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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대한 단소리

너무 잘해서 너무 미웠던 농구대통령 허재에 대한 추억

by 썬도그 2009.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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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5학년때인가 삼촌이랑 근처에 있는  신림중학교에서 싸구려 고무공을 탱탱탱 튕기면서 농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농구는 저에게 10대 20대를 관통하는  가장 절친한 스포츠가 됩니다.

방학때 삼촌과 농구를 하고 외갓댁에 가서 농구대잔치를 봤습니다.
그때가 80년대 중반이었네요.   그때  농구대잔치를 보면  삼성전자와 현대전자가 항상 결승에서 붙었습니다.
에전엔 현대전자도 유명했어요. 지금은 현대전자가 하이닉스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삼성전자를 좋아했습니다. 코트의 신사인 김현준의 뱅크슛을 러브러브했습니다. 반대로 슛쟁이 이충희의 페이드웨이슛을 저주했습니다. 저건 반칙이야. ~~~ 라고 외치기도 했구요.

그런데 85년도인가 86년도인가  이 2강구도에  대학교 팀하나가 뛰어듭니다.
바로 그 대학교가 중앙대였고  중앙대의  스타는 허재였습니다

허재는 유명했어요. 고등학교때부터 유명했죠.
그런데 농구는 개인경기가 아니기에 천재선수가 나와도 패스를 안해주면  실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그때 허동택트리오가 나오기 전에
허유범 트리오가 나옵니다

허재, 김유택, 한기범트리오였죠.
슈팅가드겸 스몰포워드 허재,
파워포드 김유택,  가장 장신의 센터 한기범은  삼성,현대 2강구도를 3강구도로 바꿉니다. 그런데  이 3팀이  업치락 뒤치락 했습니다
대학팀이 실업팀과 실력이 비슷한것은  놀라웠지만 한편으로는 한기범선수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비아냥은 아니고  김유택의 중거리와 허재의 현란한 장거리슛과 패스에 비해 한기범선수가 최장신임에도 불구하고 구멍이었습니다.
그래서 중앙대는  현대와 삼성과 업치락 뒤치락 했었죠.

그러다 88년도인가 87년도인가에 막내인 팔이긴 강동희 선수가 들어오고 평정이 됩니다.  ㅠ.ㅠ 강동희 선수 너무 미웠어요.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를 완벽하게 하면서   현대와 삼성을 아래에 두더군요. 

저는 허재가 너무 싫었습니다.  농구대통령이란 소리, 천재선수라는 말에 걸맞게 너무 잘했습니다.  거기에 형님들인 실업선수들과 쌈도 많이 했습니다. 오늘 무릎팍도사에도 잠깐 나왔지만  코트에서 쌈이 나면 허재였습니다.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허재의 코가 커진 이유가 주먹으로 코트에서 많이 맞아서 였다고도 하죠. 허재 정말 쌈쟁이였습니다.
코피흘리는 모습도 많이 봤구요. 현대의 혼혈선수와도 많이 싸웠구요.

매너도 좋은 모습은 아니였죠. 어깨병이라고 하죠. 천재나 인기스타들이 가진 어깨병도 있는듯 했습니다. 그래도  천재임은 저도 인정하고 누구나 다 인정합니다.

허동택트리오가 결성된후 삼성은 맨날 깨지고  현대도 많이 지더군요.  이 허동택트리오가   실업팀으로 기아팀으로 갑니다.
그리고 기아팀은  빌빌되다가  이 허동택트리오의 수혈로   매번 우승을 하더군요

허재의 왼손 중거리슛과 레이업슛을 볼때마다  주먹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너무 잘하는거예요. 이런 선수를 막을 팀은 없었습니다.
인기도 참 많았죠. 

당시  5공청문회때  허트리오가 있었는데
허삼수및 그일당에  허재도 넣고 싶었습니다.

이게 다 삼성전자 팬이라서 나온 불끈이었습니다.



91년, 92년 93년 농구붐이 일기 시작합니다.  초특급 인기만화인  슬램덩크와  마이클조던의 NBA가
국내에 전파되면서  길거리마다 농구공을 튀기는 소년들이 많았구  농구코트는 비좁았습니다.  농구선수들이 가지고 다니는  롤백을 매고 다니기도 했구요.   그때도 허재 선수 날아다녔습니다.  허재선수가 또 미웠던 이유가 너무 잘하니까 여자애들이 너무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교회오빠와 함께  허재선수는 타도 대상이었습니다.

허재선수를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얄미울정도로 잘했습니다. 페이드웨이슛도 잘하고 왼손잡이라는 장점도 있었구요.
거기에 농구센스가 대단해서  어시스트도 잘했습니다. 강동희선수가  중앙대나 기아팀에 오기전에는  가드역활을 했었죠.
강동희선수가 들어오고서는  스몰포어드로 득점머신 역활을 했구요.



제가 군대를 간 93년도 이후에는   현주엽의 고려대와  서장훈의 연세대가  농구대잔치를 휩쓸면서  허재의 이름도 사그라졌고  포커스는 연고대로 집중되었습니다.   그래도  그의 존재감은  지금 2009년도까지도 유효하네요.

한때는 너무나 미웠던 (너무 잘해서) 허재,  이제는 감독으로 인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허재의 왼손 점프슛이 오늘밤 많이 그립네요. 조금만 허술했으면  한기범처럼  좋아했을텐데  너무나 빈틈없어서 싫었던 허재선수 이제는 감독으로  그 시절 주억의 안주가 되네요.

지금은 농구가 축구와 야구에 밀려  3위권의 스포츠지만  프로농구가 출범하게 만든  선수중 한명이기에 늦게나마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건승하십시요.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옛날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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