이고 소나무는 남편입니다. 그런데 밑에 도끼가 있네요. 도끼로 나무를 베어버릴 것 같지만 도끼를 이용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꽤 큽니다. 텍스트가 있는데 저 텍스트는 시입니다. 그래서 이 그림은 시화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주의 시인들의 시를 시각화 한 그림이네요.
돌아보면 80년대는 추억이 가득한 시대이기도 했지만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야만의 시대였습니다. 지금은 몰상식이던 그러나 당시에는 다들 그렇게 하면서 살아라는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났죠.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라는 말을 들은 것이 2000년 전후로 기억됩니다. 김대중 정부 이후 권위주의가 많이 사라지고 권력자들이 거드름을 필 수 없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노무현 정권 시절에 정부나 권력의 권위는 많이 사라집니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시작이 아닐까 합니다. 얼마 전에 죽은 전두환 씨가 지배하던 80년대는 야만의 시대였습니다.
그 야만의 시대에서는 항상 약자들이 더 큰 피해를 받았습니다. 그 80년대 엄혹한 시대에 사는 여자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전시회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 가시면 꼭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