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고질병은 불안입니다. 매일 매일과 매년 크게 달라지지 않는 농경 사회에서는 불안이 적었지만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고 수 많은 변수가 발생하는 도시에서 사는 도시인들은 불안을 안고 삽니다. 이런 불안 속에서 고속 성장한 산업이 보험 산업입니다. 불안을 줄여주는 산업. 앞으로 발전한 산업은 우리 안의 불안을 줄여주는 산업이 크게 발달할 것입니다. 

복지 국가면 그 불안을 정부가 줄여줄 것이고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자본에 대한 견제 장치가 느슨한 자본주의 자유를 외치는 나라에서는 보험회사가 불안을 담당할 것입니다. 


임안나 사진작가의 불안의 리허설 

경복궁 서쪽에 있는 서촌에는 사진 전문 갤러리인 <갤러리 룩스>가 있습니다. 원래 인사동에 있었는데 몇 년 전에 서촌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인사동 <갤러리 룩스>에는 <갤러리 인덱스>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6월 10일까지 <갤러리 인텍스>에서는 중견 사진작가 임안나의 새로운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서촌으로 이주한 <갤러리 인텍스>는 2,3층 전체를 갤러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인사동 시절보다 더 커졌습니다. 다만 접근성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서촌 구경하면서 들리기 딱 좋습니다. 

6월 6일 현충일 휴일에 서촌에 갔습니다. 사진 출사 겸사겸사 찾아갔다가 <갤러리 룩스>에 들렸습니다. 휴일에도 운영을 하네요.  5월 30일부터 6월 10일까지 임안나 사진작가의 <불안의 리허설>이라는 사진전을 합니다. 

임안나 사진작가는 국내에서 꽤 유명한 사진작가이고 제가 추종하는 사진작가 중 한 분입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시선을 꾸준하게 보여주는 작가로 그 시선이 단순하면서도 명료하면서도 강렬합니다. 


<Restructure of Climax> 사진 시리즈

2013년 임안나 사진작가의 <Restructure of Climax> 사진 시리즈는 전쟁 무기를 소재로 한 사진 시리즈입니다. 한국군의 주력 전차 주변에 조명 기기를 배치한 후 그 모습을 촬영했습니다. 프레임 밖 세상을 담았습니다. 

저를 포함 많은 남자들은 전쟁을 싫어하고 전쟁의 무자비함과 잔혹함을 잘 압니다. 동시에 그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전쟁 무기에는 열광을 하죠. 이중적인 태도입니다. 전쟁을 반대하고 싫어하면서도 동시에 전쟁 무기에는 열광을 합니다. 전쟁 무기에만 열광을 할까요? 폭력이 난무하는 전쟁 영화에도 열광을 하죠. 프레임을 확장해서 전쟁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를 비판한 이 사진을 보고 임안나 사진작가 팬이 되었습니다. 


이후 2017년에는 <차가운 영웅> 사진시리즈로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 차가운 영웅 사진 시리즈에서는 현역에서 퇴역한 각종 군사 장비를 전국 공원 조형물로 활약하고 차가운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보라매 공원이나 


경치 좋은 해변가에도 느닷없이 탱크와 잠수함을 볼 수 있습니다. 전국 공원에 가면 퇴역한 탱크와 각종 포와 군사 장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퇴역한 군사 장비를 재활용하는 차원이고 국민들도 크게 반대를 하지 않고 오히려 아빠들이 몰던 군사 장비라서 아이들에게 교육용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다분히 한국적인 풍경이고 분단 국가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조형물입니다. 



2018년 사진 시리즈인 <불안의 리허설>은 군사 장비나 군 이미지는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사회 비판의 시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을 보면 무슨 폭격을 맞았는지 큰 재앙이 일어났는지 사람들이 쓰러져 있습니다.  피까지 흘리고 있네요


그러나 사진 왼쪽에 보면 조명과 반사판이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안개 발생 장비도 들고 있네요. 딱 봐도 드라마 촬영이나 연출 사진 촬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119 구급대원이 허망한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큰 재앙이 발생했나 봅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잘 조율된 조명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네요. 현장을 그대로 담은 다큐 사진이 아닌 연출 사진 같습니다. 

사진들 대부분이 이런 사진입니다. 연출된 느낌의 재난 사진


한 할머니가 피를 흘리고 애처롭게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습니다. 거대한 시련을 당했습니다만 뒤에 있는 분들을 보면 평온하기만 합니다. 분장을 하고 쇼(?)를 하고 있는 모습 같아 보이네요. 


아예 유명 명화의 유명한 포즈를 따라한 사진들도 있습니다. 인공적이고 연출적인 재난 사진입니다.


임안나 사진작가의 <불안의 리허설>을 보면 연극적이다라고 느껴집니다. 쉽게 말해서 왜 쇼를 할까? 구체적으로 재난 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진을 보고 피흘리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다 연기니까요. 당연히 사진 속 배우 같은 모델들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여도 공감을 하지 못합니다. 


불안의 동력. 서울도 테러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뉴스와 그로 인한 수많은 재난의 가설들은 타국의 테러로 인한 사상자 숫자와 피해액수로 환산되었던 비극의 크기와는 다르게 다가왔다. 만약 그 죽음이 ‘나와 내 주변’의 현실에 온다면, 미디어가 공개하는 저 이미지 속 나약한 주검이 내 것이 된다면......, 모든 것을 달라진다. 나는 무감각, 불감증, 기피증 대신 억울한 죽음에 대한 ‘불안증’을 작품의 동력으로 사용하여 미디어 속 죽음 이미지 패러디와 불안 표출을 시도하였다. 불안은 장면으로 다가왔다. 리얼한 영화였는지 드라마틱한 뉴스였는지 분간이 어려운 기억 속 스키마로 쌓여졌던 수많은 참사의 장면들. 나는 불안의 문을 열고 들어가 비극을 구현하였다

<불안의 리허설 전시 설명글 중에서>



위 사진들은 여러가지 상징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제가 발견한 은유는 3가지입니다.


1. 타인의 고통을 사진으로 왜곡하는 미디어의 문제점

유명한 문화 평론가인 '수잔 손택'은 베트남 전쟁의 비극을 촬영한 사진이 매일 아침 식탁에 올라오는 신문에 실리면서 세상을 크게 놀라게 했습니다. 잔혹한 사진에 사람들은 크게 놀랐고 분노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비극적인 사진이 매일 올라오면 그 반응성은 점점 떨어지게 됩니다. 결국 언론은 더 강하고 자극적인 사진을 계속 올리게 됩니다. 이렇게 자극적인 사진들은 신문 판매 부수를 늘리는데는 도움이 되지만 사실을 왜곡하는 도구로 전락하게 됩니다. 신문에 실린 사진들이 내 고통처럼 느껴지다가 점점 익숙해지면 타인의 고통이 됩니다. 

고통을 보여주는 사진은 일반적인 인간 조건의 증거가 된다. 그것은 그 누구를 비난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를 비난한다. 또한 사진으로 촬영된 고통의 순간과 대결하는 것은 한층 더 광범위하고 시급하게 대결해야 하는 것을 덮어씌워 감춰버리게 될 수 있다... 고통의 순간을 격리된 것으로 만드는 카메라는 그러한 순간의 경험이 그 경험 자체를 격리 시키는 것 못지 않게 폭력적으로 그것을 격리 시킨다

<존 버거>

사진은 즉시성이 대단히 뛰어난 매체로 보자마자 바로 눈물을 뚝뚝 흘리게 하거나 웃음을 터지게 만듭니다. 이는 사진이 뛰어난 재현성 때문입니다. 문제는 1장의 사진이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하지만 원인을 바라보는 힘을 약화시키고 현상만 바라보는 도구로 전락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서 베트콩 총에 맞아서 쓰러진 미군 병사의 사진을 보고 미국인들은 총을 쏜 베트콩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표출합니다. 하지만 왜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살펴보는 원인을 찾는 작업을 방해하게 됩니다. 

아프리카의 빈국의 문제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복합적인 원인의 결과인 깡 마른 아프리카 사람들의 사진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기부금을 보냅니다. 기부금을 보내는 행위는 칭찬 받고 칭송 받아야 마땅합니다. 문제는 그런 사진들로 인해 아프리카 사람들은 무조건 도와야 하는 존재, 가난이 일상이자 고착화된 고정된 이미지를 가지게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의 참담한 사진을 이용해서 기부를 요구하는 모습을 '가난 포르노'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그런 식의 기부 말고 마중물처럼 조금만 도와주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다는 모습을 담는 기부 단체들이 늘고 있습니다.


연일 중동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결과물인 사진을 보면서 참혹하고 비극적인 모습에 안타까워하지만 그 원인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한 매일 같이 보다 보면 비극적인 사진을 봐도 크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무뎌진 것이죠. 이에 언론은 더 자극적인 사진, 더 드라마틱한 사진을 만들기 위해 부던히 노력합니다. 

한 유명 보도사진전 수상작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거 연출 사진이 아닐까? 너무나도 미학적이고 타인의 고통을 이렇게까지 정교하고 완벽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벽한 구도와 광원과 비극의 절정을 담은 듯한 사진을 보면서 비현실적이자 연극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담아서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사진이 아닌 타인의 고통을 예쁘게 포장하는 사진들. 이게 옳은 다큐 사진의 방향일까요? 임안나 사진작가의 <불안의 리허설>은 보도 사진들이 점점 연출 사진 같은 느낌을 비판하는 모습으로 느껴졌습니다. 


3층으로 올라갔습니다. 3층에도 사진은 이어졌습니다


3층에는 사진과 함께 백라이트를 이용하 사진과 영상물이 재생되고 있었습니다.  그럼 두 번째의 은유를 살펴보겠습니다


2. 타인의 고통을 통해 내 안위를 살펴보면서 안심하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보고 그 고통이 나에게까지 전달이 되는 지를 빠르게 살펴봅니다. 예를 들어 큰 홍수가 나서 사람이 떠내려가는 보도 사진을 보고 그 홍수가 내가 사는 곳까지 영향을 줄지 살펴봅니다. 영향을 주지 않으면 안도감을 느낍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타인과의 비교에서 찾는 분들이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불행도 타인보다 덜 불행하면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큰 불행을 당한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동시에 나는 저런 불행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안도하면 안심합니다. 


그래서 사진들을 보면  피를 흘리고 서 있는 사람 뒤에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보이빈다. 재난의 불행과 그 불행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의 묘한 배치가 흥미롭네요. 마치 아침 식탁에 올라오는 불행한 사람들을 담은 사진을 아침 밥을 먹으면서 보는 우리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3. 안전 불감증 

서울도 재난 안전 지대가 아닙니다. 경주처럼 큰 지진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재난은 언제 어떻게 발생할 지 아무도 모릅니다. 며칠 전에는 용산에서 4층짜리 건물이 무너지기도 했죠. 막을 수 없는 천재지변도 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숙지해서 재난으로부터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안전에 대한 불감증이 높습니다. 

나만 당하지 않으면 돼!라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죠. 그래서 안전에 대한 민감도 높은 쓴소리를 하면 불만쟁이라고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재난 상황을 재현한 연출 사진을 통해서 미디어를 비판하고 우리의 안전 불감증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우리의 태도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런 날카로운 비판이 전 참 좋네요

불안의 리허설은 5월 30일부터 6월 10일까지 서촌 <갤러리 룩스>에서 진행합니다. 추천하는 사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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