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히로세 스즈' 때문에 봤습니다. 한 배우에 꽂히면 그 배우의 필모를 보면서 볼 수 있는 영화는 가능하면 많이 보려고 합니다. 요즘 제가 꽂힌 일본 배우는 '히로세 스즈'입니다

 

'히로세 스즈'를 처음 본 건 2015년 상영한 <바닷마을 다이어리>입니다. 어린 스즈를 연기하는 이 배우가 차세대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가 될 것이라는 소리에 관심있게 봤습니다. 맑으면서도 차분한 모습과 과하지 않게 하는 연기가 참 좋았습니다. 이때만 해도 그냥 흔한 아이돌 스타 같은 느낌이었는데 2016년 출연한 영화 <분노>에서 이 배우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 <분노>에서는 아주 힘들고 어려운 캐릭터를 연기합니다. 촉망 받는 배우가 어려서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운 역할을 맡는 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히로세 스즈'는 했습니다. 이후 이 배우는 뭔가 다르구나라고 생각하고 출연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챙겨보고 있습니다. 


'POOQ(푹)'에서 일드 <중쇄를 찍자>를 다 보고 나니 일드 <아노네>가 추천 목록에 떴습니다. <아노네>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히로세 스즈'가 주연이라서 닥치고 봤습니다. 

약간 톰보이 느낌이라서 '히로세 스즈'의 침 좀 뱉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봤는데 이 드라마 청소년의 반항을 담은 드라마가 아닌 오히려 그 반대에 있는 드라마입니다. 


가슴 아픈 드라마가 잔잔하게 흐르는 일드 아노네

2018년 1월 10일부터 3월 21까지 일본 NTV에서 10부작으로 방영된 일드 <아노네>는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유사 가족의 따뜻함을 담은 드라마입니다. 어떻게 보면 고레에다 히로카츠 감독의 영화 <어떤 가족>과 비슷한 소재의 드라마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참 구구절절한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10대 소녀인 하리카(히로세 스즈 분)는 부모님에게 버림 받고 여러 보육원을 전전하다가 홀로 사는 고아입니다. 청소업체에서 근무하면서 고독사로 죽은 집을 청소하는 일을 합니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함께 인터넷카페에서 숙식을 하는 정말 보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로 불쌍하고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무리 '히로세 스즈'가 출연하지만 너무 어둡고 아파서 보다가 말았습니다. 하지만 하리카는 자신의 처지를 방관하지도 비난하지 않고 세상을 탓하지도 않습니다. 풀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지만 세상과 끈을 놓지 않는 이유는 채팅 앱에서 만난 유일한 온기인 '카논'입니다. 

하리카의 유일한 낙은 카논과의 채팅입니다.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카논과 수다를 떨면서 피로를 풉니다. 어느날 같은 처지에 있는 인터넷카페에서 함께 기거하는 친구가 해변가 트라이포트에서 누가 버린 현금 뭉치가 든 가방을 봤는데 발견 당시 모르는 사람과 함께 있어서 그냥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 돈을 같이 찾으러 가자고 합니다. 그렇게 10대 소녀 3명은 현금 가방을 찾으로 바닷가로 갑니다. 


루이코(코바야시 사토미 분)와 카지(아베 사다오 분)은 죽을 곳을 찾고 있습니다. 카지는 암 말기 환자로 시한부를 선고 받았은 후에 남은 생을 루이코와 함께 하려고 합니다. 루이코는 속사정이 있지만 제대로 밝히지 않습니다. 다만 카지와 함께 죽을 곳을 찾고 있습니다. 


드라마의 제목이자 이 드라마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 및 따뜻한 온기로 주변 사람을 녹이는 역할을 하는 아노네(다나카 유코 분) 아줌마는 1년 전에 남편을 떠나 보낸 후 홀로 살고 있습니다. 변호사 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 남편의 인쇄 공장 2층에서 먹고 잡니다. 어느날 출근 길에 1층 공장 마루 바닥 속에서 위조 지폐를 발견합니다.

깜짝 놀란 아노네는 이 위조지폐를 바닷가 트라이포트에 버립니다. 스즈와 친구들은 아노네 아줌마가 버린 위조지폐 가방을 발견하지만 친구 1명이 배신해서 혼자 들고 튑니다. 이 뒤를 아노네 아줌마가 추격을 합니다. 마침 지나가던 루이코와 카지가 돈 가방을 보고 같이 돈 가방 쟁탈전을 합니다. 

그렇게 위조지폐는 추격전 끝에 아노네 아줌마에게 돌아가고 아노네는 그 위조지폐를 태웁니다. 인터넷 카페로 돌아온 하리카는 자신의 주머니에 몇 장 남아 있던 지폐를 꺼낸 후 자세히 보니 일련번호가 동일한 점을 의심합니다. 아노네 아줌마를 찾아가서 일련번호가 같은 지폐를 주면서 자초지종을 묻습니다. 


하리카는 돈이 필요합니다. 친한 채팅 친구인 카논이 난치병에 걸려서 오래 살지 못합니다. 최신 기술이 들어간 치료법으로 치료가 될 수 있다는 실낱 같은 희망이 있지만 카논은 치료비를 낼 돈이 없습니다. 이에 더 가난한 하리카는 카논을 치료할 돈을 구할 방법을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리카의 추궁에 아노네 아줌마는 남편이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쇄기로 위조 지폐를 만들었다고 고백합니다.

이에 하리카는 감옥에 가도 좋으니 위조 지폐를 만들자고 제안을 하지만 일언지하에 아노네 아줌마는 그 제안을 거절합니다. 대신 여기서 자고 가라고 합니다. 피신처가 아닌 집에서 잠을 잔 하리카는 아노네 아줌마에게서 온기를 느낍니다. 하리카는 인터넷 카페가 아닌 집에서 잠을 자면서 아노네 아줌마의 공장을 청소하는 알바를 얻게 됩니다. 

죽을 곳을 찾던 루이코와 카지 커플은 아노네 아줌마가 위조 지폐를 찍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공장을 몰래 침입합니다. 마침 공장으로  돌아오던 하리카와 다툼을 하다가 함께 합승차를 타고 카지의 덮밥집으로 돌아옵니다. 루이코, 카지 그리고 하리카 앞에는 총을 든 카지의 동창생이 서 있었습니다. 

카지의 동창생은 권총으로 사람을 죽인 사람으로 아노네 아줌마의 딸로 착각한 하리카를 납치한 사진을 찍어서 아노네 아줌마에게 스마트폰으로 보냅니다. 몸 값은 1천만엔(약 1억원). 하리카가 아노네 아줌마의 딸이 아니라는 건 하리카 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자신의 딸이 아니기에 1억원이라는 큰 돈을 몸 값으로 낼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노네 아줌마는 그 아이를 풀어 달라면서 1억원을 주겠다고 합니다. 


어둠을 녹이는 달빛의 온기를 지닌 아노네 아줌마

하리카와 죽음을 앞둔 또는 삶을 포기한 듯한 루이코와 카지 중년 커플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리카는 부모로 부터 버림 받은 거대한 슬픔의 강이 흐르고 카지는 말기 암 환자입니다. 루이코도 버림 받은 상처가 있는 중년 아줌마입니다. 

이 3명은 모두 돈이 필요합니다. 하리카는 온라인 친구를 넘어서 오프라인 친구가 되고 싶은 카논의 치료비를 구하고 싶고 루이코와 카지는 한 탕 한 후에 세상을 떠나고 싶어합니다. 물론 3명 모두 그게 불법이고 큰 죄임을 잘 압니다. 그러나 하리카는 그걸 각오하고 카논이 언제 죽을지 몰라서 큰 돈을 구해야 합니다. 마침 위조 지폐를 찍었던 전적이 있던 아노네 아줌마 인쇄소에서 찍으면 됩니다. 그러나 위조 지폐 위조가 쉬운 게 아닙니다.


이때 남편이 운영하던 인쇄소에서 근무했던 에이타(나카세코 리이치 분)이 자신이 이 인쇄소 윤전기를 이용해서 위조 지폐를 만들 줄 안다면서 함께 만들자고 제안을 합니다. 일언지하에 이 제안을 거절한 아노네. 그러나 5명의 사람은 위조 지폐를 함께 만듭니다. 

한국 드라마 답지 않습니다. 한국 드라마처럼 1,2회에 대규모 액션이나 거창하고 요란한 야단 법석을 떨어서 시청자의 혼을 쏙 빼놓는 전술이 없습니다. 오히려 1,2회만 보면 너무 무겁고 어둡고 축축합니다. 하리카의 채팅 친구인 카논 만이 제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처럼 보이지 나머지는 모두 삶의 궤도를 이탈하거나 방치된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 보면 볼수록 매력적입니다. 비록 어두운 삶을 살고 있는 10대 하리카지만 천성은 맑고 고와서 거부할 수 없습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듯한 루이코, 카지 중년 갱단도 천성이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게 외롭고 어두운 하리카, 루이코, 카지 커플은 달빛의 온기를 가지고 있는 아노네라는 아줌마를 만나서 자신들의 본 얼굴을 가지게 됩니다. 

아노네 아줌마도 상처가 많습니다. 남편은 1년 전에 죽었고 남편이 바람펴서 생긴 사생아를 키웠습니다. 상처가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상처에 쉽게 공감하고 이해합니다. 아노네 아줌마는 그렇게 태어나서 온기를 느껴 본 적이 없는 하리카를 친딸처럼 대합니다. 또한 갱단 같은 중년 커플도 품습니다.

이렇게 아노네 아줌마, 하리카, 루이코, 카지와 함께 유사 가족을 만들어서 삽니다. 태어나서 전골을 처음 먹어 본다는 하리카를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은 가족 이상의 따뜻함을 보여줍니다. 드라마 초반의 습하고 어둡던 모습은 사라지고 코다츠 테이블에서 귤을 까먹는 가족의 온기를 보여줍니다. 특히 아노네가 보여주는 뜨거운 온정은 보는 시청자를 훈훈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렇다고 아노네 아줌마가 부처님은 아닙니다. 아노네 아줌마의 상처를 친딸은 아니지만 친딸처럼 되어가는 하리카가 안아줍니다. 이렇게 세상에 상처 받은 4명이 오순도순 살고 있을 때 위조 지폐를 만들었던 에이타가 불쑥 끼어들면서 드라마는 다시 긴장감을 유지하게 됩니다. 


돈에 대한 열망과 온정을 잘 녹여낸 아노네

시나리오가 아주 뛰어나지는 않습니다. 설명되지 않거나 부자연스럽게 이어가는 스토리가 있고 가끔 덜컹거리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드라마가 힘이 아주 좋습니다. 일드 <아노네>는 위조 지폐 제조라는 위험함과 유사 가족의 온기의 줄타기를 아주 잘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돈을 좋아합니다. 돈 자체를 좋아하기 보다는 돈이 가진 힘 또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자유를 얻기 위해서 오늘도 필사의 노력으로 돈을 법니다. <아노네>는 유사 가족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위조 지폐를 제조하는 과정을 통해서 돈에 대한 물음을 던집니다. 돈으로 목숨을 살 수 있다면? 돈으로 마음까지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리카와 카논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이 위조 지폐 제조의 위험함과 가족의 온기가 양립하면서 끝까지 나아갑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를 묻는 일드 <아노네>

올해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차지한 일본 영화 <어느 가족>은 피가 섞이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서 가족 형태를 이루면서 사는 유사 가족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라리에 대한 칭송을 많이 하지만 가족 간의 폭력 사건이나 다툼도 참 많이 봅니다. 

가족이 주는 용기도 많지만 가족이 주는 상처도 참 많죠. 그럼에도 미우나 고우나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울고 웃고 눈물 짓고 삽니다. 이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가족으로 인해 상처 받고 고통 받는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결계를 깨고 뛰쳐 나오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영화 <어느 가족>에서 처럼 아이를 방치하고 버리는 부모 밑에서 사느니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남이지만 누구보다 알뜰살뜰 보살펴 주는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육체 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 마치 길냥이를 입양해서 가족처럼 대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라고 봅니다.

일드 <아노네>는 가족의 테두리를 묻고 있습니다. 상처 받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웃고 떠들면서 지내면서 가족으로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에게 기대며 사는 것이 진짜 가족이 아닐까요? 법도 바뀌었으면 합니다. 유사 가족도 가족으로 인정해줘서 가족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동일하게 받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히로세 스즈' 보려고 봤다가 아노네 아줌마와 선하고 착하고 예쁜 마음을 가진 하리카의 마음에 반했습니다. 가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닌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르게 되네요

<POOQ(푹)에서 일드 아노네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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