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많이 했지만 영화가 내가 원하고 바라던 모습 보다는 너무 주인공들의 행동에만 초점이 맞춰져서 실망했습니다. 주인공이라는 개인이 아닌 그 시대을 살았던 30대 이상의 삶의 지도와 생태계를 송두리째 바꿨고 그 바뀐 생태계의 엄혹함이 지금까지 아니 더 진해지고 있는이 중차대한 사건을 주인공들에게만 초점을 맞춰서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전 이 영화를 추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고발하고자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고 뚜렷하고 우리 모두 마음 속에 새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1997년 국가 경제 국치일 IMF를 담은 영화 <국가부도의 날>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만들어진다는 소리가 무척 반가웠습니다. 현재의 20대, 30대들의 삶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1997년 IMF 사태가 왜 일어났는 지를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단언컨대, 6.25 전쟁 이후에 내 삶을 가장 크게 변화 시킨 것은 단연코 IMF입니다. 1987년 6,10 민주항쟁이나 4.19 민주 혁명이 있긴 했지만 이런 것들은 일부의 삶에 변화를 주고 정치 변화라는 간접적인 영향만 주었지만 IMF는 한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줬습니다.
아직도 기억납니다. 1997년의 그 어처구니 없는 해를요. 1996년 12월 1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은 소득 1만 달러 시대가 되었다면서 선진국 클럽인 OECD 에 세계 32번 째로 가입 국가가 되었다며 축포를 쏘아 올렸습니다. 이때만 해도 1997년 한국 경제 성장률이 6%라는 장미빛 전망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1997년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면서 동남아시아 국가의 달러 가뭄으로 인한 국가 부도 사태가 일어나면서 불안불안했습니다. 사람들은 한국 경제에도 영향을 주는 것 아니냐고 조마조마 했습니다만 한국 경제를 담당하던 경제 수장들은 한국은 경제 기초 체력이 좋은 나라라면서 한사코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800원 하던 원 달러 환율이 계속 오르기 시작하고 주가가 곤두박질 치기 시작하면서 국민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과 무능한 김영삼 대통령과 경제 수장들은 문제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많은 기업들이 부도가 나기 시작하고 경제 붕괴의 조짐이 보이자 정부는 12월 3일 IMF로 부터 무려 550억 달러라는 달러 수혈을 받아서 국가 부도 사태를 겨우 겨우 막습니다. 많은 국민들은 이 진행 과정에서 큰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바로 며칠 전에는 경제 문제가 없다고 한 정부 관계자가 며칠 후에 갑자기 국제라는 이름을 단 투기 자본인 미국 헤지펀드라고 볼 수 있는 IMF 자금을 빌립니다. IMF에게서 달러를 빌린 대가는 아주 혹독했습니다.
기준 금리는 12.5%에서 무려 30%까지 끌어 올립니다. 금리가 30%면 돈을 빌려서 사업하는 기업들은 그냥 다 죽으라는 소리입니다. 여기에 원 달러 환율은 2천원 대까지 폭등을 합니다. 종금회사는 모두 폐쇄가 됩니다. IMF 때 부도 맞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했습니다. 많은 가정들이 붕괴를 했고 평생 직장의 개념은 사라졌습니다. 회사에서 해고 당했지만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출근한다고 하고 양복 입고 산에 올라가서 술을 마시던 직장인들이 많았습니다.
IMF 사태가 일어나는 과정을 담아줘서 고마웠습니다. 영화 <1987>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고귀한 영혼들에 대한 감사패였다면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한국이 외국 자본에 의한 경제 주권을 내놓는 실패의 역사를 제대로 그려주길 바랬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밀도 높지도 흥미롭지도 긴장감도 공감대도 높지 않은 영화가 나왔네요
3개의 시선으로 담은 친절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
국가 경제 수치일인 IMF 사태를 묘사하기 위해서 영화는 3명의 시선을 투입합니다. 1개의 시선은 IMF 협상 과정을 담고 우리 국민들이 잘 모르던 IMF 졸속 협상 과정에서의 드러나는 당시 경제 수장들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을 끄집어 내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 분)니다. 가장 메인이 되는 시선입니다. 또 하나의 시선은 금융회사를 다니다 국가 부도 사태을 예감한 후 위기를 기회 삼아서 큰 돈을 버는 윤정학(유아인 분)입니다. 윤정학은 공매도처럼 국가 부도에 배팅을 합니다.
또 하나의 시선은 1997년 국가 부도 사태에 직격탄을 맞는 소기업 사장이자 소시민인 갑수(허준호 분)입니다. 이렇게 3개의 시선이 맞물려 돌아갑니다. 이런 방식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다룬 영화 <빅쇼트>와 비슷합니다.
21세기 한국의 유일한 철학인 경제를 우리는 참 모릅니다. 그래서 경제를 잘 아는 사람들의 농간에 쉽게 휘둘립니다. 경제를 잘 알고 경제 권력을 잘 휘두르려면 국민들이 경제에 잘 몰라야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민들이 경제의 기본 개념조차 잘 모릅니다. 학교에서 경제에 대한 교육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이죠.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이런 국민들이자 관람객들의 경제 이해도가 낮음을 잘 알고 복잡한 경제 용어 대신에 친절한 설명을 곳곳에 넣습니다.
금융회사에 다니다 국가 부도에 배팅을 한 윤정학은 투자자들 앞에서 한국이 왜 위기를 넘어 국가 부도 사태가 일어나는 지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합니다. 이 설명은 아주 친절하고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1997년 당시 한국 경제는 다단계 경제라고 할 정도로 대기업들의 부채가 심했습니다. 300% ~600%는 기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담보 없이 금융권에서 돈을 그냥 막 빌려줬습니다.
지금이야 대기업이 돈을 빌리려고 해도 대출 심사를 꼼꼼히 받아야 하지만 당시는 대출 심사를 안 하거나 대충 하거나 정치권과 연루되어서 쉽게 대출을 해줬습니다. 이런 다단계 경제는 높은 경제성장률 상태에서는 모두가 해피할 수 있었습니다. 돈을 빌려서 투자해서 더 큰 돈을 벌면 빌린 돈을 쉽게 갚으니까요. 그러나 대기업이나 기업이 발행한 어음이 부도가 나고 금융회사가 파산을 하면 모두가 망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묻지마 대출과 부채도 자산이라고 질주하는 한국 경제는 IMF가 아니더라도 큰 폭발을 일으킬 것은 자명했습니다. 다만 그 폭발로 인해 우리 스스로가 대책을 마련하고 체질 개선을 하면 좋지만 외국 자본이자 투기 자본인 IMF에 의해 강제로 경제 개혁을 하게 되면 투기 자본 세력만 좋게 해주는 꼴이 됩니다.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 분)은 국가부도 사태를 막을 수 없다고 해도 IMF가 아닌 일본, 미국과 같은 정부로 부터 달러를 빌려서 급한 불을 끄고자 했습니다. 한 마디로 통화 스왑으로 타결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런 한시현의 시선을 낮춰보고 깔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재정국 차관(조우진 분)입니다.
양극화의 시작을 만든 재정국 차관 강만수
정말 영화 보면서 한 대 패주고 싶었습니다. 얼마나 밉상인지 스크린을 뚫고 들어가서 아구창을 날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국가부도의 책임을 져야 할 책임자인 재정국 차관은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할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이 나쁜 것은 아니고 저도 동조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시 한국 경제는 다단계 경제라고 할 정도로 거품이 아주 심했습니다. 수출은 제대로 되지 않는데 신용 거래로 경제의 거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지나간 일이지만 이 IMF가 많은 가정과 기업을 도산시켰지만 한국 기업들의 세계로의 진출과 도약을 하는 계기가 된 것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1997년 이전 경제가 온실 속 화초에서 대기업이 자랐다면 1998년 부터는 전 세계 제조업체와 서비스업체와 같은 링에서 뛰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나가 떨어져 나간 국내 기업이 있는가 하면 승승장구해서 글로벌 기업이 된 국내 기업도 많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경제 체질 개선을 우리 스스로가 아닌 외국 투기 자본에 의해서 하는 것은 많은 부작용을 야기합니다. 영화에서 재정국 차관은 국가부도가 나길 바라는 인물이자 IMF를 신봉함을 넘어서 IMF를 대변하는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물론, 과장이 있다고 하지만 당시 재정부 차관이 이와 비슷한 행동을 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이 밉상이 누굴까 검색을 해보니 강만수네요.
강만수 이사람이 누굽니까? 이명박 정권 시절 경제 수장인 기획재정부 장관을 했던 분으로 한국 경제를 말아먹는데 초석을 다진 분입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산업은행장이 되어서 대우조선해양 대출 비리에 연루되어서 징역 5년 2개월의 선고를 받고 지금 복역중입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는 강만수라고 나오지 않지만 이 강만수라는 실존 인물을 참고했음은 틀림 없습니다. IMF 이후 한국은 돈이 돈을 버는 세상,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빈자는 더 빈자가 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1990년대 한 여론 조사에서 국민 85%가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하던 꽃 같은 시절을 끝내고 국민 대부분이 서민이라고 생각하는 시대로의 전환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분입니다.
영화 부도 사태까지 갔다가 마지막 10분이 부도를 막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영화 중반 이후 후반까지 점점 실망스러운 모습이 많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먼저 이 3개의 시선, 즉 IMF 협상팀의 시선, 위기를 기회로 삼는 기회주의자의 시선과 대다수의 국민들이 보고 싶어하고 기대했던 당시 국민의 고통을 담은 3개의 시선이 유기적으로 잘 돌아가지 않고 3개의 이야기가 어울리지 못하고 3개의 각자의 시선으로 흐릅니다.
이중에서 당시 국민들이 겪는 고통을 좀 더 심도 높고 깊고 넓게 담아줬으면 했습니다. 그래야 IMF가 왜 한국에서 발생했고 지금의 20,30대들 태반이 비정규직으로 취직을 하는 지 설명이 됨을 넘어서 다시는 이런 일이 한국에서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당시의 살벌한 풍경이 생각보다 크게 담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협상팀인 한국은행의 한시현의 시선이 가장 크게 담깁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당시 협상이 해피엔딩이 아닌 새드엔딩인 걸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관객들은 실패한 역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미 <남한산성>이 그걸 잘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어차피 망하는 이야기인데 그걸 자세히 담는다고 결과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한시현이 현명한 대답을 내놓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당시 협상이 얼마나 졸속이었는지만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이 시선 중요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감시하고 따지고 물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건 영화적 재미로 위한다면 볼륨을 줄였어야 합니다.
오히려 허준호가 연기하는 소시민이자 공장 사장인 갑수 이야기를 더 확장해야 했습니다.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채 성실히 살면 모두 성공할 줄만 알았던 시대에서 유전무죄, 무전 유죄의 새로의 전환과 함께 이 살벌한 경제의 체질 변화로 이끈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와 한국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모피아(경제 마피아들)의 비열하고 저열한 태도와 사악함을 많이 담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관객이 원하지 않은 한시현을 너무 부각시킵니다. 유아인이 연기한 윤정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 대부분이 망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이 큰 돈을 버는 기회가 되었고 이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좋은데 이게 그렇게 중요하게 알려야 할 정도인가? 자본꾼이 어떻게 자본꾼이 되어가는 지를 보여주는 것은 이해는 하지만 꼭 필요한 캐릭터라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한시현과 윤정학이 만나는 관계도 대립하는 관계도 아닙니다.
이렇게 영화는 3개의 시선이 각자 따로 노는 느낌이 들다 보니 영화 중반부터 지루함이 스물스물 피어납니다. 세계적인 배우인 뱅상 카셀이 IMF 총재로 나오고 잠시 눈요기를 하게 하지만 긴장감도 높지 않습니다. 차라리 IMF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을 비교하면서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주면 좋으련만 그런 것이 많지 않네요. 그렇게 1997년 IMF 사태 이후 자살증가율이 47%가 늘었다는 단 몇 줄의 말로 퉁 치고 넘어갑니다.
스크린이 검게 변하면서 영화가 끝나는 것 같았습니다. 순간 드는 생각은 이 영화 부도 났다! 망했다! 였습니다. 깊은 빡침이 밀려왔습니다. 만기 어음이 최종 부도 처리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 20년이 흐른 2018년이 보여집니다.
한시현 팀장과 재정국 차관 그리고 윤정학이 보입니다. 각자 경제계에서 활동을 하면서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는 한국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외국 투기 자본의 ATM기기라고 불리는 한국 사회를 살짝 보여줍니다. 그리고 한시현은 대국민 포고를 합니다. 수천 조에 달하는 가계 대출에도 현 정부가 괜찮다고 하는 것에 반기를 듭니다.
보셨죠? 1997년 경제부 수장들이 국민들을 어떻게 속였는지 보셨죠? 누구든 믿지 마시고 특히 정부 경제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마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항상 깨어 있는 시민이 되라고 말합니다. 이 마지막 10분이 그나마 이 부도 직전의 영화를 살렸습니다. 물론 이 직설 화법이 세련되지 못한 것은 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많은 국민들에게 하고자 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아주 잘 전달해주고 있네요.
한국 경제는 또 한 번의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낮은 금리로 인한 수천 조의 가계 대출로 인해 또 하나의 경제 붕괴의 파고가 시작될 지 모릅니다. IMF 당시에는 기업이 망했다면 이번 제2의 경제 붕괴는 수많은 가계가 붕괴될 수 있다고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 자체는 좋지 못하지만 꼭 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 및 충고가 꽤 좋네요.
아쉬운 시나리오, 아쉬운 연출의 <국가부도의 날>
좋은 배우들 참 많이 나옵니다. 김혜수, 허준호, 유아인, 뱅상 카셀 그리고 때리고 싶었던 밉상 연기의 달인 조우진까지 배우들의 연기는 좋습니다. 다만 유아인의 오버스러운 연기는 이상하게 눈에 거슬리네요. 캐릭터 자체가 자본가의 냉혈한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쓸데 없어 계몽적입니다.
시나리오 자체도 아주 유기적이지 못하고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연출을 통해서 당시의 고통의 밀도를 높여줄 줄 알았지만 그런 것도 없습니다. 당시 방송 자료가 그 밀도를 높여줄 분 이야기 자체가 주는 고통의 깊이는 깊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 특히 지금의 10,20대 분들이 IMF가 왜 일어났고 그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의 차이를 배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한때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공무원 사회에서만 통하는 말이죠. 비정규직이 일상이 된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발화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영화가 주는 재미 보다는 이 영화를 통한 이야기가 많이 피어났으면 하네요.
별점 : ★★☆
40자 평 : 영화 자체의 재미 보다 영화의 소재가 더 인상 깊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