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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현충일입니다. 매년 아파트에 조기게양을 하지 않는 기사는 올해도 빠지지 않네요.
현충원을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동작동에 있는 국립현충원은 고등학교때 매년 찾아갔었습니다.
학교가 우국충정을 강조하는 고등학교라서 6월 6일 전에 학교에서 단체로 현충원에서 참배를
하곤 했었죠. 그리고 대학교때 사진촬영 출사를 하기위해 가본것이 최근의 일이구요
한 15년이 지났네요.
그곳에 찾아가 봤습니다.
처음 찾아간 곳은 참배객이 정말 많더군요. 이렇게 많은 참배객이 오다니 조금은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건 제 오판이었네요. 처음에 도착한곳은 1980년대에 전사하거나 순직하신 분들의 묘소라서
가족분들이 많이 찾아오신듯 합니다.
이곳은 1950년대 그러니까 한국전쟁떄 전사하신 순국선열의 비석들인데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도요. 비석옆에 꽂혀진 샛노란 새빨간 조화와 태극기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기념촬영을 하는 가족분들도 계시고
아드님의 비석인듯 합니다. 혼자 오셔서 식사겸 참배를 하시는 할머니도 보였습니다.
비석은 계급과 이름이 적혀있구 뒤에는 전사한 장소와 년도가 적혀있는데 이렇게 전사년도와 장소가
안적힌 비석도 보였습니다.
구수한 트럼펫소리에 발길을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습니다. 카메라에 담을려고 했는데 할아버지 악보와
트럼펫을 집어 넣으시더군요.
그런데 뒤에서 비석을 찾는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670번이 어디야 어디야..
여기도 바뀌나보네 하면서 아래서 비석을 찾고계시더군요. 제가 여쭈어봤습니다. 할머니 몇번 비석 찾으세요?
670번이요~~ 라는 할머니 목소리에 제가 빠르게 찾아봤습니다.
제 바로 뒤에 있더군요. 그런데 꼬마아이가 벌써 찾아서 대기하고 있더군요. 할머니 여기예요 올라오셔야 해요~~ 저쪽으로 돌아서 올라오세요.
할머니는 비석의 이름이 뭐냐고 묻더군요.
남상자 억자 입니다. 할머니는 맞아 맞아 연신 반가워하면서 올라오시더군요
할머니는 자기 손주가 번호를 찾았다고 좋아하시더군요.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올라오시기전에
저 두형제는 절을 하고서 절했으니까 돈주세요~~ 라고 장난을 치더군요. 아이는 아이인가 봅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아버지라고 부르시더군요. 전 노부부인줄 알앗는데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아버지셨네요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이 비석의 주인공이 할아버지 동생분 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고등학교때 징집되어서 전방에서 전사하셨다고 합니다.
철없는 손주들은 여전히 까불거립니다.
했다고 안하네요.
할아버지는 동생분과의 오랜만의 만남이셨나 봅니다. 할머니는 여기도 바뀌나 하면서 예전하고 다르다고
말씀하셨고 할아버지는 변하지 않앗다고 옛날 여기 맞다고 하시네요
조국을 위해 산화해가신 순국선열분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런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이 단순한 진리는 변하지 않하지 않습니다. 다만 잊혀질 뿐이죠.
촛불시위를 하면 빨갱이라고 말하는 보수주의자분들 이곳 현충원에 방문하셔서 무명용사 연고가 없는
열사에게 묵념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도 아무도 찾지 않는 비석앞에서 짧게나마 묵념을
했습니다.
열사에게 묵념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도 아무도 찾지 않는 비석앞에서 짧게나마 묵념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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