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하고 존경하는 영화감독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 감독이 찍은 영화라면 무조건 봐야하는 영화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영화들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창동, 봉준호, 박찬욱 이후에 나홍진 감독 말고는 눈에 띄는 영화 감독이 없습니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도 최근에는 눈에 띄는 영화감독들이 없습니다. 이는 일본과 한국 모두 영화가 문화가 아닌 오락 산업으로 인식되기 때문이죠. 작가주의 개성 넘치는 영화 보다는 자본력에 의한 적당한 재미와 안전빵 재미를 넣은 프랜차이즈 음식 같은 영화들이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더 심합니다. 도쿄국제영화제가 몰락한 후 작가주의 영화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 영화계의 작가주의 영화를 이끄는 감독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입니다. 우리에게는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 <공기인형>,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무도 모른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로 잘 알려진 감독이자 제가 가장 존경하는 영화감독 중 한 명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자서전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처음 접한 것은 <공기인형>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배두나가 나왔고 좋은 평이 많아서 지금은 사라진 동숭동 한 영화관에서 봤지만 지금은 거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영화도 크게 좋지 않았습니다. 좀 그로테스크할까요? 이후에 본 영화가 칸 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은 <아무도 모른다>입니다. <아무도 모른다>를 보고 고레에다 감독에 입덕을 했습니다. 다큐 같으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사실적인 연출에 반해버렸습니다. 담백하면서도 묵직한 연출에 반했습니다. 





이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으로 반했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무조건 보는 감독이 되었습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로 고로에다 감독의 깊이 있는 감성과 뛰어난 연출력에 감탄을 했습니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좀 심심하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앞으로도 '고로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라면 꼭 볼 생각입니다. 

'고로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삶과 죽음이 하나로 연결되는 환원적인 세계관을 가진 영화들이 많습니다. 세상을 떠난 사람을 기억하면서 사는 남겨진 사람들의 쓸쓸한 어깨같은 영화들이 많습니다. 동시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영화들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관찰력이 뛰어나서 대사가 아닌 몸ㅈ시이나 눈빛 또는 넌지시 건네는 대사를 통해서 자신의 말하고자하는 메시지를 슬쩍 집어 넣는 세련된 연출이 인상적입니다. 이 감독의 세계관이나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의 후일담을 듣고 싶었는데 마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직접 쓴 책이 나왔네요.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은 고레에다 감독이 직접 전하는 자신의 TV 및 영화 연출 경력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책을 펼치면 처음 영화 연출을 맡은 1995년 연출작 <환상의 빛>부터 시작합니다. 이 영화는 가장 최근에 본 고레에다 영화입니다. 영문도 모른채 자살한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넋두리를 담은 영화입니다. 이 당시만 해도 콘티대로 영화를 만드는 고지식한 면이 있었지만 '허우사우시엔'감독의 충고로 콘티대로가 아닌 다큐멘터리 연출 감각으로 상황에 따라서 영화를 연출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2장에서는 영화 연출 이전인 90년대 초반의 TV  다큐 연출 시절을 담고 있습니다. 3장 연출과 조작은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요즘 여행 예능을 보다 보면 어떻게 저렇게 히치하이킹을 잘하지? 그것도 카메라맨만 10명이 넘고 스텝까지 치면 20명이 넘는데 저런 상황에서 누가 공짜로 차를 태워줄까? 하는 생각에 페이스북에 궁금증을 물어봤습니다. 

제 예상과 달리 대부분의 상황은 콘티에 있는 것이라고 하네요. 사전에 다 조율이 된 상황이고 연기자처럼 연기하는 것이라는 소리에 좀 실망을 했습니다만 동시에 그렇겠지라는 이해도 했습니다. 말만 리얼 예능이지 실제로는 리얼 빙자 예능입니다. 그럼 다큐멘터리는 어떨까요?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축적하여 진실을 그리는 것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TV 다큐멘터리 연출로 시작을 했습니다. 고지식한 성격 떄문인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이 다큐라고 생각하지만 일본의 다큐 관행은 고레에다 감독과 달랐습니다. 대부분의 다큐들이 재현을 바탕으로 한 다큐를 촬영했고 그걸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풍토였습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그게 재현인지 모르고 보기 때문에 사실 왜곡은 아니더라도 시청자 기만 행위죠. 이에 대해 고레에다는 업계 관행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이 3장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사려 깊은 모습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5장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큰 획을 그은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공기인형>영화 제작 후일담이 담겨 있습니다. <아무도 모른다> 후일담에서는 고레에다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소개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밑에서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흥미로웠던 내용은 <공기인형>입니다. 이 영화는 배두나가 공기인형을 연기하는 영화입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배두나라는 배우 칭찬을 수 페이지에 걸쳐서 합니다. 연기력은 물론 준비성과 놀라운 아이디어 등등 배두나에 대한 극찬을 담고 있네요. 읽는 제가 다 뿌듯하더군요


6장에서는 세계 영화제에 대한 경험담을 소개합니다. 가장 규모가 큰 영화제는 칸이고 베니스는 쇠락해 간다는 말과 함께 최근에 가장 핫한 영화제는 토론토 국제 영화제라고 소개합니다. 또한, 아시아 최대 인기 국제영화제인 부산 국제영화제에 대한 극찬을 합니다. 국가의 지원을 받은 것도 있지만 열정적인 모습이나 규모나 배려까지 부산 국제영화제에 대한 칭찬을 가득하면서 동시에 기자들의 "한국 배우 중 누구와 작업하고 싶어요?. 한국 음식 중 뭘 좋아해요?" 같은 저질 질문에 대한 비판도 담고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도쿄 국제 영화제가 왜 몰락했는지도 보여줍니다.


고레에다 히로가츠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들을 수 있는 책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들>

9장에서는 고레에다 감독의 최고 인기작들이 소개됩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영화 제작 후일담이 소개됩니다. 고레에다 감독의 연출 스타일은 홍상수 감독이나 기타노 다케시처럼 즉흥적인 연출이 많으면서도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대본은 있습니다만 대본의 대사를 출연하는 연기자들의 대사를 빌리거나 그들을 관찰해서 수정을 바로 바로 합니다. 

또한 대본을 주기도 하고 안 주기도 하고 바로 현장에서 대사를 읽어주면 따라하게 하는 방식 등 상당히 유연한 모습입니다. 마치 한국 드라마처럼 반은 사전 제작을 하고 반은 방영 후에 스토리를 바로 바로 변경하는 즉흥성과 준비성을 모두 겸비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배우를 캐스팅이 작품의 8할이라고 할 정도로 출연 배우들의 힘을 무척 중요시 합니다.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주연 배우인 일본의 장동건인 '후쿠야마 마사하루'배우의 제안으로 영화를 제작하기 되었는데 후쿠야마의 이미지를 관찰한 후에 영화 전체 윤곽을 짜고 대사를 넣었습니다. 영화 연출을 하면서 배우들과 충분한 토론을 거친 후에 대사를 입히고 배우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면서 영화를 완성합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는 아역 배우들의 노는 모습과 그들의 생활상을 관찰해서 영화에 반영하는 등 배우들을 관찰한 후에 그걸 영화에 반영하는 영화 연출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는 다큐라고 느껴질 정도로 어긋나거나 인위적이거나 과잉 된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뛰어난 관찰에서 나온 디테일을 채워나가다 보면 영화의 주제는 저절로 채워집니다. 주제를 정하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닌 디테일을 담고 연출해 나가다 보면 영화의 주제가 생긴다는 말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사실 사진도 그렇습니다. 글도 그렇습니다. 저도 그냥 주제를 정하지 않고 글을 쓰기 시작하고 글을 쓰다 보면 주제가 떠오르기도 하고 다 쓰고 읽어보면서 주제가 생각나면 살짝 수정에서 글을 마무리 합니다. 





사진도 어떤 의도를 가지고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그냥 찍은 후에 사진을 나열해 보면 사진의 주제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는 즉흥의 힘과 관찰의 힘이 아니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영화를 막 찍는 것은 아닙니다. 각 장면 장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촬영을 합니다. 대신 그걸 직설적으로 보여주기 보다는 보물찾기 하듯 은유를 담아서 보여줍니다. 관객들이 고레에다 감독이 숨긴 은유의 보석을 발견하고 질문을 할 때를 무척 좋아한다고 하네요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캐스팅의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녀 아야세 하루카, 차녀 나가사와 미사미, 셋째 카오 그리고 이복막내인 스즈역을 한 '히로세 스즈'의 앙상블이 대단한 영화입니다. 지금도 영화의 줄거리 보다는 네 자매의 서로의 상처를 어우만져주는 부드러운 손길이 기억나네요. 전 이 영화를 보고 '히로세 스즈'에 반했습니다. 일본에는 좋은 여배우들이 참 많아요. 

고로에다 감독 영화에는 유난히 떠난 사람 또는 장례식이 많이 나옵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영화를 많이 만들죠.

고로에다 : 저는 사실 그다지 의미있는 형태로 삶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의미를 부여하면 그 이면에서 의미 있는 죽음, 의미 없는 죽음이라는 사고방시기 나올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

"의미 있는 죽음보다 의미 없는 풍성한 삶을 발견한다"


죽음에 의미를 두는 일본인들의 사고 방식을 비판을 하는 고로에다는 2차세계대전 가해국인 일본이 피해국 코스프레를 하는 모습도 비판을 합니다. 일본의 2차세계대전에 대한 반성을 하는 대표적인 일본 감독이 '고로에다 히로카즈'와 '이와이 슌지'입니다. 그가 이렇게 일본의 주류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는 이유는 특유의 청개구리 성향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옴진리교 피해자 가족이 아닌 가해자 가족의 고통과 뒷 이야기를 담으면서 가해와 피해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 보는 것이 아닌 세상은 좀 더 복잡한 곳이라고 바라보는 시선 등등 세상을 보는 시선이 깊고 넓습니다. 

의미 있는 죽음보다 의미 없는 풍성한 삶! 이 말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우리는 항상 의미를 두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의미도 없고 피곤만 가득해집니다. 그냥 아무 의미없는 하루가 중요한 하루는 아니지만 좋은 하루라고 말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영화들을 보면 공터같은 장면 공허가 꽉찬 장면들에서 큰 깊이를 느낍니다. 


그래서 영화를 혼자 만들지 않고 배우들과 함께 만드는 모습이 많이 보이네요. 그래서 그의 영화들이 사려 깊고 놀라운 통찰을 지니나 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한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자신의 영향력이 많이 들어가지 않고 배우들과 함께 만들어서인지 대중성이 높은 장인 정신으로 만든 영화라고 소개합니다. 반면 자신의 유년시절을 바탕으로 한 영화 <걸어도 걸어도>와 2부작 같은 <태풍이 지나가고>는 작가주의 영화라고 소개하면서 <걸어도 걸어도>에 대한 애정을 많이 보여줍니다. 


책 말미에는 영화 제작 현실을 담은 돈 이야기도 나옵니다. 제작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고 얼마나 수익이 나지 않는 지를 소개합니다. 가슴아프게도 <걸어도 걸어도>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고 제작사인 <시네콰논>이 망하는 모습을 봅니다. 감독은 야구의 타자와 같아서 10개 중에 3개만 안타를 치면 되고 3개의 안타 중 1개의 홈런을 치면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영화 하나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작가주의 영화 감독들이 점점 더 영화 제작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영화들이 예년에 비해서 많이 줄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팬이라면 필독서이고 그의 작품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면 추천하는 책입니다. 고레에다 감독의 뛰어난 관찰과 통찰 그리고 배려심을 잔뜩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썬도그
하단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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