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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음악창고

신해철과 함께 자란 내 10대, 당신은 내 영웅이었어요.

by 썬도그 2014.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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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는 했습니다. 패혈증이라는 단어가 들일 때 긴 한숨이 나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패혈증이 뭔지 잘 모르지만 수 많은 사망 원인 중에 패혈증으로 사망 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몇년 전에 검색 한 후에 이 단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패혈증은 혈관이라는 순환 기관을 통해서 나쁜 균들이 온 몸 구석구석에 전달 되는 치료하기 아주 힘든 병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병원균이 한 곳에 있으면 그곳만 집중 치료할 수 있고 심하면 도려내면 됩니다만 혈관을 통해서 온 몸에 퍼지면 치료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예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영화 시사회를 보고 나오면서 LG트윈스 야구 결과를 확인하기 전에 먼저 들어온 뉴스가 있었습니다. 
'신해철 사망', 어느 정도 예상은 했고 마음의 준비도 어느 정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동차 사고를 당했을 당시에는 크게 아프지 않지만 사고가 난 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아파오듯 오후 10시에 받은 충격은 점점 아파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너무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목감기 때문에 몸이 좋지 않은데 이대로 잠이 들지 못할 것 같아서 술을 사들고 집에 들어와서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을 봤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페이스북 타임라인은 온통 신해철 사망에 대한 애도의 글들이 가득 했습니다. 각자 가장 좋아 했던 신해철과 넥스트, 무한궤도의 노래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진정되면서 동시에 그의 부재가 사무치게 다가옵니다.

술을 먹고 친구와 통화도 해보고 라디오를 듣고 그가 부른 노래를 유튜브에서 들어도 이 허한 마음은 달래지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제 남은 삶도 생각해 봤습니다. 죽기 전에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지인들과 식구들과 했으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라도 있었다면 또 달랐을 것입니다. 급작스런 병원 후송과 단 한 마디 말도 없이 허망하게 떠나간 신해철을 보면서 사는 것에 대한 깊은 실망과 허탈함이 밀려옵니다.

그나마 연예인이라서 이런 저런 매체에 많은 흔적을 남겨서 그의 지난 날들에 대한 추억을 되새김질 할 수 있었고 그의 생각을 뒤늦게나마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네요. 남들이 기록한 신해철이 아닌 내가 기록한 신해철을 이 공간에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 글은 제 추억의 앨범을 넘어 제 유언장의 중간 부분을 차지할 글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여러가지 이유도 있지만 제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나면 주변 사람들에게 이 공간을 알려주고 내가 하지 못한 이야기나 내 생각을 전해 줄 생각에서 시작 했습니다. 지금은 개인적인 공간 보다는 정보 창고가 된 느낌이지만 그럼에도 제 일상과 생각을 가장 많이 남기는 곳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자주는 아니지만 제 일상과 생각을 자주 남겨볼 생각입니다. 그 글이 비공개로 저장 될지 공개로 저장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죽기 전에는 비공개도 모두 공개로 전환할 생각입니다. 그 긴 유언장과 같은 추억 앨범 속에 신해철에 관한 추억을 여러개의 포스트로 나눠 담아 보겠습니다


'그대에게'

놀란 것은 무한궤도의 '그대에게'가 25년이 지난 지금도 대학가에서 응원곡으로 불리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길게 인기를 얻는 것도 놀랍지만 한 세대를 넘어서 이렇게 길게 인기를 끌줄은 몰랐습니다. 경쾌한 사운드와 응원가로 딱 좋은 곡인 것은 알았지만 난 알아요가 아닌 .'그대에게'가 대학가 축제때나 응원가로 불리우는 것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1988년 88올림픽이 논란도 잡음도 있었지만 한국을 세계에 알린 에너지가 넘치고 자존감을 처음으로 세우던 그해 연말 MBC 대학가요제에서 나온 이 노래는 센세이션했습니다. 

지금이야 대학가요제가 사라진지도 있는지도 관심도 없지만 88년 당시는 연말 선물 같은 가요축제가 MBC대학가요제였습니다. 이정석, 유열이 노래를 하던 87년을 지나 88년 무한궤도라는 대학 연합그룹이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참가번호 16번 서울대표. 무한궤도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얽히고 섥힌 대학 연합 멤버로 구성된 무한궤도. 서강대 철학과의 신해철과 015B의 리더인 정석원과 김재홍 조현문으로 이루어진 서울대, 이동규의 경희대와 조현찬의 연세대로 이루어진 이팀은 강렬했습니다. 


장국영 머리 같은 당시 유행하던 헤어스타일을 한 핸섬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던 신해철.
마치 교회 오빠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 미소년의 모습에 중학생이었던 전 질투를 했습니다. 외모에서부터 범상치 않았습니다.


노래기 시작 된 후 바로 놀랬습니다. 88년 당시는 막 신서사이저가 보급되던 시절이었고 조용필이 '단발머리'에서 뿅뿅뿅하는 전자음이 막 익숙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포크음악이 가득했던 70년대를 넘어서 전자악기 음악이 조금씩 선보이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이 대학생들은 이 전자음을 더 적극 활용합니다. 그룹사운드에서 신서사이저가 등장한 것은 낯선 풍경은 아닌데 놀랍게도 이 대학그룹인 무한궤도는 무려 2대의 신서사이저를 이용합니다. 

여자친구가 있냐는 여자 진행자의 물음에 물론 없죠!라는 실없는 농담을 한(저 얼굴에 없다는 것이 믿기나?)일렉기타를 메고 있던 보컬 신해철은 전주의 뿅뿅거리는 전주음을 일렉 기타를 치지 않고 신서사이저를 같이 연주합니다. 헐~~ 소리가 나오죠

기타만 쳐도 놀라운데 건반악기도 연주를 합니다. 그리고 노래는 시작 됩니다. 
이 그대에게는 락그룹의 일렉 기타의 파괴적이고 거대한 굉음을 보여주는 곡은 아닙니다. 주로 귀에 먼저 도달하는 소리는 신서사이즈의 뿅뿅거리는 전자음입니다.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는 멜로디가 참 좋습니다. 한국 가요가 그렇듯 멜로디가 좋은 곡을 무척 좋아해서 미국 팝음악 보다는 유럽의 멜로디가 갑이 되고 리듬이 을이 되는 음악들이 인기를 많이 끌었습니다. '그대에게'가 그랬습니다. 유럽의 댄스음악 같은 느낌이 나면서도 그룹 사운드의 박진감도 함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위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88년 당시는 방방 뛰는 문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뉴키즈온더블럭 같은 해외 아이돌 스타나 국내 아이돌 스타들에게 괴성을 지르는 문화가 있었지만 이런 신인가수 등용제에서는 다 처음 들어보는 곡이니 이런 신나는 곡에도 조용히 경청 했습니다. 

그대에게는 방송 다음 날부터 대박을 터트립니다. 중학생인 저와 제 또래 아이들은 이 노래를 녹음해서 듣고 라디오에서 듣으면서 무한궤도에 푹 빠졌습니다. 여러 잡지에서는 이들의 인터뷰를 따느라고 여념이 없었습니다.

무한궤도의 인기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노래가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30년이 지난 지금도 신해철은 잘 몰라도 무한궤도는 잘 몰라도 '그대에게'는 잘 알고 있죠. 그 다음으로는 보컬 신해철의 핸섬한 외모였습니다. 장국영보다는 못하지만 아주 잘 생긴 외모가 여학생들을 혹하게 했습니다. 

여기에 학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서울대, 연세대, 서강대라는 IN 서울이라는 서울 안에 있는 대학을 넘어서 SKY라는 똑똑한 학생들만 가는 대학 학생들로 구성된 학력에 대한 부러움이 꽤 컸습니다. 윤종신이 무한궤도의 정석원과 정석원 친형인 장호일(둘 다 서울대 출신임)이 만든 O15B라는 그룹에서 객원가수로 활동 할 때 학력 컴플렉스가 있었다고 할 정도로 학력에 대한 부러움과 우러러봄이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명문대 그룹인 무한궤도의 신서사이저를 맡은 조현문은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둘째 아들로 효성그룹 부사장까지 했으나 2013년 그룹 승계를 포기하고 변호사가 됩니다. 

그러나 전 이 그대에게 하나로 신해철의 광팬이 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냥 교회 오빠처럼 질투의 대상이었을 뿐이었죠
그런데 이 무한궤도를 달리 보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무한궤도 1집 이야기와 함께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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