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중에 덕은 양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에 딱 들어 맞는 영화가 바로 <퍼시픽 림>입니다. 올해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받은 <세이프 오브 워터>를 연출한 '기예르모 델 토로'은 괴수와 로봇을 좋아하는 덕후입니다. 2013년 거대 로봇 영화 <퍼시픽 림>을 들고나와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당시 영화를 보면서 많은 남자들의 로망을 어느정도 충족시켜준 고마운 영화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트랜스포머가 현란한 변신을 넘어서 조잡스러운 로봇괴기물로 변해버려서 더 이상 트랜스포머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진 지금. 유일하게 기대되는 로봇물이 이 <퍼시픽 림>입니다. <퍼시픽 림>은 변신을 하지 않지만 로봇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유조선을 칼처럼 휘두를 정도면 이 로봇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이 <퍼시픽 림>이 5년 만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진부한 스토리 <퍼시픽림2>
<퍼시픽림> 세계관은 단순합니다. 외계 생명체가 태평양 바다에 지구와 통하는 게이트를 만들고 카이주라는 거대한 생명체를 보내서 지구를 파괴하려고 합니다. 이에 지구인들은 비슷한 덩치를 가진 거대한 로봇 예거를 투입해서 카이주와 맛서 싸웁니다. 5년 만에 돌아온 2편은 1편에서 10년이 지난 시점을 그리고 있습니다.
2편 <퍼시픽림 : 업라이징>의 주인공은 1편에서 자신을 희생해서 카이주를 막아낸 스탁커 펜테코스트(아이드리스 엘바 분)의 아들인 제이크(존 보예가 분)입니다. 우리에게는 돌아온 스타워즈 시리즈로 익숙한 배우죠. 스토리는 단순하면서도 진부합니다. 2편 <퍼시픽림 : 업라이징>은 아버지의 명성을 이어가다가 훈련소에서 이탈한 집시 레인저의 조종사 제이크가 좀도둑으로 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카이주를 격퇴한 후 지구인들은 예거를 만들어서 대비를 하지만 제이크는 그런 것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게 쓰러진 예거의 부속품을 팔아서 살고 있는 제이크 앞에서 예거의 핵심 부품을 들고 튄 아마라를 만나게 됩니다. 아마라(케일리 스패니 분)는 카이주에게 가족을 잃은 후에 혼자 제작한 사설 예거를 만들어서 도망을 칩니다. 그러나 거대한 예거 앞에서 체포를 당하죠. 그렇게 제이크와 아마라는 강제로 중국에 있는 훈련소로 소환됩니다. 중국의 훈련소에서 교관이 된 제이크는 훈련생 교육보다는 대충 때우다가 떠날 생각만 합니다. 반면 네이트 교관(스콧 이스트우드 분)은 혹독한 훈련을 통해서 훈련생들을 키웁니다.
시대가 변해서 2명이서 조정하는 예거 대신에 원격 조정이 가능한 드론 예거 신상품이 등장합니다. 카이주를 신봉하는 사람들 앞에서 예거의 기동을 보여주려던 찰나 정체모를 예거가 등장해서 제이크와 네이트가 조정하는 '집시 레인저' 와 맞서서 싸웁니다.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난 후 드론 예거의 필요성은 더 높아집니다. 그렇게 무인 조정 드론 예거가 첫 등장하자마자 드론이 폭주를 하면서 중국 예거 기지를 초토화 시키고 카이주를 호출합니다.
그렇게 카이주가 다시 통로를 통해서 부활을 하고 쓰러진 예거 조종사 대신에 훈련생들이 예거를 타고 후지산으로 향하는 카이주를 막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스토리는 진부합니다. 영웅인 아버지 자란 제이크가 막장 인생을 살다가 훈련생을 가르쳐서 카이주를 막는다는 설정은 많은 영화들이 사용했던 설정이죠. 또한, 전투 장면만 빼면 전체적으로 스토리의 짜임새가 좋은 것도 아닙니다. 특히 전작보다 스토리가 주는 재미가 확 떨어집니다. 단순해서 좋은 것은 1편을 보지 않은 관객도 스토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드리프트 같은 개념을 많이 설명하지 않는 점은 있지만 로봇물의 덕목은 잘 지켜주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일본 로봇물에 대한 오마쥬도 강합니다. 드리프트 개념은 로봇과 정신적인 합체를 말하는데 에반게리온의 싱크와 비슷합니다. 또한 도쿄를 초토화 할 때 일본 시민들이 지하로 숨는다는 설정도 에반게리온의 도시 방어 모습과 비슷합니다. 아예 건담 조각상을 보여줘서 이 퍼시픽림의 원형이 일본 로봇물에 있다는 것을 대놓고 알려줍니다.
중국 자본의 냄새가 진동하는 <퍼시픽 림 : 업라이징>
요즘 허리우드 영화에 중국 자본이 많이 투입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트랜스포머 등의 인기 영화 시리즈에 중국의 자본 냄새가 심합니다. 중국 자본이 들어가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만 제작비를 대고 간섭을 하지 말아야 좋은 영화가 나옵니다. 트랜스포머가 중국 자본으로 처참하게 무너졌죠. 반면 좋은 사례도 있긴 합니다만 대체적으로 중국 자본이 들어가면 영화의 질뿐 아니라 생뚱맞은 장면이 나오는 등 전체적으로 집중력을 흐트러 놓습니다.
영화 <퍼시픽림 : 업라이징>은 이게 아주 심합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보다가 무인 조정이 가능한 드론 예거를 만든 회사가 중국 회사이고 중국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모습이 생뚱맞았습니다. 아예 중국인 지휘관이 나와서 지휘를 하는 모습은 이 영화가 중국 자본으로 만든 영화라는 것을 심하게 보여줍니다. 집에 돌아와서 검색을 해보니 이 영화를 제작할 때 말이 많았네요.
먼저 한국 배우 김정훈과 한국 예거 2대가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부산과 여의도 등에서 한국 촬영을 했습니다만 싹 도려냅니다. 김정훈은 1초 정도 나온다는데 전 나오는지도 몰랐네요. 이렇게 중국 자본이 들어간 이유를 알아보니 이 영화를 제작한 레전더리 픽처스가 중국 완다그룹이 인수를 했네요. 그래서 영화는 중국어도 많이 나오고 중국 배우도 중국 기업이 나오는 등 중국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문제는 이 중국 자본의 냄새가 심해서 영화를 집중해서 보는데 방해가 될 정도입니다.
예거의 묵직함이 확 떨어지다
제가 예거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크기와 묵직함입니다. 카이저와 싸우기 위해서 거대한 크기의 예거가 투입되는데 그 크기를 보여주기 위해서 허허벌판이 아닌 도심에서 싸움을 합니다. 또한, 유조선 같은 거대한 배를 휘두르는 장면이나 바다 전투에 투입될 때의 묵직한 느낌도 아주 좋았습니다. 기동성은 떨어지지만 기동성이 떨어져서 액션의 세세함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엘보 펀치는 단순한 동작이지만 그 묵직함이 짜릿했습니다.
또한, 러시아, 일본, 중국 등등 다양한 국가를 대표하는 로봇이 등장해서 로봇 국가 연합 부대 느낌도 있었습니다. 각 로봇의 특이한 외형과 동작과 특기를 보는 재미가 강했습니다. 이게 <퍼시픽림>의 재미 중 큰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2편인 <퍼시픽림 : 업라이징>은 이게 사라졌습니다.
국가대표 마크를 떼어 버리고 '집시 레인저'를 주축으로 3대의 로봇이 등장합니다. 각각의 로봇들은 외형이 날렵해졌지만 1편에서 느낀 중장비 로봇의 느낌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예거에 대한 매력은 확 떨어집니다. 외모가 비슷한 파워레인저 느낌입니다. 자신들의 장점을 잘 모르는 것 같네요. 그나마 예거도 민간인이 만든 작은 예거가 나온다는 설정 정도만 좀 더 생태계가 확장된 느낌입니다.
도시 파괴 액션의 진수를 보여주는 <퍼시픽 림 : 업라이징>
전작에 비해서 스토리의 힘은 약해지고 로봇의 묵직함은 떨어졌지만 좋아진 점도 있습니다. CG 기술의 발달 덕분인지 전작은 주로 야간에 싸우고 비가 오는 날씨에 싸우는 모습을 지우고 환한 대낮에 싸웁니다. CG 액션이 밤이나 비가 오는 날씨에 싸우는 것은 CG의 능력을 감출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가 트랜스포머에 환호했던 것은 밤이 아닌 낮에 그것도 대도시에서 싸우는 장면에 환호를 했습니다.
<퍼시픽림2>는 건물해체 액션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도쿄에 모인 카이주에 맞서기 위해서 훈련생이 조정하는 3대의 예거와 교관이 타고 있는 집시레인저가 도쿄를 초토화 시킵니다. 도쿄의 주요 건물을 링의 루프 삼아서 싸우는 장면은 압권입니다. 국가대표 마크는 없지만 각 예거들의 특기들도 어느 정도 잘 보여줍니다. 다만 협동 액션의 재미는 높지 않네요. 게다가 카이주를 파괴하는 모습 자체도 좀 황당한 설정입니다. 거대한 파괴 액션은 좋지만 액션 연출은 그냥 그렇네요.
여러모로 1편에 비해서 아쉬운 것이 꽤 많습니다. 스토리도 액션도 모두 전작보다 못합니다. 하지만 볼만은 합니다. 지루하지 않고 그냥 시간 때우기는 괜찮습니다만 꼭 보라고 하기에는 아쉬움이 많네요. 중국 자본이 들어가서 좋은 영화 나오는 걸 못 봤는데 이 영화도 마찬가지네요. 그나마 트랜스포머가 자멸해가고 있어서 대체 로봇물이라는 점은 좋네요.
별점 : ★★☆
40자 평 : 자신의 정체성을 잊고 건물 파괴만 화려해진 중국 자본의 일본 로봇물 같은 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