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연말에 읽은 책 한 권이 저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1년에 50여권의 책을 읽는데 읽자 마자 2014년 올해의 책에 올릴 정도로 충격이 컸습니다. 그 책의 이름은 '미움받을 용기'입니다. 이 책은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한 그러나 2014년 당시에는 생소한 아들러라는 세계 3대 심리학자의 사상을 전하는 책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아들러 심리학의 권위자인 '기시미 이치로' 와 저술가인 '고가 후이타케'가 철학자와 청년이라는 대담 형식을 통해서 아들러 심리학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심리학 또는 철학책에 가까운 책이라고 할 수 있어서 딱딱할 것으로 지례짐작 했는데 책장을 넘겨보니 어렵다기 보다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문제점에 대해서 촘촘한 설명과 해석을 담고 있어서 아주 좋았습니다.



특히나 우리가 보는 시선과 전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재조립하는 모습이 놀랍기만 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보통 '은둔형 외톨이'가 트라우마나 여러가지 주변 환경과 경험 때문에 '은둔형 외톨이'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아들러는 혼자 있고 싶으니까 은둔형 외톨이가 된 것이라면서 개인의 마음가짐이 은둔형 외톨이가 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했습니다. 

이외에도 문제의 본질을 꽤뚤어 보고 현실적이고 직시적인 혜안이 가득한 내용이 나오다보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모든 고통은 관계 맺기에서 온다는 말이 가장 큰 울림이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스트레스가 많은 이유가 바로 이 관계 맺기에 다들 열심히들 실패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 동료와의 관계의 실패, 일과의 관계설정 실패, 아들과의 관계 실패, 아내와의 관계 실패, 이런 관계맺기가 원할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일이 어려운 것은 해답이 있고 시간이 해결해 줍니다만 이 사람과의 관계 맺기는 답도 없고 언제 해결될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과의 관계 맺기에 대한 이야기를 철학자와 청년이라는 2명의 등장 인물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1년이 지난 후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이 '미움받을 용기'가 출판 역사상 최장기간인 무려 베스트셀러 52주 연속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인기를 얻을 줄은 몰랐습니다. 두 명의 저자가 2015년 3월에 한국에 왔다 간 이후에도 그 인기가 지속되더니 2015년 내내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습니다. 

미움받을 용기의 인기를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 한국 사회와 일본 사회가 인간 관계 설정에 대한 고민과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많구나를 느끼게 합니다. 

미움받을 용기는 아들러 심리학 열풍을 일으킨 책이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을 소개하면서 후반에는 '공동체 감각'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흐지부지 끝내 버립니다. 아무래도 이 '공동체 감각'이 비판도 많이 받고 쉬운 개념이 아니라서 다 소개하지 못한 느낌이 들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미움받을 용기'의 속편인 '미움받을 용기2'가 그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부모님들이 읽으면 좋은 내용이 가득한 '미움받을 용기2'

미움받을 용기2는 전편의 3년 후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된 청년이 아들러 심리학을 토대로 교육을 했지만,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서 씩씩 거리면서 철학자를 찾아오면서 시작합니다. 

먼저 아들러 심리학이 과학이냐는 질문에 '프로이드'나 '칼 융'이나 칼 포퍼 식의 과학 진단법인 '반증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과학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프로이드'가 많은 비판을 받고 그냥 참고만 할 내용이지 그의 주장이 다 맞다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이야기죠. 심리학이나 철학 같은 것은 '반증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하나의 가설일 뿐이죠. 그러나 과학이 설명하지 많은 부분을 심리학이나 철학이 설명을 해줍니다. 그리고 그 설명을 듣고 마음의 위안을 가지는 효용 때문에  사람 마음속을 파헤친 책들이 잘 팔립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범위 설정을 하고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교사가 된 청년의 고민은 학교에서 아이들이 통제되지 않고 너무 산만하고 떠든다는 이야기입니다. 엉망진창이 된 교실 풍경을 소개하면서 이게 다 아들러 심리학 대로 한 결과라고 원망을 합니다.

이에 철학자는 곰곰이 이야기를 듣다가 아이들을 향한 존경심과 사랑이 없어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진단을 합니다. 이 존경심이란 청년이 가진 권위적인 시선인 수직적 관계에서는 나올 수 없다면서 선생과 제자 관계가 아닌 친구 관계로 학생을 대해야만 학생들이 교사를 존경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가장 값싸고 못난 커뮤이케이션이 폭력이라고 지적합니다. 여기서 폭력이란 소리지르기와 칭찬하기도 좋은 교육 도구는 아니라고 소개합니다.

왜냐하면, 잘하는 학생을 칭찬하면 그 학생은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재미를 느끼는 공부가 아닌 칭찬을 받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대가를 바라는 공부는 좋은 공부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칭찬도 하지 말라고 하죠. 좀 이해가 안가긴 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칭찬하기를 시작하면 학생이나 아이는 선생님이나 부모에게 공부도 착한 행동도 칭찬을 받기 위해서 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교사 의존적인 또는 부모 의존적인 삶을 살기 때문에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공감이 갑니다. 30대 이상 분들은 잘 아실 애니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이라는 일본 애니가 있었습니다. 이 애니의 여주인공은 전교 탑 클래스 우등생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이 공부가 좋아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닌 칭찬 받기 위해서 공부를 잘 하는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뭐 애니를 떠나서 많은 한국과 일본 학생들이 부모와 교사에게 칭찬받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게 무슨 문제가 있냐고 하겠지만 그렇게 줏대 없이 공부한 학생들이 대학가서 자기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에서 허우적 거리는 것 아닐까요? 자기가 뭘 좋아하는 지에 대한 고민보다 부모가 좋아하는 학과 교사가 좋아하는 대학에 가는 것 아닐까요?

물론, 이런 아들러 심리학의 시선이 전편에서처럼 현실에 바로 적용하기 어렵고 이상향만 담았다고 하는 비판도 많죠. 그러나 진중하게 생각해보면 아들러의 지적은 바릅니다. 특히 한,중,일 같이 전체주의 성향이 강하고 상명하복의 관계망이 지배하는 나라는 아들러 심리학이 큰 혜안을 제공합니다. 전편에서도 느꼈지만 아들러 심리학은 이미 서양인들이 삶으로 실현하고 있습니다. 

철학자는 청년에게 가르치려고만 하지 말고 카운셀링을 하면서 학생들을 자립하는 도우미 역할을 하라고 안내합니다. 
이 과정이 두 번째 이야기인 '왜 야단치는 것을 부정하는가'에 담깁니다. 교실은 하나의 민주주의 국가인데 교사라는 독재자가 학생들을 통제하려고 하고 인솔하려고 하고 존경심을 받으려고 하는 그 자체가 문제라고 설명을 차분하게 합니다. 여기에 체벌과 폭력과 소리 지르기 등이 효과가 없음에도 계속 하는 교사들의 행동 방식을 해석하는데 들을만한 이야기들이 꽤 많네요

밑줄 쳐가면서 들을만한 내용은 학생들의 행동거지를 분석한 '문제행동의 5단계'입니다. 

1단계 칭찬의 욕구 

2단계 주목 끌기

3단계 권력 투쟁

4단계 복수 

5단계 무능의 증명

입니다. 이 통찰이 놀라운 것이 생각해보면 아이들의 행동 방식을 아주 잘 설명해 줍니다. 인류는 다른 동물과 달리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립해 갑니다. 따라서 부모가 없으면 세상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항상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행동을 많이 하죠. 이런 아이들의 행동을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존경이라는 시선이 학생들을 아이들을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돕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존경이란 그 존재 자체에 대한 존경입니다. 공부 잘한다고 존경하고 말 잘 듣는다고 존경하는 것이 아닌 특기도 없고 평범해도 그 존재 자체를 존경하고 인정하는 존경입니다. 이런 존경심이 바탕이 되지 않고 체벌을 하거나 체벌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화를 내고 야단을 치는 훈육이나 고육도 또 다른 폭력이라면서 값싼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지적합니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경쟁원리가 아닌 성장원리에 기초하라는 명제 아래 칭찬하지도 야단도 치지 말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청년은 어이 없는 표정으로 칭찬도 야단도 안치면 어떻게 훈육을 할 수 있냐고 따져 묻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도 철학자가 차분한 어조로 풀어냅니다. 

왜 아들러는 칭찬하지 말라고 했을까요?
이유는 이 책의 대전제인 자립에 해답이 있습니다. 칭찬과 벌 모두 부모나 교사가 아이와 학생을 자신의 권위 밑에 두고 마리오네트처럼 조정하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합니다. 칭찬을 하면 아이는 점점 칭찬 받을 일만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결국 자립이 늦춰진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칭찬은 경쟁을 낳게 되고 칭찬을 받기 위해서 친구와 주변 사람들과 무한 경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친구를 적으로 만들고 동료를 적으로 만들어서 결국은 스트레스 만땅네이션으로 만들어 버리죠. 

철학자는 경쟁원리가 아닌 협력원리로 공동체 회복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 체육 시간이 가장 좋았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옆에 있는 친구가 친구가 아닌 경쟁상대였죠. 그러나 축구공을 찰 때는 옆에 있는 친구가 패스를 받을 동료가 됩니다. 그러나 이 사회는 온통 경쟁원리가 가득합니다. TV에서도 쓰잘덱 없는 경쟁인 노래 경쟁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게 재미있나요? 전 가학적이라서 그런 프로그램 안 봅니다. 군대 예능도 가학성이 가득하죠. 윽박지르고 협박어린 겁을 주고 가뜩이나 사회 전체가 경쟁이라는 단 1개의 엔진으로 돌아가고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하는데 TV로 그런 풍경을 보면서 웃을 수 있나요? 

이래서 제가 이 '미움받을 용기 시리즈'를 좋아합니다. 칭찬을 당연시하는 이 세상에 갑자기 칭찬이 좋은 훈육 방법은 아니라고 말하는 역발상도 역발상이지만 그 이유가 고개를 끄덕거리게 합니다. 철학자는 계속해서 청년이 의문을 가지고 따지는 것들을 풀어냅니다. 



자립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미움받을 용기2'

'미움받을 용기2'는 공동체라는 말을 참 자주 사용합니다. 경쟁이 아닌 협력이 가득한 공동체로 이르려면 사랑을 하라고 합니다. 사랑? 우리가 말하는 육체적, 정신적 사랑? 이성간의 사랑과의 개념과는 살짝 다릅니다.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너와 내가 만난다고 하는데 아들러가 말하는 사랑은 너와 나도 아닌 우리라는 개념을 내밉니다. 

우리라는 개념은 너도 나도 아닌 그냥 우리입니다. 따라서 나와 함께하는 너는 존재하는 자체로도 우리가 완성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우리라는 개념이 사랑의 결과물이고 이 우리가 확장 된 것이 '공동체 감각'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공동체 감각'은 뚱딴지 같은 소리라고 느껴서 많은 동료가 아들러를 떠나갔다고 하지만 전 이 아들러가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개념을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프로이드는 1차 세계대전을 겪고 인류의 악마성을 논했다면 아들러는 현재와 미래만을 보는 아들러 심리학처럼 밝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세계 평화를 외치는 아들러. 어쩌면 그는 지상에 천국을 만드려고 했던 사람이었을까요?
'미움받을 용기2'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합니다. 낯간지러운 사랑이 아닌 인류를 구원하는 인류 공동체를 실현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공감이 크게 와닿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미움받을 용기2의 핵심 키워드는 자립입니다. 



아들러가 말하는 자립은 직장에 다니면서 자기가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경제적 자립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 의탁하지 않는 삶을 자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삶이 자립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나 부모는 한 인간을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카운셀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1편에서도 다룬 내용이죠

한국 부모님들의 너무 자식에 대한 애착이 강합니다. 또한 소유욕도 강합니다. 이게 뭔 문제냐고요? 문제가 있습니다. 많은 자녀 살해 후 자살을 하는 부모님들은 자녀를 하나의 자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자기 소유물로 생각합니다. 또한,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녀에게 주입하려는 경향도 크죠. 모든 것을 부모님이 결정하려고 합니다. 

흔히 말하죠 "내가 해 봐서 아는데 이렇게 해라" 먼저 해봤다고 그게 정답일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직접 쌓은 경험이 아이의 경험이 되지 엄마 아빠 교사의 경험이 바로 아이의 경험이 될 수 없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아이가 도와달라고 할 때만 도와주면 됩니다. 그게 자립의 첫 단계입니다.  교육도 자립의 도구이죠. 그러나 한국 교육은 한 인간을 자립하게 만드는 교육이라기 보다는 부모와 사회가 통제 가능한 인간인 '순응형 인간'으로 만들고 있고 이게 표준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이런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 없지만 읽다 보면 긴 한 숨이 나옵니다. 20살 넘어서 자립하지 못하고 부모 밑에서 사는 한국과 일본의 문화에 대한 질타 어린 시선이 가득합니다. 또한, 경제적 자립만이 자립이라고 생각하는 세태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는 삶이 바로 자립의 삶입니다. 그리고 그 자립을 위해서 국가와 교사와 부모가 쓰러져서 일으켜 세워달라고 손을 내미는 자녀와 학생에게 손을 내밀어 줄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럼 부모나 교사는 어떤 보상이 있냐고요? 그 보상은 '공헌감'입니다. 내가 도와서 스스로 두 발로 걷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공헌감이고 그런 공헌감이 행복의 밑바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판할 내용도 있고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가 성긴 면도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푸는 것이 아닌 약간의 덜컹거림이 있지만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간결하면서도 명확합니다. 자립하는 인간,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사와 부모님들에게 추천하는 책입니다. 따끔하지만 아프지만 새겨들을 만한 내용이 많습니다. 아들러는 말합니다. 내가 정답이 아니라 시대에 맞게 사람에 맞게 스스로 계승하고 수정하라고 전하고 있네요. 삶에 대한 색다른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인플루엔설 출판사로부터 미리보기 책을 제공 받아서 어떠한 간섭도 없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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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태준 2016.04.29 19: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보았습니다. 한 동안 책을 안 읽었는데 이 포스팅을 보고 책을 한번 사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포스팅 감사합니다.