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간이탈자>는 개봉 당시에 드라마 <시그널>과 너무 유사한 설정이 화제를 넘어 피해를 본 영화입니다. 누가 배꼈다고 할 수 없지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소재의 영화가 나왔고 영화가 드라마가 한 창 진행되었을 때 나와서 그런지 아류라는 시선도 있었습니다.
물론, 드라마 <시그널>과 <시간이탈자>는 누구의 아류가 아닌 타임립스라는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장르물입니다. 그러나 이전 시간여행물과 다른 점은 한 사람이 과거와 미래를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닌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이 링크가 됩니다. 드라마 시그널에서는 무전기를 통해서 80년대에 사는 형사와 2015년에 사는 형사와 연결을 통해서 과거와 현재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독특한 설정의 드라마였습니다. 이미 영화 <프리퀀시>나 <동감>을 통해서 과거와 현재의 연결을 다룬 영화들이 있었죠.
따라서 소재만 보면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소재가 아닌 그 소재를 통해서 어떤 주제를 드러내냐가 중헌 것입니다. 드라마 <시그널>은 장기 미결 사건에 대한 환기와 경찰내의 부정부패를 아주 잘 담은 명작 드라마입니다. 그럼 이 <시간이탈자>는 어떨까요?
스릴러물이라고 하기엔 왜?가 나오지 않는 <시간이탈자>
요즘은 스릴러물이 대세입니다. 1분 1초의 흐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관객에게 미끼를 던져서 계속 따라가게 하는 매력이 많은 스릴러물이 꽤 많습니다. 이 영화 <시간이탈자>도 스릴러 요소를 투입한 영화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83년에 사는 지환(조정석 분)이라는 고등학교 음악 교사와 2015년을 사는 건우(이진욱 분)라는 형사가 꿈에서 서로가 사는 세상을 보게 됩니다.
지환은 건우의 일상을 꿈에서 보고 건우는 꿈에서 지환의 83년의 삶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가 연결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데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우연히 연결되었다는 식으로 풀어갑니다. 따라서, 영화를 보는 내내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계속 있는데 전혀 알려주지 않아서 좀 답답한 느낌이 듭니다. 영화 마지막 5분에서 그 관계의 비밀을 풀어내고 그 과정이 상당히 매끄럽긴 하지만 1시간 30분 동안 답답한 느낌이 듭니다.
뭐 이건 중요한 게 아니죠. 중요한 것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83년에 사는 음악교사 지환과 화학교사인 윤정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가 윤정이 살해 당합니다. 그리고 지환도 살해 당합니다. 도대체 누가 왜? 이 커플을 죽였을까요?
영화 <시간이탈자>는 범인을 찾기 위해서 현재에 사는 형사 건우를 통해서 앞으로 일어나는 일을 미리 알고 있는 지환이 다음에 일어날 살인 사건과 사건들을 미리 예견하면서 살인마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스릴러 장르를 띄면서 시작하지만 점점 진행할수록 스럴러라기 보다는 사랑 놀음이 끼어들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서 애인을 잃은 지환의 슬픔이 흐르는 가운데 건우는 윤정과 똑같이 생긴 소은을 알게 된 후에 소은과의 사랑을 키워갑니다. 과거의 지환은 고통의 단말마를 지르는데 건우는 사랑 놀음을 하니 영화가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이러니 계속 두 사람이 영향을 주면서 연쇄 살인범을 추적하지만 그 추적의 스릴은 거의 없습니다. 왜 죽였지? 누가 죽였지라는 2개의 의문을 계속 끌어 올리고 진행해야 하는데 자꾸 로맨스라는 물을 타 버리니 스릴이 싱거워지기 시작하더니 후반에 가서는 범인이 별로 궁금해지지도 않네요.
개연성 없고 느슨한 줄거리와 과한 연출로 인한 개념이탈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전체적인 줄거리는 그런대로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순간 순간을 보면 개연성 없는 스토리의 연속입니다. 먼저 영화는 스릴러라고 생각해서 봤는데 다 보고 나니 멜로물이네요. 이 2개의 색을 잘 섞으면 아름다운 색을 만들 수 있지만 이 <시간이탈자>는 레스토랑에 가서 칼질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백반이 들어오는 모습입니다. 이 2개의 장르가 유기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닌 서로를 방해를 합니다.
여기에 개연성 없는 줄거리는 맥이 풀리게 하네요. 건우가 과거의 연쇄 살인범이 다시 등장하자 그 연쇄 살인범이 모방범이라고 단박에 알아내는 모습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어떤 짐작을 하려면 그 근거를 제시해야 관객이 설득을 당하는데 그런 것이 없습니다. 영화 전체가 이렇습니다. 나중에 밝혀지는 범인의 정체와 범행을 저지르는 이유가 너무 황당합니다. 겨우 그거 때문에 연쇄 살인을?
이건 마치 로맨스를 위해 연쇄 살인이라는 키워드를 우격다짐으로 넣어 버렸네요. 전체적으로 스토리 흐름이 지루함의 연속입니다. 미래를 알고 있는 지환은 살인마보다 유리한 포지션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잘 이용하지 못합니다.
스웨터를 볼 때 구멍난 부분만 들여다 보는 것처럼 이 영화는 구멍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딱히 부족하다고 느껴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뛰어난 연기를 했다고도 느껴지지 않네요. 게다가 사실성이 중요한 스릴러에서 이질적인 이미지와 풍경은 좀 튄다는 느낌도 많이 드네요. 그나마 83년 재현을 공들여서 잘 했다고 느껴지긴 하지만 경찰서가 마치 카페 같이 느껴지는 등의 이질적인 미장센는 영화의 몰입감을 떨어트립니다.
감독 이름을 보고 모든 것이 이해되었던 영화 <시간이탈자>
영화 라스트 장면을 보기 위해 1시간 30분을 기다려야 하는 영화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갖은 양념을 다 쳤는데 너무 맛이 없네요. 이런 개연성 떨어지고 갈팡질팡하는 영화를 누가 만들었나?하고 검색을 해보니 감독이 '곽재용'이네요.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80년대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지나 90년대 '엽기적인 그녀'로 빅 히트를 치고 '클래식'으로 감수성 짙은 멜로 영화를 잘 만드는 이 노장 감독이 만들었네요. 젊은 시절의 총기는 사라지고 고집만 남았습니다. 엽기적인 그녀나 클래식이나 공통되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과한 설정과 묘사의 과잉이 곽재용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이번에도 멜로를 위해서 타임슬립 장르를 도입했는데 최진기 강사처럼 자신과 맞지 않는 장르를 건드린 듯합니다.
영화가 너무 몰입이 안 되어서 한 번에 보지 못하고 4번에 나눠서 봤네요. 그나마 영화 라스트 장면 때문에 쌓인 분노가 좀 사라졌네요
별점 : ★★
40자평 : 어설픈 연출과 개연성 없는 스토리로 개념이 이탈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