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하지만 영화를 덜 보고 있습니다. 영화 볼 돈과 시간이 있지만 영화를 안 보고 있습니다. 보고 싶죠. 영화광이 영화 안 보면 활력까지 떨어집니다. 그러나 안 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없습니다. 볼만한 영화가 없습니다. 싸구려 소재에 마법의 가루라고 하는 MSG 같은 '라면 스프'쳐서 몸에 좋지 않고 특별한 맛은 없지만 맛은 좋은 '기획 영화'들이 득시글 합니다.
예고편이 다인 영화. 처음보지만 이미 본 듯한 기시감이 가득한 영화. 최근 한국영화들이 이런 영화들이 많습니다. 이 와중에서 논란이 일어난 한 편의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비밀은 없다>입니다.
호평도 많았지만 흥행 참패한 영화 '비밀은 없다'
비밀이 없다는 6월 말에 개봉한 영화입니다. 102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 타임에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강한 소재의 스릴러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 큰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개봉관수도 많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호불호가 아주 강했습니다. 저도 보려다가 황당하다는 평도 많고 이게 영화가 이러냐! 장르가 뭐냐? 식으로 혹평이 많았습니다.
반면, 영화평론가 중에서는 올해 최고의 영화!라는 극찬도 있었습니다. 같은 영화평론가 또는 기자지만 호평도 있고 혹평도 존재하는 모습에 아주 신기했습니다. 보통 대중은 호평을 하고 전문가 집단이 혹평을 하거나 반대인 경우는 많이 봤어도 전문가 집단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모습이 신기하더군요. 딱히, 보고 싶은 영화도 아니라서 안 봤습니다.
이런 호불호 속에서 영화 <비밀은 없다>는 전국 누적관객 25만명이라는 아주 초라한 성적을 냈습니다. 25만명이면 쫄딱 망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적은 숫자입니다. 그렇게 잊혀질 줄 알았습니다. 아닙니다. 영화가 영화관에서 내려갔지만 지금까지도 올해의 영화!라는 소리가 많았고 다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볼 기회가 생겨서 봤습니다.
딸의 실종을 추적하는 강한 엄마 연홍
국회의원 후보인 신인 정치인인 김종찬(김주혁 분)은 아내 연홍(손예진 분)과 함께 선거 유세를 합니다. 지역 터줏대감인 국회의원 노재순 밑에서 있다가 당내 경선대회에서 이기고 여당 대표 후보로 경상도 지역에 출마를 합니다. 이에 노재순 후보는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이 여당 후보와 경쟁을 합니다.
그렇게 그 날도 선거 유세를 하고 집에 들어와보니 딸 민진이가 사라졌습니다. 이에 연홍은 딸을 찾기 위해서 이리저리 찾으러 다닙니다. 이전에도 나쁜 얘들과 몰려 다니면서 가출한 전력이 있어서 선거사무실 직원들과 종찬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엄마인 연홍은 경찰에 신고를 하고 딸을 사방팔방으로 찾으러 다닙니다.
선거와 함께 딸의 실종이 맞물리면서 수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상대 진영에서는 동정표를 얻기 위한 술수라고 여기고 여론도 김종찬 후보의 자작극이라는 식의 소문이 퍼지자 사퇴 압력까지 받습니다. 그러나 연홍은 선거보다 중요한 것이 딸의 안위라면서 경찰의 미지근한 수사를 넘어서 혼자 수사를 펼칩니다.
그렇게 딸의 실종에 서서히 접근을 합니다. 영화 초반에는 딸의 실종과 그 실종 과정을 추적하면서 알게 되는 딸의 과거와 딸의 이야기가 서서히 펼쳐집니다. 영화를 보면서 의문이 들었던 것은 딸이 왕따였다는 사실도 딸이 학교에서 누구를 만나고 누가 친한 친구였는 지를 엄마와 아빠가 전혀 모릅니다.
영화는 초반에 2가지 흥미를 제공합니다. 하나는 딸의 실종을 추적하는 스릴 그리고 실종된 딸이 어떻게 생활을 했는지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입니다. 딸이 실종 된 후 딸의 일상이 서서히 밝혀지는데 이 일상이 아주 날이 많이 서 있습니다. 그렇게 추적을 하다 보니 딸과 가장 친했던 친구인 최미옥(김소희 분)을 만나게 됩니다. 비밀이 없는 것이 아닌 딸에 대해서 하는 것이 거의 없는 연홍을 보면서 측은심 보다는 방임에 가까운 엄마에 대한 응징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반전, 반전 또 반전이 가득한 후반의 몰입감
혹평이 많은 이유를 알겠더군요. 이 영화 한 가지 이야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곁가지들이 꽤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무당이나 최면술 같이 영화의 흐름에 방해가 되는 요소가 꽤 있습니다. 도청 문제도 그래요.
상대 후보가 집에 설치한 도청 장치를 통해서 상대 후보와의 권력 다툼으로 잠시 이어지는데 이 곁가지가 뻗어 나가지 못하고 말라 죽습니다. 차라리 썩은 가지를 싹 도려냈어야 합니다. 그러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꽤 있죠. 또한, 영화 터널처럼 유머도 살짝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 유머가 심하지 않아서 터널과 달리 영화의 중심축을 흔들어 놓지는 않습니다.
이런 몇몇 곁가지들이 몰입에 방해를 하거나 이 영화에 대한 정체를 흩트러 놓아서 초반과 중반까지는 이 영화 뭐야?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치 스릴러인지 실종 스릴러인지 정체가 애매하죠. 그런데 영화가 후반부에 접어 들면 이야기가 급속하게 진행이 됩니다.
특히, 전반부를 이끈 딸의 실종이 마무리 되고 실종 당일에 일어난 일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딸의 어두운 이야기가 쏟아져 나옵니다. 여기서부터 이 영화의 질척거림과 음습함이 나오는 것 같아서 눈을 질끈 감고 그 질척거림을 대비하고 있는데 후반에 또 한 번의 반전이 터집니다. 영화를 다 보면 박찬욱 감독이 떠오를 정도로 박찬욱 감독의 대표작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만큼 엄청난 반전이 일어납니다.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영화 보는 재미를 오랜만에 느끼게 해준 영화 '비밀은 없다'
영화 <비밀은 없다>는 왕따 문제와 부모와 자식간의 불통, 정치인들의 추잡스러운 권력 투쟁 그리고 스릴러라는 요소를 잘 집어 넣은 아주 좋은 영화입니다. 물론, 성긴 부분도 많습니다. 몇몇 불필요한 요소들이 영화의 몰입을방해하기도 합니다. 어떤 장르의 영화라고 정의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던데 제가 볼 때는 그냥 스릴러로 보면 되겠더군요.
따라서 여러가지 현혹하는 장치가 있지만 그런 것 다 무시하고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고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의 드라마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스토리 자체의 힘이 아주 강합니다. 다만, 그 스토리라는 것이 약간의 기시감이 들었고 그 점은 좀 아쉽네요. 창의적이라고 하기에는 박찬욱의 향이 강하네요. 물론, 똑같지는 않지만 영향을 받은 모습이 보입니다.
스토리 자체의 힘도 좋지만 편집술도 좋습니다. 그냥 시간 순으로 쭉 나열하면 크게 흥미로운 내용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묘한 편집으로 아주 중요한 사실을 마지막에 큰 파열음과 함께 터트립니다. 전 그 순간 억~~하는 의성어가 튀어 나올 정도로 영화는 마지막의 한 방을 위해서 편집을 아주 잘 이용합니다.
단연코 올해 최고의 한국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수작이나 명작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냥 흔한 잘 만든 영화 중 하나죠. 그럼에도 올해 최고의 한국 영화라고 한 이유는 이 영화가 빼어나다고 하기 보다는 다른 한국 영화들이 저질이었기 때문입니다. 다 그만 그만한 저질 한국 영화들 중에 그나마 독창성과 흥미로움을 잘 간직한 영화라서 올해본 최고의 한국 영화라고 말하고 싶네요.
몰입의 힘이 강한 영화 <비밀은 없다>
영화 초반과 중반까지는 딸의 실종에 현혹이 되어서 딸의 생사에 대한 궁금증으로 몰입했고 영화 후반에는 딸이 실종되기 전까지의 이야기와 놀라운 반전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스토리의 힘도 좋고 편집의 힘도 좋습니다. 여기에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손예진의 강단있는 연기입니다. 손예진은 제2의 전성기라고 할 정도로 최근에 많은 영화에 나오네요.
현재 상영중인 '덕혜옹주'도 흥행에 크게 성공하고 있어서 손예진이 함박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비밀은 없다>는 손예진의 필모그래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화입니다. 핏대가 선 표정이나 남편을 밀어내는 표정은 압권이네요. 딸을 찾는 엄마의 강인함이 얼굴 가득 담긴 연기를 아주 잘 합니다.
호오가 있지만 전 강력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40자 평 : 딸의 놀던 비밀의 정원을 찾아간 엄마의 분노와 복수
별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