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 넷플릭스에서 1위를 하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심은경에게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게 한 동명의 드라마인 <신문기자>입니다. 이 <신문기자>는 일본 아베 전 총리 부인의 사학 비리 사건을 캐는 열혈 여기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일본은 대표적인 순응 국가로 총리가 큰 잘못을 해도 쉽게 덮어지는 나라입니다. 분노를 했으면 그걸 선거에 자신의 분노를 표출해야 하는데 순간 욱하고 말죠.
그럼에도 일본인들도 잘잘못을 가릴 수 있는 능력들이 있습니다. 다만 구심점이 없어서 물방울이 모여서 물이 되고 그 물이 모여서 정치를 뒤집는 성난 파도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신문기자>의 흥행 성공을 보면서 일본도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약간의 희망도 가지게 됩니다.
이게 일본뿐이겠습니까? 지상파 3사들은 연일 선사시대를 빼고 역사물에 로맨스를 접붙인 퓨전 사극 로맨스물과 재미 지상주의 재미도 없는 드라마만 주로 만듭니다. 가끔은 좋은 사회고발 드라마도 나오지만 쉽게 나오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시청률에 휘청이는 구조에서는 어렵죠.
그러나 넷플릭스는 다릅니다.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고 다양한 소재와 재미의 드라마를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사회고발 드라마는 넷플릭스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일본 <신문기자> 열풍 이면에는 넷플릭스이기에 제작이 가능한 드라마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단 일본만 그럴까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2021년 화제작이었던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육방부의 변명과 해명을 유도했을 정도로 사회적인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육군은 <D.P>가 연일 사회 이슈가 되자 전병력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하는 등의 행동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리고 이와 결이 같은 또 하나의 드라마가 연일 화제입니다.
촉법소년에 대한 사회적 이슈와 갈등을 정면으로 담은 드라마 <소년심판>
촉법소년이라고 하죠. 남에게 큰 피해를 넘어서 살인까지 해도 만 14세 미만 촉법소년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많아야 중학교 2학년 보통 중학교 1학년 이하 학생들은 살인을 해도 큰 상해를 입혀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은 이 촉법소년 법에 대해서 거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표출합니다.
이런 촉법소년를 다룬 영화가 2014년 <방황하는 칼날>이었습니다. 일본 원작 영화로 일본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촉법소년 논란이 매년 논란입니다. 중학교 1학년 정도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고 자신의 행동을 판별할 수 있는 아이들도 많은데 어리다고 형사 처벌을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몰상식한 것 아니냐고 하는 비난이 많고 실제로 몇몇 촉법소년은 어떤 짓을 해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에 이용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반면 막 피어나는 아이에게 범죄자라는 딱지를 붙여서 평생 범죄자라는 꼬리표로 살게 해서 갱생보다는 더 범죄의 늪으로 빠져 들게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실제로 국제 여론은 촉법소년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음에도 갱생을 통해서 새로운 삶을 사는 아이들도 많다면서 촉법소년 연령을 만 14세에서 13세로 낮추는 걸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잔혹 무도한 촉법소년 사건을 보면 우리는 오늘도 분노를 끊지 못하게 합니다.
이 촉법소년을 정면으로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가 <소년심판>입니다. 미리 말하면 전 이 드라마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실제로 2월 말에 오픈했을 초기에는 <오징어게임>이나 <지금 우리 학교는>처럼 단박에 1위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주일이 지나고 지금은 한국 넷플릭스 인기 1위에 올랐습니다. 이 드라마는 몰아보는 흡입력은 높지 못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보게 하는 힘이 좋은 드라마입니다.
처벌의 심은석 판사와 온정의 차태주 판사
어른의 정의는 뭘까요? 저는 책임을 지는 사람은 어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니 80살 먹고도 자기 행동에 반성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사람은 어린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10살이라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책임지려는 그 자세를 가지면 모두 어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키워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일이자 선배 어른들의 역할입니다.
이에 너무 나이가 어려서 사리판단력이 떨어지고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는 나이인 14세 미만 아이들을 우리는 촉법소년이라고 법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촉법소년들을 관리 감독하는 역할까지 사회가 합니다. 드라마 <소년심판>은 일반 형사와 달리 촉법소년이나 미성년을 다루는 소년 법정 시스템을 소개하면서 시작합니다. 처벌이 목적이 아니기에 검사 없이 판사가 훈육 겸 판결을 통해서 가해자 청소년들의 반성을 이끌어 내고 갱생을 통해서 잘못된 길로 다시 가지 않게 인도해 주는 역할이 소년법정 판사의 역할이라고 소개합니다.
김무열이 연기하는 차태주 판사는 온정주의자 판사로 각종 가해를 가한 청소년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햇볕정책을 펼치지만 차태주 판사와 달리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은 감정이 없는 김혜수가 연기하는 심은석 판사가 소년형사합의부에서 함께 일합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심은석 판사는 소년범들을 혐오합니다. 그것도 아주 극도로 혐오합니다. 소년범들을 갱생이 불가능한 존재라고 인식하죠. 이런 시선은 초반에 무척 거부감이 듭니다. 그럴 거면 뭐하려고 소년범들을 법이 처벌보다는 갱생을 하는 존재로 보겠어요. 그러나 심은석 판사의 판결이나 행동을 보면 가혹한 처벌이나 혐오를 직설적으로 내보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공명정대해서 보다 보면 이런 판사가 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법으로 보호하는 촉법소년 제도 속에 더 큰 눈물을 흘리는 피해자를 보다
많은 분들이 김혜수가 연기하는 심은석 판사의 판결과 행동에 속 시원함을 느낀다고 하죠. 심은석 판사는 올곧은 소리만 합니다. 얼마나 올곧은지 자신의 상관의 비리를 보고 못 본 척하는 것이 아닌 올바른 길을 가라고 안내까지 합니다.
심은석 판사는 이 일로 상관을 내부 고발하는 조직을 깨려는 미운털이 제대로 박히고 너무나 감정없는 행동을 보여서 정이 안 가는 캐릭터이지만 심 판사의 속마음이 담긴 판결을 보면 속이 뻥 뚫리는 느낌까지 듭니다. 그 이유는 심은석 판사의 판결에는 피해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피해자를 뼛속까지 생각하는 판결이 담겨 있습니다.
드라마 <소년심판>은 히어로물이 아니지만 마치 가해자를 처단하고 피해자를 법으로 보호해주는 모습 속에서 청량감까지 줍니다. 이런 모습을 통해서 재미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그럼 모든 가해자는 갱생 불가능한 인간들이고 어린 나이에 범죄자 낙인을 찍고 살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이런 급발진 같은 생각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주는 것이 차태주 판사입니다. 차태주 판사는 자신이 판사가 된 이유를 설명하면서 심은석 판사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도 내고 반대로 차태주 판사는 심은석 판사를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게 합니다. 이렇게 냉정과 온정의 2개의 엔진으로 사건을 대하는 모습 자체가 촉법소년을 바라보는 2개의 시선이 느껴져서 무척 좋았습니다.
실제 촉법 소년 사건을 소재로 담아서 더 몰입감이 좋았던 <소년심판>
이 드라마가 호평을 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없는 사건을 만들어서 소재로 삼은 것이 아니 실제 사건을 적극적으로 소재로 삼았다는 겁니다. 특히 죄질이 좋지 못하고 반성이 없던 촉법소년과 청소년 범죄를 적극적으로 담아서 반성하지 않았던 실제 사건의 청소년 범죄인들의 여론재판을 이끌어냅니다. 모르긴 몰라도 해당 사건 가해자 청소년들은 이 드라마의 존재만으로도 두렵고 떨릴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사적인 복수를 법에서는 금지하고 있지만 그런 법 때문에 피해자는 더 큰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사회적 공감입니다.
따라서 가해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치루어야 하고 그게 다음의 더 큰 범죄로 이어지지 않게 할 수 있음을 드라마 <소년심판>은 보여줍니다. 이와 함께 청소년 범죄자들이 어떻게 갱생을 하는지와 구조도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청소년 쉼터 같은 곳을 보여주면서 사회가 국가가 어떻게 이 비행청소년들을 다루는 지도 잘 보여줍니다. 단순히 촉법소년은 엄벌로 다스려야 한다는 여론에 대해서 생각보다 이 일은 복잡하고 많은 장치가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잘 보여줍니다.
생각보다 가정과 사회와 어른이 할 역할이 많다는 드라마 <소년심판>
현재 서울대미술관에서는 밤을 넘는 아이들이라는 전시회가 3월 13일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전시회는 놀랍게도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청소년들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위 작품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인형이 뱅뱅 돌아가는데 밑에 있는 물체에 다가갔다가 순간 소름이 돋았습니다.
아시겠죠? 아이들 때릴 대 사용하는 사랑의 매라고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사람을 때리는 폭력의 도구입니다. 저도 참 많이 맞고 자랐고 맞는 걸 참 많이 봤습니다. 왜들 그렇게 때리는지요. 지금도 패서 사람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분들이 있지만 잘못된 경우도 많습니다. 중요한 건 애정과 관심입니다. 물론 때리는 것도 관심의 잘못된 표현이라고 해도 관심이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만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유발합니다.
맞고 자란 아이들이 때리는 아이가 되기 쉽죠. 모든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그 습관을 누구에서 배웠겠습니까? 학교에서 집에 있는 어른들에게 배웠겠죠. <소년심판>을 보다 보면 가정 불화와 폭력 등이 원인이 되어서 불량 청소년이 된 아이들을 많이 보여줍니다. 항상 이런 말을 하면 모든 불우한 환경의 소년이 다 비행청소년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하지만 제 경험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아실 거예요. 불우한 환경의 소년, 소녀들이 비행청소년이 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요.
그 아이들을 불우한 환경에서 격리시키고 불우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어른들을 다그치는 모습이 많이 담깁니다. 반대로 부유한 청소년의 범죄였던 시험 답안지 유출 사건을 통해서 이게 불우, 부유의 문제가 아닌 청소년 문제이며 가난하고 부자의 부모님을 둔 차이가 아닌 올바르지 못한 어른들이 불량 청소년을 키운다는 걸 보여줍니다.
마치 소년판사들은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비록 행동은 잘못되었고 엄하게 처벌해야 하지만 아이들이 실수나 실패가 인생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임을 알게 해주는 모습에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소년 재판은 속도전이라고 외치던 신임 부장 판사를 통해서 아이들은 속도가 아닌 관심과 애정과 관찰임을 알게 해 줍니다.
배우들의 연기를 말을 안 할 수 없네요. 김혜수야 워낙 연기 잘하는 배우라서 거론하지 않겠지만 김무열 연기에 수시로 감탄했습니다. 선하고 악한 이미지를 모두 표현할 줄 아는 김무열 배우를 보고 있으면 한국 배우라서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까지 드네요. 왜냐하면 이 배우가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나온다는 자체가 행운이라고 느껴지게 하네요.
심은석 판사가 왜 냉혈인이 되었는지는 드라마 후반에 나옵니다. 심은석 판사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뒤집어서 모두가 무관심하면 한 아이가 제대로 자랄 수 없다고 말을 하죠. 우리의 무관심 단순히 뉴스에 나오는 몇 줄만 가지고 촉법소년을 여론 재판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차태주 판사를 통해서 그리고 변화해가는 심은석 판사를 통해서 역설적으로 보여주네요.
물론 비판을 받을 부분도 있죠. 판사가 수사까지 하는 건 좀 오버이고 가상의 소년형사합의부를 담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드라마적인 요소 때문에 100% 현실 반영 드라마는 아니라는 점은 감안해도 과도한 폭력 묘사 수위를 낮춰서 누구보다 이 드라마를 봐야 할 청소년들도 보고 이해할 수 있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이 드라마가 청소년 범죄를 단죄하려고만 하는 여론재판 형성의 핵심 계층인 어른들에게도 당신들도 유죄임을 알게 해주는 것 같아서 깊게 비판이 들어가긴 어렵네요.
뉴스가 물어다주는 단 몇 줄로 한 인격체를 평가하지 말고 촉법소년 사건을 깊고 오래 보고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안내하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사회 문제를 이렇게 잘 담을 수 있었던 이유는 넷플릭스라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추천하는 드라마 <소년범죄>는 우리 사회를 보다 성숙하게 하는 단비 같은 드라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