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참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비장애인이 바라본 장애인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또한 장애인들이 장애를 극복하는 인간승리의 드라마나 근거 없는 희망을 담습니다. 이런 영화들은 장애인의 영화가 아닙니다. 이런 영화들은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장애도 없는 너도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겠니?라는 장애인들을 불행한 사람들로 놓고 장애가 없는 넌 행운아!라는 천박한 시선으로 담고 있습니다. 

이런 영화들은 장애인 영화라고 하기도 창피합니다. 장애인이 나온다고 장애인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장애인을 위한 영화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장애인의 세계를 점점 이해해가는 비장애인을 통해서 장애인들이 겪는 삶을 담고 있습니다. 


비장애인 미사코를 통해서 시각장애인을 들여다 보는 영화 <빛나는>

시각장애인들의 영화 보기를 돕는 음성해설을 넣는 베리어프리 영화를 만드는 커뮤니티에서 미사코(미사키 아야메 분)는 유명한 노 감독이 만든 영화에 음성 해설을 합니다. 영화 음성 해설 자문을 위해서 시각장애인들이 함께 영화 음성해설을 듣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의 의견을 들은 미사코는 음성 해설을 조금씩 수정을 합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을 음성 해설을 마치자 나카모리(나가세 마사토시 분)는 마지막 해설을 지적합니다. 늙은 주인공이 하늘을 보면서 희망을 느꼈다는 해설은 너무 주관적인 관점이 아니냐고 지적을 합니다. 영화는 그 영화를  보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 다를텐데 너무 단정적으로 희망을 보았다라고 하는 것은 영화 감상에 방해가 된다는 지적을 합니다. 이에 미사코는 얼굴이 붉어집니다. 이 베리어프리 영화를 같이 만드는 다른 비장애인 선생님은 미사코에게 좀 까칠한 발언 같지만 새겨 들으라고 충고를 합니다. 하지만 미사코는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나 보내고 치매 증상을 보이는 어머니를 두고 도시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지적은 이해는 하지만 오롯하게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이런 지적은 우리가 새겨봐야 할 지적입니다. 우리는 장애인을 보면 무조건 도와줘야 하고 희망의 상징체로 일방적으로 바라보죠. 그래서 장애우라는 호의를 가장한 자기 편의적인 시선으로 봅니다. 미사키가 대부분의 비장애인의 시선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미사코에게 약간은 날이 선 소리를 나카모리는 사진작가입니다. 지금은 눈의 아주 일부분만 시력이 있는 저시력자입니다. 마치 뿌연 창 한쪽 끝만 투명한 상태입니다. 이 얼마남지 않는 시력에 의존해서 사진을 촬영합니다. 그날도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촬영하는 나카모리를 떠나보낸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미사코가 발견합니다. 

미사코는 우연히 나카모리의 사진집을 넘겨보다가 한 사진에 멈춥니다. 어린 시절 노을을 배경으로 아버지와 함께 촬영한 사진 속 산등성이와 나카모리가 촬영한 노을 사진의 산등성이가 비슷합니다. 순간 미사코는 나카모리 사진작가에 관심이 깊어집니다. 그렇게 미사코는 나카모리에게 확대경을 전해달라는 심부름을 하게 되고 두 사람은 함께 식사를 하면서 가까워집니다. 나카모리는 여전히 무뚝뚝합니다. 그러나 미사코는 그런 나카모리가 밉지만 천성은 나쁜 사람이 아님을 알고 서서히 나카모리가 겪는 고통을 알아갑니다. 


나카모리는 한 때 잘 나가던 사진작가였습니다. 그러나 시력을 잃어가면서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얼마 안 남은 시력마저 잃을까봐 두렵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불행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늘어갑니다. 무던하게 지내려고 해도 점점 세상은 붕괴되고 있습니다. 비장애인에서 장애인으로 가는 여정을 떠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영화 음성 해설 자문 모임에서 미사코는 마지막 장면에서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너무 주관적인 희망이라는 단어를 넣었다가 지적을 받아서일까요? 이번엔 아예 자신의 주관을 넣지 않기 위해서 아예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이에 나카모리는 왜 설명이 없느냐면서 이건 도망치는 행동이라고 또 지적을 합니다. 이에 미사코도 나카모리의 상처를 건드리면서 쏘아 붙입니다. 


하지만 미사코는 무너져가는 나카모리 주변을 맴돕니다.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보낸 아버지가 떠올랐을까요? 미사코에게 있어서 삶은 희망아니면 절망 둘 중 하나였습니다. 마치 영화는 1개의 감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세상은 0과 1로 표기될 수 없는 세상입니다. 

살고 싶다고 행복하다고 느끼면서도 다음날 죽을 수도 있고 죽고 싶지만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영화 연출을 한 늙은 감독의 말처럼 세상은 하나의 감정으로 이해하기엔 너무 넓고 깊습니다. 웃으면서도 슬프고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이 세상을 이해하기엔 미사코는 너무 어립니다. 하지만 나카모리는 잘 압니다. 세상이 그렇게 무 자르듯 하나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하나의 감정으로도 이해할 수 없음을 압니다. 그런 연륜에 미사코는 점점 나카모리 옆에서 서성입니다.  나카모리 옆에서 서성이던 미사코는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산등성이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세상을 보는 시각을 잘 담은 영화 <빛나는>

사진작가가 주인공이라서 본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사진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 않습니다. 티격태격하는 미사코와 나카모리를 연결하는 것이 사진일 뿐 사진을 보는 시선을 많이 담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영화 <빛나는>는 영화나 사진처럼 하나의 결말을 내거나 삶을 일시정지해서 보는 것이 아닌 죽음이라는 종료 전까지는 계속 삶은 이어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석양을 보면서 아름다운 결말이다라고 할 수 없고 다음날 또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인생, 종료가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대신 시각장애인들이 세상을 보는 시선을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미사코는 영화 음성 해설 모임에서 한 시각장애인의 충고를 듣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은 소리에 의존해서 영화를 보기 때문에 영화 음성 해설 하나 하나 신중하고 진중하게 해줬으면 하는 부탁을 받습니다. 이 부분은 미사코가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먼저 시각장애를 경험하지 못했기에 시각장애인들이 세상을 인지하는 과정을 오롯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한 나이가 어려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스펙트럼이 넓지 못합니다. 미사코는 나카모리를 통해서 삶에 대한 이해도와 시각장애의 고통을 서서히 느끼며 알아갑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시각장애인들은 앞이 잘 보이지 않거나 안 보이기 때문에 비장애인들보다 상상력이 아주 큽니다. 그 상상력을 텍스트로 단정 짓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말은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사실 제가 이 영화를 소개하는 것도 말이나 글입니다. 제가 이 영화 <빛나는>는 보면서 느낀 아름다움과 형언할 수 없는 깊이를 단순한 텍스트로 담아서 소개하는 것은 제 느낌의 일부만 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분은 각자의 상상력을 펼쳐서 제 텍스트를 통해서 상상을 합니다. 우리가 읽는 텍스트들은 상상의 발화점이죠. 이는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상과 소리와 대사라는 텍스트로 세상을 재현하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같은 것을 보고 듣고 읽어도 다 상상력이 다르고 시선이 다르기에 다르게 해석을 합니다. 

이는 영화를 소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독의 메시지 같기도 합니다. 영화만 보는 것이 아닌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서 보는 것이 더 오롯하게 영화를 느낄 수 있다는 메시지 같네요

어떻게 보면 <빛나는>는 전달에 대한 이야기 소통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일방적인 시선을 담아서 음성 해설을 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는 것이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미사코를 통해서 소통과 이해하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눈 앞에서 사라지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어

시각을 완전히 잃은 나카모리는 미사코의 손을 꽉 잡습니다. 이 무뚝뚝한 남자가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미사코는 그런 마사토시의 두려움을 이해합니다. 갑작스럽게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고통스러워 했던 미사코는 서서히 사멸해가는 노을을 함께 봅니다. 

이 영화 <빛나는>는 뛰어나고 아름다운 화면 구성과 단아하고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영화 감독은 '가와세 나오미'로 영화 <앙>으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영화감독입니다. 영화 <앙>은 나병을 앓고 있는 할머니를 통해서 세상의 편견과 작은 것도 소중하게 여기는 벚꽃 같은 아름다움을 담은 꽤 좋은 영화입니다. 

영화 <앙>에서 주연으로 나온 '나가세 마사토시'가 이 영화에도 주연을 맡습니다. 뛰어난 시각장애인 연기가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입니다. 여기에 '미사키 아야메'의 청아한 모습도 보기 좋네요. 두 배우의 앙상블이 좋습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영화 후반의 애정라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합니다. 실제로 뜬금없는 애정 라인에 눈이 질끈 감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 그 장면이 꼭 애정 관계라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냥 하나의 상징이라고 할까요? 미사코가 아버지의 부재라는 상실의 아픔과 시각을 상실한 나카모리가 서로의 아픔을 하나로 만나는 장면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게 사랑이 아닌 동질감에 대한 보상으로 느껴져서 인지 둘은 바로 또 떨어집니다. 

두 사람은 노을을 함께 봅니다. 그 노을 앞에서 "눈 앞에서 사라지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어"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사라지는 것이 절망과 슬픔과 아픔이 아닌 아름다움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마치 노을처럼요. 어떻게 보면 이 영화 <빛나는>는 사멸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담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미사코는 나카모리와 함께 하면서 영화 마지막 장면의 음성 해설을 완성합니다. 멋진 엔딩입니다. 여러 번의 수정 끝에 완성된 마지막 영화 음성 해설은 장애인을 보는 일방적인 시선인 연민도 외면도 아닌 오롯한 해설로 끝이 납니다. 꽤 좋은 영화입니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고 우리가 영화나 소설 같은 창작물을 이해하는 과정에 대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또한 인생이 하나의 감정으로만 바라봐지는 것이 아닌 복잡한 감정의 연속이라는 것도 알려줍니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이 아닌 그냥 그 자체가 하나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꽤 좋은 영화를 본 느낌이네요. 괜찮은 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사라짐과 아름다움이 동의어라는 것을 알게 해준 영화


썬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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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lara.tistory.com BlogIcon 4월의라라 2018.03.17 2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라짐과 아름다움이 동의어다... 보고 싶은 영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