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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음악창고

신해철 광팬이 되게 만든 신해철 2집 myself

by 썬도그 2014.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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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이 떠난 당일 보다는 그 다음날이 더 아팠고 그리고 오늘이 더 아프고 내일이 더 아플 것 같습니다. 
아직은 젊은 나이라서 많은 죽음을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항상 죽음은 당일보다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짙어지나 봅니다. 죽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든 날에는 경황이 없고 쉽게 그 사실을 받아 들이지 못하지만 교통사고 후유증처럼 모든 것을 정리한 후에 방에 문을 닫고 천장을 바라볼 때 슬픔의 강을 담은 둑이 무너지듯 밀려옵니다.
개인적인 친분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 중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죽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신해철의 죽음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적인 슬픔이었지만 신해철의 죽음은 개인적인 추억 때문인지 하루 하루가 지나갈수록 더 마음이 아픕니다. 어제는 정신적인 공황 상태까지 다가오니 모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멍하게 하늘과 벽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이 다가오네요. 이 블로그에 신해철 관련 글을 그제 어제 썼지만 오늘도 한 편의 글을 써야겠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기 전에 제 추억과 감정을 이 공간에 적어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네요. 

2014/10/28 - [문화의 향기/음악창고] - 신해철과 함께 자란 내 10대, 당신은 내 영웅이었어요.

2014/10/28 - [문화의 향기/음악창고] - 아름다운 가사 때문에 신해철을 다시 보게 된 '무한궤도 1집'

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무한궤도 1집을 매일 같이 듣던 89년 가을 천청병력 같은 소식이 들려옵니다. 아직도 기억납니다. 용산에 왜 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용산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용산 국제상사 빌딩 부근의 육교를 내려와서 버스 정류장 옆 가판대에 있는 컬러플한 스포츠 신문에  "신해철 대마초 구속"이라는 헤드라인이 보였습니다

친구는 신해철 팬이 아니라서 그냥 무덤덤하게 봤지만 전 그 자리에서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식자 풍 외모에서 질투심도 느꼈지만 무한궤도 1집의 그 심오한 가사, 방황하는 청춘들의 이정표가 되어주거나 지친 어깨를 기댈 수 있는 동네 마음씨 좋고 착한 형의 느낌이 좋아서 흠모했는데 대마초라뇨. 지금은 대마초는 마약으로 취급하지 말자는 소리도 있지만 당시에는 아주 엄격했습니다. 

순수하다고 말하기에는 낯부끄럽긴 하지만 소심해서 순수해보였던 저에게는 그 불법 행위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머리를 숙이고 인상을 쓰던 신해철의 모습은 저의 마음 속에서 신해철을 싹 지우고도 남았습니다.

그래서 지웠습니다. 배신감이라고 할까요? 많이 화도 났지만 고3이라는 신분과 신해철을 대신할 가수들은 많았기에 쉽게 잊었습니다. 당시는 팝송도 인기가 많아서 마돈나나 마이클 잭슨이나 마티카 같은 외국 마삼트리오와 국내 마삼트리오만으로도 음악 청취 시간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신해철은 1989년 10월 대마초 흡연 사건으로 조사를 받았지만 친구가 준 대마초를 2모금만 마신 것과 초범이라는 점, 대학생이라는 점을 참작해서 금방 나옵니다. 그리고 흔한 연예인 자숙기간을 거쳐서 1990년 10월 조용필의 지원으로 솔로 앨범을 냅니다. 신해철의 불미스러운 사건과 함께 무한궤도 멤버들의 자연스러운 탈퇴, 리더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무한궤도 남은 멤버들 중에 정석원이 주축이 되어서 친형인 장호일과 함께 무한궤도에서 나와 만든 015B가 생깁니다. 

 

같은 해인 1990년에 015B와 함께 신해철은 1집을 세상에 선보입니다. 그러나 라디오에서 들을지언정 앨범을 사지는 않았습니다. 아직도 분한 느낌이 남아 있었고 여전히 신해철에 대한 미움도 있었습니다. 

슬픈표정하지 말아요!나 안녕!이 라디오에서 연일 흘러 나오고 안녕이라는 노래 같은 경우는 김삿갓! 김삿갓!하는 남대문 랩이라는 희화된 모습을 싹 지운 어느 정도 랩 다운 랩(내가 인정하는 한국 최초의 랩)을 하는 모습과 뛰어난 멜로디와 가사임에도 신해철 1집 앨범을 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애정이 깊으면 증오도 깊다고 할까요? 그런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제가 고3이라서 노래를 들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LG트윈스 야구는 매일 밤 라디오로 들었고 그래서 망했다는 내 잘못을 니 잘못으로 만들었던 시기입니다.
한 반 60명 중 4년대 대학을 15명 내외로 갔던 그 시절, 졸업식에서 대학 못간 친구들이 더 많아서 그게 위로가 되었던 91년 늦겨울, 친구와 인생의 첫 쓰라림을 달래기 위해서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공항이 들어선 영종도에 바닷가에서 울분을 토해냈던 그 바닷가를 뒤로 한 후 영종도에서 인천항으로 오는 영종도 선착장에서 내 인생 가장 큰 보름달을 본 후 마음의 큰 상처로 시름 시름 앓았습니다. 예상해던 재수이고 친한 친구 8명 중 7명이 재수를 하던 그 시절 고통도 함께하면 즐겁다는 표정으로 신도림의 종합학원을 끊고 고등학교 4학년을 시작했습니다. 체벌이 없는 종합학원이라는 또 다른 시작에서 많이 좌절 했었습니다

남이야 아프건 말건 무심한 자연은 개나리를 피우고 진달래를 피우고 벚꽃을 피웠습니다. 학원 가는 길에 핀 벚꽃에 웃음 짓다가도 살벌한 기운의 학원 생활에 주눅들어하던 시절 신해철은 2집 MYSELF를 냅니다.

 

내 인생 최고의 명반인 신해철 MYSELF

얜 신해철 노래만 불러! 당시 불어닥친 노래방 열풍은 재수생에게는 담배와 함께 유일한 해방구였습니다. 
1991년 4월에 발매 된 신해철 2집 MYSELF는 토토즐에서 '재즈카페'라는 노래를 듣고 바로 샀습니다. 신해철에 대한 거부감은 다 녹았고 거부하기에는 노래가 너무 좋았습니다.
90년대초는 미디 음악이라는 전자음악이 막 도입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신디사이저로 대표되는 미디음악은 직접 악기를 연주하지 않고 건반 악기인 신디사이저로 다양한 소리를 내고 드럼도 직접 연주하지 않고 컴퓨터의 도움으로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치기 힘든 비트도 신디사이저 같은 새로운 음악도구로 혼자서 만들수 있었습니다.
신해철은 이런 컴퓨터 음악에 한국에 적극 소개한 음악가이고 이 신디사이저 음악을 잘했던 당시 음악가로는 신해철, 윤상, 정석원이 있었습니다. 그중 으뜸은 신해철이었죠. 그래서 MYSELF라는 음반 전체를 신해철 혼자 작사/작곡은 물론 연주까지 혼자 다합니다. 솔직히 당시는 좀 이해가 안 갔습니다. 어떻게 기타, 드럼, 건반까지 혼자 다 연주할 수 있지? 

그러나 신해철은 이걸 혼자 다 합니다. 원맨밴드 앨범인 MYSELF는 저를 혹하게 했고 발매되자마자 냉큼 샀습니다.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신해철 본인은 2장의 개인 앨범이 대중적인 음반으로 낯간지럽다고 하지만 전 신해철 전체 앨범중에 가장 좋았던 앨범이 2집이었습니다. 신해철은 팔색조입니다. 락밴드를 구성하지만 전 락하는 신해철보다는 발라드 가수 신해철이 좋습니다. 몇달 전 SBS라디오 컬투쇼에서 김태균이 신해철의 발라드 곡이 좋다면서 발라드 곡을 만들어 달라고 했었는데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합니다. 본인은 발라드가 낯간지러울수도 있지만 전 신해철의 발라드 곡이 너무 좋았습니다.

이전 글에도 적었지만 신해철은 가창력은 좀 떨어질지 몰라도 한국 최고의 멜로디를 만드는 가수이자 범접할 수 없는 극강의 가사를 쓴 가수이기도 합니다. 오늘 낮에 들었던 자난 7월의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면서 한국 대중들이 멜로디를 중시한다는 것을 잘 안다면서 사운드에 치중했던 지난 모습을 좀 줄이고 최강의 멜로디로 대중을 사로 잡겠다는 말에 너무 안타까워서 한 숨을 쉬웠습니다. 감히, 주제넘게 말하자면 한국 최고의 멜로디를 만드는 가수는 신해철입니다. '그대에게'나 '안녕'같은 노래의 전주를 들어보세요.

바로 그 멜로디에 녹아버립니다.내 마음 깊은 곳의 너는 멜로디도 좋고 가사도 좋습니다. 가사가 사랑타령이라서 폄하하는 사람도 많지만 전 이 기사를 부르고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긴 시간을 스쳐가는 순간인것을 영원히 함께할 내일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기다림도 기쁨이 되어" 이 합창부분이 너무나도 좋습니다. 이 노래는 재수하던 시절 그리고 대학시절의 내 18번 곡이었습니다. 부르기 쉬운 것도 한 몫했죠


나에게 쓰는 편지

1집 안녕의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 받은 곡이 '나에게 쓰는 편지'입니다. 전주의 경쾌한 건반음은 어깨가 저절로 들썩이게 합니다. 빠른 비트와 경쾌한 멜로디. 단연 최고의 멜로디입니다. 가사도 사랑 타령이 아닌 사유적이고 사변적입니다.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좋은 직장과 가족안에서의 안정과 은행구좌의 잔고액수가 모든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집 빠른차 여자 명성 사회적지휘 그런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곳으로 가고 있는데

중간의 랩 부분은 가사의 절정입니다. 불안한 미래에 대한 공포감에 사로잡힌 재수생에게 이 가사는 큰 힘을 줍니다.
고흐가 누군지도 니체가 뭐하는 자식인지도 모르던 재수생에게  돈, 큰집 ,빠른차, 여자, 명성, 사회적지휘, 은행구좌의 잔고액수로만 평가되던 당시의 비교질에 대한 따끔한 지적질을 합니다. 
짜증나게도 지금은 91년 당시보다 더 심해졌죠. 많은 사람들이 신해철의 노래로 위로 받았다고 합니다. 사람이 노래에 위로 받는 것은 멜로디에 위로 받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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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가 너무 좋아서 삶의 나침판이 되었어요! 사운드에 감동해서 그 힘든 젊은 날의 고통을 벗어날 수 있었어요! 그 세계적 사운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노래에 위로 받는 것은 가사입니다. 이 놀라운 가사를 보세요., 현재 어떤 가수가 이런 가사를 쓸 수 있을까요? 사회 비판적인 가사는 당시 그리고 현재의 청춘들을 위로합니다. 뭐 최근에 랩 가수들이 사회비판적인 가사를 쓰곤 있긴 하지만 많은 가사들이 깊이가 깊지 않습니다. 저런 가사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신해철 밖에 없고 앞으로도 저런 가사를 쓰는 작사가나 가수는 나오기 힘듭니다. 


재즈 카페

2집 MYSELF의 대표곡은 재즈 카페입니다. 1집 활동 후에 다른 가수처럼 전국의 유흥업소를 다니면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한 호텔 바의 풍경을 보면서 만든 곡이 재즈카페입니다.

이 노래에도 사유적인 내용이 좀 나오죠. 우린 어떤 의미를 입고 먹고 마시는가! 
위 영상은 원곡을 참 많이 비틀었네요. 신해철은 왕성한 활동을 하는데 주로 '재즈카페'를 방송에서 불렀습니다. 

길 위에서

이 노래는 그냥 조용한 노래라서 1991년 당시에는 그냥 흘겨 듣는 수준이었는데 이상하게 몸과 마음이 힘들면 이 노래가 깊게 들려오더군요. 노래도 느려서 가사 마디 마디를 씹어서 들을수록 마음에 큰 위안이 됩니다.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두려워할 때 '나에게 쓰는 편지'와 함께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자랑 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고 싶지 않은 나의 길. 언제나 내곁에 있는 그대여 나를 지켜봐주오"

신해철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이해합니다. 저도 한 때 속시끄러운 이야기를 하는 신해철에 그만 좀!!! 이라는 소리를 했으니까요. 그러나 그가 하는 말들 대부분은 신해철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소리가 아니라 사회에서 괄시 받고 구박 받는 사람들 즉 소수자에 대한 권익을 보호하는 목소리였습니다. 이라크 파병 반대. 문신의 법제화 등등 민감하고 누가 말해도 지는 것이 뻔한 이슈에 온 몸에 휘발유를 끼얻고 달려 들었던 투사였습니다.신해철이 50대라는 완고한 기성세대가 되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50대라는 완고한 기성세대 중에 30대 20대 10대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의 고통을 대변하는 아주 유명한 50대가 나왔으면 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사라졌습니다. 
신해철 당신의 삶은 자랑할 것이 많았고 부끄럽지도 않은 삶이였습니다. 적어도 후배들에게는 훌륭한 동네 형이자 어른이었습니다. 
 

 

아주 오랜 후에야

흔한 관용어로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들었다는 말이 있죠. 저에게는 이런 앨범이 몇개 있습니다. 이문세 4집 그리고 신해철 2집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틀 1집입니다. 아주 오랜 후에야는 전형적인 신해철의 발라드 곡이자 사랑 노래입니다. 알토 섹서폰이 당시에는 꽤 유행했는데 이 노래에도 알토 섹서폰음이 흐느껴 우네요. 

다시 비가 내리네

신해철하면 신디사이저입니다. 이 노래는 전자음 가득합니다. 신디사이저 음이 가득한 빠른 박자의 곡입니다. 
노래 가사 중에 컴퓨터 게임기를 손에 든 아이를 묘사하는데 당시라면 겜보이였겠네요. 마치 게임기의 8비트음이 들리는 듯 경쾌한 곡인데 습기 가득한 비내리는 풍경도 느낄 수 있습니다. 


50년 후의 내 모습

신해철은 삶에 대한 노래를 참 많이 했습니다. 20대의 나이에 50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하는 20대가 몇이나 있을까요?
지금의 20대 중에 50년 후인 70살의 자신의 모습을 몇이나 상상할까요?

신해철은 70살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이 노래를 만듭니다. 노후연금, 사회보장이 없던 시절에 미리 예견한 듯한 가사도 흥미롭습니다. 하루 하루 할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노인의 삶이 싫다고 말하고 하네요. 안타깝게도 신해철은 50년 후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세상을 떠납니다. 

오늘 종로 거리를 지나면서 리어커 가판대에서 신해철 2집 MYSELF  LP음반을 봤습니다. 순간 멈칫하고 다가가다가 그냥 갈 길을 갔습니다. 집에 LP플레이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LP음반 맨 앞에 나온 모습에 살짝 반가웠습니다. 재수 하던 시절 매일 같이 들었던 신해철 2집 MYSELF , 이 신해철 2집이 있었기에 그 시절의 고통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작은 나침판이 되었다고 할까요?
적어도 '나에게 쓰는 편지'같은 곡의 가사는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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