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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영화 서울역이 담은 좀비보다 더 처참한 세상

by 썬도그 2016.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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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산행>이 제 예상대로 1천만 관객을 돌파했네요. 축하 한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차피 현재의 영화 소비 시스템에서는 조금만 재미 있으면 대형 자본 덩어리가 강하게 밀어부치면 쉽게 1천만이 됩니다. 

따라서 1천만이 넘는다고 무조건 재미있는 영화라는 공식은 허물어졌습니다. 그럼에도 영화 <부산행>은 영화적인 가치가 짜임새는 헐거운 구석이 많지만 재미만 놓고 보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그점은 인정 안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아쉬움과 결점을 KTX라는 속도와 열차 안에서 좀비들의 질주로 다 날려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속도가 멈춘 지점에서 영화 <부산행>의 결점이 하나 둘 씩 보이더군요. 무엇보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왜? 좀비들이 창궐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노루 한 마리가 로드킬 당했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과 한 바이오 회사때문에 이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게 되었다는 설명으로는 이 좀비 사태를 이해하기에는 많은 부분이 부족했습니다.


<영화 돼지의 왕 중에서>

그래서 전 서울역에 주목했습니다. 서울역에는 이 좀비 사태에 대한 속 시원한 원인이 제공될 줄 알았습니다. 

사실, 이 영화 <부산행>은 영화 <서울역>의 부산물입니다. 전 <부산행>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의 팬입니다. 전작인 <돼지의 왕>을 보고 바로 올해의 영화라고 선정할 정도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 사회를 정면으로 비판하는데 그 비판력이 만랩을 찍어 버리더군요. 후속작인 <사이비>는 <돼지의 왕>보다는 못하지만 역시 날선 사회 비판이 가득했습니다. 

애니라고 하면 블링블링한 애니만 알던 저에게 한국 사회에 대한 강펀치를 날리는 애니 감독을 눈여겨 봤습니다. 
연상호 감독은 <사이비> 후속작으로 좀비 애니인 <서울역>을 만든다고 하더군요. 좀 뜨악했습니다. 애니에 웬 좀비?
연상호 감독은 좀비물을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서울역>을 기다리고 있는데 뜬금없이 <부산행>이 뜹니다. 

뭐지? <서울역>만들다가 메이저가 되어서 실사 영화 <부산행>을 만드나?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원래 <서울역>을 만들고 있었는데 <서울역> 다음 이야기를 실사로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고 <부산행>을 촬영합니다. 그리고 <부산행>이 먼저 개봉되어서 대박을 쳤습니다. 어떻게 보면 <부산행>은 <서울역>의 부산물인데 부산물이 더 주목을 받게 되었네요. 


<부산행>의 프리퀄인 <서울역>

정확하게 말하자면 부산행의 이전 이야기인 프리퀄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초기에는 혜선(심은경 목소리)이 부산행 KTX를 타는 장면을 엔딩씬에 넣는 것 같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그 장면은 삭제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삭제된 장면이 꽤 많았는지 러닝타임이 1시간 30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연상호 감독은 두 영화가 연결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는지 아니면 자유도를 높이고 싶었는지 두 영화를 연결하는 연결고리를 분리해서 두 영화라는 객차를 분리했습니다. 그럼에도 <서울역>은 부산행 KTX가 출발하는 몇 시간 전의 살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뒷골목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한 존재들을 주인공으로 담다

영화가 시작하면 한 노숙자 할아버지가 피를 흘리고 걸어갑니다. 그 모습을 사람들이 보지만 도와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20대 청년이 보고 도와주려고 접근하지만 고약한 냄새를 맡고 노숙자라고 말하면서 뒤로 물러납니다.

노숙자라는 존재는 그렇습니다. 같은 인간이지만 접근하기 어려운 존재죠. 그렇게 피를 흘리는 노인은 서울역 지하 보도에 가쁜 숨을 쉬고 누워있습니다. 이 모습을 같은 노숙자가 보고 형님이 피를 흘린다면서 사방팔방을 뛰어 다닙니다만 누구하나 제대로 된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그 노인은 시름시름 앓다가 좀비 바이러스의 인간 매개체가 되어서 좀비를 퍼트리기 시작합니다.

노숙자와 비슷한 존재는 또 있습니다. 바로 두 주인공인 혜선(심은경 목소리역)과 기웅(이준 목소리역)입니다. 혜선은 사창가에서 도망쳐서 길거리에서 노숙을 합니다. 그런 혜선을 기웅이 알게 되고 기웅이 혜선을 보호해줍니다. 두 사람은 여관에 머물면서 하루하루를 근근히 버티면서 삽니다. 그렇다고 기웅이 정의의 사도는 아닙니다. 혜선의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고 성매매를 주선합니다. 이 모습에 혜선은 크게 화를 냅니다. 그런데 이 혜선의 사진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혜선의 아빠 석규(류승룡 분)입니다.

석규는 딸 혜선을 찾기 위해 기웅을 만납니다. 그 과정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혜선은 기웅과 싸우고 서울역 지하도를 걷다가 똑같이 이상한 일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도망가고 그 뒤에 좀비들이 달려옵니다.


그렇게 영화는 좀비 영화로 전환이 되고 3명의 주인공은 좀비를 피해서 서로를 찾는 것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입니다. 
영화 속의 등장 인물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평소에 우리들이 고개를 돌리는 존재들입니다. 노숙자와 성매매하는 20대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살아 있는 좀비 같은 존재들이죠. 



점점 진화하는 작화 그러나 이야기는 전작보다 못하다

연상호 감독의 애니는 잘 그린 그림이라고 하긴 어려운 작화입니다. 딱 봐도 못생기게 그린다라고 할 정도로 매혹적이지 못합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연상호 감독 애니는 그림은 거들뿐 이야기가 중요하고 메시지가 중요하죠. 그런데 이번 서울역에서는 작화가 매끈해졌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야기는 흥미가 확 떨어졌습니다. 

마치 웹툰 작가 이말년이 그림에 신경쓰면서 내용이 재미없어진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좀비들이 창궐하는 서울역 주변을 혜선과 노숙자 할아버지 그리고 기웅과 혜선 아빠가 떨어져서 서로를 찾는 과정이 영화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이야기는 별거 없습니다. 제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왜 이 좀비 사태가 일어나게 되었는지가 궁금했는데 짜증나게도 이 영화 서울역에서도 그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애초부터 감독은 좀비가 왜 생겼는지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영화 <서울역>은 또 하나의 <부산행>처럼 좀비들이 미친 개처럼 달려오면 도망가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러다 보니 영화 자체가 큰 흥미가 없습니다. 좀비에 대한 묘사나 음악이나 음습함은 부산행보다 좋았습니다. 딱 좀비물에 어울리는 분위기죠. 그러나 이야기가 너무 없다보니 영화 중후반으로 갈수록 언제 끝나나 자꾸 시계만 보게 됩니다.



짙은 사회적 메시지는 영화 끝나기 전에 대반전과 함께 터지다

무척 실망스러웠습니다. 어떻게 보면 <부산행>은 전체음식이고 메인 음식은 <서울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역에서 모든 사회 비판 메시지가 담길 줄 알았는데 시종일관 좀비 떼를 피해서 아빠와 딸이 상봉하는 내용이 전부입니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실망의 연속이 터지다가 마지막 10분에 모든 것이 터지기 시작합니다. 
영화 후반에는 큰 반전이 있습니다. 그 반전이 터지고 나서 영화를 보던 스릴은 사라지고 어두운 기운이 영화관에 꽉 찼습니다. 드디어 연상호 감독 특유의 희망 없는 잿빛 가득한 세상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좀비라는 괴물을 피해서 살기 위해서 달리던 주인공들이 맞닥드린 세상이 좀비가 가득한 세상보다 더 참혹한 세상임을 보여줍니다.

영화 <서울역>의 키워드는 집입니다. 
노숙자 할아버지와 지하철 철로를 걷던 혜선은 집에 가고 싶다고 웁니다. 아픈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혜선은 철로에서 펑펑웁니다. 혜선은 집안 사정 때문에 가출을 했고 많은 무서운 어른들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런 혜선을 보듬어줄 곳은 집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펑펑 울던 혜선 옆에 있던 노숙자 할아버지는 자기는 가고 싶어도 집이 없다면서 더 펑펑웁니다. 

영화 엔딩은 거대한 모델하우스가 무대가 됩니다. 이상향이라고 할 수 있는 모델하우스. 혜선은 좀비들을 피해서 모델하우스에서 잠이듭니다. 행복이 가득한 모델하우스의 파라다이스를 잠시 느껴봅니다. 집에 가고 싶은 혜선은 만인이 원하는 집의 모형에서 세상의 사악함을 다시 보게 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여기저기서 좀비와의 전쟁이 벌어지는 서울의 풍경을 배경으로 아침해가 뜨는 장면입니다. 전 이 장면을 보고서 희미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차라리 좀비가 좀 더 솔직한 것 아닐까라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우리 안의 좀비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성욕을 제어하지 못하는 좀비들, 물욕에 먹혀버린 좀비들, 돈에 잡아 먹힌 좀비들. 맹목이라는 심장을 달고 거리를 헤매면서 새로운 먹이감에 무조건 달려들어서 물어뜯는 좀비들 존재들. 우리들이 좀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연상호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회 비판적인 요소는 많이 약했습니다. 정부의 대처도 너무 짧게 담고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도 많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습니다. 

특히, 부산행의 그런 재미를 원한다면 이 서울역은 그런 재미가 없습니다. 대신, 좀비를 피해서 달아나봐야 도망갈 곳도 집도 없는 우리들의 어두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따라서 영화 <서울역>은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연상호가 그리는 디스토피아의 날카로움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별점 : ★★★

40자평 : 좀비에게 쫒기다가 문득, 우리도 좀비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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