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 성북구에 푹 빠졌습니다. 성북구는 4대문 바로 바깥 동네로 한양도성 성곽 바깥 동네입니다. 종로구에서 북동쪽에 있는 동네입니다. 여기는 길상사 때문에 매년 5월이 되면 찾아갔지만 길상사 연등만 보고 바로 빠져나왔던 동네였습니다. 그럼에도 길상사까지 걸어 올라가면서 독특한 동네다라고 생각했죠.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인 평창동, 한남동과 함께 서울 3대 부촌이 성북구 성북동입니다. 그러나 성북구 전체는 서민들이 사는 동네도 많아서 빈부 격차가 꽤 심한 구가 성북구입니다. 같은 성북동이라고 해도 만해 한용운 심우장 주변은 노후 주택단지이고 맞은편에 있는 동네는 대사관 사택과 타운하우스가 즐비해서 한 동네에서 다양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공통점은 산기슭을 깎아서 만든 동네라서 골목이 많다는 것과 마을 버스가 딱 1대 지나다녀서 대중교통이 불편하다는 점입니다.
앙큼스러운 동네 성북구 성북동 골목길
앙큼하다는 보통 모나지 않은 욕심을 부리는 사람을 앙큼하다라고 하죠. 속셈이 보이는데 귀엽다고 할까요. 그러나 이런 뜻도 있네요 (보기와는 달리 품위가 있거나 실속이 있다.) 앙큼하다가 이런 뜻이 있는지는 저도 몰랐어요. 앙큼하다가 보기와는 다르게 품위가 있고 실속이 있다는 말이 참 좋네요. 뭐 실하다고 하면 되겠지만 앙큼하다가 더 좋네요.
이 사진은 왜 찍었냐. 저 뒤에 보이는 산이 청와대를 끼고 있는 북악산입니다. 산 이름에 악이 들어간 산들은 바위가 많은 산이라고 하는데 북악산도 바위가 참 많습니다. 북악산 자락을 종로구와 공유하고 있고 삼청로로 빠르게 청와대 및 종로로 갈 수 있기에 여기에 대사관 가족들이 사는 대사관 사택이 엄청 많습니다.
성북구는 골목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날 잡아서 골목 탐험이나 하자고 지난 6월 쭉쭉 걸어봤습니다. 4호선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로 나오면 그 유명한 나폴레옹 과자점이 나옵니다.
메인 도로는 걷는 재미가 없습니다. 바로 이면도로로 들어서니 한옥 카페인 '성북동 연우재'가 있네요. 이 성북구는 한옥이 꽤 많은 동네입니다. 아무래도 조선시대 4대문 바로 옆 동네이다 보니 지금도 한옥이 참 많습니다.
연우재에서 좀 더 걸으니 여기는 양옥의 커피숍 히도커피가 있네요. 요즘 개성 넘치는 커피숍들이 참 많아요. 그런데 아무리 커피 좋아하는 저도 커피숍이 너무 많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커피숍이 커피만 팔아서 장사하는 곳이 아닌 공간 임대해 주는 역할도 잘하죠. 집도 좁은데 친구들과 수다 떨기 어렵고 파티도 못해요. 웃고 떠들기 딱 좋은 곳들이 이런 카페들이죠. 히도 커피는 일본풍 카페네요.
동네가 정말 앙큼스럽습니다. 한 500m 걸었는데 서울의 다른 지역에서 보기 어려운 다양한 이미지와 아기자기함이 보입니다. 아파트 단지에서만 왔다 갔다 하는 분들은 이런 골목길이 더 감탄스러울 겁니다. 물론 보기에는 좋지만 수시로 지나다니는 오토바이와 차량 때문에 걷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에요.
옷가게도 독특하네요. 성북동을 전면에 내세웠네요.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한옥 그것도 개량 한옥 또는 근대한옥과 양옥이 공존하는 동네가 성북동입니다. 사실 한옥이 살기 좋은 건축물은 아니에요. 그러나 한옥이 주는 장점도 많아요. 다만 한옥에 마당이 없으면 불편함만 있어 보여요. 손바닥만한 공간이라도 마당이 있고 식물을 키우면 딱 좋은데요.
같은 건물이 연속적으로 보이지 않아서 좋네요. 대형 벽화도 있는데 이런 골목을 품은 동네의 최대 단점은 주차 공간이죠. 차 없어도 살 수 있는 동네가 서울인데 차가 가장 많은 동네가 서울이에요.
다시 큰길가로 나왔습니다. 성북로인데 가운데 가르마 같은 중앙 분리대에 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성북동은 아파트가 없어요. 아파트를 지을 수 없는 산기슭이 있기도 하고 짓더라도 주택들을 짓더라고요. 성북천 하류 쪽에는 재개발을 통해서 대형 아파트 단지가 올아가던데 여기 성북동은 앞으로도 아파트가 심어지지는 않을 듯합니다. 그래서 좋아요.
어떻게 보면 별볼일이 없는 동네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독특한 주택 하나하나가 성북동을 아름답게 만드네요.
계단도 참 많습니다. 점점 계단 나오면 짜증이 나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올라가면 다른 풍경이 보이기에 카메라 메고 잘 오르고 내립니다. 게다가 운동도 되잖아요.
좀 더 걸으면 최순우 옛집이 나옵니다. 한국에 국토 여행의 붐을 일으킨 분이 2분이 계십니다. 한 분은 지금도 활약 중이시고 꾸준히 책을 쓰고 계시는 문화재청장까지 하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를 쓴 유홍준이고 또 한 분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쓴 최순우입니다. 최순우는 미술관 관장 출신으로 다양한 예술인들과 교류를 했던 분입니다.
여기가 최순우 선생님이 살았던 집으로 지금은 무료 개방하고 있는 한옥입니다. 전시도 하고 있어서 전시 구경도 하고 공간 구경도 할 수 있습니다.
정갈한 한옥과 뒷마당에서 잠시 더위를 식히고 가도 좋고 사진 찍기도 좋은 공간입니다. 행사도 가끔 하더라고요.
성북로를 건너도 이렇게 한옥풍 건물이 많고 카페도 많습니다. 노후 주택도 많아서 재개발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곳들도 있지만 아파트가 아닌 부분 리모델링 재건축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 촬영지인 대서관저
이번엔 부촌 골목 구경입니다. 이쪽으로 쭉 올라가면 길상사가 나옵니다.
다양한 명소들이 있네요. 여기가 역시적인 공간이 꽤 많아요. 대부분이 조선시대와 연관된 곳들이죠.
길상사 가는 길에 있는 천주교 성당인데 큰 석상과 건물이 굉장히 예쁩니다. 동네 전체가 고급 주택단지라서 그에 걸맞는 모습이네요.
전 도보 여행이라서 걸어가지만 걷는 거 싫어하시는 분들은 마을버스 02번 타고 꼭대기인 우리옛돌박물관에서 내려서 쭉 내려오면서 구경하는 걸 추천합니다. 걷기 좋아하는 저도 오르막길 오르다 숨이 너무 차서 화가 나더라고요. 생각해 보니 여기 사는 사람들은 마을버스 안 타고 주로 기사 딸린 차 타고 다니겠네요. 드라마에서 거기 성북동이죠! 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부촌이잖아요.
이 건물을 보고 오른쪽을 올로가면 외교관들의 집인 성북동 외교관 사택단지가 나옵니다.
경사 보세요. 이거 뭐 겨울에 걸어 올라가기도 어렵겠네요. 경사지에 건물을 짓다 보니 담벼락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곳들이 많습니다. 평창동도 그렇고 고급 주택단지들의 특징은 외부에서 내부를 볼 수 없게 높은 담벼락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의 거대한 성 같습니다. 한옥들은 담벼락 높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이 안을 구경하고 반대로 안에서 바깥 구경을 하게 해서 서로 감시하고 감시받고 하는 공유 시선을 이용한 방범을 이용하는데 여기는 돈이 많아서 시큐리티 업체에 맡기고 오르지 못하게 성처럼 담들 이 높습니다. 사실 정내미는 좀 떨어지긴 합니다. 일부러 자주 찾기는 어렵고 그냥 한번 구경하는 정도로는 좋습니다.
순간 멈칫했습니다. '꿩의 바다' 힙한데? 라고 잠시 멈춰서 검색을 해보니 힙이 아니라 역사네요.
여기는 '꿩의 바다마을'이라고 삼청주택단지 또는 대교단지인 곳으로 1967년 대한교육보험 주식회사가 산 땅입니다. 당시는 빈 터였고 꿩과 온갖 새들이 놀던 꿩의 놀이터였는데 지금은 고급 주택단지가 되었습니다. 이름 재미있네요. 꿩의 바다.
지금 이 지역은 1973년 독일 대서관 사택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일본, 싱가포르, 스웨덴, 엘살보도르, 아일랜드, 캐나다 등등 약 20개 국의 관저가 있습니다.
이 20개 대서관저들에 가장 큰 곳은 독일입니다. 독일 대서관저 지나가면서 봤는데 숲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정도로 아주 크네요.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보니 영화 <기생충>에서 나온 이선균의 저택이 독일 대서관저가 아닐까 할 정도로 크네요. 물론 이선균 저택은 CG를 이용한 가상공간입니다.
너무 가팔라서 잠시 쉬면서 위를 올려다 보니 마치 성곽을 보는 느낌입니다. 여기 대사관저 동네는 20여 개국의 대서관저만 있는 건 아니에요. 재벌 그룹 회장들이 많이 삽니다. 또한 성공해서 큰돈을 번 분들이 많이 삽니다. 네트워크가 중요하더라고요. 인적 네트워크요. 높은 곳에서 사는 상위 1%를 넘어서 대한민국 0.1%는 서로 네트워크가 탄탄히 구축되어 있어요.
박찬욱 감독이 영화계에서 크게 성공한 후 상류층과 함께 하면서 느낀 점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재벌을 악으로 묘사하고 몰상식하고 도덕서 낮은 인간들로 묘사하는데 실제 만나보면 매너들이 다 좋다고 해요. 성격들도 좋고요. 일부 재벌들의 일탈이 있지만 기본 매너들이 좋은 분들이 많아서 놀랐다고 합니다. 이걸 영화 <기생충>에서 이렇게 담습니다.
"부자니까 착한거지"
부자니까 험한 꼴 안 보고 살고 좋은 것만 보고 먹고 만나니 좋아질 수밖에 없다는 소리로 들려요. 그게 맞기도 하고요. 저도 참 착해주고 싶은데 가난하면서도 착해질 수도 있기에 우러러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돈이 없으면 생활이 참 불편한데 반대로 불편해서 주는 즐거움도 있어요. 전 차가 없거든요. 그래서 이런 골목 여행의 재미를 알고 누구도 이런 재미를 쉽게 찾지 못할 거예요.
부자들은 꼬인 게 없고 구김살이 없다는 말! 이 대사가 더 아프게 다가왔어요. 제가 좀 꼬인긴 했죠. 그런데 서민들이 꼬이기라도 하고 웃사람을 씹는 재미라도 있어야지 부자나 정치인들의 행동을 다 이해하고 눼눼눼하고 살아야 해요? 그리고 꼬인게 아니라 비판이 기본 태도여야지 순응하면 그 순간 개돼지가 된다고 생각해요.
싸가지고 온 커피를 마시면서 건너편을 보니 뭔 종이가 보여서 읽어보니 <로열로더>라는 드라마 촬영 안내문이네요. 여기 말고도 좀 더 걸으니 또 종이가 있던데 거기는 또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촬영한다고 하고요. 한국의 비버리힐즈라는 곳이라서 드라마 촬영 많이 하네요. 차도 잘 안 다니고 촬영하기 좋죠.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정과 기우가 찾아갔던 이선균의 저택이 있는 그 골목입니다.
여기 이 장면이죠. 저 높은 담벼락 보세요. 여기는 터키 대서관저입니다. 여기만 찍고 실제 집은 CG로 합성한 집입니다.
좀 더 올라가니 이선균이 사는 집 같은 집이 있긴 합니다. 크기도 크고 양지바른 곳이라서 살기 너무 좋네요. 경치도 어마어마하게 좋을 듯합니다.
돌아보고 탄식이 나왔습니다. 이런 풍경을 매일 본다고? 대단한 행운이네요.
드디어 산꼭대기까지 다 올라왔습니다. 오르막길만 30분 오르니 가슴이 터질 것 같네요. 차도 잘 안 다니고 걷기는 좋네요. 곳곳에서 재건축 향이 나오네요.
노출 콘크리트의 대저택도 있지만
바로 옆에는 이런 한옥건물도 보입니다. 여기는 가구박물관 도로입니다. 돌잔치 장소로도 유명하더라고요.
사람도 안 다니고 조용하고 차도 가끔 다니고 걷기 딱 좋네요. 날은 더웠지만 풍경이 시원시원하네요. 경기도 어느 지역의 타운하우스 느낌이 들 정도예요.
이 성북동 대서관저 마을에 유일하게 다니는 대중교통은 성북 02 마을버스입니다. 마을버스도 큰 버스가 있고 작은 버스가 있는데 작은 버스만 다녀요. 그만큼 수요가 엄청 없다는 소리예요. 외부인이나 타고 여기 사는 분들은 거의 안 탈 겁니다. 특이한 것은 버스가 작은 버스인데 앞과 뒤에 문이 다 있더라고요. 작은 버스는 문이 하나라서 내리고 타는데 짜증이 나는데 개조해서 뒷문도 있네요.
우리 옛돌박물관을 찍고 내려왔습니다. 내려올 때 지도앱 보고 잘 내려와야지 수시로 막다른 골목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내려가는 길에 길상사에 잠시 들렸다가 길가에 산딸기 구경 좀 하다가 내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