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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음악창고

아름다운 가사 때문에 신해철을 다시 보게 된 '무한궤도 1집'

by 썬도그 2014.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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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을 싫어하는 3,40대들을 있어도 신해철을 모르는 3,40대는 없습니다. 신해철은 90년대와 2천년대 음악에서 뛰어난 족적을 남긴 천재 뮤지션입니다. 그냥 가수라고 하기엔 그의 넘치는 역량과 능력은 뮤지션이라고 해야 정확한 단어 선택이 아닐까 합니다.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가수였다면 이렇게까지 제가 슬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노래를 직접 작사/작곡 프로듀싱까지 하고 후배들을 키우고 소개하는 진정한 뮤지션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두번 째 추억담입니다

2014/10/28 - [문화의 향기/음악창고] - 신해철과 함께 자란 내 10대, 당신은 내 영웅이었어요.

에 이어집니다.


무한궤도 1집의 아름다운 노래들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찍은 앨범 사진을 보니 당시 생각이 나네요. 지금은 저 뒤에 있는 저울 조형물이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배치 되어 있는데 89년 당시에는 과천현대미술관 건물 입구 왼쪽에 있었습니다.  저 앞에서 흑백사진 동아리 출사 때 저 조형물을 찍었던 기억이 나네요

동창생으로 구성 된 무한궤도는 88년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은 후에 해체될 운명이었습니다. 아주 강한 결속력이 있는 그룹도 아니고 음악을 평생 직업으로 하겠다는 멤버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앨범 한 장은 내자고 의기투합하고 88년 대학가요제 심상위원장이기도 했던 조용필의 도움으로 무한궤도 1집이 나옵니다.

솔직히, 무한궤도 1집이 나와도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냥 강남 부유층 학생들 같은 위화감도 있었고 엘리트라는 후광 때문에 여학생들에게나 인기 있던 그룹으로 치부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노래는 좋았습니다. 바로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때'라는 노래는 가끔 따라 불렀습니다. 그 이유는 부르기 쉽다는 것도 있지만 가사가 참 예쁘더군요.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제가 신해철의 노래를 그의 목소리를 참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을 꼽으라면 전 가사를 꼽고 싶습니다.
정말 노래 가사 하나하나가 다 시 같다고 할까요? 어떻게 이런 가사를 20대 초반 나이에 만들 수 있나요
 
89년 당시는 히트곡 대부분 아니 거의 전부가 사랑타령이었습니다. 서슬퍼런 공안정권 때문도 있지만 사람들이 노래로 세상을 저항하는 것이 아닌 노래를 단순 소비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사랑 한 번 해보지 못한 학생들은 하루 종일 사랑타령 노래를 듣고 따라 불렀습니다. 그 가사 내용을 곱씹지 않습니다. 학생들에게는 대부분이 경험하지 못한 그냥 사랑 타령인데 무슨 의미가 크게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노래 가사 보세요. 다릅니다. 아주 달라요. 사랑 대신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고등학교 대학생 나이가 되면 누가나 하는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이 가사는 담고 있습니다. 신해철이 서강대 철학과 출신이라는 것도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뭐 자신은 그냥 어설픈 철학 소년이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주옥 같은 가사를 쓸 수 있는 뮤지션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이 노래 가사에 빠지긴 했지만 무한궤도 앨범을 산 것은 아닙니다. 당시 전 이문세에 빠져 있었거든요. 이문세 앨범을 사고 매일 같이 테이프 A/B면을 3번 반복해야 하루가 지나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고2때 여동생 방에서 무한궤도 1집 테이프를 발견하게 됩니다. 
집에서 노량진 학원가까지 버스를 타고 가면서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듣고 또 듣고 그러면서 이미 해체한 무한궤도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신해철의 대마초 흡연과 몇몇 멤버들의 탈퇴로 무한궤도는 1집만 내고 사라졌습니다. 


촌스런 앨범 커버가 언제봐도 오글 거리는 무한궤도 1집은 좋은 곡들이 많습니다. 아니 전체가 다 좋습니다. 소개하고 싶지 않은 곡이 단 한 곡도 없습니다. 감히 말하지만 전 신해철이 만든 수 많은 앨범 중에 첫 손가락에 꼽는 앨범을 이 무한궤도 1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름 이야기

작년 가장 인기 있었던 드라마인 응답하라 1994에서도 살짝 소개된 '여름이야기'는 그대에게2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경쾌함이 풋풋한 대학생의 설레임을 잘 담은 곡입니다.  무대 매너도 꽤 괜찮았죠. 점점 아이돌 스타가 되어가는 신해철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무한궤도 1집은 신해철이 전곡을 작사 작곡은 한 것은 아닙니다. 6명의 팀원이 작곡을 각자 했는데 이 여름이야기는 김재홍이 작곡, 신해철 작사입니다. 



비를 맞은 천사처럼

비를 맞은 천사처럼은 전주에 맑은 신서사이저의 빗방울을 연상케 하는 전주와 비소리가  지나고 미성의 신해철이 그 빗물 위로 흐릅니다. 신해철 작사 조현곤 작곡인데요. 비오는 날 들으면 참 좋은 곡입니다. 


 

소망은 그 어디에

전주에 꼬마 숙녀들의 아름다운 합창이 시작됩니다. 이 무한궤도 1집은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특히 이런 꼬마 아이들의 합창을 넣는 신선한 시도를 합니다. 노래가 찬송가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소녀의 목소리와 신해철의 보컬이 아주 잘 어울립니다. 


조금 더 가까이

어둠이 찾아오면이라는 곡이 있지만 이 앨범에서 가장 인기가 없는 곡이었습니다. 유튜브에서 검색을 해도 검색도 안 될 정도여서 여기서 소개는 하지 않겠습니다. 어둠이 찾아오면이라는 곡은 O15B의 리더인 정석원이 작사 작곡한 곡입니다. 둘 사이가 그렇게 썩 좋지 못했다는 루머가 있긴 하지만 그건 둘 사이의 음향 성향이 좀 달랐기 때문이 아닐까 하네요

조금 더 가까이는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때와 함께 신해철이 작사 작곡한 곡입니다. 
시원스러운 신해철의 보컬을 들을 수 있습니다. 



거리에 서면

정석원과 신해철은 이 앨범에서 2곡씩 작곡을 합니다. 정석원을 대표하는 곡은 '거리에 서면'인데 이 노래를 실연 당한 친구가 동아리 방에서 하루 종일 불러서 세뇌가 될 정도였습니다.  이 노래는 윤종신 2집에서 윤종신이 부르기도 하는데 노래가 꽤 좋고 절절함이 강해서 참 많이 들었던 노래입니다


둘 다 미성을 소유한 가수이지만 윤종신이 더 미성이었습니다. 윤종신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는 백마탄 왕자가 저런 목소리를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끝을 향하여

신해철는 노래 목소리도 좋지만 나레이션 목소리도 참 좋습니다. 귀티가 난다고 할까요? 정말 정갈한 목소리는 나레이션 자체도 귀에 쏙쏙 들어오게 합니다.  무한궤도 1집은 전체적으로 락 적인 요소보다는 신서사이저 음이 많이 들어간 진보적인 락 음악을 선보였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이 밴드 같다는 느낌도 떨칠 수 없었죠. 

곱상한 소년들이 밴드 조직해서 만든 노래 같은 느낌?
그러나 이 끝을 향하여는 그런 편견을 깨버립니다. 꽤 진보적인 노래인데 처음에는 스킵하던 이 노래가 언젠가부터는 가장 먼저 찾게 되더군요. 
사람의 탄생부터 삶의 치열함을 지나서 삶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을 한 신해철의 나레이션이 담겨 있는 노래입니다. 

아주 뛰어나고 지금도 가끔 전곡을 다 들어보는 앨범입니다.
그리고 신해철을 추종하기 시작했습니다. 엄친아? 형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신해철이 가장 좋았던 것은 뛰어난 언변과 함께 20대가 쓴 가사라고 믿기지 않는 세상을 바라보는 깊은 눈길 때문이었습니다. 10대나 20대들이 갖는 고민을 노래 가사에 담는 능력은 범접할 수 없습니다. 이후 신해철은 그룹에서 나온 후 아이돌 가수의 길을 가게 되는데 그 점은 좀 아쉽긴 했지만 신해철을 계속 볼 수 있다는 그 하나 만으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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