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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대한 단소리

1987년 대선과 5.16광장 그리고 여의도 벙커

by 썬도그 2018.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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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은 1987년 6.10 민주화항쟁을 재조명 그리고 제대로 조명한 영화이자 감사한 영화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끌어 올린 것은 1987년의 6.10 민주항쟁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이 6.10 민주항쟁을 제대로 가르치지도 알리지도 않습니다. 그 가치에 비해서 6.10 민주항쟁은 너무 소홀하게 대했습니다. 그런면에서 영화 <1987>은 1987년의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잘 담았고 후손들이 널리 기억하게 하는 영화라서 감사했습니다. 


#여의도 벙커

여의도는 한국의 맨하탄이라고 불리우는 곳입니다. 크기는 맨해튼에 비교할 바가 되지 않지만 고층 빌딩이 있고 국회의사당이나 증권거래소 등 국가의 주요 건물이 많다는 것과 회사가 많고 강 하류에 있다는 점이 여의도를 한국의 맨해튼으로 불리웁니다. 이 여의도는 금융 회사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문화 공간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문화 취약지구입니다. 여의도 한강 둔치에서 각종 공연과 행사가 펼쳐지긴 하지만 갤러리나 미술관이 없습니다. 

뭐 방송국도 문화 공간이라면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지금은 MBC도 떠났고 KBS만 남았습니다. 이 여의도에 문화공간이 생겼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여의도 벙커'입니다. 여의도 벙커는 서울시립미술관 산하의 작은 미술관입니다. 위치는 '여의도공원' 옆 '여의도 환승센터'에 있습니다. 


입구는 앞문과 뒷문이 있는데 뒷문은 엘레베이터가 있습니다. SeMA 벙커라고 써 있네요. 참고로 SeMA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약자입니다. 이 '여의도 벙커'는 서울시립미술관 산하의 작은 미술관입니다. 


뒷문으로 들어가서 그런지 지하1층에서 엘레베이터에서 내리니 아무 것도 안 보이네요


작은 영상 전시회가 있네요. 영상물이 꽤 많이 상영하고 있네요. 이 전시회는 따로 소개하겠습니다. 



이 '여의도 벙커'는 2005년 5월에 발견됩니다. 서울시가 여의도 버스환승센터를 만들려고 조사를 하다가 지하에 거대한 공간을 발견하죠. 이 벙커는 5.16 광장에서 펼쳐지는 국군의날 행사를 매년 개최했는데 긴급 사태가 발생하면 대통령이 피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시는 이 공간을 IFC 쇼핑몰이나 지하 상가로 개발하려다가 유동인구가 적고 실효성이 없다고 생각해서 방치를 했습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이 공간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서울시립미술관의 여의도 갤러리로 개조해서 지금은 미술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미술관 옆에는 역사갤러리가 있습니다. 이 여의도 지하 벙커에 대한 역사와 다양한 이야기, 특히 여의도 개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한 가운데는 쇼파가 있습니다. 담소를 나누라고 배치한 것은 아니고 이 '여의도 벙커'가 발견될 당시에 쇼파가 있던 것을 재현한 것 같습니다. 


물론 앉아도 됩니다.  벽에는 여의도 벙커 관련 영상물이 틀어져 있네요. 



#5.16광장

벽에는 여의도 관련 사진들이 가득했습니다. 


항공 사진도 소개되어 있는데 신기하게도 5.16 광장은 시커멓게 칠해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5.16 광장이 군사 보호 지역이라서 시커멓게 칠했다고 하네요





여의도는 한강 하류의 거대한 삼각주입니다. 모래톱과 강 퇴적물이 쌓여서 만든 거대한 섬이죠. 이런 섬은 또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난지도도 있었고 잠실섬도 있었습니다. 난지도는 서울시민이 버린 쓰레기 처리장이었다가 지금은 하늘 공원, 노을 공원으로 변신을 했습니다. 그냥 산으로 알고 있는 분들도 있지만 쓰레기를 쌓아 올린 섬입니다. 

잠실도 섬이였습니다. 잠실도라는 작은 섬이 있었는데 이걸 개간해서 육지로 붙입니다. 잠실도의 남은 흔적이 롯데월드 호수입니다. 여의도는 '너의 섬'의 한자 표기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뽕나무를 심어서 뽕나무를 가꾸거나 소나 말을 방목하던 섬입니다. 여의도는 한강이 홍수가 나면 잠기는 섬으로 홍수 때문에 사람이 살기 어려운 섬입니다. 지금이야 개간을 하고 물길을 한쪽으로 돌렸지만 예전엔 한강 한 가운데 있는 큰 섬이었죠. 

이렇게 방치되던 여의도의 가치를 발견한 것이 일제입니다. 일제는 1916년 중국과 만주 대륙을 침략하기 위한 비행장을 여의도에 만듭니다. 이 여의도 비행장에서 한국 최초 비행사인 안창남이 비행을 했습니다. 


1939년 일제는 군용기 전용 김포 비행장을 만듭니다. 해방이 된 후 김구와 주요 대한임시정부 요인을 태운 수송기가 여의도에 도착했고 서울시는 그걸 기념하기 위해서 여의도 광장에 당시의 수송기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1953년 미군 군용 비행장으로 쓰이던 여의도 비행장은 1958년 김포 비행장이 김포국제공항으로 변경된 후 여의도 비행장은 대한민국 공군의 군사 비행장으로 변신을 합니다. 1971년 성남 공군기지가 만들어지자 여의도 공군기지는 폐쇄가 됩니다. 

이후 여의도는 거대한 성장을 합니다. 


1968년의 여의도 전경입니다. 보시면 가운데 활주로가 보입니다. 



여의도는 1968년부터 제방 공사를 해서 홍수에 대비합니다. 지금은 한강 정비 사업을 해서 예전처럼 한강이 자주 넘쳐서 피해를 보는 일은 적어졌습니다. 이렇게 제방 공사와 함께 공군 비행장이 성남 공항으로 이전한 후 여의도에는 건물들이 들어섭니다. 


1968년경부터 시작된 여의도 개발은 1970년 5.16 광장으로 큰 그림의 초석이 다져집니다. 


지금의 여의도 광장은 5.16 광장이었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5.16광장이라는 이름이 왜 태어났는지 잘 아시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쿠테타로 대통령이 된 사람입니다. 쿠테타를 일으킨 날이 5월 16일이고 우리는 5.16 군사혁명이라고 역사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박정희는 5.16 쿠테타의 정당성(당시엔 이런 용어도 못썼죠. 그냥 5.16 혁명)을 선포하고 싶었고 다양한 곳에 5.16 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그중 하나가 5.16광장입니다. 5.16 광장은 활주로를 광장으로 변신시켜서 그 규모가 어마무시하게 큽니다. 아마 한국 최고 크기의 광장이었을 겁니다. 

이 5.16 광장은 평소에는 일반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는 공간이었다가 10월 1일 국군의 날이 되면 국군의 늠름한 퍼레이드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제 삼촌도 차출이 되어서 1달 내내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를 위해서 행진을 했다고 하더군요. 


영상을 보시면 지금의 북한 열병식 같아 보이지만 당시는 남북 군사 대결이 극심했고 반공이 국가 기조라서 엄청난 열병식을 했습니다. 이 국군의 날 열병식을 TV에서 생중계를 할 정도로 인기도 높았습니다. 여의도 근처에 있는 공군사관학교와 해군사관학교에서는 이 행사를 위해서 1달 전 부터 사관생도들이 준비를 했습니다. 

가장 압권은 헬기 레펠이었죠. 헬기에 줄을 메달고 아래에 3명 위에 2명의 군인이 양팔과 다리를 벌리고 날아갑니다. 지금보면 엄청난 쇼잉으로 비출 수 있지만 당시는 가장 화려한 눈요기였습니다. 이 국군의 날 행렬은 여의도를 출발해서 서울시청까지 이어졌습니다. 



#여의도 광장

여의도는 70년대에 개발이 되기 시작합니다. 허허벌판을 개발하는 곳이고 개인 땅이 없다는 점으로 국가가 체계적으로 개발을 합니다. 먼저 사람이 살 수 있게 아파트를 엄청나게 심습니다. 지금은 엄청난 가격으로 폭등한 여의도 아파트입니다. 특히 한강을 바라볼 수 있는 아파트는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죠. 

어렸을 때 삼촌이 낸 퀴즈가 생각나네요 "전국에 다 있는데 여의도에만 없는 것은?"

제가 모른다고 했더니 단독 주택과 연탄 가게가 정답이라고 하네요. 70년대만 해도 단독 주택은 연탄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지금이야 도시 가스로 난방을 하지만 당시는 잘살던 못살던 연탄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아파트는 연탄을 사용할 수 없는 주택입니다. 아파트만 가득한 여의도. 당연히 연탄 가게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이후 여의도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유명한 건물이 들어섭니다. KBS도 MBC도 서소문 시대를 접고 80년대에 여의도로 이전합니다. LG전자의 쌍둥이 빌딩도 여의도에 세워지죠. 섬을 평탄화 시킨 곳이라서 언덕이 없는 평지다 보니 건물 짓기는 아주 편합니다. 

그리고 국회의사당도 세워집니다. 국회의사당은 원래 돔이 없는 건물로 지어지다가 고위층이 외국 국회의사당은 다 돔이 있는데 여긴 왜 없냐는 한 마디에 돔이 생깁니다. 그래서 정말 못생긴 건물의 대명사로 지어집니다. 돔 없는 국회의사당이 더 멋졌을수도 있지만 또 '에펠탑 효과'라고 자주 오래 보면 또 익숙하고 예뻐 보입니다.

샛강을 정비하고 한강 둔치가 80년대 정비되면서 한강은 홍수를 자주 내는 강이 아닌 시민들의 쉴 휴게 장소가 됩니다.
5.16 광장은 평상시에는 거대한 아스팔트 광장으로 자전거를 마음껏 탈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집이 여의도랑 가까워서 집에서 걸어서 여의도까지 가서 자전거를 타고 놀던 기억이 나네요. 80년대 초등학생들은 놀거리가 많지 않았습니다. 유흥 장소도 거의 없었고요. 그나마 주말을 제대로 놀고 싶을 때면 여의도에 가서 자전거를 타고 놀았습니다. 엄청나게 넓은 광장이다 보니 자전거 타기도 좋고 배우기도 좋았습니다. 


#1987년 대선

영화 <1987>을 보고 난 후 1987년에 직선제 대통령 선거를 쟁취했고 당연히 당시 여당인 전두환의 민정당이 아닌 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노태우라는 전두환 친구가 당선된 결과를 보고 갸우뚱 하는 젊은 분들이 많습니다.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선거를 쟁취했지만 김대중과 김영삼이라는 2명의 야당 후보가 통합을 하지 못해서 어부지리로 노태우가 당선이 됩니다. 이는 김대중, 김영삼이 역사에 길이 남을 한심한 행동을 한 결과입니다. 두 사람은 야당을 대표하는 사람이지만 라이벌 의식이 엄청 강했습니다. 그러니 평생 둘이 쳐다도 안 봤죠. 

김대중은 전라도표를 다 가져가고 김영삼은 경상도의 야권 세력표를 가져갑니다. 두 사람이 통합을 했으면 야당이 승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죠. 여기에 노태우 지지세력도 엄청 많았습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87년 12월 대선에서는 동네 통반장에게까지 돈을 뿌리던 관권 선거였습니다. 당연히 돈이 많은 당시 여당인 민정당 후보 노태우는 더 많은 돈을 뿌렸습니다. 

여기에 노태우의 선거 전략도 주효합니다. 노태우는 전두환의 군인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 뜬금 없이 자신은 '보통사람'이라는 전략을 구사합니다. 아는 사람은 그가 군인 출신이고 전두환의 친구이자 다음 대통령으로 지목한 사람인 걸 알지만 우민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씁니다. 후덕하게 생겨서 귀는 부처님 귀처럼 커서 인자하게 생긴 노태우(물론 부정하는 분도 있지만) 여기에 유들유들한 언어로 '나 보통 사람이에요'라는 선거 전략이 보수들을 결집시킵니다. 

김대중, 김영삼의 분열, 관권선거, 노태우의 선거 전략 등이 노태우의 승리를 이끌어냅니다. 


당시 여의도 광장은 87년 대선 후보들의 세몰이 검증 장소였습니다. 김대중과 김영삼 후보가 엄청난 인파를 여의도 광장에 모이게 했습니다만 노태우의 100만 인파를 이겨 낼 수는 없었습니다. 보시면 여의도 광장을 넘어서 저 마포대교 넘어까지 사람이 가득했습니다. 이 인파들 상당수가 지방에서 정부가 대절한 관광버스를 타고 올라온 분들이 많았습니다.



결과는 노태우로 흘렀지만 노태우는 결정적 한 방이 필요했는지 87년 12월 15일 대선 하루 전날 KAL기 폭파범 김현희를 동원합니다. 재갈을 물고 김포공항 플랫폼을 내려오는 김현희의 모습에 야당 대표는 졌구나를 느꼈다고 할 정도로 당시 김현희의 파괴력은 컸습니다. 수 많은 사람을 죽인 김현희가 지금도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한,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가 대선 개입을 위한 작전의 결과로 김현희를 선거 전날 압송합니다. 그러고보면 우리의 안기부와 국정원은 첩보활동이 주목적이 아닌 대선 활동이 주목적인 단체 같습니다. 




#조순 전 서울시장이 만든 여의도 공원

90년대 초 지방자치 제도가 시행이 됩니다. 예전에는 지방의 도시 시장까지 정부에서 내려 주었다면 지방자치 제도는 내가 사는 도시의 시장과 구청장과 시의원과 구의원을 내가 직접 뽑는 제도입니다. 서울의 1대 민선 시장은 조순 시장이었습니다. 경제 전문가였던 조순 시장은 당선된 후 여의도 광장(5.16 광장)을 시민 의견을 수렴해서 여의도 공원을 만듭니다. 


조순 시장이 여의도 광장을 여의도 공원으로 만든 이유는 간단합니다. 여의도가 한국의 맨하튼이라고 하니 맨하튼의 거대한 인공 숲인 센트럴 파크를 만들고 싶었겠죠. 그렇게 해서 여의도 공원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전 서울시장의 결정 중에 최악의 결정으로 이 여의도 공원을 만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 여의도 공원 가보면 별 특색 없는 동네 공원으로 전락했습니다.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밤 마실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숲의 느낌도 없고 그냥 흔한 동네 공원 중에 큰 공원 정도입니다. 

제가 이 결정을 싫어하는 이유는 서울의 거대한 광장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시위를 하거나 행사를 하면 조막만한 서울시청 광장이나 광화문 광장, 청계 광장 정도에서만 합니다. 유럽의 나라들을 보면 광장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민의가 모이려면 거대한 광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민의를 확인할 수 있는 거대한 광장이 없습니다. 

이러니 덕수궁 앞에서 시위를 하고 서울시청 광장에서 시위를 합니다. 이는 장소도 좁고 시민들의 불편을 유발합니다. 물론 서울 속의 서울이라는 상징 때문에 여의도 광장이 있어도 시위대가 모이지 않을 수 있지만 좁아 터진 공간 보다는 거대한 광장이 있었으면 하네요. 또한, 국제적인 행사도 큰 공간에서 할 수 있고요. 

하나 더 하자면 서울은 산이 많아서 넓은 평지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나마 있던 강남 논과 뽕밭도 건물을 다 심어 놓아서 넓은 평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좀 답답합니다. 유럽과 미국의 끝없는 평지를 보면 그리 기분이 좋을 수 없습니다. 


여의도는 서울시가 만든 공간입니다. 강남 개발과 더불어서 계획적으로 개발한 곳입니다. 지금은 금융과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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