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 종로서적에서 저녁 7시에 만나! 그렇게 전화를 끊고 설레이는 마음을 달래가면서 전철 1호선을 타고 종각역으로 향했습니다. 삐삐도 없던 92년. 당시는 모든 약속을 집전화로 잡아야 했습니다. 집에 없으면 전해 달라고 부탁을 하거나 약속에서 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급한 약속 당일 발생한 만남은 집에 있는 동기들만 불러 낼 수 있었습니다.
약속 장소는 매번 종로였습니다. 종로가 약속의 명소가 된 이유는 서울의 중심이기 때문이죠. 제가 사는 서울 남서부나 의정부에 사는 동기도 종로에서 만나면 다들 좋아했고 공평했습니다. 종로에서도 약속 장소는 종로서적이었습니다.
종각역에서 나오면 바로 앞에 있기도 했고 찾기도 편했습니다. 그러나 꼭 늦게 도착하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친구들을 위해서 포스트잇으로 메모를 적고 호프집으로 향했습니다. 종로서적! 추억의 장소이자 군에서 외출을 나오면 항상 들리던 곳이였습니다. 군대에서 읽을 만한 책을 사기 위해서 종로서적으로 많이 갔던 기억이 나네요.
종로서적이 사라졌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해에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모습 같기도 했습니다. 당시 예스24와 알라딘 같은 무차별 할인 공세를 하는 온라인 서점으로 인해 대형 서점들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나마 교보문고가 온라인 시대에 잘 적응했지 종로서적은 시대의 변화에 대처를 잘 하지 못했나 봅니다.
인사동으로 향하고 있는데 대형 간판에 추억의 종로서적이 돌아왔다는 문구에 발길을 멈췄습니다. 아! 종로서적이 부활했구나!라는 느낌표를 달고 종로타워 지하 2층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해보니 종로서적이 있던 자리는 예전에 반디앤 루니스가 있던 곳이네요. 반디앤 루니스가 떠난 자리에 종로서적이 들어왔네요. 원래 있던 YMCA 맞은편이 아니지만 부활한 종로서적이 반가웠습니다.
인테리어를 싹 바꾸었습니다. 이전 반디앤 루니스는 뭔가 우중충한 느낌이었다면 새로 오픈한 종로서적은 톤 정리가 잘 되어 있고 거대한 램프 같은 조명이 책 진열대 한 가운데 있어서 보기가 좋네요
아주 반갑고 고맙네요. 그러나 이전 반디앤 루니스도 서점 크기가 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 공간을 그대로 사용하면 영풍문고나 교보문고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겠다는 생각이 들엇습니다.
반디앤 루니스보다 공간을 넓직하게 쓰는 모습에 지하 1층까지 텄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요즘 유행하는 대형 테이블까지 배치하고 있습니다. 영풍도 교보도 대형 테이블 배치해서 고객들의 시간을 점유하는 시간 점유 마케팅을 하고 있는데 종로서적도 따라하고 있네요. 이런 풍경 참 좋죠. 충전도 하고 좋은 책도 잠시 읽어보거나 구매할 수 있고요. 문제는 여긴 공간이 크지 않은데 이렇게 따라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세상에나 이런 공간도 있네요. 여기 자주 와야겠어요.
그런데 이상한 풍경이 보이더군요. 서점 안에 커피를 파는 카페와 생과일 쥬스를 파는 곳이 꽤 많이 보입니다.
뭐 책도 읽고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하는 복합 공간으로 꾸미는 것이 처음에는 창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커도 너무 큽니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서점 반, 음식점 반입니다. 부리나케 검색을 해보니 이게 콘셉트라고 하네요.
그러면 서점 크기는 더 축소됩니다. 여기에 팬시 용품까지 팔고 있으니 서점이 아닌 음식점에서 책 파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양념반, 후라이드반이 대세라고 하지만 이건 서점의 정체성을 망각한 행동 아닐까요?
이런 변신을 무조건 나쁘게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시대 트렌드가 한 공간에서 이것저것 요것을 하길 바라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곳에서 책도 사보고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는 것 괜찮죠. 그러나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대형 서점이었던 종로서적이 알라딘 중고서점보다 책 종류가 없다는 것은 대형 서점이 아닌 동네의 큰 서점 느낌이라는 것은 아쉽습니다. 뭐 교보문고도 모든 책을 다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무리한 주장일 수는 있기에 제 지적은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하지만 아래 뉴스 기사는 눈쌀을 찌푸리게 하네요.
"종로서적 부활은 거짓" 원조 서점 대표가 법적 대응 나선 까닭 경향신문 기사
이 종로서적이 이전의 종로서적을 운영했던 분들과 전혀 상관이 없는 영풍문고 임원 출신인 분이 운영하는 것은 좋은 모습은 아니네요. 차라리 새로운 문고 이름으로 출발하지 왜 추억팔이 마케팅까지 하면서 종로서적의 추억을 이어 받으려고 합니까? 이 종로서적 이벤트 중에 종로서적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보내면 기념품을 준다는 소리가 있던데 이게 다 이전 그 유명한 종로서적의 이미지를 이어 받으려는 속셈이죠.
이건 도덕적이지 못합니다. 새로운 이름으로 새출발 하시지 왜 애먼 종로서적을 끌어 들입니까? 여러가지로 안타까운 풍경이네요. 신개념 서점이기에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출발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 듯 합니다. 종로서적 시즌2 같은 종로서적 추억팔이 하지 말고요. 아니면 종로서적을 운영했던 분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종로서적이라는 이름을 쓰는 대가를 지불하거나 노여움을 풀어주던가 했으면 하네요. 또한, 저 같이 종로서적에 대한 추억이 많은 사람들을 낚는 문구나 이벤트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