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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민주주의를 앞당기고 30년 이상 후퇴 시킨 김영삼 전 대통령

by 썬도그 2015.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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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습니다. 명복을 비는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 감히 말하자면 명복을 빌어주고 싶지 않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과오가 심한 분이지만 이 김영삼 전 대통령 때문에 한국은 동서로 갈리게 되었습니다.

이승만과 김일성이 미국과 소련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면서 남북 분단을 고착화 시켰다면 김영삼은 남한을 다시 동서로 갈라 놓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 명복을 빌고 싶지 않습니다. 



1987년 노태우에게 어부지리로 대통령 자리를 넘겨주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사정권 아래에서도 한국에 민주주의 꽃을 심기 위해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수시로 군사 정권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하면서도 민주주의 세력을 규합하고 이끄는 민주주의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이 점은 높이 사야 하고 이에 대한 이견은 없습니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시대의 열망을 저버린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1987년 6월 10일 6.10 민주 항쟁을 통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직접 뽑는 대통령 직선제를 허용합니다. 전두환 입이 아닌 다음 대통령으로 예정 되었던 노태운 민정당 대표가 1987년 12월에 있는 선거는 직선제로 할 것이라고 밝힙니다. 

이렇게 수많은 국민들의 죽음과 피로 만든 대통령 직선제에서 야당은 꼭 승리했어야 합니다. 아니 승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노태우를 지지하는 사람보다 노태우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았으니까요. 문제는 노태우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의 반은 김영삼을 또 반은 김대중을 지지했습니다.  

당시 진보 세력은 광주의 호남 세력과 부산의 경상도 세력이 함께 있었습니다. 이 두 세력이 규합을 해야 노태우 후보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라도를 대표하는 김대중 후보와 경상도를 대표하는 김영상 후보가 야권 후보 단일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민주주의 세력이 두 후보의 후보 단일화를 하라고 요구 했지만 두 김씨는 이걸 거부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는 지역주의가 팽배했습니다. 따라서 경상도의 진보 세력은 김영삼을 전라도의 진보 세력은 김대중을 지지했습니다. 서울도 마찬가지였고요. 이렇게 진보 성향의 유권자는 김대중과 김영삼에게 골고루 표를 주었고 그 덕분에 노태우는 편하게 대통령이 됩니다.

그렇게 보통사람을 위대하게 만들어 준 장본인이 김영삼과 김대중 전 대통령입니다. 

두 욕심 많은 재야 정치인 때문에 다시 군인 출신의 대통령이 탄생하게 됩니다.



부산의 진보 세력을 보수 정당에 헌납한 김영삼 전 대통령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앞당긴 민주 투사라는 수식어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반대로 한국 민주주의를 망가트린 장본인도 김영삼입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대통령을 하던 시기에는 지금처럼 남한이 동서로 갈리지 않았습니다. 부산을 기점으로 하는 진보 세력과 광주를 기점으로 하는 진보 세력이 지역색에 가로 막혀서 그렇지 진보주의자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진보주의자들이 1987년 대선에서는 노태우 후보에게 졌지만 1988년 대선 후에 치루어진 국회의원 선거인 총선에서 크게 승리합니다. 전라도는 김대중이 이끄는 평화민주당이 휩쓸었고 부산과 경상남도는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이 59석을 기록합니다. 

득표수는 평화민주당보다 높은 23.8%로 높았으나 새누리당의 전신인 여당인 민정당에 밀려서 2위를 한 곳이 많아서 의석수는 59석으로 제2의 야당이 됩니다. 자손심이 상한 것일까요? 1990년 1월 22일 민정당과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과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합당을 합니다. 

천지개벽할 일이 일어났죠. 사람들은 소리쳤습니다. 야당에게 표를 줬는데 홀랑 여당으로 당을 합당시킨 김영삼 전 대통령의 행동에 분노를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때 항의 표시로 통일민주당을 탈당합니다.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김영삼이라는 인물을 살펴보면 이해가 갑니다. 왜냐하면 김영삼은 기회주의자니까요. 그것도 자존심이 강한 기회주의자이자 대통령 병에 걸린 사람이었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진 후 이렇게 해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전략을 짭니다. 그렇게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군사정권을 비난하던 모습을 지우고 여당 대표가 되고 1992년 선거에서 여당 버프를 잔뜩 받고 쉽게 승리를 합니다. 

전 이런 기회주의자적인 모습을 크게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이 조금 더 왼쪽으로 가도 괜찮으니까요. 



군사정권 척결과 역사 바로 세우기 등은 좋았으나....

기회주의자로 낙인 찍혀도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됩니다. 군사 정권의 잔재를 청산하고 세상에 뿌려진 부정 부패를 척결하는데 앞장서면 되니까요. 실제로 김영삼 전 대통령은 93년 취임 초기 무려 90%라는 높은 지지율을 끌어냅니다. 그 지지율에는 공공의 적인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에게 죄수복을 입혔기 때문입니다.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었던 노태우까지 군사 쿠테타에 대한 죄를 물어서 감옥에 넣는 모습과 하나회라는 군대내 사조직을 발본색원합니다. 여기에 칼국수로 대표되는 청렴함까지 보여주니 국민들이 안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국은 민주주의의 봄이 찾아오고 지금보다 더 많은 정치 패러디와 코미디가 나옵니다. 'YS는 못말려'라는 유행어가 있을 정도로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죠. 지금 '박근혜는 못말려'라고 했다간 국정원이 휴대폰 감청을 실시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경복궁 앞에 떡하니 서 있던 일제가 세운 중앙청을 부셔 버린 것이나 금융 실명제 같은 일들의 높은 개혁성은 높이 살만합니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만들어 놓은 구도는 후 세대에게 악 영향을 줍니다. 



남한을 동서로 갈라 버리는데 1등 공신은 김영삼

<2013년 대선 지지율 지도>


1988년 민정당과 2015년 새누리당 어떤 정당이 더 보수적일까요? 어차피 같은 뿌리를 지닌 정당이니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새누리당이 더 잔혹스러운 보수 정당으로 보입니다. 교과서도 자기들 입맛에 맞춰서 바꾸려고 하고 친일파도 대한민국 건국공신으로 만들기 위해서 상해임시정부를 깡끄리 부정하고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이런 새누리당을 보고 있노라면 93년도에 제가 가진 김영삼 정부에 대한 시선이 부끄럽기만 하네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세상을 좀 더 왼쪽으로 옮겨 놓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제2의 전두환 같은 모습을 대통령 말년에 보여줍니다. 진보세력 때려 잡는 모습이나 여러가지로 보수주의로 흘러가기 시작하더군요. 

그렇게 민정당은 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대선에 나섰다가 패배를 합니다. 그것도 다 IMF가 터졌고 김종필이라는 불사신을 김대중 후보가 끌어 들였기에 겨우 승리했지 IMF로 나라 날려 먹어도 보수 세력은 쉽게 무너지지 않더군요. 

이렇게 IMF라는 수많은 가정이 풍비박살이 나는 일이 일어나도 신한국당이라는 새누리당 전신은 크게 망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경상도는 김영삼 덕분에 경상북도뿐 아니라 경상남도도 보수주의가 철철 넘치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한국은 경상도 패권주의 나라입니다. 경상도 인구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따라서 경상도 후보가 나와야 겨우 당선 될까 말까 합니다.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 후보도 다 경상도 출신이잖아요. 이 경상도를 3당 합당을 통해서 경상남도의 진보 세력을 모두 새누리당에 헌납해 버립니다. 그리고 2013년 대선에서 경상도를 넘어 강원도 충청도까지 보수 후보에게 표를 던집니다. 나라가 망하기 전까지 뭘 해도 쓰러지지 않는 든든한 지지 기반 역할을 하는 곳이 경상도이고 이 경상도 전체를 보수 지역으로 만든 것이 김영삼 전 대통령입니다. 

그리고 이런 고착화 된 동서 분할은 한국의 정치를 30년 이상 후퇴 시키고 있습니다. 이것 하나 만으로도 김영삼 전 대통령을 좋게 볼 수 없습니다.



IMF 같은 건 극복할 수 있지만 이런 정치적 구도와 지역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만든 동서 갈등과 지역주의 고착화는 두고 두고 비난을 받아야할 것입니다. 

명복을 비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각자 개인의 기억으로 세상을 바라보니까요. 단,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에 명복을 빌어주고 싶지 않네요. 93,94.95년도까지의 기억만 좋을 뿐 정치인이자 대통령 김영삼은 추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그런 사람을 전 좋게 볼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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