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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대한 단소리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말하는 6개의 키워드

by 썬도그 2009.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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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선생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처음 알게 된것은 87년 대선이었습니다. 당시대선 풍경은  큰 공원이나 광장에서 군중동원대회를 방불케하는  인력동원 경쟁이 무척심했습니다. 여론조사 보다는 여의도광장에서 몇만이 모였나를 보면서 대선승리를 갸늠했죠.
당시 최고의 관중동원을 했던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여의도광장을  담고도 남았으니까요. 물론  그 관중들 다 지방에서 관광버스로 동원된 관중입니다.  아버지가  집근처에 있는 보라매공원에서 김대중 연설을 듣고 술이 잔뜩 취해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방바닥에  구토를 했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생생한지 아직도 생각나네요.

김대중이 대통령되야 한다면서  소리 지리던 모습도 생각나네요. 아버지는 전라도 분이셔서 김대중선생님이라고 했습니다.
이 김대중선생님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면과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전라도에 가면 김대중씨라고 해도 안된다고 하더군요.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만큼 김대중에 대한 열성적인 지지가 많았습니다.  반면에 지역색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도 있었구요.
87년 대선때 극악의 지역색을 보여주었고 지금도 그 지역주의는 여전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80년도 까지만해도 지금같이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의 지역주의가 없었습니다.  80년인가 81년인가 국회의원선거에서  전라도지방에서도 민정당(한나라당 전신) 후보가 당선이 많이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택연금이 해제되고 민주화를 외치고  광주 민주화 운동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지역주의가 시작됩니다.   민주주의는 전라도사람만 원했던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후에는  이상하게  전라도는 진보정당을 지지하고
경상도는  Only 한나라당입니다.   망국병이 되어버렸죠.  김대중 선생님.  이 단어는 지금 생각해봐도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이 함께 합니다.


IT대통령

IMF라는  위기에 대통령직을 맡게된  4수생 김대중 전 대통령  취임전 국민과의 대화에서  금고문을 열어보니 돈이 한푼도 없다고 말할정도로  나라경제는 거덜났습니다. 이때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경기부양책인  묻지마 카드발행 열풍으로  그 위기를 벗어납니다.
묻지카 카드로 인해  중고등학생들도 카드 긁고  다니던것이 2천년도 초였고  카드대란의 후유증을 노무현 정권이 해결합니다.
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중에서 IT강국을 만든것을  가장 크게 인정해 주고 싶습니다. 제가 IT업종에 근무해서 더 후한 점수를 주는것도 있지만    한국을 IT강국으로 만든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힘이 컸습니다. 세계최고의 인터넷 브로드밴드 인프라를 구축하게 한것은 정말 좋은  생각이었습니다.  땅이 넓지 않은 한국에서  세계최고의 인터넷망을 구축해서 부가산업들을  육성시켰고  전세계 IT업계들이 세계최고의 IT인프라 국가라고 극찬을 할 정도입니다.  지금은  IT강국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되었지만요.  그래도 한국의 4대 수출품중에 휴대폰이 낄수 있었던것도 김대중 정권 덕분이죠. 물론 시티폰같은  시행착오도 있었습니다




문화 대통령

역사상 최초로  국가예산의 1%를 문화산업에  투자한 정권이 김대중 정권이었습니다.
서태지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슬픔에 젖은 말을 남긴것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중문화와 문화에 대한 애정때문이었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말자!!

이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문화에 대한 신조였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기때 일본문화 부분개방이 시작되었습니다.
영화 러브레터를 밀수해서 몰래 보던 시절이 사라지고 당당하게 극장에서 보던 시대가 된것입니다.
많은 연예인들이 문화대통령  김대중을 그리는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인맥의 대통령

깜짝 놀랐습니다. 마이클잭슨이 김대중 전 대통령 취임식때 참석하는것을 보구요.
나이차이가 상당할텐데  저런 친분 관계가 있다니.  IMF 직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의 인맥을 총 동원해서  외화를 빌리기 시작합니다. 사우디 왕자도 그때 한국에 왔었죠.  김대중 대통령은 전세계에 구축한 인맥이 대단합니다.  클린턴과의 친분도  대단했죠. 아내인 힐러리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후에  떠나기전에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전화를 해서  남편이 안부를 전한다는 말을 보더라도  김 전대통령의 영향력은 퇴임후에도 여전했습니다.   이런 큰 별이 지다니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해일것입니다.




유머의 대통령

역대 대통령중에 가장 유머러스한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유머러스하고  말 참 재미있게 하십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짧은 한마디 한마디가  재치가 있으십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머러스함은  취임전 국민과의 대화에서 빵~~ 터집니다.   정말 많이 웃었던 생각이 드네요.
또한 자신을 성대모사하는 개그맨과 연예인들을 보고 껄껄 웃으셨던 대통령이구요. 



전쟁걱정이 없게 했던 대통령

2000년 6월  학교 행정실에서 업무때문에 일을 하고 있는데  행정실 직원 3분이 모두 눈물을 펑펑 흘리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남북한의 정상이 만나는 모습을 TV에서 생중계 해주고 있었습니다.   역사적인 날이였죠.
뭐 북한 퍼주기다  돈주고 산 만남이라는 소리도 있습니다. 물론 부정적인 면도 있긴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때는 적어도 북한과의 전쟁걱정을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처음으로 두다리 쭉 뻗고 지냈던 시절이었죠. 길가다가 북한군이 귀순해서 싸이렌소리만 들어도 식겁하면서 살던게 지난날의 한국이고 지금의 한국입니다. 그러나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 아닌 전쟁공포를 잊게 해주었던 10년입니다.






곤히 잠든것 같은 마지막 모습에 많은 분들이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 모습같아 많은 분들이 울컥했다고 하더군요.
오늘 영결식이네요. 어제 돌아다녀보니 조기 단 집을 딱 한집 봤습니다.  오늘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떠나는 마지막 날입니다.
그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오늘 하루라도  조기를 걸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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