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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19세기 엘리펀트 맨와 21세기 한국 연예인의 공통점

by 썬도그 2011.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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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흉측했습니다. 밥을 먹다가 밥 숟가락을 놓을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흑백영화여서 그나마 좀 낫고 80년작이라서 특수분장이 발달하지 않는 시대라서 그나마 나았지 컬러에 진짜 같은 특수분장을 했다면 다 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80년작인 영화 엘리펀트 맨은  거장 데이빗 린치의 수작입니다. 귀에 딱정이 질 정도로 칭송이 대단한 작품이라서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EBS에서 멈췄습니다. 

이 영화는 흑백영화입니다. 그러나 30년전 작품이라고 믿지지 않을 정도로 프린터가 아주 뛰어나네요. 
영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첨 부분은 보지 못해서 인터넷 리뷰들을 보고 써보겠습니다.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외과의사 프레데릭(안소니 홉킨스 분)은  난쟁이와 기형인들을 모아서 서커스를 하는 반인륜적인 서커스단에 우연히 갑니다.  그기서 흉측한 얼굴을 하고 온몸엔 종양이 가득한  엘리펀트 맨을 보게 됩니다.  엘리펀트 맨은  관객 앞에서  한바퀴 돌며 춤을 추며 돈을 법니다.
동물원 원숭이 같았죠.  당시는 이런 서커스단이 많았습니다.  기형인들은 서커스 동물과 비슷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프레데릭은 이 모습에 눈물을 흘리며 이 기형인 엘리펀트 맨을 의학계에 보고 하며 엘리펀트 맨을 자신이 있는 런던병원에 데리고 옵니다. 

엘리펀트 맨의 이름은 존 메릭,  어머니가 임신 4개월때 코끼리에 밟혔고  그 때문에 존 메릭은 기형인으로 태어납니다.  존 메릭은  순수한 영혼을 가졌습니다. 항상 맞고 두려움속에 살았는데  프레데릭에 의해서 
세상과 소통을 하기 시작합니다.  말도 곧잘 하게 되죠.

런던 병원장은 이 존 메릭을 치료목적이 아니면 더 이상 데리고 없다고 말합니다. 
병원장은 존 메릭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고 원숭이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에 병원이 아닌 감금시설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 이유는 존 메릭이  프레데릭이 시킨대로만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낙담하고 돌아서는데   존 메릭이 시편 23장을 외웁니다

그 모습에 병원장은 놀라고  그 사실을 신문에 기고하면서 세상에 존 메릭이라는 존재를 알리기 시작합니다.  존 메릭을 처음본 간호원들과 많은 여자들은 비명을 지릅니다.  하지만  마음만은 순수한 청년이었던 존 메릭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가장 사랑하죠

보통 그렇게 낳아줬다면  부모님들을 원망할텐데  존 메릭은 부모님 사진을 항상 가지고 다닙니다.
그렇게  존 메릭은 세상에 알려지고  고귀한 친구까지 생깁니다.  

연극계의 거물이었떤  켄들 부인은 이  엘리펀트 맨을 직접 보러 왔으며  로미오와 줄리엣이 담긴 책을 주면서  둘은 연극 대사를 주고 받습니다. 그리고 선물로 준 켄들 부인의 사진을  어머니 사진 옆에 둡니다.

프레데릭은 자신의 집에  엘리펀트 맨을 초대하면서  환대를 합니다. 그 모습에  엘리펀트 맨은 감동의 눈물을 흘립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따뜻한 환대를 받고  첫인사가 비명이 아닌  스스럼 없이 대하는 모습에 눈물을 흘리죠.  그 동안 받았던 수많은  멸시와 구경꺼리로써의 삶이 아닌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한 모습에  감사하고 고마워하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하지만  밤에는 달랐습니다.  밤에 엘리펀트 맨을  지키던  경비원이  술집에 가서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엘리펀트 맨을 보여주웠습니다. 취객들은  이 흉측한 얼굴을 볼려고 돈을 냈고  평생 누워서 잘 수 없었던  
엘리펀트 맨은 공포의 밤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프레데릭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마치 폭력에 익숙해진 삶이 피부가 된듯한 모습이죠. 
켄들 부인이 다녀간 후 영국 사교계에서는 이 흉측한 사람을 만나러 오기 시작합니다.
엘리펀트 맨은 병원에 오기 전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구경꺼리가 되었다면 병원에서는 상류층의 구경꺼리가 된것이죠.

이 점을 수간호원이 말합니다. 버럭 화를 내는 프레데릭
그러나 그는 그 날밤 잠을 자지 못합니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과연 옳은일인지 생각하기 시작했고
자신도  서커스 단장과 다를게 없는 사람이라고 자학합니다. 

그러던중 서커스 단장이 다시 엘리펀트 맨을 데리고 가죠. 다시 엘리펀트 맨 쇼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전 처럼 엘리펀트 맨은 춤을 추지 않습니다. 지팡이로 때려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화가 난 
서커스 단장은 그를  원숭이 우리속에 넣어 버립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커스 단원들은 그를 몰래 풀어줍니다. 
거죽을 덮어 쓰고 기차역을 헤매다가  그는 사람들에게 둘러 쌓이게 됩니다. 누군가가 그가 쓰고 있는 거죽을 벗겼습니다.

엘리펀트 맨은  외칩니다.  난 코끼리가 아니야~~ 난 사람이라고.  
그 소리에 사람들은 뒤로 물러납니다.


존 메릭(엘리펀트 맨)은 켄들부인이 차려준 공연을  영국여왕과 함께 보게 되고 켄들 부인은 그 공연을 존 메릭에게 바칩니다. 

처음으로 친구를 가지게 된 존 메릭, 그에게 사과하는 친구인 프레데릭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쓰다듬으며  존 메릭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침대에서 누워서 자면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 때 나오는 노래가 바로  '현을 위한 아다지오'입니다.

19세기는 과학 과잉시대이기도 했지만 이성이 정착되지 못한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과학이라는 이유 혹은 사람을 자신들과 다르게 생겼다고  동물원 원숭이 취급하던 시기이기도 하죠. 

낮에는  상류층의 구경꺼리가 되고  밤에는 중하류층의 구경꺼리가 되었던 기구한 운명의 존 메릭,
그런 모습을 개탄하면서 반성하는 의사 프레데릭.  서커스단장이 말합니다. 당신이나 나나 똑같은것 아닌가?

난 돈을 벌기 위해서지만 당신은 의학계에 보고하기 위해서 존 메릭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분명 프레데릭도 이 존 메릭을 연구목적으로 데리고 왔지만 나중에 진정성 있게 친구가 되어서 세상을 감동시켰고 영국여왕을 감동시켜서  남은 생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해주웠죠. 그 차이입니다. 
당사자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느냐 모르냐의 차이죠

오늘 해적들이 국내 송환 되었습니다. 훤칠한 키와  매서운 눈매라는 표현으로 그들의 이미지를 우린 소비했습니다. 또한 어느 여자연예인의 늘씬한 다리를 소비했습니다.  거기에  일반인 같지 않는 외모의 엄친딸이자 노홍철이 사심방송하게 만든 한 여자분이  신상이 털렸고 미니홈피가 폐쇄되었습니다

또 내일은 어떤 여자 연예인 남자연예인의 외모를 탐닉하고 소비할까요?  그 소비풍토에서 과연 그 연예인의 사연과 이야기를 들을려고 할까요?  존 메릭을 '엘리펀트 맨'이라고 쇼를  보여주웠던 시대나  인터넷 찌라시들과 포털들이 연예인 쭉쭉빵빵 탄탄한 몸을  소비하는 모습이나  결코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연예인을 구경꺼리로만 만드는 모습.  일반인들도  XX녀로 만들어서 구경꺼리로 만드는  폭력의 시대
과연 19세기 영국과 21세기 한국이 크게 다를까요?    돌팔매질만 폭력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구경꺼리로 전락시키고 소비하고 사라지는  그 시선 하나하나도 폭력입니다.  

21세기의 엘리펀트 맨은 연예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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