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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48

즉석카메라의 대명사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돌아온다. 2007년으로 기억되는데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디카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사업을 정리한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즉석카메라의 대명사인 폴라로이드가 즉석카메라 시장을 접으므로써 후지필름 만이 즉서카메라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즉석카메라에서 나오는 즉석사진은 특유의 색감과 추억이 많이 묻어 있습니다. 지금이야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서로 보관하지만 폴라로이드는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나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이 폴라로이드가 다시 부활할듯 합니다. Summit Global 라는 폴라로이드 관련업체가 PIC 1000이라는 복고풍 우드스킨의 폴라로이드를 100달러 미만의 가격에 올해 내놓을 예정입니다. 필름도 다시 생산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폴라로이드 카메라 사라져서 서운했던 분들에게.. 2010. 1. 15.
깐도리, 네거리사탕을 아세요? 네이트의 기억나 서비스 80년대 초로 기억나네요. 동네 어귀앞 가게는 참새방앗간처럼 아이들의 휴식처였죠. 그 가게앞에는 큰 평상이 있었는데 그 평상에서 아이들이 몰려 있다가 누군가가 가게로 들어가면 따라들어와서 한입만! 을 외쳤습니다. 이 80년대는 지금같이 먹을것이 넉넉한 시대가 아니였습니다. 지금이야 엄마나 아빠가 먹고 싶은것 말하면 먹고 싶은게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태반인데 이 당시는 뭐 사준다고 하면 주저없이 말하던 시절이었어요 당시의 아이스크림중에 여전히 생존력을 가지고 장수하는 아이스크림들이 있습니다. 부라보콘은 멸종되었는지 안보이고 월드콘은 여전히 마트에서 볼수 있습니다. 또한 누가바도 죠스바도 정말 생명력이 질긴 제품들입니다. 그런데 아련히 생각나는 하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깐도리죠. 이 깐도리는 당시 주류.. 2009. 10. 28.
유명한 컴퓨터소프트웨어들의 버젼 1.0때의 모습들 우린 아버지,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도 어린아이였을때가 있었나? 하는 생각을 가끔합니다. 당연히 어린아이였을때가 있었겠죠. 그러나 사진한장 남아 있지 않은 아버지의 어린시절을 상상해보면 잘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아닌 소프트웨어들도 마찬가지일것 입니다. 지금은 아버지 얼굴보다 더 많이 보고 사는 윈도우, 포토샵같은 프로그램도 어린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1.0의 갓난아기때 사진들이 있어 소개합니다. 윈도우 1.0 제가 윈도우를 처음본것은 윈도우 3.0가 처음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도스를 쓰고 있었습니다. 친구가 윈도우 3.0 을 사용하던데 별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안들더군요. 좀 조악하다고 할까요. 윈도우 95와 비교하면 정말 허접해 보였습니다. 윈도우 95가 윈도우의 성공신화를 써갔지만.. 2009. 6. 27.
내가 쏘아올린 유년시절의 불꽃놀이인 쥐불놀이를 생각해보다 쥐불놀이인줄도 몰랐습니다. 유년시절 마을 입구 공터에서 아이들이 깡통에 구멍을 뚫고 자잘한 나무들을 넣고 원운동을 하면서 그 깡통을 돌렸습니다. 깡통안의 나무들은 원심력이 일이키는 강력한 바람으로 불이 활활 타게 되었고 못으로 뚫은 깡통은 가쁜 바람을 들이마시고 화려한 불꽃을 내 뱉었습니다. 그렇게 마을입구는 쥐불놀이 하는 아이들도 가득했습니다. 그게 쥐불놀이인줄 몰랐습니다. 그냥 친구들이 망우리돌리러 가자고 해서 망우리라고 했었죠. 나중에 학교에서 그게 쥐불놀이라고 해서 쥐불놀이인줄 알았습니다. 풍년을 기원하고 논두렁의 풀을 태우는 놀이라고 하는데 풍년이 들던말던 내 알바 아니고 그냥 돌렸습니다. 어렸을때 했던 놀이중에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이 쥐불놀이는 다른 놀이들이 야밤에 하지 못하는 것에 비해(.. 2009. 2. 9.
고향이 철거된 사람들 설 연휴 잘 지내고 계시는 지요. 저는 고향이 서울이라서 귀향길 문화를 경험할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과 고향친구들 그리고 고향의 푸근한 인심, 어렸을적 뛰놀던 동산위에 올라서 변해가는 고향마을을 보면서 추억에 젖는 모습은 명절 풍경의 꼭지점일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태어난 고향은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아니구요. 버스로 6정거장 되는 곳입니다. 자전거로 내달으면 30분안에 도착하는 곳이죠. 하지만 이제 그곳에 가지 않습니다. 가끔 울적하거나 추억에 젖고 싶을때 옛동네에 가서 그냥 이리저리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제가 살던 동네는 산밑에 있던 전형적인 불량주택 밀집지역이었습니다. 재개발한다는 소리는 80년대 중반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 2009. 1. 25.
견디기 힘든 현실보다는 그녀가 있는 환상을 쫒아간 솔라리스 가끔 꿈에서 깨어나서 긴 한숨을 쉴때가 많았던적이 있었습니다. 옛 사랑이 꿈에 나타나 나를 10년전으로 타임워프시킨후 짜증스러운 알람소리가 다시 10년 후인 현재로 돌아올때의 그 짧은순간. 그 괴로움을 느껴본 분은 아실것입니다. 이게 현실이 아니라면, 꿈이 현실이고 이 현실이 꿈이라면 하는 탄식이 섞여 나옵니다. 제가 우울증에 걸렸을때 그랬죠. 하루종일 우울했는데 아무곳에나 들어가 문고리 걸어잠그고 우는것이 아닌 눈가에 항상 그렁그렁한 눈물을 달고 살았어요. 누가 약간이라도 자극을 주면 감정이 내 안에서 테이블위에 있던 물병이 깨지면서 쏟아져 나오는 물처럼 주체할수 없이 흘러 나왔고 그 모습을 멍하니 보면서 이 햐찮은 인생, 이 노무 하챦은 인생, 왜 난 이곳에 이렇게 이 나이에 이러고 머저리같은 얼굴로.. 2009. 1. 10.
2008년 엄동설한에 80년대 겨울풍경이 생각나다. 오늘 엄청춥더군요. 시내에서 사진촬영을 좀 하고 들어왔는데 엄청 춥더군요. 얇은 장갑은 단 10분만 효과가 있었구 싸늘하게 손이 식어서 얼어가더군요. 요 근래 이렇게 추운 날씨는 못봤습니다. 정신이 얼얼할 정도로 얼다 들어왔네요. 지금은 포근한 집에 들어와서 글을 씁니다. 그런데 이 매서운 날씨를 보면서 제 어렸을적 80년대 겨울풍경이 그려집니다. 그 추억을 몇가지만 되새김질 해볼께요. 3한 4온 지금이야 이 단어 거의 쓰이질 않죠. 80년대 일기예보를 듣지 않아도 사람들은 겨울날씨를 예측할수 있었습니다 겨울날씨는 날씨변화도 거의 없었습니다. 동네 어귀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도 겨울날씨를 예측할수 있었죠 3한 4온 말 그대로 입니다. 3일은 춥다가 4일째 되는날 날이 풀립니다. 3일동안 정말 엄청나게 추웠.. 2008. 12. 6.
허리우드 스타들의 고등학교때 모습 브리티니 스피어스 (고등학교 1학년 1997년) 조지 클루니 (고등학교 3학년 1978년) 찰리 쉰 (고등학교 2학년 1981년) 신디크로포드 (고등학교 2학년 1982년) 케리 러셀 (Keri Lynn Russell) (고등학교 1학년 1991년) 르네 젤위거 (고등학교 3학년 1987년) 머라이어 캐리 (고등학교 3학년 제시카 알바 (11살때 모습) 레이첼 맥아담스 (1997년) 체이스 크로포드 (고등학교 3학년 2004년) 브래드 피트 (고등학교 3학년 1981년) 리즈 위더스푼 (고등학교 4학년 1994년) 스눕 독 (고등학교 4학년 1989년) 카메룬 디아즈 (고등학교 2학년 1988년) 브루스 윌리스 (고등학교 4학년 1973년) 린제이 로한 14살때 모습 허리우드 스타는 아니지만 마이크 펠프.. 2008. 9. 15.
추억을 찾는 허름한 동네지만 사는사람에겐 현재이다 어렸을때 제가 사는 동네는 70년대에 멈춘 동네였습니다. 다른 동네는 70년대에서 80년대를 넘어서고 있었죠. 하지만 우리동네는 세월이 멈춘듯했습니다. 근처 군부대가 문제가 되어 재개발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화석이 되어 갔습니다. 그렇게 동네 시계는 멈추고 살아있는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80년대를 지나 90년대초 이사를 가기 몇년전부터 동네에 카메라를 메고 오는 분들이 있더군요. 사진동호회일수도 있구 사진작가분일수도 있습니다. 이리저리 동네 구석구석을 찍더군요. 한번은 사진동호회인지 수명의 카메라를 맨 사람들이 동네에 와서는 무차별로 사진을 채집해 갔습니다. 그걸 지켜보는 저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저도 사진동아리를 다니고 있던터라 그 마음을 알죠 허름한곳 다 쓰러져가는 폐가 거미줄이 쳐진집 그런것들.. 2008. 9. 5.
파프리카를 죽이다. 지난 5월쯤에 시흥사거리에 갔다가 길거리에서 화초를 파는 할머니에게서 서양고추라는것을 샀습니다. 서양고추? 뭔가 했습니다. 할머니는 피망이라고 하시더군요. 이놈은 노란놈, 이놈은 빨간놈, 이놈은 녹색이라고 하시면서 권하시더군요. 다 똑같이 생겼는데 할머니는 척척 알아 내십니다. 노란놈 하나 달라고 했습니다. 가격도 착하더군요. 하나에 700원 집에 와서 화분에 심었습니다. 예전에 사두웠던 상추씨도 심어봤습니다. 무엇가를 키우고 가꾼다는것에 대한 즐거움을 느껴 보고 싶었습니다. 무럭무럭 자라는 꿈도 덤으로 꾸게 되구요. 상추는 좀 키우다가 너무 많이 씨를 뿌렸는지 태양빛이 별로 없어서인지(아파트 베란다이다 보니) 웃자라게 되더니 자기들끼리 머리끄댕이 잡고 난리 부르스를 추더군요. 솎아줘야 할것 같은데 과감.. 2008. 8. 29.
7살에 먹었던 메뚜기 튀김 최근에 성석제 작가의 농담하는 카메라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책이 참 소박하고 단아하네요 자극적인 글도 없고 신나게 깔깔거리는 내용도 없고 가벼운 농담만 툭툭 던지는데 감칠맛이 납니다. 이 책중에 성석제작가가 태어나서 처음 먹었던 생맥주 얘기를 하더군요. 생맥주를 먹는데 안주는 안시키고 기본안주로 나온 안주를 먹었는데 그 안주가 팝콘보다 더 많다는 메뚜기튀김이었습니다. 메뚜기 튀김이라 지금 생각하면 못먹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늙어버린 기억중 하나가 바로 메뚜기튀김 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30대의 아버지는 저를 보물로 여긴게 분명합니다. 저를 데리고 산들산들 완행열차를 타고 아버지 고향마을에 저를 앞상세우고 들어갔었습니다. 그리고 TV에서나 보던 허름한 초가집 같은 곳에 들어가서 깊은 회.. 2008. 6. 25.
80년대에 주었던 삐라를 보고 북한은 60년대에 사는줄 알았다. 혹시 삐라를 주서본적이 있나요? 지금의 30대 40대 분들도 도심에서만 살았으면 주서본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전 한 30장 정도 주서본적이 있었어요 어렸을때 그러니까 80년대 중반 학교에서는 삐라를 보여주면서 이런거 주서서 학교 가져오면 연필을 준다고 했었거든요. 제가 삐라를 만나게 된것은 동네 뒷산이었습니다. 해발 30미터도 안되는 뒷산은 아이들의 놀이터였죠. 나무위에서도 놀고 가을엔 마른 풀을 뜯어다가 집도 만들기도 했구요. 그렇게 바람처럼 뒷산을 쏘다니다가 그날이 휴일이었던걸로 기억됩니다. 이상한 종이가 보이더군요. 읽어보니 북한이 어쩌고 김일성이 어쩌고 대번에 이건 삐라다라고 직감했죠 그리고 어른들에게 보여주니 삐라가 맞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또래 아이들을 모두 불러서 삐라 수색에 들어 갔습니다... 2008.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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