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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도사진중에서 내가 최고로 뽑는 사진은 87년 6월 9일 연세대 교문앞에서 독재정권과 맞서서 시위를 하던 이한열군이 최루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것을 친구가 부축이는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그 현장성뿐 아니라 구도와 순간포착등 여러가지로 뜯어봐도 참 좋은 사진입니다. 마치 성모마리아가 아들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상 같아 보이기까지 하며 거룩함이 가득한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중학교 3학년때 봤습니다.
밥을 먹다가 이 사진이 실린 신문을 보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당시 저는 상황판단을 잘 하지 못하는 중학생이었죠. 어떻게 보면 매일 시위하는 대학생형들이 미웠습니다. 최루탄 때문에 더운 여름에도 창문 꼭꼭 닫고 수업을 해야 했으니까요.
근처에 대학교도 없는데 비만 오면 바람을 타고 최루탄가스들이 황사처럼 멀리멀리 날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으로 인해 상황파악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대학생들이 폭력시위를 한다고 해도 이렇게 사람을 최루탄으로 맞추어서 죽이는 정부가 과연 옳은 정부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대학생 형을 둔 친구들에게 물어물어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87년 6월은 정말 뜨거웠습니다. 매일 호헌철폐 독재타도는 거리거리를 메이라쳤습니다. 하지만 의식있는 대학생의 힘만으로는 세상을 바꾸기 힘들었습니다.
독재정권을 비난하는 것은 이해가 가나 폭력시위를 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좋게 보지 않는 어른들도 참 많았죠.
울 동네 아저씨들도 한마디 씩 했습니다.
전두환이가 독재를 하니까 데모를 하는 대학생들을 이해가 가는데 그래도 벽돌던지고 화염병 던지는것은 너무했어.
그러나 이런 여론은 이 한장의 사진으로 바뀌게 됩니다. 고백하자면 제 블로그이름이 사진은 권력이다로 정한것도 이 사진 한장 때문입니다. 사진한장이 세상을 바꿀 수 있구나를 알게 해준 사진이죠. 이 사진이 중앙일보. 동아일보. 조선일보(지금의 조중동과는 또 달라던것이 당시 조중동입니다)에 차례대로 실리게 되고 여론은 요동이 치게 됩니다. 결국은 넥타이부대라는 회사원들 까지 6월 항쟁에 참여하게 되면서 다음 대통령을 예약받았던 노태우 민정당 총재의 6.29선언을 이끌어 냅니다.
물론 사진 한장이 모든것을 이루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수많은 대학생들의 희생(53명의 학생이 분신)과 시민들의 동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였죠. 그러나 많은 시민을 움직이게 했던것은 바로 이 이한열군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찍은 기자는 정태원사진기자입니다. 다른 기자들은 연세대 입구의 철길 뒤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정태원 기자는
현장에 한발 더 나아가서 이한열군 10미터 앞에서 사진촬영을 했습니다. 이런 특종을 찍을려면 다른 사진기자들이 없는 곳. 위험을 무릎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로버트 카파가 2차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미군들이 침투한 오마하해변에 유일한 사진기자였기 때문에 그가 그 흔들리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진기자들이 거부한 그 현장에 있었기에 그가 유명해습니다.
정태원기자도 다른 기자와 다른 행동을 했기에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이었죠.
사진기자에게는 특종이었지만 이한열군과 그 친구는 사진기자가 야속했을 것 입니다.
90년대 말 쓰러지는 이한열군을 부축했던 친구가 한 TV프로그램에 나와서 당시 바로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던 사진기자가 너무나 야속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쓰러진 이한열을 부축하는것을 도와주지 않고 사진만 찍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어요?
쓰러지는 이한열군을 사진으로 담아서 세상을 변화시킬것이냐. 아니면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의 손길을 덥석잡아야 하나?
이게 바로 사진기자의 딜레마입니다.
정태원기자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사진기자는 현장에 나가서 직접적으로 누구의 편을 들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냥 세상을 기록할 뿐. 기자들로서는 어디에다 손만 대도 바로 위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정태원기자가 카메라로 이한열군을 찍지 않고 손을 내밀어 이한열군을 부축해서 병원에 갔다면
이 사진은 탄생하지 못하고 다음날인 6월 10일 그렇게 많은 인파가 종로를 매우지 못했을 것 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처럼 대충 사과하고 말았을 지도 모릅니다.
제가 이런 글을 쓰면 꼭 이런식으로 댓글들을 다시더라구요.
사람 생명이 사진보다 중요하냐? 라구요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봐서 저 사진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많은 대학생들의 시위도 잦아들고 많은 생명 그리고 민주주의로 가는 길에 디딤돌을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진기자의 딜레마에서 항상 욕을 먹는것은 사진기자입니다.
심지어는 사진을 찍고 위급한 사람을 도와주었다고 해도 믿으려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보면 보도사진밑에 캡션으로 사진기자는 사진을 찍고 위급한 사람을 도와주었다 식으로 달아야 독자들의 항의가 없다고 하니 정말 사진기자님들 맘고생도 많을 듯 합니다.
솔직히 사진은 기록성이 뛰어나지만 동영상보다 기록성이 좋은것은 아닙니다. 순간을 담기 때문에 그 사진 앞뒤 문맥을 유추해야 하는 위험함이 있죠.
최근에 아이티에서 CNN의학기자가 취재를 하는 도중에 의사가 없어서 직접 수술을 집도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은 뉴스를 봤습니다.
참 인도적인 모습이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쇼 같다는 생각마져 듭니다. 저렇게 고통속에 있는 사람들을 기자가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대리만족을 합니다. 그러나 저렇게 카메라에 담기지 못하고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깊이 있는 취재는 뒷전이게 되죠.
국내 언론들을 보면 한국의 국가대표인 119대원들이 생존자를 찾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의 뉴스까지 보이더군요.
그 기사를 보면서 사람 한명 구하면 금메달 하나 목에 걸어줘야 하는건가? 하는 생각마져 듭니다.
여러분들의 시각은 각자 다를 것 입니다.
사진기자는 어느편에 서지 않고 중립을 지키는 즉 말로 세상을 담지 않고 카메라로 세상을 담고 그 판단은 독자들이 알아서 하게 하는 것이 사진기자의 정도입니다. 하지만 국내 언론은 이런게 미흡합니다.
데스크의 입김이 엄청나서 사진기자가 사진을 찍어오면 너는 왜 OO일보처럼 못 찍어와! 이런식으로 자신들의 언론색채를 들어내는 사진보다는 다른 OO일보를 들먹이면서 똑같이 만들어 오라고 닥달하죠. 좋은 에디터가 없기에 우리나라 보도사진들의 수준은 높지 않습니다. 당장 내일자 일간신문들 메인사진들을 보세요. 다 비슷비슷 할것 입니다.
기사의 논조는 각각 다르지만 사진은 비슷비슷하죠.
각설하고
이 이한열군이 최루탄 맞고 쓰러지는 모습은 대학가에 대형 걸개그림으로 되살아 납니다. 저는 이 걸개그림의 웅장함에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우와~~~ 그림 정말 크다. 그 만큼 이 정태원기자가 찍은 사진은 6.10항쟁의 아이콘이 됩니다.
훗날 사진작가 조습은 이 사진을 오마쥬합니다. 이 사진을 보니 87년의 구름같은 인파들이 생각납니다. 87년 6월 광화문과 시청은 하얀인파와 함께 하얀 최루탄이 꽃처럼 피어났습니다. 그리고 한줄기 핏물이 이한열군의 머리에서 흘러 내립니다.
그리고 세상은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정태원 사진기자님과 같은 사진기자분들이 많이 나오길 바라며 오늘도 사건 현장에 가장 먼저 뛰어가고 떄로는 맹수처럼 몇시간을 추위에 떨면서 혹은 차안에서 먹이감을 노리며 시위현장에서 하이바 하나 쓰고 카메라를 보호해가며 육탄전으로 사진을 담는 사진기자님들의 노고에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참고한 책 : 2001년 12월 월간 사진기자
이 사진은 그 현장성뿐 아니라 구도와 순간포착등 여러가지로 뜯어봐도 참 좋은 사진입니다. 마치 성모마리아가 아들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상 같아 보이기까지 하며 거룩함이 가득한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중학교 3학년때 봤습니다.
밥을 먹다가 이 사진이 실린 신문을 보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당시 저는 상황판단을 잘 하지 못하는 중학생이었죠. 어떻게 보면 매일 시위하는 대학생형들이 미웠습니다. 최루탄 때문에 더운 여름에도 창문 꼭꼭 닫고 수업을 해야 했으니까요.
근처에 대학교도 없는데 비만 오면 바람을 타고 최루탄가스들이 황사처럼 멀리멀리 날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으로 인해 상황파악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대학생들이 폭력시위를 한다고 해도 이렇게 사람을 최루탄으로 맞추어서 죽이는 정부가 과연 옳은 정부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대학생 형을 둔 친구들에게 물어물어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87년 6월은 정말 뜨거웠습니다. 매일 호헌철폐 독재타도는 거리거리를 메이라쳤습니다. 하지만 의식있는 대학생의 힘만으로는 세상을 바꾸기 힘들었습니다.
독재정권을 비난하는 것은 이해가 가나 폭력시위를 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좋게 보지 않는 어른들도 참 많았죠.
울 동네 아저씨들도 한마디 씩 했습니다.
전두환이가 독재를 하니까 데모를 하는 대학생들을 이해가 가는데 그래도 벽돌던지고 화염병 던지는것은 너무했어.
그러나 이런 여론은 이 한장의 사진으로 바뀌게 됩니다. 고백하자면 제 블로그이름이 사진은 권력이다로 정한것도 이 사진 한장 때문입니다. 사진한장이 세상을 바꿀 수 있구나를 알게 해준 사진이죠. 이 사진이 중앙일보. 동아일보. 조선일보(지금의 조중동과는 또 달라던것이 당시 조중동입니다)에 차례대로 실리게 되고 여론은 요동이 치게 됩니다. 결국은 넥타이부대라는 회사원들 까지 6월 항쟁에 참여하게 되면서 다음 대통령을 예약받았던 노태우 민정당 총재의 6.29선언을 이끌어 냅니다.
물론 사진 한장이 모든것을 이루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수많은 대학생들의 희생(53명의 학생이 분신)과 시민들의 동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였죠. 그러나 많은 시민을 움직이게 했던것은 바로 이 이한열군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찍은 기자는 정태원사진기자입니다. 다른 기자들은 연세대 입구의 철길 뒤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정태원 기자는
현장에 한발 더 나아가서 이한열군 10미터 앞에서 사진촬영을 했습니다. 이런 특종을 찍을려면 다른 사진기자들이 없는 곳. 위험을 무릎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로버트 카파가 2차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미군들이 침투한 오마하해변에 유일한 사진기자였기 때문에 그가 그 흔들리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진기자들이 거부한 그 현장에 있었기에 그가 유명해습니다.
정태원기자도 다른 기자와 다른 행동을 했기에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이었죠.
사진기자에게는 특종이었지만 이한열군과 그 친구는 사진기자가 야속했을 것 입니다.
90년대 말 쓰러지는 이한열군을 부축했던 친구가 한 TV프로그램에 나와서 당시 바로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던 사진기자가 너무나 야속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쓰러진 이한열을 부축하는것을 도와주지 않고 사진만 찍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어요?
쓰러지는 이한열군을 사진으로 담아서 세상을 변화시킬것이냐. 아니면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의 손길을 덥석잡아야 하나?
이게 바로 사진기자의 딜레마입니다.
정태원기자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사진기자는 현장에 나가서 직접적으로 누구의 편을 들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냥 세상을 기록할 뿐. 기자들로서는 어디에다 손만 대도 바로 위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정태원기자가 카메라로 이한열군을 찍지 않고 손을 내밀어 이한열군을 부축해서 병원에 갔다면
이 사진은 탄생하지 못하고 다음날인 6월 10일 그렇게 많은 인파가 종로를 매우지 못했을 것 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처럼 대충 사과하고 말았을 지도 모릅니다.
제가 이런 글을 쓰면 꼭 이런식으로 댓글들을 다시더라구요.
사람 생명이 사진보다 중요하냐? 라구요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봐서 저 사진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많은 대학생들의 시위도 잦아들고 많은 생명 그리고 민주주의로 가는 길에 디딤돌을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진기자의 딜레마에서 항상 욕을 먹는것은 사진기자입니다.
심지어는 사진을 찍고 위급한 사람을 도와주었다고 해도 믿으려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보면 보도사진밑에 캡션으로 사진기자는 사진을 찍고 위급한 사람을 도와주었다 식으로 달아야 독자들의 항의가 없다고 하니 정말 사진기자님들 맘고생도 많을 듯 합니다.
솔직히 사진은 기록성이 뛰어나지만 동영상보다 기록성이 좋은것은 아닙니다. 순간을 담기 때문에 그 사진 앞뒤 문맥을 유추해야 하는 위험함이 있죠.
최근에 아이티에서 CNN의학기자가 취재를 하는 도중에 의사가 없어서 직접 수술을 집도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은 뉴스를 봤습니다.
참 인도적인 모습이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쇼 같다는 생각마져 듭니다. 저렇게 고통속에 있는 사람들을 기자가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대리만족을 합니다. 그러나 저렇게 카메라에 담기지 못하고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깊이 있는 취재는 뒷전이게 되죠.
국내 언론들을 보면 한국의 국가대표인 119대원들이 생존자를 찾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의 뉴스까지 보이더군요.
그 기사를 보면서 사람 한명 구하면 금메달 하나 목에 걸어줘야 하는건가? 하는 생각마져 듭니다.
여러분들의 시각은 각자 다를 것 입니다.
사진기자는 어느편에 서지 않고 중립을 지키는 즉 말로 세상을 담지 않고 카메라로 세상을 담고 그 판단은 독자들이 알아서 하게 하는 것이 사진기자의 정도입니다. 하지만 국내 언론은 이런게 미흡합니다.
데스크의 입김이 엄청나서 사진기자가 사진을 찍어오면 너는 왜 OO일보처럼 못 찍어와! 이런식으로 자신들의 언론색채를 들어내는 사진보다는 다른 OO일보를 들먹이면서 똑같이 만들어 오라고 닥달하죠. 좋은 에디터가 없기에 우리나라 보도사진들의 수준은 높지 않습니다. 당장 내일자 일간신문들 메인사진들을 보세요. 다 비슷비슷 할것 입니다.
기사의 논조는 각각 다르지만 사진은 비슷비슷하죠.
각설하고
이 이한열군이 최루탄 맞고 쓰러지는 모습은 대학가에 대형 걸개그림으로 되살아 납니다. 저는 이 걸개그림의 웅장함에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우와~~~ 그림 정말 크다. 그 만큼 이 정태원기자가 찍은 사진은 6.10항쟁의 아이콘이 됩니다.
훗날 사진작가 조습은 이 사진을 오마쥬합니다. 이 사진을 보니 87년의 구름같은 인파들이 생각납니다. 87년 6월 광화문과 시청은 하얀인파와 함께 하얀 최루탄이 꽃처럼 피어났습니다. 그리고 한줄기 핏물이 이한열군의 머리에서 흘러 내립니다.
그리고 세상은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정태원 사진기자님과 같은 사진기자분들이 많이 나오길 바라며 오늘도 사건 현장에 가장 먼저 뛰어가고 떄로는 맹수처럼 몇시간을 추위에 떨면서 혹은 차안에서 먹이감을 노리며 시위현장에서 하이바 하나 쓰고 카메라를 보호해가며 육탄전으로 사진을 담는 사진기자님들의 노고에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참고한 책 : 2001년 12월 월간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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